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6:12-23절)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유 4-238. 인생을 낭비한 죄『빠삐용』은 아주 오래 된 영화인데, 가슴에 나비 문신을 한 주인공이 도저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여러 번 탈옥을 시도하다가 점점 더 죄가 무거워져서 나중에는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는 아프리카의 어느 섬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늙은 나이인데도 절벽에서 야자열매를 묶어 뗏목을 만들어 던진 후,바다에 뛰어들어 탈출에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自由)입니다. 만일 인간이 자유를 빼앗기고, 한평생을 감옥이나 노예 상태로 보내야 한다면, 그것보다 더욱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대해 가장 잔인할 수 있는 곳이 감옥이고, 군대 훈련소입니다.
거기서 철저하게 배우는 것이‘내 몸이 결코 내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몸을 주장하는 사람은 악질 상관입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따라 매순간 얼마든지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편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곧 자유라는 선물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거의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 로마 시대에서 자유인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귀중한 축복(祝福)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평생 노예로 살았습니다. 요즘 남자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한다고 하지만, 군대는 그래도 제대할 때가 있지만, 노예는 제대(除隊)라는 것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청난 자유라는 선물을 받고도 소중한 줄 모르고 자기 욕심이나 정욕을 위해 시간을 모두 다 허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혔을 때는 나가기만 하면, 열심히 일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착한 일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감옥에서 나가면, 그런 생각은 너무나도 빨리 없어지고, 여전히 자기 욕심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거나, 군대 훈련소에 있거나, 노예로 있을 때는 눈에 보이는 주인이 있습니다. 결국 두들겨 맞지 않으려면,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정작 자유를 얻고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무서운 주인이 있는데, 곧 죄(罪)라고 불리는 정욕(情慾)입니다. 로마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였지만, 자유인이라고 해서 결코 더 아름답게 살거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유인은 단지 남의 간섭을 덜 받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 노예들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여전히 노예 상태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Ⅱ.그리스도인의 자유 17-18절)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예수님의 복음(福音)은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평생 우리를 지배하던 운명의 쇠사슬을 끊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로마인들은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유는 한평생 노력한 결과 주인의 은혜로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원래부터 자유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자유를 얻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단지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갔다 나온 사람들이나, 군대 생활을 힘들게 한 사람들은 자유의 가치를 좀 알 것입니다. 옛날에도 누군가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당장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노예의 신분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마음속에 찾아오는 놀라운 해방감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늘 마음속에 운명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사는 것 같았고, 언제나 신(神)의 저주나 무력감이 마음 전체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단지 신분(身分)이 노예이기 때문에 잊을 때가 많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모를 때는 언제나 마음이 추운 겨울입니다.
마음속에는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고, 자신의 가치를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노예의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는 소식은 마음속에 추운 겨울을 가게하고,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얼음을 녹게 하고, 훈훈한 봄바람이 불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나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가 오랫동안 잠들었던 영혼(靈魂)을 깨어나게 합니다. 이것은 당시 노예가 아닌 사람들이나, 현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까지는 언제나 마음이 추운 겨울이고, 단단한 얼음이 덮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서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무서운 운명의 감옥에서 나오게 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후에 경험하는 것도 오랫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난 후에 무엇을 해야 좋을까? 예수 믿고 난후에 하나님을 위해 내 삶을 바치고 싶고,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해도 너무나 막연하고, 이 세상은 넓습니다. 즉 마음은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이 너무나도 넓고, 또 내가 무엇을 해야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막상 예수를 믿었지만, 실제로 세상의 야망과 욕심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서 더러운 정욕을 즐기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타락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곧 엄청난 문제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고 과거의 저주와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되찾았다고 는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마음속에는 죄짓고 타락된 삶을 즐기고 싶은 더럽고, 추악한 욕망이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자유를 얻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초(基礎)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직장이고, 수입(收入)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열 명의 나환자들 중에서 유대인 아흡은 예수님께 돌아올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진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좋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후에 더 예수님을 찾아와야 합니다.
왜 예수 믿고 난 후에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해 이 세상으로 달려가면 안 될까? 여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절대로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값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옛 사람은 죽고, 이제 새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모두 두 번째 인생입니다. 첫 번째 인생은 죄와 욕심 때문에 망쳐버렸고, 이제는 더러워지지 않은 깨끗한 두 번째 인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 번째 인생을 마음대로 헛되게 낭비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아이가 백혈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이 혈소판(血小板)을 수혈해 주어 살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지, 술이나 마시고, 나쁜 짓을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우리 몸에는 예수님의 혈소판(血小板)이 흐르고, 생명이 이식(移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수님께 가서 두 번째 인생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는 원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例)가 모세와 함께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을 때, 혹해 속에 난 길을 통과해서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 수 있으면, 애굽에서 적응해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길은 바다 속에 있는 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길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의 길은 바다 속에 있으며, 믿음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도 없고, 걸어 갈 수도 없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4:4절)...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사람’은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직장이나, 돈이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양식(말씀)을 먹지 못하면, 병들게 되고, 하나님의 양식(말씀)을 먹지 못하면, 힘을 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믿음이 생기고, 불가능한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이레 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갈 길과 할 일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Ⅲ.그리스도인의 재활훈련 12-14절)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어떤 사람이 감옥에서 20년이나, 30년을 갇혔다가 형기(刑期)가 끝나서 석방되었을 때, 어느 곳이나 가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 넓은 세상에서 갈 곳도 없고, 또 할 일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막상 원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는 자유만 가지고 살 수가 없고, 기술이 있다든지 직장이 있다든지 해야 살 수 있습니다.
결국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나, 노예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서서히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노예로 있던 사람이나,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적응하는 데는 사랑하는 가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가족으로부터 소중한 두 가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사랑해 주어야지, 정체성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뢰를 얻거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 합니다.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사랑받고, 격려를 받고, 또 믿음으로 살아갈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확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14절)...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사랑을 듬뿍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갈 때의 나쁜 자아(自我)상이 되살아나, 또 다시 절망하고, 좌절하며, 자포자기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자신의 존귀함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다’는 것은 옛날 노예 상태와 자유 상태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노예들에게는 자유라든지, 휴식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하고,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채찍이 날아오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길들여지기 때문에 한 순간에 과거로 돌아가 버립니다. 군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휴가를 나오면, 마음대로 잠을 자고, 쉴 것 같은데, 호각 소리만 나면 자기도 모르게 비상소집이 걸린 줄 알고, 옷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가게 됩니다. 이것을 치료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져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한두 번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 말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려면, 수백 번 수천 번 들어야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하나님께서 꼼짝할 수 없는 코 -너에 집어 넣으셔서 진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셔야만 겨우 조금씩 믿을 정도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사막처럼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돌짝밭과 같은 마음이 옥토로 변하려면,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부어져야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부어져서 넘쳐야 하고, 성령의 은혜가 줄줄 흘러야 합니다.
그리고 주위의 형제와 자매로부터 정말 소중하고, 존귀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될 때, 우리는 조금씩 죄의 강박관념(强迫觀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훈련시켜나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최고의 보물이 인간의 육체(肉體)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진 보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몸은 마치 고장이 나서 쓸 수 없는 최고의 바이올린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장은 고장이 나서 소리가 나지 않지만, 이것의 부속(附屬)을 갈고, 잘 길들이면, 최고의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술이나 마시고, 육체의 정욕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만, 이것은 바이올린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것으로 막대기처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몸에 성령만 오시면 최고의 가치를 가진 피조물이 됩니다. 인간의 몸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고장이 난 고철덩어리 기계에 동력이 공급되어 기계가 가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왜 이런 말씀을 자꾸만 반복해 하는가 하면, 우리 몸은 중증 장애인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죄에 대해서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이 들면서도 죄를 짓는 데는 자동적으로 순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길들이는데, 따라서 최고의 피조물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그렇고 그런 교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을 훈련시키기 이전에 생각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즉 예수 믿기 전에는 아무것이나 다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마치 대문이 없는 집과 같아서 잡상인들이 아무나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훈련시켜서 정확하게 하나님의 생각만 하고, 다른 잡생각들은 물리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생각이 훈련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은 자유라고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늘구멍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볼 정도로 정확한 생각과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 약1:5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지혜(智慧)’를 구하라”고 했고,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지혜(智慧)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지혜와 부귀영화까지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결국 감정(感情)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절대로 성령을 소멸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감정(感情)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지 않고, 분노를 오래 품는 바람에 우울증(憂鬱症)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 받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1:11절)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언제나 마음속에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즉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이 충만하며, 남을 미워하거나, 분노를 품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손발이 주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죄의 습관은 마치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고속도로는 한번 올라타면, 끝까지 가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습관도 한번 만들어지면, 자동적으로 반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습관을 바꾸는 방법은 이미 만들어진 고속도로는 파괴해서 폐쇄시키고, 새로운 의(義)의 습관의 고속도로를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지면, 자동적으로 의(義)의 열매들이 맺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의 습관을 만듭니다. 새벽기도를 하지 않던 사람이 처음 하면, 하루 종일 몸살이 난 것처럼, 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그러나 자꾸만 하다보면, 얼마나 신선하고, 귀한 축복(祝福)들이 새벽에 쏟아지는지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읽는 습관을 가집니다. 그러면 텔레비전을 끌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죄의 충동이 우리 몸을 지배했습니다. 즉 어떤 욕망이‘무엇을 해!’라고 하면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은혜로운 습관이 생기면서 그런 충동의 지배가 끝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죽을 몸’이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우리 몸이 죽을 뿐만 아니라, 잘해 주면 잘해 줄수록 죽게 되어 있습니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이 하자는 대로 하면, 병에 걸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르고 욕망에 걸려 있는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살코기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몸을 잘 훈련시켜 숙달되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프로 운동선수나, 연주자를 보면서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저런 동작과 자세가 나올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몸을 죽도록 훈련시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몸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가하면, 조금만 훈련시키면,‘아이고 죽겠다’하면서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계획을 가지고 꾸준히 훈련시켜 나갈 때, 죽을 것 같은 몸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요, 무한대의 능력을 나타내게 됩니다. Ⅲ.우리의 선택의 결과 자유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군대나 교도소에서는 사병들이 해야 할 것이나, 죄수들이 해야 할 것이 모두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하지 않으면, 두들겨 맞든지, 욕을 먹습니다.
그 대신 본인들은 그것에 대해 되든지, 되지 않든지, 책임이 없습니다. 왜냐면 율법 아래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福音)안에서는 누가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생각해서 결정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모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두 번째 인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여전히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결국 망칠 수도 있습니다.
15-16절)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死亡)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義)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예수 믿고 난후에도 과거처럼 육체의 정욕에 지배당하고, 미신(迷信)적 삶을 살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주인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인이 바뀌었다면, 종은 새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로는 멋있게 생긴 귀부인의 종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못되게 생긴 깡패의 말을 듣는다면, 그의 주인은 귀부인이 아니라, 못된 깡패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라면, 완전하지는 못하겠지만, 모두가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고, 자신을 의(義)의 병기로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여기에도 장애(障碍)가 있습니다.
인간들에게는 관성(慣性)의 법칙(法則)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죄를 짓고 있었다면, 그것을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옹고집이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죄의 종이 아니라 하더라도 옛날 주인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푹 숙여지고 시키는 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가 다시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할 때, 싫다고 하면서 분명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함 받은 자라도 삼키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마귀가 싫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즉 마귀로 하여금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귀가‘이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건드려도 흔들리지 않아. 결국 내 시간만 손해를 보는 구나! ’라고 하면서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만하게 보고, 자꾸만 덤벼들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에 빠지는 것은 누가 강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넘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20-22절)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예수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죄(罪)에 대한 불쾌한 감정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죄를 짓거나, 정욕에 빠지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지 않을 때에는 혈기를 부리고, 더러운 정욕에 빠지면,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 해소가 될 때가 많았는데,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을 하게 됩니다.
지은 죄를 토(吐)해 내기까지 절대로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가 싫어 멀리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거룩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해도 그 믿음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부활했을 때, 성도들의 영광이 고전15:41절)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즉 믿음은 같지만, 나타나는 영광과 능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결국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둡니다.
갈6:8절)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가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구적(永久的)으로 이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 기회를 받았습니다. 이때 한평생 후회 없는 멋진 믿음의 삶을 살려면, 자신을 죽도록 복종시켜서 성령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즉 철저하게 성령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할 때, 우리에게도 위대한 믿음의 삶이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몰래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은 죽습니다. 자기의 영혼(靈魂)이 죽든지 육체(肉體)가 죽든지 할 것입니다.
23절)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사람들은 숨어서 죄를 짓지만, 그 결과는 모두 영원한 사망(死亡)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을 부러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은사(恩師)에 대해 시기하지도 말기 바랍니다. 적당하게 교회생활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겠다고 생각하지도 말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철저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능력 있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계2:10절)...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