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세탁기/윤영
엄마는 6남매 중에서 유독 둘째 딸인 나의 가난을 마음 아파하셨다. 단지 김치냉장고와 드럼세탁기가 없다는 이유로 불효녀가 되고 말았으니. 당신은 찬 우물에 띄우던 수박, 얼음 깨고 손빨래하던 그 시절이 몸서리쳤을까. 오로지 번쩍번쩍 빛나는 전자제품이 많을수록 부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엄마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첨단을 앞서가는 전자제품이나 기계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피복 벗겨진 전선에 검정 테이프를 칭칭 감아 놓은 청소기. 20년은 됨직한 냉장고와 세탁기. 하물며 그 흔한 에어프라이어나 건조기조차 없다. 나는 회색빛의 전자기기들이 들어앉을 공간에 이왕이면 식물을 들이거나 책을 앉혀야 배가 부르다. 물론 편리보단 몸을 소비하는 주의이기도 하다.
마침내 늙다리 세탁기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기사를 불렀더니 균형추며 자동 센스가 망가졌단다.
“이 제품이 오래되어 부품 단종입니다. 그냥 수동으로 맞출게요.”
어지간하면 새로 구매하라는 남편의 핀잔에도 고집을 부렸다. 까짓거 수동이면 어떤가. 세탁기 본인이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데. 그냥 빨고 헹구어 주고 짜주는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가고 싶다잖아. 녀석이 명료하게 깨달은 거라고 사족을 덧붙여 남편한테 설명했다. 물론 세제와 섬유유연제조차 눈대중으로 넣을 수밖에 없으니 불편함이야 내 몫일 테고. 울 코스나 찌든 때, 급속세탁, 세탁물의 무게를 감지해 자동으로 조절되던 기능도,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휘슬도 과거형일 뿐이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탁기는 어느 순간부터 아프다는 전언을 보내올 때가 있었다. 미련한 내가 몰랐을 뿐인 게지. 그즈음 내 몸도 미세한 신호를 보내왔다. 어느 토요일 새벽 옆구리의 격심한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기절했다. 요로결석이었다. 욕실에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를 빨다 허리가 무너졌다. 밤낮으로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석회가 염증을 일으켜 어깨까지 탈이 났으니. 콩팥에 돌을 깨고 석회를 깨고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는 요통으로 응급실행이 몇 번이었던가. 이번엔 덜컥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몸의 중심부들이 하나둘 삐거덕하자, 민둥산에 홀로 앉아 있는 낭패감.
우당탕 소리는 수동으로 바뀐 후 제법 줄었다. 심지어 뚜껑을 덮지 않아도 세탁에서 탈수까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부러 발가벗은 통 안을 살피곤 한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마사지 받듯 두 손을 밀어 넣는다. 정녕 이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남편의 티셔츠 양팔과 나의 긴 남방 양팔이 팔짱을 끼고 서로 뒤엉킨다. 바짓가랑이와 원피스 하단의 뜨거운 포옹. 그들의 격렬한 사랑놀음도 물세례에 잠시 쉬는 사이 나는 자그마한 서재 침대에 누워 최고의 휴식을 즐긴다.
여름한철엔 침대와 세탁기 사이에 있는 유리창을 한 방향으로 밀어 놓고 창가에 꽃과 나무를 앉힌다. 자못 큰 행운목이 떡잎 없이 쭉 뻗었다. 수경재배로 키우는 테이블야자며 제라늄은 어지간한 청년보다 튼실한 뿌리를 자랑한다. 씨앗으로 촉을 틔운 방울토마토는 잎에서 곧잘 토마토 냄새를 내주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산바람과 강바람에 수시로 잎을 뒤집는 유칼립투스는 말해 뭐 하랴. 특히 내가 덮고 있는 흰 아사 이불 위까지 길게 늘어뜨린 아이비에 코를 박는 지금 요란한 매미 울음을 듣노라면 시답잖은 일상도 고매한 일상으로 번진다. 이쯤이면 정비석의『산정무한』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음이다.
알몸을 드러낸 그는 여전히 회전을 반복하며 남루하든 명품이든 차별 없이 남의 삶을 알뜰하게 씻는다. 나는 평생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늘 힘에 부치지 않았던가. 바람이 테이블 야자를 흔들었다. 물 들어간다. 분희네 텃밭을 지나 돌계단을 내려가면 만나지는, 거랑 물소리나 진배없다. 서너 차례 헹굼이 시작되었다. 숙희가 가져온 빨랫비누로 개골창에 앉아 동무들과 입고 있던 난닝구와 빤스를 조물조물했다. 치대고 치대도 희멀건 물은 물방개가 만든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탈수의 시간. 1분 정도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드디어 힘겨운 마침표를 찍는 녀석. 노르웨이 남서부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가파른 경사도를 탈탈거리며 오르던 산악열차가 겹친다. 한낱 낡은 기계에 불과한 그에게서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 살 냄새가 왜 났을까.
회피할 수 없는, 일련의 동정이었을까. 돌아보면 동정은 허다했다. 이제 당신은 김치냉장고와 드럼 세탁기가 없다는 이유로, 둘째 딸의 가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건너갔다. 그 틈바구니에서 당신이나 나나, 세탁기의 정교했던 몸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지. 어쨌든 낡고 해진 부제품들을 떼어내고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입적을 두고서도 제 일을 해내는 녀석. 아파보니 알겠더라. 잘린 도마뱀의 꼬리처럼 새 꼬리가 돋아나진 않지만, 상처 뒤에는 늘 치유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 이제 이력이 붙어 꺼릴 것이 없다. 아픔도 자연의 현상이라 인정하니 두렵지 않더라는 거.
우린 한때 ‘안전지대’에서 참하게 살았으니 뭐…. 신의 손길로 빚어진 몸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어긋난다거나 불안 따위를 걱정한다거나 이런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언제나 붉은 꽃을 피우는 칸나의 시절. 공장에서 갓 나온 새 제품의 성질, 이따금 스위트한 와인에서 드라이한 와인 저장고로 언덕을 넘어가는 정도쯤은 벗어났지만.
그렇게 오래된 것들은 제 몸 어딘가에 일종의 무늬를 새겨 파장을 보낸다. 발가벗은 몸까지 내보이며 힘겹게 가고 있는 그대. 한풀 낡아가며 서럽게 오고 있는 나. 부디 극락처럼 건너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