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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에 대한 생각(2)(http://www.ccm.co.kr/)

작성자정성진집사|작성시간07.03.10|조회수4 목록 댓글 0
찬양에 대한 생각(2)

1992년 2월, 충북 옥천 모 교회에서 성가대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찬양세미나}. 제가 그 교회 교역자 한 분을 지목하며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전도사님, 지금 하나님을 찬양해 보시겠습니까?" "네에? 지금요?" 그는 누이 휘둥그레진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네, 지금요. 전도사님과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께 대해 찬양해 보십시오." "....그..그렇게 갑자기 시키시니 무슨 찬양을 해야 할지..." "아니, 어렵게 생각마시고...한 두가지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 "......" 그는 한참이나 멀뚱멀뚱 서 있다가 "갑자기 뭘 해야 할지..."라고 하더니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다른 이들에게 무슨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그에게 찬송가책을 건네주었고 그는 서서 그것을 뒤적뒤적하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그래서 제가 안 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재촉했습니다. "전도사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그렇게도 어렵습니까? 하나님을 찬 양할 내용이 그렇게도 없나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해 보세요." 그러자 그는 당황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말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때서야 그는 입을 열었습니 다. 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 합소서."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1절을 다 불렀습니다. 사실 저는 그를 곤경에 그가 거의 5분 이상이나 주저하며 혼이 났기에 차마 저는 이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전도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애써 부른 그 노래 는...죄송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성경에서 말하는, 본 질적인 의미에서의 찬양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멜로디에 담겨진 '기도'말입니다.

지금도 자주 이런 편지를 받습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싶어요. 찬양은 하나 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잖아요. 우리 인간의 창조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제 소망과 달리...제가 노래를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도 못 쳐요. 그래서 너무나 괴로워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것이 너무 괴로워요. 찬양을 잘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도와 주세요.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싶어요.} 애처로운 사연입니다. 그런데 이런 편지를 받으면 그만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사실 이런 내용 의 편지는 말도 안 되는 하소연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찬양'을 너 무나 엉뚱하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번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의 그 전도사님의 경우도 마찬 가지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 한 두 사람에게 국한된 오류가 아니고 우리 한국교회 전반에 걸친 심각한 오 류라는 데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격찬해 보십시오"라는 제안에 대해 제대로 반응한 목회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면 일반 신자들은 더 물어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이 말은 바로 "하나님을 자랑해 보십시오. 하나 님을 격찬해 보십시오"라는 말과 꼭 같은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장소나 물건을)다른 사람 앞에서 아주 많이 칭찬하거나 자랑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지난 호에 장황하게 기술하였던, 모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의 자기 전도사님 자랑 사건(?) 기억나십니까? 무려 20분 간이나 계속된 그 일 말입니다. 하도 열띤 전도사님 자랑이어서 제가 도중에 중단을 시켰습니다. 어떤 대상 대한 격찬과 자랑은 우리 삶의 일상사입니다. 너무나 탁월한 어떤 기능이나 작품을 보았을 때, 너무나 탁월한 미모나 어느 곳의 절경을 보았을 때, 너무나 감동적인 경험을 하였을 때, 너무나 존경스럽고 경외로운 인품을 지닌 이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한 격찬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신나게 자랑합니다. 흥분하여, 온갖 몸짓으로, 큰 소리로, 침을 튀겨가며 말입니다. 우리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역전 만루홈런을 쳤을 때의 열광과 환호, 위대한 연주자나 성악가, 가수의 연후의 기립박수와 환호, 올림픽 마라톤이나 추구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 우리가 보이는 모든 반응들 - 그것이 바로 격찬입니다. 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양(讚揚, praise, 할랄, 아이네오)입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찬양'의 진짜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찬양'이라는 용어에선... 이 개념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습 니다. 엉뚱한 개념들로 대치되어 버렸습니다. '찬양'을 이야기 할 때 어떤 설교자도 이와 같은 개 념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무슨 주술이나 입버릇처럼 "할렐루야"를 마구 외쳐대 면서도 그 말이 "여호와(하나님)을 격찬합시다. 여호와를 칭찬하고 자랑합시다"라는 의미임을 피 부로 선명히 못 느낍니다. {여호와를 찬양(할랄)하라}의 '찬양'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라고 하면 하나님을 찬양(격찬, 자랑)할 생각은 못하고 찬송 가 책자를 뒤적이거나 반주자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은 반드시 음악과 관련이 있는 것으 로 압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격찬과 자랑(찬양)에는...음악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 호에 소개되었던 서울 어느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은 20여분간이나 자기들 전도사님을 칭찬 하고 자랑하면서 100여명 중에 단 한 명도, 단 한 번도 '음악'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피아노 반 주자조차도 음악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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