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문화사(11)-서울(徐伐, 셔ᄫᅳᆯ)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한강의 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다. 고려를 대신하여 이성계가 1392년에 새롭게 세운 나라인 조선의 도읍지로 결정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으뜸 도시인 수도(首都)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 인천 등의 지역이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권역으로 묶이면서 한층 큰 규모의 도시로 거듭나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 문화,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중심을 이루는 서울이지만 땅이름의 어원이나 유래 등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 것 같아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서울 지역은 경기도 양주(楊州)에 속했던 작은 고을이었는데, 조선 초기에 나라의 도읍지로 정해지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양주 지역(서울 지역 포함)은 고구려 때에는 북한산군(北漢山郡), 남평양(南平壤)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신라 경덕왕 때는 한양군(漢陽郡)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또한 고려 시대에는 남경(南京), 목멱양(木覓壤)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선 건국 초기에 한강 이북 서울의 구도심 구역을 도읍지로 정하고 한양부(漢陽府)로 이름하기도 했다. 또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서는 경도(京都)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명칭은 모두가 한자 표기인데,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서울을 공식 지명으로 하고 있다.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도를 지칭하는 서울이란 지명이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서울의 어원에 관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서울’의 본래의 뜻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지만, 서(徐) · 서나(徐那) · 서라(徐羅)는 높고[高] 신령(神靈)하다는 우리말 ‘수리’ · ‘솔’ · ‘솟’의 음사(音寫)이고, 벌(伐)은 들판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의 음사이다. 따라서 ‘서울’, 즉 서벌 · 서나벌 · 서라벌은 상읍(上邑) 또는 수도(首都)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서라벌을 ‘새[新] 벌[城]’로 풀이하고, ‘새’를 동쪽, 신령함을 뜻하는 말과 통한다는 주장도 있고, 어떤 이는 서울은 설울(雪울)에서 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 정설로 인정받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서울이란 지명의 유래는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의 옛 이름인 서벌(徐伐)에서 왔다는 주장이다. 서벌은 이두 지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뜻은 임금이 계시는 곳, 왕실 조상의 위패가 있는 곳, 한 나라의 도읍지 등이다. 여기에서 시작된 땅이름이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강의 북쪽이면서 삼각산의 남쪽 산기슭에 있는 땅을 가리키는 서울이란 지명으로 정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이란 땅이름의 근원을 찾아서 어원을 올바르게 밝히기 위해서는 서벌, 혹은 서라벌이라는 지명이 가지고 있었던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기록을 중심으로 보면 서울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의 옛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함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주는 신라 시대 당시에는 서벌(徐伐), 서나벌(徐那伐), 서라벌(徐羅伐), 서야벌(徐耶伐) 등으로 불렸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대동지지(大東地志), 동사강목(東史綱目),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등 여러 문헌에서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漢陽)을 세간에서는 서울로 부른다고 하면서 서울(徐菀), 서울(徐蔚), 서울(徐鬱), 서올(徐兀) 등으로 표기했는데, 이것이 경주의 옛 이름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벌과 서울에 대한 이두(吏讀) 표기에서 눈에 띄는 점은 맨 앞에 있는 ‘徐’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다른 글자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사실이다. 뒤의 글자는 伐, 羅, 耶, 那, 鬱, 菀, 兀, 蔚 등으로 시대에 따라 여러 번 바뀌었지만, 맨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이 글자만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서벌, 혹은 서울이라는 땅이름에서 ‘徐’가 중심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두 표기에서 어구(語句)의 중심이 되는 글자는 해당하는 한자가 가지고 있는 뜻을 취한다는 원칙이 있으므로 이 글자는 뜻(訓)으로 풀이하는 것이 가장 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말은 명사+조사, 어간+어미의 방식으로 된 어휘들이 연결되어서 어구나 문장 등을 구성하는데, 이두에서는 중심적인 구실을 하는 명사, 어간 등은 표기하는 글자의 뜻을 빌려(訓借)서 하고 조사, 어미 등은 음을 빌려 표기(音借)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두인 서벌, 서울 등의 표기에서 맨 앞의 글자는 뜻으로 해석하고 뒤의 글자는 소리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뜻을 빌려서 쓴 앞의 글자는 변할 수가 없지만 뒤의 글자는 비슷한 소리로 발음되는 것이면 무엇이나 가져다 쓸 수 있게 되었다. 뒤의 글자는 신라 때에는 ‘伐’이었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는 ‘울’로 바뀌는데, 이것은 우리말 소리값이 변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어원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徐’의 뜻을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뜻은 천천히, 평온함, 모두 등이다. 그렇지만 지명이나 나라의 이름으로 쓰일 때는 상당히 다른 뜻을 가지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강과 산을 정해 각각 사독(四瀆)과 오악(五岳)으로 설정하여 섬겼는데,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삼았다. 사독의 하나인 제수(濟水)의 동쪽에 있는 땅이 서주(徐州)인데, 단일 지역으로는 황제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아홉 왕조의 제왕이 서주 출신(九朝帝王徐州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황제 자신이 서주 출신이거나 황제의 조상이 그곳 출신인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서주는 고대에는 팽성(彭城)으로 불렸는데, 여러 왕조에서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며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주는 줄여서 ‘徐’로 부르기도 하는데, 나라의 도읍지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였다. 고조선 지역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내려가 지금의 서주 땅을 장악하고 세웠던 서국(徐國)이라는 나라는 기원전 512년 오(吳)나라 합려(闔閭)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1,600년이나 이어졌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동이족(東夷族)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의 후예거나 우리와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여기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는다.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역사지만 그냥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서국은 중국 전설의 왕조인 하(夏)나라 시기에 이미 하나의 국가로 존재했고 그 뒤로도 제왕을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이 글자가 들어가는 지명이나 나라 이름은 모두 도읍지나 왕의 나라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인해 지명에서 ‘徐’는 ‘황제의 고장’, ‘나라의 도읍지’, ‘문명과 문화의 중심지’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신라 때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경주와 서울을 표기하는 지명에서 ‘徐’만은 바뀌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온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경주 옛 지명에 ‘徐’를 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는 황산강(黃山江)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다. 황산강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라 사독(四瀆) 중 남독(南瀆)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던 지역으로 나라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극진하게 섬겼던 국가 하천이었다. 지금은 전체를 낙동강이라고 부르지만 신라 시대에는 경주의 서쪽 지역을 흐르는 강을 황산강이라고 불렀다. 경주 지역은 사로국(斯盧國)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황산강(낙동강)의 동쪽에 있는 땅이다.
중국 황하(黃河)의 지류이면서 서주의 서쪽을 지나 북으로 흘러 황해(黃海)로 들어가는 제수(濟水)는 황제가 북독(北瀆)으로 지정하여 섬겼던 강이었다. 중국 북독의 동쪽에 있는 곳이 서주였는데, 신라 남독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 경주였으니 두 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 연유로 인해 ‘徐’라는 글자의 뜻을 빌려와 경주의 지명을 표기하면서 나라의 도읍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글자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조선 시대의 도읍지였던 서울의 지명 표기에서 ‘徐’만은 바뀌지 않고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라벌, 혹은 서벌의 ‘伐’은 소리를 빌려서 우리말을 표기하는 음차(音借) 표기로 쓰인 것인데, 당시의 우리말 소리가 어떤 형태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으므로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의 소리값으로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 ‘벌’의 ‘ㅂ’을 ‘ㅸ’으로 볼 경우 신라 시대에도 이에 해당하는 음가를 지닌 것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정설로 확정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伐’은 ‘ᄫᆞᆯ’ 혹은 ‘ᄫᅳᆯ’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두 표기 시대 서벌의 음가는 ‘셔ᄫᆞᆯ’, 혹은 ‘셔ᄫᅳᆯ’이었을 것이다. 이 음가를 나타내는 이두 지명 표기 뒷 글자가 ‘伐’로 고정되면서 신라 시대 내내 지켜졌던 사실을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벌’은 높고 넓으면서 평평한 땅을 기본적인 뜻으로 하는데, 이것을 ‘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시대에 이르면 민간에서 쓰는 서울이라는 지명을 한자로 바꾸어서 하는 이두 표기에서 모두 ‘울’이라는 음가에 해당하는 글자들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조의 기록에서 서울을 이두로 표기한 지명은 주로 18세기 이후에 등장하는데, 뒤의 글자는 모두 ‘울’로 기록하고 있다. 18세기 무렵은 이미 ‘ㅸ’이 사라진 지 오래된 때이기 때문에 우리 말과 글의 소리값이 크게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쓰인 것은 菀, 蔚, 鬱, 兀 등인데, 모두 ‘울’이라는 우리말 소리를 나타내기 위한 글자들이다.
‘ㅸ’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조선 중종, 명종 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악장가사에 실려 있는 ‘서경별곡(西京別曲)’에 ‘셔울’이란 표기가 등장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ㅸ’은 16세기 초, 중반 무렵에는 이미 사라져가고 있었거나 사라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경별곡’은 고려 시대의 노래인데, 16세기 무렵의 기록에 ‘셔울’이란 표현이 나타나고 있으니 이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다. 고려 시대에 ‘셔울’을 어떻게 발음했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관심을 끄는 것은 이 한자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뜻이다. 이 글자들은 모두 ‘무성하다, 높고 평평하다, 화려하다, 찬란하다 등의 뜻을 나타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서울의 ‘울’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 글자들이 모두 신라 때에 쓰인 ‘伐’을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잘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이란 땅이름은 셔ᄫᆞᆯ>셔ᄫᅳᆯ>셔ᄫᅮᆯ>셔울>서울로 바뀌어서 지금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이란 지명은 ’높고 넓으면서 평평한 땅이면서 나라의 군주가 계시는 곳으로 문명과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조선 시대의 공식 기록에서는 서울을 한양(漢陽)으로도 부르기도 했는데, 한수(漢水), 혹은 한강의 북쪽이면서 삼각산(북한산) 남쪽 기슭의 땅으로 높고 넓으면서 평평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서울이라는 이름이 가진 뜻과 같은 의미다. 황제가 있는 곳으로 높고 넓으면서 평평한 데다가 문명과 문화의 중심이 되는 땅이라는 뜻을 가진 서벌(徐伐)을 ‘서울’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어원으로 확정한다면 ‘서울’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녹여냄과 동시에 웅장한 뜻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