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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문화사

땅이름문화사(13)-강화도

작성자無時不習|작성시간25.12.19|조회수55 목록 댓글 3

땅이름 문화사(13)-강화도(江華島)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으면서 강화군의 본 섬인 강화도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역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나라에서 중요시했던 지역이었다는 점과 함께 고대 국가 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모두 전략적 요충지로 여겼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기지로 삼으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건을 겪어냈던 곳이 바로 강화도였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근원이 되는 단군이 천제(天祭)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는 참성단(塹星壇), 몽골의 침입으로 왕이 피신했던 고려궁지(高麗宮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 개항기 최전방에서 서구 세력과 맞섰던 흔적인 돈대(墩臺)와 보루(堡壘) 등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품고 있는 유적들이 즐비하다. 또한 서해와 접해 있으면서 남북분단의 경계선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으니, 과거의 역사적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에 나타난 강화도의 땅이름은 고구려 시대 것이 가장 빠른데, 신라, 고려 등을 거치면서 지금의 지명으로 정착되었다. 강화도의 지명 유래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본래 고구려 혈구군(穴口郡)인데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이 해구(海口)로 고치고, 원성왕(元聖王)이 혈구진(穴口鎭)을 설치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현(縣)으로 만들었다.” ‘혈구’는 한자어이고, '갑비고차'는 이두로 보이는데, 같은 뜻을 가진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때의 지명인 ‘해구’ 역시 고구려의 땅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렇게 바꾸었다. 또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면서 지금도 공식 지명으로 쓰이는 ‘江華’ 역시 앞 시대의 것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라는 땅이름이 가진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이해서는 고구려의 땅이름인 ‘혈구’, 혹은 '갑비고차'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혈구를 보자.

 

혈구는 ‘穴(구멍 혈)’과 ‘口(입 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한자어 표현이다. ‘穴’은 바위나 땅 등에 자연적으로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멍이나 깊게 움푹 파인 공간을 뜻한다. 이 글자의 위는 ‘宀(집 면)’으로 동서남북을 모두 덮어 막아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인 방을 만든 집의 모양을 가리킨다. 아래의 八은 지붕이나 덮개 같은 것은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통풍구나 출입구 등을 나타낸다. 그래서 ‘穴’은 사방이 막혀 있으면서 동물이나 사람 등이 드나들면서 머물러 살 수 있는 움푹 파인 곳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 글자는 구멍이 있으면서 움푹 파이거나 뚫려 있는 곳으로 동물이나 사람 등이 숨거나 살 수 있는 공간, 집, 보금자리, 터널, 물길(水道)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쓰임이 확대되어서 가장 중요한 곳(要處), 자물쇠, 잠금, 봉쇄 등의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다. 즉, 무엇인가가 들어 있는 움푹 파인 공간의 맨 앞에 자리하고 있는 구멍처럼 그것의 앞에 있으면서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거나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잠가서 봉쇄해 버리는 자물쇠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을 나타내게 되어 가장 중요한 곳, 요충지 등의 뜻도 가지게 되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한자로 표기한 땅이름인 ‘혈구’에서 ‘穴’은 자물쇠, 요충지, 봉쇄 등의 뜻으로 쓰였는데, 강화도의 지형적 특성을 보면 이 점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강화도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라는 세 개의 강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그곳으로 들고 나는 문을 모두 막아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穴’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뜻인 집, 보금자리, 터널 등으로 풀이하면 뒤의 글자인 ‘口’와 전혀 연결되지 않게 되어 어떤 의미로 이런 땅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한쪽으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다른 쪽으로는 여러 개의 강 머리를 끼고 있는 강화도(江華島)라는 섬이 가지고 있는 지형적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가장 합당한 것으로 ‘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口(입 구)’를 보자.

 

‘口’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자(象形字)로 밥을 먹거나 말을 내뱉는 곳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부리, 주둥이, 입 등이 기본적인 뜻인데, 사물의 뾰족한 끝, 물건을 담는 그릇 같은 것의 안에서 바깥으로 통할 수 있는 부분, 출입하면서 지나는 공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 등의 뜻을 더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말미암아 이 글자는 어떤 사물 현상에서 튀어나온 끝, 꼭대기, 머리, 들머리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까지 되면서 이 글자가 가진 의미와 쓰임은 더욱 넓어졌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고구려 시대의 한자어 땅이름인 혈구(穴口)는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여러 강의 끝부분이면서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출구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섬으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 모두를 막아서 봉쇄할 수 있는 최고의 요충지로 전략상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다음으로는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이두 지명인 ‘갑비고차’를 보자.

 

우리말 표현에서 의미 전달의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명사, 어간 등은 한자의 뜻을 빌려서 쓰고, 보조 역할을 하는 조사, 어미 등은 한자의 소리를 빌려서 쓰는 원칙에 근거하여 볼 때 ‘갑비고차’는 ‘갑비’+‘고차’의 형태가 되어 앞에 있는 것이 핵심적 구실을 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갑비’는 글자의 뜻을 취하고, ‘고차’는 소리를 취했다는 이두의 원칙을 중심으로 그 뜻을 해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甲比’는 현대어에서는 ‘갑비’로 발음하지만, 중세국어 이전에는 ‘갑+ᄫᅵ’, ‘가+ᄫᅵ’, ‘가ᇦ+이’ 등의 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ㅸ(순경음 ㅂ)은 ‘여린 비읍’, 혹은 ‘가벼운 비읍’이라고도 하는데, ’ㅂ‘을 약하게 발음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후세로 오면서 ’ㅸ‘은 대부분 ‘ㅇ’으로 바뀌었다. 특히 어휘의 중간이나 뒤에 올 때는 모두 ‘ㅇ’으로 변화되었다. ‘덥어>더ᄫᅥ>더버>더워’로 변화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갑+ᄫᅵ’, ‘가+ᄫᅵ’, ‘가ᇦ+이’ 등은 ‘갑+이, 가+이, 강’ 등으로 되었고, 이것이 ‘강’으로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즉, ‘甲比’는 ‘江’의 뜻을 취한 이두 표기가 되는 것이다.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명칭인 ‘강’은 산과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것이면서 넓고 깊게 흐르는 물줄기를 의미하므로 강과 연결된 지리적 환경을 가진 강화도라는 지명의 뜻과도 연결될 수 있게 된다.

 

‘古次’에서 ‘古’는 우리말 어미를 표기하는 데에 주로 쓰였다. 예를 들면, 하고(爲古), 먹고(食古) 등이다. 그러므로 이두에서 이 글자는 지금의 발음인 ‘고’를 나타내기 위한 표기가 된다. 이두(借字表記法)에서 ‘次’는 음절의 끝소리(末音)를 표기하는 데에 사용된 글자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글자의 받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말음첨기법(末音添記法)이라고 한다. ‘乙’은 ‘ㄹ’(乭, 돌), ‘音’은 ‘ㅁ’, ‘叱’은 ‘ㅅ’ 등으로 쓰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次’는 음절의 끝소리 중에서 ‘ㅊ’, 혹은 ‘ㅈ’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로 쓰였다. 그러므로 ‘古次’는 ‘곷’, 혹은 ‘곶’이 된다. 지금 쓰는 말로는 ‘곶(串)’이다.

 

한자어이면서 우리말이기도 한 ‘곶(串)’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라고 하면서 갑(岬)과 같은 뜻’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곶’이 붙은 땅이름을 보면 바다 쪽으로 부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뿐만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육지 사이로 물이 흐르는 곳에도 쓰이는 데다가 뾰족하게 나오지 않은 부분에도 쓰고 있어서 국어사전이 너무 좁은 의미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곶’은 물에 접해 있는 곳으로 여러 가지, 혹은 여러 개가 얽혀 있으면서 마주 보고 있는 좁은 공간(狹) 중의 한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갑비고차’는 이두식 우리말로 하면 ‘강+곶’이 되어 강과 얽혀 있으면서 그것을 막아설 정도로 가까이 있는 공간이 되므로 ‘穴口’와 같은 의미가 된다. 고구려 시대에는 갑비고차, 혹은 혈구로 불렀던 강화의 땅이름은 신라 경덕왕 때에 이르러서는 ‘海口’로 바뀐다. 이것을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바다 입구 정도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海’는 바다를 기본적인 뜻으로 하지만, 지명으로 쓰일 때는 경계, 가장자리, 접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海口’는 바다와 땅, 혹은 바다와 강의 경계에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강화도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 지역에 있는 섬으로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가거나 강에서 바다로 나오는 출입구를 막아서 지키는 역할을 하는 곳이므로 이런 명칭을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시대의 땅이름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뜻이다. 한자로 바꾸기는 했어도 신라가 고구려의 땅이름을 직접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의 지명인 갑비고차를 해구라는 한자어로 바꾸면서도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한 진(鎭)의 이름은 혈구진(穴口鎭)이라고 한 것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초기에 이르면 강화도의 땅이름은 강화(江華), 심주(沁州), 강도(江都)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기도 했다. 강도는 몽고 침입 때 왕이 이곳으로 피난 가 도읍지가 되면서 붙였던 것으로 잠시 쓰였던 것이라서 별 의미가 없다. 심주는 안에서 밖으로 물이 나오는 지역으로 농도가 다른 물이 만나 서로 스며드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강화도의 지형적 특성을 아주 잘 반영한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의 지명 역시 지형적, 환경적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여 지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고려 초기에 이르면 신라 때의 땅이름인 해구를 강화(江華)로 바꾸었다고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10세기 초에 지금의 지명으로 바뀌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강화라는 이름 역시 고구려, 신라 때의 지명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고려 때의 별칭이었던 심주 등과 비슷한 의미로 해석되므로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땅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라는 땅이름의 의미를 살펴보자.

 

‘江’은 작은 산이나 골짜기 등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물들이 모여서 깊고 넓으면서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서 흘러가는 물줄기를 통틀어 부르는 말(通稱)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소금기가 없는 물을 담수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이루어진 큰 물줄기를 바로 강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江’은 수(氵)와 공(工)이 좌우로 결합해서 만들어진 형성자(形聲字) 혹은 회의자(會意字)이다. 工(장인 공)은 크다는 의미를 지닌 ‘巨(클 거)’의 본래 글자로 거대하다, 매우 크다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江’은 매우 큰 물줄기를 기본적인 뜻으로 한다.

 

‘華’의 초기 글자는 ‘𠌶’이다. 이 글자는 식물의 꽃봉오리를 본떠서 만든 상형자(象形字)였는데, 후대에 이르러 위에 ‘艹(풀 초)’를 더해서 지금처럼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花’의 본래 글자가 되기도 한다. 글자를 상중하로 나누어 보면, 상부는 꽃잎의 형상이고, 중부의 옆으로 그은 획 두 개는 꽃받침이며, 하부는 줄기와 뿌리이다. 즉, 위는 꽃, 가운데는 밑동, 옆은 가지, 아래는 뿌리가 되는 것이다. 초기의 글자는 본래의 뜻을 직관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보아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이르러 글자의 맨 위에 ‘艹’를 넣어서 좀 더 분명하게 뜻을 전달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글자의 모양이 바뀌면서 꽃봉오리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고, 글자의 성격도 形聲兼會意字로 변했다.

 

글자의 모양과 성격이 변화되자 그것이 가지는 뜻도 크게 확장되었다. 꽃은 식물의 맨 위에 있으므로 꼭대기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고, 꼭대기는 머리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확장되었다. 또한 꽃은 위에 있으면서 매우 화려하므로 번화, 번성, 찬란, 광채, 사치 등의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고, 세월, 시간도 나타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빛나다’의 뜻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이 글자의 기본적인 뜻은 어디까지나 꽃, 머리, 꼭대기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강화도(江華島)’라는 땅이름은 ‘강의 머리에 있는 섬’, ‘강 머리 섬’ 등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의 머리 바로 앞에 있으면서 바다에서 강으로 통하는 입구와 강에서 바다로 퉁하는 출구를 막고 있는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강 머리 섬’은 강화도의 지형적 특성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풀이가 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조선시대에는 강화도가 조선을 지키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나라의 보장(保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강화도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다양하고 유서 깊은 문화와 유적을 간직한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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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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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無時不習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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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광호 | 작성시간 25.12.19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건강 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無時不習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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