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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목/영어공부

작성자이덕대|작성시간26.06.08|조회수23 목록 댓글 0

영어공부/박화목

 

 며칠 전 서울 어느 다방에서 NHK의 특파원을 만났던 일이 있다. 소설가 최정희 여사도 합석하여서, 최여사는 아주 초면이 아닌 듯, 나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 말을 전혀 모르는 척하고, “안녕하십니까? 내 이름은 박화목이오.” 하고 말하였더니, 그 일본 특파 기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듯싶었다. 최여사가 조용히 웃으면서 통역을 하는 듯 싶은 말을 하였다. 그런 의례적인 인사를 마치고는, 그래도 외국인 특파 기자라는 점에서 그와 대화를 한두어 마디쯤은 해야 했는데, 그래서 내가 영어로 말을 꺼냈다. 내가 영어로 말을 꺼냈기 때문에 그는 문답을 하게 된 것이 다행이란 듯한 표정을 보이면서 역시 영어로 대꾸하는 것이었다.

 

 나의 영어회화는 겨우 이야기나 할 만큼 능숙하지 못한데 그의 실력은 자못 유창한 데가 있었다. 나는 문답을 오래 계속 못하고, “굿바이, 씨유어게인.”을 말하고 말았다.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마음속에 영어 공부를 좀 더 착실하게 해야겠다고 깊이 느껴진 것이었다. 그런데다가 하부(下釜)하는 차 속에서 모 월간잡지를 뒤적거리는데, 시인 이한직 씨가 쓴 영어라는 제목을 단수필이 게재되어 있어서 그 수필을 유달리 흥미 있게 읽었다.

 

 참 이한직 씨의 이 수필은 재미도 있었거니와 결코 무심할 수 없는 뼈저린 데가 있었다. 이한직 씨가 영어라는 수필을 쓰게 된 동기와 내가 영어공부란 제목을 내걸고 수필을 쓰게 된 동기가 혹시 같을는지도 모른다. 외국어가 문학가의 창작 행위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가졌다고 다시금 느꼈는데, 그도 동감 동의하는지 모른다.

 

 내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이래 십오륙 년이 넘었다. 영어학원도 다녔고 하얼빈에서는 회화를 위해 백계 러시아 여교사한테서 개인교수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해방 전 일이며 그 영어인즉 교과서 영어에 지나지 않았었다. 조국으로 돌아와서 처음 미국 군인이며 미국 시민들을 대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내가 아는 발음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우선 저 ‘O’ 를 미국식 발음으로는 대개 로 들리도록 발음하는데 당황하였다. 빡싱, 캄뮤니즘, 캄포지쉰, 아퍼라(오페라), 하스피러(병원), 아피스(오피스). ‘R’ 발음이 위로 붙어서 혀를 굴리는 것,‘ 'T’ 가 모음 위에서 발음되는 경우 우리 귓가에는 로 들리는 것, 즉 워러() 미링(미팅) 아롬밤(원자탄), 기타 저 수도 없이 많은 슬랭과 약어(略語) 신어(新語) 조어(造語)엄청난 것이었다.

 

 미국 영어를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6.25 바로 전에 애머리칸 잉그리쉬 랭귀지 인스티튜드란 어학강습소에서 약 반 년을 두고 조금씩 새 영어공부를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최근 1,2년간엔, TIME을 계속해서 읽어오는 중인데, 시사영어가 대단히 많이 조출(造出)되었다. 또한 전후에 출판 발표된 소설책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딕슈너리’(콘사이스)에 아직 수록되어 있지 않은 어휘들이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이 새로 나온 단어를 일일이 알아내고 기억하는 일은, 더욱이 나 같은 둔재에게는 난행 중의 난행이었다.

 

 미국 영어는 최근에 와서 품사를 변화시켜 쓰는 일이 참 빈번해졌다. 즉 명사가 동사로 쓰여지는 일, 일례를 들면 to author(저자)란 명사가 저술한다는 동사로 쓴다. to film 촬영하다, to bread 밥을 먹이다, to gas, gasoline이 생략되어 깨스가 되고, 깨솔린을 넣는다. to jeep 짚차를 달린다. to kodak 사진을 찍는다등등 열거하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부사를 동사처럼 쓰는 일(to up 올린다, to down 내린다) 형용사를 동사로 쓰는 일(to cold 치워진다, to mad 성낸다, to lazy 게을리하다) 이와같이 기괴하게 변천되어 온 미국 영어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이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영어를 가지고는 현대영어 한 구절을 읽고도 바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한직 씨는 어떤 친구가 파우더를 군인들에게는 화약의 의미로 쓰이는 것을 모르고, 밀가루를 파우더라고 말했다는, 우스개와 같은 이야기를 쓴 것이지만, 미상불 이런 넌센스가 한두 번이 아니다. 벌써 4,5년 지난 일이지만, 어떤 미국 군사 사절단의 연설을 통역하는 분이 인텔리전스 오피서지식 있는 장교, ‘마인을 변상으로 통역했다는 것이다. 연설자는 물론 정보장교지뢰의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문학을 하는 분, 더욱 미국문학을 소개하려는 분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오늘의 미국영어를 오늘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상식 같은 말을 수다스럽게 하는 것은 요새 문화잡지에 이따금 번역 소개되는 외국 평론가의 본문 중에, 작가의 이름조차 잘못 쓰는 일이 번번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문화세계창간호 29페이지를 읽어 보면 허밍그웨이, 아사 뮤라, 오니루, 스타인빽, 시도니 킨구스레이, 호크나같은 미국의 저명한 문학가들의 성명들이 튀어나온다. 일본어로선 그렇게 쓰는지 모르나 한글로 그렇게 쓰면 틀린다. 이 글에서는 그 성명들의 스펠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발견되는 것이다.

 

 헤밍웨이, 아더 뮬러, 오닐, 슈타인벅, 시드니 킹슬리, 포크너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영문학 또는 미국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항상 자신이 서질 않는다. 그 까닭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1950년도식의 미국영어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하는 것이 그 나라를 정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 문학가들이 세계문학을 알려고 하면 어쨌든 영어를 알아야 하며, 그래서 다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깊이 느끼게 된 것이다. 한 달에 원서(영문) 몇 권은 읽어야겠다. 최근 발간된 원서를 읽어야겠다. (문예, 195312월호)

 

박화목

    시인 아동문학가 수필가

    황해도 황주 출생(192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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