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식 게시판

생명의 양식

작성자정의영 목사(경기 동탄)|작성시간23.04.27|조회수16 목록 댓글 0

☞癸卯年 정착과 부흥의 해☜                      

모든 생명의 양식(복음)을 등한히하면,사탄의 표적되어 영생의 기쁨을 빼앗겨 침체니다.

빌3:15-21절)                                 십자가의 원수(怨讐)                                  

누구나 세상에서 출세(出世)의 길을 달리고 싶은 욕망(慾望)이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멋있게 생긴 배우들이 명품 선글라스를 끼고, 오픈카를 타고 한적한 길을 달리는 장면을 *성공한 남자의 전형*으로 보여줍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야성(野性)이 있어서 질주(疾走)하고 싶은 욕망(慾望)이 있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달리는 인생과 반대되는 인생은 농부(農夫)의 인생입니다. 농부(農夫)의 생활은 달린다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농부(農夫)는 지게를 지거나, 소를 몰고 가더라도 천천히 가야하고, 그 무더운 여름에도 맘 편하게 휴가를 낼 수도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물(作物)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알찬 열매를 추수(秋收)하는 기쁨을 맛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오픈카를 타고 머플러를 날리면서 멋지게 달려오라*고 하지 않고 마16:24절)...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인생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은 출세(出世)로 가는 길이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종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선택(選擇)한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길은 의 길이요, 좁은 길입니다. 특히 종의 미래는 모든 것이 주인(主人)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인생을 계획하기 때문에 자기 나름 대로 전망(前望)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모든 중요한 것을 결정하시기 때문에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연단(練鍛)을 받아야 합니다. 즉 예수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철저하게 붙잡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연단(練鍛)을 받아야 합니다. 즉 환경적(環境的)인 고통 뿐 아니라, 편리한 세상 방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고통도 감내(堪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아야만 하늘의 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망의 법(死亡法)이 다스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생명의 말씀으로 연단(練鍛)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道具)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방식으로 잘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세상 방식에도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게다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른 영혼(靈魂)들도 챙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은 끝임없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세상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유대 사회에서 밝은 미래가 보장된 청년이었습니다. 그린데 그 후부터 그의 인생은 십자가의 인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몸종이 되어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어느 곳에 가든지 가서 복음(福音)을 전했습니다. 그는 산과 들을 지나면서 강도(强盜)를 만나기도 했고, 현지(現地)에서 붙들려 를 맞기도 했고, 굶기도 하고, 배(船)가 파선(破船)하기도 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복음(福音)과 일어버린 영혼(靈魂)들이 얼마나 소중(所重)한지를 알았기에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믿는 다는 사람들 중에서 십자가의 원수(怨讐)로 행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즉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고도 전혀 자기를 부인(否認)하지 않고, 자기 고집(固執)과 자기의 유익(有益)만을 위해 사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怨讐)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부디 모든 교인들이 이 복음(福音)과 영혼(靈魂)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모두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Ⅰ.온전히 이룬 자들(상)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3:15절)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여기서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을 잘못 생각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경지(敬祉)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무리 예수를 믿고, 신앙이 성장했다고 해도 온전한 경지(敬祉)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늘 넘어지고, 항상 죄를 짓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은혜(恩惠)를 많이 받고, 체험(體驗)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불완전(不安定)하고, 자꾸만 반복적으로 넘어질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래서 은혜(恩惠)를 사모(思慕)하는 많은 성도들이 더 많은 시간 기도하고. 더 많이 자기 자신을 절제(切除)해서 완전한 경지(敬祉)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은혜(恩惠)받을 때만 잠깐 자라는 것 같다가는 또 다시 를 짓고 싶은 욕망(慾望)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완전한 신앙의 경지(敬祉)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온전히 이룬 자들*은 무슨 뜻일까? 한 마디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미 얻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름대로 목표(目標)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 목표(目標)는 이미 달성(達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일단 인생의 목표(目標)를 달성(達成) 했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또 다른 목표(目標)를 찾아 갑니다.

 

예를 들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訓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자리에 안주(安住)하면서 유명세(有名稅)에 떠밀려 훈련(訓練)에 소홀히 하면, 다른 선수에게 일등을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救援)은 예수를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칭의구원(稱義救援) 이 사실에는 더 이상 우리가 보탤 것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냥 죽어서 천국에 갈 때까지 이 세상에서 어영부영 빈둥거리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다른 목표(目標)를 세워서 또 열심히 살아야 할까? 예수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어떤 인생 목표(目標)를 세우느냐? 가 어쩌면 더욱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의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니까 이젠 세상의 성공을 이뤄보려고* 합니다. 즉 *세상도 얻고, 영생, 둘 다 얻겠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이왕 예수 믿고 구원을 얻었으니, 세상일을 다 때려치우고, 전도나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구원(救援)에 합당한 삶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목표(目標)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 단 번에 구원(救援)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영생(永生)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이냐?* 는 것입니다. 즉 먹고 살기 위해서?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이를 악물고 경쟁(競爭)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靈的)일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수고를 할 것인가? 하는 기로(岐路)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救援)을 얻고 난 후는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내가 무엇을 할까만 집중(集中)했던 시선(視線)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라는 사실입니다.

 

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主人)을 위해 일해서 주인(主人)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많은 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나이든 들은 정말 주인(主人)의 수족(手足)처럼 움직이면서 주인(主人)을 도왔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을 더욱 더 잘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는 각 셀(cell)공동체가 정착을 이루고, 공동체 부흥의 이 붙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福音)을 듣고,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너무나 모난 부분이 많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의 목표(目標)를 이루었다고 생각되면, 시선(視線)을 공동체로 들려서 공동체 전체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흥의 이 계속 붙어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부흥의 불쏘시개가 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중에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부흥의 불이 붙게 됩니다. 선교나 전도나 사회봉사나 이 모든 섬김의 불씨가 공동체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시야(視野)를 넓힘으로 공동체적 시각을 가질 때,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이 더욱 뜨겁게 타오르게 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 안에 있는 이 이 꺼진다면, 마치 제철공장에 이 꺼지는 것과 같습니다. 불이 꺼진 용광로는 아무 물건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며, 고철이나 철광석을 녹이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자리가 그 무엇으로도 대치되지 못하도록 굳게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3:15절)...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즉 직장을 가질 수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선교에 동참할 수도 있고, 회사 경영에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무엇을 하든, 주님은 믿는 자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가 하고 싶어서 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이 *하라*고 하시기 때문에 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기 위해서 일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라는 것은 없어져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나*라는 것이 살아 있으면, 자기 생각을 하느라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나의 기분, 나의 자존심,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등, 우리는 자기만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순 없습니다.

 

주님의 종에겐 *자기*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수록 낭비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자기를 위해서 생각하고 노력했던, 그 많은 시간을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버리면, 주님이 나를 생각해 주십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어렸을 때는 열심히 자기 것을 챙깁니다. 아이들은 절대로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 할수록 *내 것을 아무리 챙겨도 내 맘처럼 쉽게 내 것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나만 은혜 받은 것 같고, 기도를 해도 자기 기도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자라면, 점점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즉 어떻게 해야 공동체에 유익이 될지, 공동체를 풍성하게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내가 없어질 것 같지만, 결국에는 자기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길인 것을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지혜를 알려줍니다.

3:16절)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름답게 사는 비결은 지금 하고 있는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은혜로 지금껏 살아온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잘한 것도 있을 것이고, 못한 것도 있을 것이며,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이고, 후회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둔 것을 *내가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리라고는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꾸준히 계속 하는 이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궤도를 변경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강권적(强勸的)인 힘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단지 스스로 자신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決定)을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主人)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시시해서 딴 길을 가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경로(徑路)를 수정(修正)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길을 찾고 난 후에는 그 길을 꾸준히 가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럼 참된 길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유행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셀(Cell)공동체의 지도(指導)와 생명의 말씀을 따라 뻗은 길로 가는 이것입니다.아-멘

찬송가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다음  계속   

※새벽()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진리의 복음💖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