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5:7-14절) 새 노래로 찬양 사람은 기쁘거나 행복할 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는 우리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아름다운 소리입니다.
죤 칼빈 선생은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인간들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음악(音樂)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기독교에서 찬송이나 음악은 우리 신앙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필수 관계에 있습니다. 아마 처음 기독교를 접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많은 신앙의 감정들이 모두 찬송이나 복음 송에 녹아서 우리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 바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찬송가도 많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찬송가가 나오기 전에는 부흥성가라고 해서 부흥회 때,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 부흥성가는 세상 노래에 신앙적 가사를 붙인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부흥성가 중에는 가사가 20절이 넘는 것도 있었는데,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것을 다 외워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찬송가가 본격적으로 보급이 되어 부르다가 어느 순간 복음송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어른들은 복음 성가가 세상노래 팝송과 같은 리듬이라 해서 반대를 하셨고 특히 예배당 안에 키보드나 드럼을 사용하는 것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 경배와 찬양이 보급이 되면서 복음 송은 완전히 우리 젊은이들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현대음악을 따른 복음 송들을 젊은이들이 많이 부르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찬송가에서 부르는 찬송들은 18세기나 19세기에 지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왜 우리가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불러야 하느냐? 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그때 기독교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신앙에 많은 감동을 체험하고 진리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찬송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찬송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대학 캠퍼스나 젊은이들 중심으로 부흥이 일어나면서 많은 복음 송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부흥이 일어날 때,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이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찬송을 불렀고 혹은 힘든 일을 할 때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중에서 아마 대표적인 노래가 흑인영가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슬픈 일을 당했을 때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 찬송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구 음악의 발달과 기독교 음악은 도저히 따로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서양 음악의 발전에 기독교 찬송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찬송은 세상의 노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노래입니다.
세상 노래들은 주로 자연을 노래하거나 아니면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연이 없거나 연인 사이의 사랑이 없으면 노래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구원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노래는 과거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 일이기도 하고, 미래의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졌지만,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 내용에는 한 사람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분은 곧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은 우리의 영원한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어린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두루마리 책을 받았을 때, 놀라운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은 어느 한 두 사람의 찬송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과 온 세상이 함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Ⅰ.금 대접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 7-8절)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그 두루마리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받는 순간부터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달려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한사람도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인간의 위대한 구원을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우리 인간이 타락하고 난 후에 더 엄청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멋진 상태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와 능력을 더 잘 알게 되고, 이것은 도저히 찬송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요, 감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 두루마리를 받았을 때, 하늘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찬송을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의 네 생물은 천사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이십사 장로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준비한 것은 하나는 거문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었습니다.
거문고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그들은 죽임당한 어린양을 위하여 찬양할 준비를 하는데, 천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찬송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 찬송은 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도 함께 하는 찬송이었습니다. 그 향기는 금 대접에서 나는 향기인데, 이 향기는 곧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우리 지상의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향기로운 기름이 되어서 어린양을 찬송하는데 사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양이 하나님의 두루마리에서 인봉을 하나씩 떼는 것이 찬송과 함께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것에 불이 붙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끝난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즉 이제부터 이 세상에는 어린양이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텐데, 그때 이 땅에 일어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곧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불이 붙듯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우리들의 기도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중심으로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마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활동하는 것은 구름떼처럼 적군이 몰려올 때나 혼자 총으로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나 혼자 총으로 수많은 적들과 대항해서 전투를 치르려고 하면 얼마가지 않아서 총알이 모두 떨어지든지, 아니면 총에 맞아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후방에 있는 부대에 무전기로 알리면, 그때는 후방에서 대포를 쏘고 비행기가 날아와서 포격을 하는데, 이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한 방울도 없어지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금 대접 안에 다 모여 있다가 어린양의 지시에 따라서 불같은 성령의 역사로 이 세상에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기도한 것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모두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겨 있다가 한 순간에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8절)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하늘의 교회가 손에 거문고를 잡고 있고 또 향이 가득 들어 있는 금 대접을 들고 어린양에 경배하면서 이 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찬송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르쳐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어려운 일이 생겨서 낙심하게 되면, 찬송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무가치하게 생각해서 자포자기(自暴自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우리의 위치는 굉장히 높아지게 됩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복음의 시대이고, 교회의 시대이며,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때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다 빌려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이 구원의 운동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하며, 또 주님이 행하신 그 일들을 새 노래로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성도들의 기도를 금 대접에 담아주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어느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시지 않으십니다. 가장 귀한 금 대접에 담으셨다가 부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할 때, 성전에서 향을 피웠습니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향을 피우면 성도들은 바깥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진정으로 회복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빨리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드린 기도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기도를 담으셨다가 한꺼번에 이 세상에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곱 대접의 재앙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도 마6:10절)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오셨지만 이 세상에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너무나 많은 죄가 날뛰고 있었고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루 빨리 이 세상에 성령의 시대가 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눅12:49절)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불이 붙는다’는 것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불이 붙은 것처럼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시대가 도래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직 불의 역사는 잘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아직 우리의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부흥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찬송가 173장 *다 함께 찬송 부르자*)
Ⅱ.새 노래로 드리는 찬양 오늘 성경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부르는 노래가 새 노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그들이 새 노래를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선 이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입니다.
구원의 노래가 새 노래인 이유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으로 살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새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명한 구원의 노래가 나옵니다. 그 첫 번째 구원의 노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 왕의 군대에 쫓기다 홍해가 갈라지는 바람에 건넌 후에 부르는 모세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히브리 노예들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리시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한 후, 얼마가지 않아서 애굽 군대의 추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서 눈앞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어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는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즉 과거의 노예 생활이나 하면서 구박을 받던 히브리 노예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고, 이제는 모두 당당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새 노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새 노래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주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불륜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가 다 씻음 받은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즉, 어린 양의 피로 과거의 우리의 모든 부끄러운 죄들은 다 씻어졌습니다. 즉 과거의 우리는 모두 다 죽어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흠도 티도 없는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완전히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이 자기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새 노래인 것입니다. 교회가 이 승리의 찬송을 부르는 이유는 곧 우리 교회의 위치가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교회는 이미 승리를 했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던 원수들은 이미 홍해에 빠져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적은 사람이 아닙니다. 로마도 아닙니다. 그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탄이요, 사탄의 거짓된 사상입니다.
사탄은 로마 황제를 충동질해서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려고 합니다. 로마 안에는 자꾸만 재앙이 일어나고 또 외적들이 침략을 합니다. 황제 자신이 불안하니까 자신을 더 절대적인 위치에 놓아서 사람들을 자기의 세력 아래 붙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 사실을 뒤집어엎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이제 우리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Ⅲ.찬송의 내용 하늘의 천사들과 장로들이 찬송하고 있는 주제는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찬송의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찬양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결과입니다.
9-10절)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먼저‘왜 그리스도가 이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신가?' 그 이유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의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한 이유는 그가 일찍 죽임을 당하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 피로 사서 하나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 모두의 조건이 만족되어져야 하는 이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지음으로 손상시킨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반면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조건이 다 충족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었을 때,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는데, 그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보통 구속이라는 말은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간 자를 가족이나 친구들이 대신 그 빚을 지불하고 그를 구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것은 돈이 아니라, 그의 피였습니다. 즉 우리의 빚이 단순한 돈이나 물건의 부채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단순히 돈 몇 푼 갚지 않은 죄가 아니라, 마땅히 죽어야만 할 죄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살게 하셨습니다.
10절)...그들이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습니다. 여기‘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일체 다른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힘이 약한 나라는 한 나라의 지배만 받지 않습니다. 이 나라 저 나라의 통치를 다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강한 한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는 그 왕보다 더 강한 자가 없기 때문에 그 왕 외에는 어느 누구의 다스림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신앙생활을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는 이상 우리는 다른 어떤 세력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직접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사실 이 세상 어느 나라든지 모두 다 하나님께 발언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시며 심판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의 자격을 얻은 것은 이 세상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기도 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지탱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세상을 지켜주십니다.
10절)...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우리는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왕의 자격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배가 아니라, 겸손의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왕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폭군으로 군림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겸손히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비참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엄마는 아기들을 위해서 모든 궂은일을 다 하지만 엄마는 결코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엄마는 그 섬김 때문에 더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얻는 왕의 자격은 권세와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겸손과 섬김을 통해서 얻는 존경과 신뢰입니다. 이것이 우리 왕의 자격입니다. 우리에게 높은 자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리는 간신배(奸臣輩)들에게 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왕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그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11-12절)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사탄의 세력들이 건재하며, 할 수 있는 대로 택한 백성들이라도 넘어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악한 마귀의 세력과 영적인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에 있는 믿는 우리들을 통하여 땅 끝까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시키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과 지식을 다 동원하여 교회를 죽이고 복음을 말살시키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복음을 억누르기 위하여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통원합니다. 즉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나 거짓된 학자들이나 타락한 모든 지도자들을 모두 사용해서 그리스도의 세력을 대적하고 사탄의 나라를 지키며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합니다.
악한 더러운 귀신의 세력들을 다 동원하여 어떻게 해서든 교회의 바른 증거를 막으려고 합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진실한 성도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실패하며 진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없어지게 하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왜냐면 본문 말씀처럼 12절)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에 우리가 아무리 살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그리스도는 능히 우리를 보호하시며,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보좌 앞의 일곱 영(靈)이신 성령께서 교회에 계속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에는 전쟁도 있고 기근도 있고 때로는 말세적인 여러 가지 질병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복음의 증거는 계속되어 세상 끝까지 갑니다.
13-14절)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우리의 구원은 단지 믿는 사람들만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천사들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하는 우주적인 구원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 위에 있는 천사들과 땅위에 있는 피조물들과 바다 위에 있는 것들과 모든 만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송합니다. 지금 천사들은 우리에 비하면 완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들도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더 완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들은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나무나 풀이나 짐승들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 많은 만물들이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고통 가운데서 교회가 온전하여져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들을 완전히 새롭게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피조물들만큼 우리 인간들에 대하여 유감이 많은 것들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하기 전까지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지냈습니다. 즉 하늘의 천둥도 깊은 바다도 모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의 찬양은 중단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그들의 탄식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노아 홍수 때, 코로 숨을 쉬던 모든 생물들이 다 멸망을 당했습니다. 지금 피조물들의 찬양은 중단되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직 죄와의 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드릴 수가 없습니다.
피조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빨리 이 죄와의 싸움이 끝나고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오는 이것입니다. 피조물들이 원하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사11:8절)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아름다운 세상이 돌아오는 이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은혜로 충만해져야 하며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위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짐승들을 죽이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아마존 강 주위의 숲을 살리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 거의 황폐하게 된 산에 나무 심기 운동을 벌여서 산에 나무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러나 생태계의 파괴는 여전히 심합니다. 공해 문제라든지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무시한 동식물의 유입은 많은 자연 파괴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인간은 곧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연 보호는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전쟁과 여러 가지 재앙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자연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장 무서운 자연 파괴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경쟁적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대도시의 편안한 삶을 얻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잃었는데 하나는 자연이라는 환경의 파괴와 또 다른 하나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잃어버린 이웃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경쟁으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찬송가 중에는 아시시의 프란시스가 지은 찬송이 있습니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하나님을 노래했고, 흘러가는 맑은 물을 보면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길에 가다가 새를 보고 인사를 했고,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구원의 기쁨을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외의 존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들과도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할 정도로 풍성한 감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화해할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화해를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도 화해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직업이 오직 먹고 살기 위한 저주스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일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전에는 주님 없이 수학을 한 문제라도 더 풀려고 기를 썼는데, 이제는 공부를 할 때도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연필을 지휘봉으로 삼고 필통과 지우개와 삼각자와 컴퍼스와 참고서 모두 다 동원하여 주님을 노래하십시오.
부엌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나도 지겨운 분이 있으면 모든 그릇이나 주방 기구를 동원하여 주님을 거기에 초청하십시오. 전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죽는 것 같고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았는데, 이 맛있는 음식이 작품이 되며 이 음식으로 기쁨을 나누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해 보십시오.
직장에서도 주님을 부르십시오. 전화와 컴퓨터에게도 말을 하십시오. 회사의 회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우면 회의석상에 예쁜 꽃을 한번 꽂아 놓아보십시오. 모두 피곤하여 지쳐 있을 때, 멋진 유머 한 마디는 피곤을 모두 가시게 만듭니다.
자기는 인상을 쓰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보고 잘 하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함으로 이 모든 무미건조(無味乾燥)한 삶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621장 *찬양하라 내 영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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