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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우리말

각설이 어원

작성자無時不習|작성시간26.06.15|조회수34 목록 댓글 3

각설이 어원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사회 현상 중에 ‘거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구걸하는 풍경이 전국적으로 있었다. 그들은 동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일종의 거리 공연 같은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냥 공짜로 얻어먹겠다는 것이 아니고 실없거나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을 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니 그 대가로 푼돈이나 먹을 것이라도 조금 나누어 달라고 하는 존재가 바로 거지였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개인 집을 찾아다니면서 구걸하는 거지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오일장 같은 곳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명이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을 장타령꾼, 혹은 각설이라고 불렀는데, 널리 알려진 이름은 ‘각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각설이타령’이라고 하며 구전민요의 하나로 본다.

 

‘각설이’의 뜻이 무엇인지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각설이는 ‘장타령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장타령꾼’을 찾아보면, “예전에, 장이나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장타령을 부르던 동냥아치”라는 풀이가 나온다. ‘각설이’라는 말이 ‘장타령꾼’을 다시 낮잡아 부른다는 말인지, ‘장타령꾼’과 비슷한 수준의 표현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설명한 것인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어떤 일, 특히 즐기는 방면의 일에 아주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꾼’이므로 ‘장타령꾼’이라는 말 자체가 낮잡아 부른다는 뜻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층 난감해진다. 우리말에서 ‘꾼’은 낮잡아 이르는 말이지만, ‘이’는 사람을 예사롭게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장타령꾼’이라는 말은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각설이’는 높임말은 아닐지라도 낮잡아 부르는 것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논리적인 설명이나 이론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각설이’는 ‘却說이’라고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기관에서 만든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기 때문인지 ‘却說이’가 가장 널리 알려진 정설처럼 되었는데, 이렇게 봐야 하는 이유나 근거, 증거 등을 제시하는 곳이나 사람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어떤 사람은 ‘각설이타령’에는 철학적인 의미와 슬픈 역사가 녹아 있다고 하면서 한자어인 ‘覺說理’라는 웃지 못할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논리적인 체계나 근거 등은 전혀 없다. 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각설이’는 민족 문화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존재였기 때문에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却說’을 살펴보자.

 

‘却說’이란 표현은 중국 명청(明淸)시대에 유행한 회장체소설(回章體小說)에서 이야기 단락의 전환과 연결을 위해 사용했던 상투어였다. 조선 시대에는 말이나 글 따위에서 이제까지 다루던 내용을 그만두고 장면을 전환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맨 앞에 놓는 표현으로 쓰였다. 주로 ‘각설하고’, ‘각설이라’ 등의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이와 비슷한 표현에 ‘전설(前說)’, ‘차설(且說)’, 화설(話說) 등도 있었다. 이러한 용도로 쓰였던 ‘각설’이라는 표현이 무슨 이유로 ‘거지’를 지칭하는 별칭으로 되었는지는 어떤 자료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각설’과 ‘각설이’를 연결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도 찾기 어려우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깨달음의 이치를 말하는 사람(覺說理)이라고 하면서 그 원조는 신라 때 원효(元曉)라고 하는 주장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却說이’로 표기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여 새로운 증거와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 그 뜻을 해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말에 ‘객쩍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행동이나 말, 생각 등이 쓸데가 없고 싱겁다’라는 뜻이다. ‘객쩍은 소리 그만두어요. 그따위 실없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에요≪염상섭, 삼대≫’라는 문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객쩍은 수작, 객쩍은 망상’ 등과 같은 표현에서 주로 쓴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객쩍다’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면서 맨 앞에 오는 글자가 한자어인 ‘客’이라는 사실이다. ‘객쩍다’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글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客(손 객)’은 집(宀)+발(止)+문(口)이 결합한 것으로 바깥에서 사람이 들어와 집 안에 머문다는 뜻을 기본으로 하는데, 후대로 오면서 ‘손님’, ‘귀빈’, ‘바깥’, ‘식객’, ‘과거’, ‘접대’ 등으로 그 뜻이 확대되었다. 이 글자가 우리말에 와서는, ‘불청객’, ‘성가신 존재’, ‘바깥에서 온 사람’, ‘주인이 아닌 사람’, ‘천연두’, ‘나쁜 귀신(손 없는 날)’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쓰였다.

 

여기에서 보듯이 주인의 처지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에게 이 글자를 붙여서 쓸 수 있는 근거를 이미 확보한 상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쩍(적)’을 한자 ‘的’에서 온 것이라서 그 의미는 한층 명확해진다. ‘的’은 우리말에서 접사로 쓰여 앞에서 말한 존재나 사물 등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처럼’ 등의 뜻을 만든다. 따라서 ‘객쩍다(은)’라는 말은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성가시다’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 ‘說(말씀 설)’이 결합하면 ‘客說’로 되어 ‘객쩍게 말함’이라는 뜻을 가진 표현이 된다. 이 말은 ‘객담’, ‘객론’, 객소리‘ 등과 같은 뜻이라고 하면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다. 즉, 이 표현들은 모두 ‘실없고 별로 쓸데가 없으며 싱거운 소리, 혹은 말’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속에는 듣는 사람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불청객 같은 존재가 하는 말이라는 뜻이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밖에 없음도 분명하다.

 

여기에 ‘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면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이’가 붙으면 ‘客說이’로 되어 ‘실없거나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된다. 이런 사람, 혹은 사람들은 주인이 보았을 때 정말로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으므로 한시라도 빨리 보내버리거나 자신이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즉, ‘객설이’와 주인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성사되면서 서로가 만족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客’의 우리말 발음에서 ‘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ㅏ’와 ‘ㅣ’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중모음이었다가 19세기경에 이르러 단모음으로 된다. ‘ㅐ’의 발음은 ‘ㅏ’와 ‘ㅣ’를 빨리 소리 내는 모양이었기 때문에 중심 소리는 어디까지나 ‘ㅏ’였다. 그러므로 ‘ㅐ’는 힘이 약한 ‘ㅣ’가 생략될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즉, ‘객’이 ‘각’으로 바뀌어 발음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客說이’처럼 ‘이’가 붙어서 발음 하기도 어려워지면 ‘각설이’로 소리를 낼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客說이’가 ‘각설이’로 바뀌었다고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지를 지칭하는 ‘각설이’들을 일반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들을 ‘객쩍은 소리나 지껄여대는 사람’ 정도로 취급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지, 혹은 각설이들이 문 앞이나 거리에 와서 판을 깔려고 하면 먹을 것을 얼른 주어 빨리 가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인은 객쩍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각설이는 음식을 받았기 때문에 배부름으로 생활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주인과 손님 사이의 거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참으로 현명한 처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설이들이 부르는 노래인 ‘각설이타령’은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어화 이놈이 이래 봬도 정승 판서의 자제로 팔도감사를 마다하고 돈 한 푼에 팔려서 각설이로만 나섰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볼 때는 그야말로 객쩍은 소리라고 할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이 외에도 매우 다양한 사설이 있는데, 대부분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실없는 소리에 가까운 것들이다. 소리(노래)를 잘한다는 자랑질, 장이 열리는 지명에 대한 말장난, 1부터 10까지의 숫자 타령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니 ‘각설이’를 실없는 소리(객쩍은 소리)를 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객쩍다’는 19세기 문헌에서는 ‘객적다’로 나타나는데, 이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각설이’라는 표현이 한글이든 한자 표기든 조선 시대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말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를 지나는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볼 뿐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거나 싱거운 소리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이 ‘각설이’라고 한다면 이 말은 ‘客說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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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無時不習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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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정은 | 작성시간 26.06.16 거지 각설이는 현실은 존재 하지 않았지요.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나 존재하고 산업화시대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부자였지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적선을 했지요. 구걸이 직업이었던 거죠.
  • 답댓글 작성자無時不習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그렇지 않습니다. 각설이로 불리는 거지는 실제로 있었던 우리 사회의 문화현상이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전국에 이런 사람들이 장터를 누비면서 구걸을 했습니다. 공연처럼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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