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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에세이)

남해 첨망대에서

작성자이덕대|작성시간26.06.17|조회수48 목록 댓글 0

남해 첨망대에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은 가치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예견된 어려움이지만 미리 대처하기도 어렵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을 풀어가는 것은 당연히 관리자의 몫이다.

 헬기 개발사업의 작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들도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심히 부끄럽다. 간단없이 갈마드는 사소한 개발의 어려움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개발 책임을 맡고 있다니......

 며칠 전에도 부하직원과 정부 담당자와 언쟁이 있었다. 비슷한 연령 대에 있는 젊은 혈기가 부딪히며 갑과 을의 싸움이 되었다. 정부 요원들이 사업을 접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사무실 문을 걸어 잠갔다. 이른 아침부터 정부 책임자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고 답변에 유의하겠다는 말로 사과했다. 돌아온 반응은 냉랭하고 돌아서는 마음은 참담하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요 비교 대상이 아니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다. 나라와 백성을 참담하게 유린한 왜적을 단 한 명이라도 돌려보낼 수 없다며 통분함 속에서 기꺼이 죽음으로 나아간 그 바닷가에 섰다. 내년 3월이면 첫 비행에 나서는 수리온 개발사업이 비척댄다. 정부든 업체든 한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정과 예산이 부족하고 참여 인력의 개발 경험이 일천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능력 모자람에 따른 무력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집을 나선다. 충무공전몰유허첨망대로 간다. 생각이 닫히고 발걸음이 머뭇댈 때 가끔 찾는 곳이다.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공을 생각한다. 오직 나라사랑으로 죽음마저 감추라고 명령하며 분연히 마지막 길을 떠난 준엄한 꾸지람이 들린다. 어찌 대장부가 그리도 사소한 일에 마음을 상하느냐며 다그친다. 버텨내고 이겨내야 한다.

 

 알록달록한 비단을 두른 금산의 암봉들은 장엄하다. 바다는 푸르다. 첨망대에 올라 노량을 바라본다. 먼바다는 햇살을 받아 물꽃이 찬란하고 발아래는 뒤척이는 물비늘로 눈이 부시다. 일찍 핀 동백은 그 붉은 꽃을 바위 위에 떨구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는다. 노량과 관음포, 공께서 마지막 가신 길이 어찌 이곳이었을까.

 공의 마지막 가는 길이 눈앞에 그려진다.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되지만 공을 생각하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져서는 안되는 싸움이고 질 수도 없는 전쟁이다. 개발 기술자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싸워야 한다. 더구나 변명과 핑계로 무장하고 모르는 이를 속이기 위한 다툼을 해서는 안 된다. 개발과정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바다가 일렁인다. 해안의 단애를 향해 달려들던 바닷물이 부딪히며 거품으로 깨어진다. 반복되는 파도 소리 속에 꾸지람도 들리고 중단하지 말라는 응원도 느껴진다.

 

 공의 충효정신을 생각한다. 전장에서 이기기를 바라면서도 세력이 커져 반역의 마음을 품을까 의심하고 견제하는 난중일기 속 임금의 처사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임금을 위해 적선을 부수고 목을 벤다고 생각하지 않는 공은 담대했다. 자리가 대인을 만드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임진에서 무술까지 전쟁 기록은 칼날처럼 예리하고 차갑다. 달 아래 잔잔한 바다를 단숨에 자르듯 섬뜩하기조차 하다. 일곱 해 기록 어디에도 임금을 원망하는 마음 한구석을 드러내지 않는다.

 공의 마음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함과 왕에 대한 바른 마음뿐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독백은 비통하다.

 “홀로 누상에 기대어 나라의 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은데 안으로는 책략을 결정할 동량지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만한 주석지신이 없으니 아지 못하겠다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심사가 어지러워 종일 전전반측했다.”

 충은 효로부터 시작된다는 어느 현자의 깨우침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공의 기록을 보면 거의 닷새에 한번 정도로 모친의 안위를 걱정한다. 아흔 백발노인의 어려운 삶을 생각하며 수시로 눈물짓는다. 공의 모친이 보여주는 나라 사랑 마음은 곡진하다. “아침을 먹은 뒤에 어머님께 하직을 고하니 어머님께서는 잘 가거라 부디 국가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고 재삼 당부하시며 조금도 떠나오는 것이 싫어셔 탄식하지 아니 하신다.”

 법도 있는 장군의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은 절제를 넘어 지나치다. 아들로부터 아내가 몸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걱정하는 글이 난중일기에 딱 두 번이다. 부부간 지닌 사랑의 깊은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친함과 의로움이 아닌 구별을 가치로 삼았던 건조함만 보인다. 자식들을 바라보는 마음 또한 아내에 대한 생각과 별다르지 않다. 오직 나라 걱정뿐이었다.

 

 공은 외로운 성웅이다. 싸워야 할 적과 품어야 할 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절망조차 사치인 상황에서 나라를 구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매일같이 베어내야 했다.

 “적은 여러 곳에 있었다. 나는 궤휼(詭譎)한 권력의 통제 아래서 백성을 생각해야 하는 초라한 처지다. 칼로 베고 화살로 저지할 수 있는 적보다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적이 훨씬 두렵다.”

 왜적이 쳐들어오면서 이미 죽음은 예정되었다. 죽을 수 있는 죽음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이었다. 바다는 길이고 집이었다. 공의 회포를 더듬는다. 달빛은 대낮 같고 물길은 비단 같은 바다다. 바다는 늘 달무리 속이다. 왜구가 부산포로 쳐들어온 이후 바다는 낮에도 짙은 햇무리에 갇혔다. 길을 만들어야 하는 바다는 어둠을 이기기 쉽지 않다.

 

 다시 공의 외침을 듣는다. “쳐들어 왔던 왜적을 한 명이라도 살려보내서는 원통하게 죽은 우리 백성들의 영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만일 이 원수를 갚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방패로 내 몸을 가려라. 지금 전쟁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돌이켜보면 7년간의 힘들었던 수리온 개발사업을 견뎌내게 한 것은 관음포 앞바다 첨망대와 난중일기다. 운이 닿아 국산 헬기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멈추어서도 안되고 멈출 수도 없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 간두에 서있었을 420여 년 전 공이 지녔던 위국헌신의 신념을 우매한 무부 출신이 감히 가량 할 일은 아니다.

 다만 공의 숨결과 자취를 느끼며 마음을 다잡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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