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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일영/공만 주워 담는 사람

작성자이덕대|작성시간26.06.09|조회수24 목록 댓글 0

공만 주워 담는 사람/견일영

 

 나는 아주 느지막에 테니스 레슨을 받고 있다. 초보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아침 640분부터 7시까지 20분간 레슨을 받는데 겨울이 가까워지자 그 시간은 어둠이 가시지 않아 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도 힘들고 나이가 들어 20분간 쉬지 않고 코치가 넘겨주는 공을 받아 넘기기도 여간 버겁지가 않다. 또 준비운동도 충분히 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일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나를 귀찮게 하는 레슨이 끝나면 수없이 떨어진 연습 공을 광주리에 주워담아야 하는 일이다. 운동 소질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주워담아야할 공의 수는 많아진다. 한두 달 레슨을 받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는 사람은 공만 주워 담다가 끝난 기분일 게다. 어떤 모임에서 테니스 이야기만 나오면 공만 실컷 주웠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그렇게 한이 되었는지 모임 때마다 그 이야기다.

 

 20분간의 레슨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코치가 계속 공을 보내 오니 숨돌릴 여가도 없이 계속 받아 넘겨야 한다. 공은 마음먹은 대로 가지않고 코치 보기에 미안한 생각만 앞선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경기를 보면 볼 보이가 네트에 걸려 쩔어진 공을 잽싸게 주워 나가는 모습이 귀엽다. 예쁜 얼굴을 한 볼 보이의 동작이 재미있고 그 재치가 재롱스럽다. 내가 남의 공을 주웠을 때 그 공 줍는 아이처럼 예쁘게 보였으면 좋으련만 한 번도 그렇게 비춰진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추하게 노는 사람의 공을 줍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직장에서 이웃에서 또 공공장소에서 치사한 반칙으로 떨어진 공을 내가 주워야 할 때는 세상이 싫어진다. 반감도 생긴다. 내가 좋아 줍던 공도 내던지고 싶다.

 

 아침마다 내 앞에 레슨을 받는 아이가 있다. 출석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다. 공을 칠 때도 별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고 마지못해 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이 아이는 아마 부모가 건강을 걱정해서 시키는 것 같아 보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많은 공을 흩어 놓고는 그것을 줍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고스란히 내 몫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내 뒤에 오는 사람은 내 공까지 주워 담아 주는 것이 아닌가. 20대로 보이는 그 청년은 인사도 잘하고 공도 열심히 친다. 물론 자기가 돈을 내고, 하고 싶어하는 운동이므로 신이 나서 하는 행동일 게다. 그러나 10대 아이와 20대 청년은 그렇게도 다른가.

 

 세상은 이렇게 해서 마이너스 플러스가 되어 공평을 유지하는 가보다. 그리고 이 요철이 평탄해지는 과정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다.

 

 내 차례 레슨이 끝날 무렵 동녘에는 붉은 해가 솟는다. 찬란한 햇빛은 삼라만상을 공평하게 비춰 주며 내 마음의 주름을 반듯하게 펴 준다. 나에게 이상을 잃지 않고 영원히 젊게 살도록 용기와 희망까지 불어넣어 준다. 공 줍는 시간이 편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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