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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4부 과학혁명

작성자인미혜(미약스)|작성시간17.11.27|조회수625 목록 댓글 0

사피엔스

 수원지기학교 프로젝트 시즌 1' 책읽기 모임'시간에 책을 읽고 정리하다! 

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기원후 1000년 어느 스페인 농부가 잠이 들어 5백년 후에 깨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정치, 경제, 기술, 풍습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가 깨어난 세상은 친숙해 보일 것이다. 여러 가지가 달라졌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 선원 중 한명이 같은 식으로 잠에 빠졌다가 21세기 아이폰 벨소리에 잠을 깬다면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16세기 이전에는 지구를 일주한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상황은 1522년 마젤란의 배가 72,000킬로미터를 3년 동안 항해한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 온 것이다. 인간의 눈이 미생물을 처음 본 것은 1674년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집에서 만든 현미경으로 처음 본 것이다. 미생물은 의료와 산업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5백년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45716일 오전 52945초 미국 과학자들은 앨러머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트렸다.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근세이전의 전형적이 지배자는 사제와 철학자 시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들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를 기대했지 이들에게 새 의약품을 발견하거나 신무기를 발명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하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무엇이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현대과학의 독특한 속성을 살펴봄으로써 그 답의 일부와, 과학과 유럽 제국들과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동맹을 형성했는지를 살펴보자.

 

1)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모든다를 기꺼이 인정한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대 이전이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있다 라고 단언했다.

어느 시대나 경건하고 보수적인 시대에도 자신들의 전통 전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거나 박해를 받았다.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현대 문화는 이전 어떤 문화보다 더욱 폭넓게 기꺼이 무지를 받아들여 왔다. 현대의 사회질서를 지탱해준 요인 중 하나는 기술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의 확산이었다. 이것은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대체했다.

 

2) 과학의 도그마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경험적 관찰들을 모았지만 관찰의 중요성은 보통 제한적이었다. 물체의 질량, 방향과 가속도, 거기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뉴턴의 방정식에 집어넣으면 그 물체의 미래의 위치를 예측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술처럼 작동했다. 관찰은 물리학의 새로운 혁명으로 이어졌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었다. 하지만 생물학, 경제학, 심리학을 깔끔한 뉴턴 방정식으로 환원하려고 시도했던 과학자들은 실패했다. 통계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의 기초 필수과목이 되었다.

 

3) 아는 것이 힘이다.

과학과 기술이 관련을 맺은 것은 매우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다. 17세기 초반 베이컨이 양자를 연결시킨 것은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17~18세기 동안 둘의 연결이 강화되었지만 19세기 와서야 완성되었다.

세계의 군대는 인류의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의 대부분을 선도하고 자금을 대고 방향을 조종한다.

 

4) 진보라는 이상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류문화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인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근본 문제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다. 근대 문화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다.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결합하자 사람들은 결국 진정한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5) 길가메시 프로젝트

죽음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종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쳤다. 죽음을 극복하고 지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과학자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나, , 감염 같은 다양한 기술적 실패 때문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최고의 의사들조차도 감염을 방지하고 조직의 부패를 막는 법을 알지 못했다. 불멸을 추구하는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달성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1900년 대 우리가 인체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었는가? 그러나 한 세기만에 많은 지식을 축적했다. 몇몇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18세기가 되면서 종교와 이데올로기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6) 과학을 보살피는 다정한 아빠

과학은 경제적, 경제적, 종교적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과학은 돈이 많이 든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코페니쿠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자와 수학자가 계산을 시도했지만 사용한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신뢰할 만한 측정방법이 제시된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정확한 답을 얻으려고 천문학자들을 각 지역으로 보냈다. 돈도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탐사 기회를 단 한 차례의 천문 관측에만 이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팀을 구성하여 각기 다른 분야를 조사했다. 탐험가가 찾아낸 것들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과학과 제국주의는 뗄 내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 어째서 유럽인인가

1500년에서 1750년 사이 서유럽은 세를 얻고 외부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근대초기는 지중해의 오토만, 페르시아, 인도, 중국의 왕조는 황금시대였다. 1775년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세계 권력중심이 유럽으로 이동한 시기는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이다. 유럽인들은 전쟁을 통해서 아시아 강대국에게 모욕을 안기고 많은 영토를 점령했다. 1950년 서유럽과 미국을 합친 생산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넘었고 중국이 차지하는 몫은 5퍼센트로 축소되었다.

 

2) 정복의 사고방식

근대 과학은 유럽제국 덕분에 번창할 수 있다. 방대한 과학적 발견을 수집, 분석하고 그를 통해 과학적 학문을 창조한 것은 세계적 유럽 제국을 지배하는 지적 엘리트들이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이들은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 했고 그렇게 얻은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었다.

 

3) 희귀 거미와 잊힌 문자

영국은 인도를 정복하면서 인도 전체의 지도를 꼼꼼하게 자성하고 국경선을 표시하고 거리를 측정했다. 과학이 제국에게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라고 믿게 되었다. 인도로 침공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리아라고 불렀는데 가장 초기의 페르시아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이리이아로 지칭했다. -인종차별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치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 차지했다. 과학과 제국의 성공 뒤에는 중요한 힘이 숨어 있다. 바로 자본주의다. 돈을 벌려는 사업가들이 없었다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16 자본주의의 교리

 

돈은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이었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근대에 이르러 귀족은 자본주의 신조를 믿는 엘리트에게 추월당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자 엘리트는 공작이나 후작부인이 아니라 회장, 주식거래인, 기업경영자로 구성되어있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신용시스템을 만들어낸 것도 제국주의였다. 왕과 장군들은 상인과 상업적 사고방식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도 아대륙을 정복한 것도 영국 정부가 아니라 영국 동인도회사의 용병들이었다. 왕이 시장을 적절히 규율하는 업무에 실패하면 신뢰의 상실, 신용의 축소,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자본주의자의 지옥

이기적 탐욕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시장의 힘에 민감하고 이윤에 탐욕을 부리며 경제성장을 바라는 유럽인 농장주들은 노예로 눈을 돌렸다.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약 1천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아메리카로 수입되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류와 세계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 모른다.

 

17 산업의 바퀴

현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신뢰하는 덕분이며 자본주의자들이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할 의사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자원과 에너지가 부족해서 경제성장이 느려질 위험이 생기면 과학적, 기술적 연구에 투자가 흘러 들어간다.

 

1) 컨베이어 벨트위에서의 삶

산업혁명은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와 값싸고 풍부한 원자재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했다. 그 성장은 농업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다. 산업혁명은 무엇보다 제2차 농업혁명이었다.

 

18. 끝없는 혁명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1880년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한나라가 국가 시간을 채택하고 국민들에게 현지 시각이나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대신에 시계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 것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지난 5백년은 깜짝 놀랄 만한 혁명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시기였다. 그들은 모든 것의 역사를 연구했다. 정치, 사회, 경제, 성 역할, 질병, 성적 특질, 식량, 의복...하지만 이것들이 인류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멈춰서 생각하는 일은 드물었다. 새로운 재능, 형태, 기술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농업혁명에서 농경을 배웠을 때 집단으로서 이들이 환경을 바꾸는 힘을 커졌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동물의 운명을 깡그리 무시할 때만 현대 사피엔스가 이룩한 성취를 자축할 수 있다. 실험실의 원숭이, 젖소, 컨베이어 벨트의 병아리의 희생 덕분에 축적된 것이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수많은 동물들이 산업적 착취체제에 희생되었다. 인류만의 행복을 고려한 것이다.

 

행복계산하기

행복이 부나 건강,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행복이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인 대중 매체와 광고 산업은 지구의 만족 저장고를 생각지 않게 고갈시키는 중일 수도 있다.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믿음이었다.

 

화학적 행복

진화의 결과 우리가 너무 불행해하지도 행복해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 호모사피엔스의 종말

유전공학에 다수의 윤리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쟁점이 제기되는 이유가 인간이 신의 역할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과학자들이 자연의 역할을 대신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에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네안데르탈인의 귀환

인지혁명 덕분에 인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유인원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변화했다. 초인을 만들어 내는지 못하게 막는 기술적 장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리적, 정치적 반대다. 인간에 대한 연구 속도가 느려진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오랫동안 지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을 무한히 연장하고 불치병을 정복하며, 우리의 인지적 정서적 능력을 향상시킬 성패가 달려 있다.

생명공학이 네안데르탈인을 정말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 스스로 막을 내리게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우리가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예언

프랑켄슈타인 신화는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종말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만든다. 지금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욕망 자체도 설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가 아니고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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