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맞아 가노라/견일영
약속했던 산행은 비가 와도 강행하기로 했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지만 비도 맞아가는 인생에 산에 오르며 비 맞는 것이 뭐 그리 두려운가.
아침 일찍 배낭을 챙기면서 산도 좋고 산행도 좋지만 함께 갈 사람들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와도 좋다는 강심장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 욕심을 챙기지 않고 서로 보고 싶어 했던 얼굴들이 가슴을 부풀게 한다. 세상사가 다 사람과의 부대낌이요, 사람과의 정 나누기에서 아름다운 삶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름은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청량산 입구까지 들어가도 비는 오지 않는다. 우비를 준비하고 점심때 비를 피할 수 있는 비닐 천막도 준비해 왔으니 별로 걱정할 건 없지만 그래도 컴컴한 하늘을 쳐다보며 점심 먹을 때만은 피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우산을 내던지고 일부러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걸어본 경험이 있는가. 젊은 시절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자학으로 비를 맞으며 걸어가도 인생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울분만 치밀어 왔던 때가 있었다. 비를 암만 맞아도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세월이 그 울분을 삭여주고 못 이룬 성취욕을 잠재워 주었을 뿐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사단사령부에 전령으로 갔다가 휴전선 밑 부대까지 혼자 몇 시간을 걸어갔던 생각이 떠오른다. 판초 속에 거꾸로 맨 카빈 소총을 꼭 쥐고 철모 위로 마구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산기슭을 혼자 걸어갔다.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인 육단리 산속을 혼자 걸으면서도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적군이 겁나지 않았다. 인생은 밝은 해도 보고 슬픈 달도 보고 비를 맞아 처량한 모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눈보라와 싸우며 기어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용기도 주어진다는 것을 이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인생을 몇 마디 말로 함축해서 말하면 “이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생은 슬프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산에 오른다. 무척 가파르다.
청량사에 이르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으로 이루어진 여러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는 12봉우리가 다 보이지는 않는다. 청량사는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창건 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 유리보전(瑠璃寶殿) 앞에 섰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다. 그는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앞에서 기원하면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의 병도 고쳐 주실 건가. 마음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데, 육체적 고통으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보다 마음의 병으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은가. 오죽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기는 자라 했겠다. 마음의 병은 편작이 와도 고치기 힘든 병이다. 유리보전 앞에서 약사여래불이 마음의 병을 고쳐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청량산 최고봉인 의상봉을 향하여 올라간다. 땀이 흐른다. 지금까지 걸어온 역경의 땀이 재현되는 것 같다. 비도 맞아가며 살아온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상의 무게가 가슴을 억누른다. 그 허탈감을 등산로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내려 본다. 마음을 바꾸어 그래도 좋았던 시절의 이삭들을 주워 담아 본다. 그 소중했던 파편들이 바람결에 흩어져 버린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쭉정이들만 추억으로 남는다.
고통을 참으며 산에 오르는 것은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하는 행보가 아닌가. 죽음은 이 숱한 번뇌를 다 잊을 수 있는 최상의 방편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고통의 종착역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올 듯 올 듯하던 비가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쏟아진다. 비도 맞아 가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오는 비에 이상한 허탈감을 느낀다. 용서받았다가 늦게 새로 벌을 받는 것 같다. 언제 올지 모르는 비에 전전긍긍하다가 집에 다 와서 비를 맞는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하루는 빗소리로 저물고 인생은 이렇게 비도 맞아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