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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학개론.제32강/돕는 배필/배우자
글/ 해남 민다선
세월이 흘러 어느 사이 자녀들이 결혼할 나이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멋진 청년이나 아리따운 청년들을 보면 눈여겨보아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웃음이 나온다.
교회 집사님 아들 가운데 상당히 근사한 청년이 있었다. 대학을 나오고 제법 괜찮은 직장에 취직을 해서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차에 우연히 교회 수련회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 때다 싶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청년에게 이제 혼기가 찼으니 결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청년도 해야지요 하고 대답을 했다. 나는 어떤 배우자를 원하느냐고 물으면서 남의 일 이야기하듯 좋은 사람 소개 시켜주겠다고 했다. 청년은 믿음이 좋고, 성실한 사람이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께서 여자는 우리 집보다 좀 못한 집에서 데려오는 것이 좋겠다고 늘 말씀 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이라고 했다. 처가 덕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망감이 엄습해 왔다. 물론 그 청년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되긴 했지만 가정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짐작되었다.
청년의 이야기처럼 여자는 좀 못한 집, 여러 가지로 조금 뒤떨어지는 집에서 데려오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그것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유교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 정도였다. 그래서 언제든지 바꿀 수도 있고, 내버릴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여자는 지아비에게, 시댁에 순종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다. 오죽했으면 시집가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눈 뜬 봉사 3년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사회 풍조가 이러했으니 남자보다 지위가 높은 집에서 또는 더 잘사는 집에서 여자를 데려 왔을 경우 막 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무조건 순종을 강요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여자가 고분고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순종적인 며느리, 헌신적인 아내는 자연 남자보다 좀 못한 집에서 데려오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여자의 역할이 밥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고, 남편 시중드는 일이 전부였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청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은 내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더구나 믿음 좋은 집사님 댁의 청년이었기에 그런 충격은 더욱 컸다.
배우자는 돕는 배필이다. 돕는 배필이라는 의미 속에는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도울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돕는 사람도 필요 없고 이것이 부부 간이라면 돕는 배필도 결국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돕는 배필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약한 존재라는 것과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느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배우자를 돕는 배필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에게 스스로 겸손한 사람만이 아내를 또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물론 아내를 또는 남편을 이용하여 출세를 하겠다거나 성공을 이루겠다라고 하는 것과 돕는 배필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아내나 남편 또는 그 가문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물질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이용하는 일이고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도움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도움을 받는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아내의 도움이 또는 남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때 서로 협력하는 것이 돕는 일이다. 돕는 것은 기도로도 도울 수 있고, 물질로도 도울 수 있고, 옆에서 그저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로도 도울 수 있다. 이용하는 것과 돕는 것은 이렇게 내용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즉, 사람을 어떤 도구처럼 이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보다 조금 못한 집에서 아내를 데려와 살겠다는 마음속에 혹시라도 내 마음대로 아내를 조정하고, 복종 시키고, 내게 순종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유산이다. 아내는 그러한 대상이 아니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 돕고 위로하면서 살아가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하와를 붙여주시면서 ‘돕는 배필’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인간은 혼자서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돕는 배필을 구하는 마음속에는 겸손의 의미가 들어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함께 힘을 모아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삶의 동반자를 구하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움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받을 수 있다.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하는 의지 속에는 젊은 패기가 숨어 있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잘못되면 오히려 교만이 될 수 있다. 아집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남자로 태어나 자기보다 조금 못한 집에서 아내를 데려와 겨우 자기 아내나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살려고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청년이라면 이런 청년이 세상의 경영은 고사하고 어찌 자기 영역에서라도 일가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나는 그 청년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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