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8-9)
<니므롯>: נמרוד "니므로드" - (뜻) "반역, 표범"
1)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장남 구스의 아들 2) 세상에 첫 용사 3)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
4) 시날 땅에서부터 니느웨(앗수르의 통치 지역)까지 통치한 최초의 왕 5) 바벨론의 시조
성경이 소개하는 니므롯은 ‘세상의 첫 용사(엉걸)요, ‘주 앞에 용감한 사냥꾼’이다. 니므롯에 대하여 창세기 10장에 불과 서너 줄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인류의 역사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고 홍수 이후 인류의 역사를 뒤바꿔 버린 변혁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니므롯'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마라드’(marad)에서 온 말로, ‘반역하다’, ‘배역하다’, 또는 ‘그가 반역하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니므롯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으며, 랍비들의 전통에 의하면 니므로드는 '반역의 주인'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세상의 첫 용사(영걸)였다. 히브리어로 용사는 גבור(깁보르)로 ‘강하다, 크다, 뛰어나다, 용맹스럽다, 강포하다’로 번역되며, '강력한 세력을 지닌 자,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 폭군'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으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앞에서’로 번역된 전치사 ‘알(על)’은 원래 ‘위에, 넘어서, 대항하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본 의미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냥꾼'이란 뜻으로, 정확히 번역하면 ‘니므롯은 여호와 하나님을 뛰어넘으려 여호와와 대항한 사냥꾼’이라는 뜻이 된다.
그가 사냥꾼이었다는 말은 당시 고대인들의 왕의 역할에 대한 사고가 반영이 되어 있는 어구이다. 당시 고대 시대에는 이미 들 짐승들이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던 때였다. 그래서 고대인들의 왕은 제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온갖 사나운 야생 동물들을 멸절시키는 것을 최고 우선과제로 삼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왕을 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용사 니므롯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사람들을 압제하여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 앉아 있는 세상의 왕, 타락한 자의 대표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가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보면 그 점은 더 명확해진다.
1. 니므롯의 행적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축하였으니 이는 큰 성이라" (창 10:10)
뛰어난 완력과 기량은 갖추었으되 경건한 마음과 신앙은 갖추지 못했던 니므롯은 자신의 권력과 신망이 커져감에 따라 하나님마저 업신여기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마침내 자신이 하나님 대신 인간들을 지배하고자 정부 체계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여기서 "그의 나라"라고 했으니 벌써 그는 나라를 조직한 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큰 성을 건축했다. 특별히 니느웨 성을 건축했는데 [니느웨]란 그 말은 니너스(Ninus)의 성이란 뜻이다. 고대 앗수르의 신화에 의하면 [니너스]는 니므롯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학자들은 말하기를 [니느웨]란 그 도성은 니므롯이 그것을 건설한 후에 자기의 아들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의 이름을 삼은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니므롯은 자기와 자신의 아들들을 신의 화신이라고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숭배케 했다고 한다.
이렇게 바빌론 제국을 건설하여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지배하는 첫 제국을 탄생시킨 그는 자신의 영토 내에 남아 있던 하나님을 숭배하던 신앙을 말살시키고 거짓 신화와 전설들을 꾸며내었다.
바빌론 일대에서 하나님 신앙을 말살시킨 그는 마침내 노아의 장자 셈의 둘째 아들이자 당시의 장자권자인 앗수르의 영토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앗시리아를 정복하고 앗수르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 니므롯은 수메르(셈의 장자 엘람의 아들)의 반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앗수르에게 접근해 그를 도움으로써 신임을 얻었고 결국 음모를 꾸며 앗수르를 처치하고는 앗수르의 이름을 폐하지 않고 자신이 앗수르인양 행세함으로써 신실한 신앙의 나라 앗시리아를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쥐게 되었다.(창 10:11)
개역성경에는 ‘그가 앗수르로 나아갔다’고 되어 있으나 흠정역 성경에는 ‘그 땅에서 앗수르가 나아갔다’고 되어 있으며, 우리말 고어 성경에도 ‘그 땅에서 아슈르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니므롯이 세운 바빌론 땅에서 앗수르가 나왔다는 말은 니므롯이 앗수르로 가장하였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주 앞에 니므롯 같은 용감한 사냥꾼’이란 말 또한 당시에 앗수르를 향해 쓰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힘세고 용감한 사람은 니므롯 하나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앗수르가 등장하여 니므롯처럼 용맹을 떨치니 사람들은 ‘니므롯 같은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앗수르를 칭송했을 것이다.
또한 고대에는 고개를 들어 왕의 얼굴을 보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으니(왕하 25:27) 앗수르 왕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니므롯은 더욱 쉽게 앗수르의 왕좌를 찬탈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방식이 아니었더라도 당시 경건한 셈의 나라 앗시리아는 니므롯의 바빌론 세력에게 정복당하거나 흡수되었으며 니므롯은 니느웨와 레센 등 거대한 도시들을 세우고 니눈타와 이난나를 비롯한 우상들을 퍼뜨렸다.
천하의 장자권자인 앗수르(니므롯이 가장한)가 그러니 노아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은 뒤따라서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 신앙을 저버렸으며 마침내 그의 주도하에 바벨탑(창 11:1~9)을 세우려 하기에 이르렀다.
타락해 가는 세상을 두고 보지 못한 노아의 장자 셈은 마침내 일어나 미스라임(노아의 차남 함의 둘째 아들)의 나라인 이집트로 갔고 니므롯을 소환하였다. 자신이 지배하는 단일 세계정부의 곳곳을 순방하며 지배권을 다지던 니므롯은 인류의 대시조이자 자신의 아버지(앗수르로 가장하고 있으니) 셈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 이집트로 향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셈에 의해 최고 법정에 회부되고 이집트의 법원을 구성하는 72명의 판관 전원에게 유죄선고를 받았다. 결국 인류 최초의 독재자인 니므롯은 주전 2357년 12월 25일에 셈에 의해 처형되었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2. 니므롯의 배도
니므롯은 살아생전에 자신이 지배하던 바빌론과 앗시리아에서 거짓 신화와 전설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창세기를 말살하고 홍수 이전의 사탄 숭배를 부활시켰다. 그 시기에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신화로 창조주 하나님을 '엔릴'이라는 단순한 하늘의 신으로 격하시키고 온갖 신들을 고안해 내어 우상 숭배를 자행하였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시신을 토막 내어 세계 곳곳으로 보내 그를 추모하게 했는데 그 시신이 도착한 곳마다 또다시 니므롯을 신으로 섬기며 신화들이 생겨났다. 그리스 신화, 이집트 신화가 생겨난 것도 이 시기이다. 니므롯은 그리스 신화에서 힘센 영웅 헤라클레스, 멧돼지에 치어 죽는 아도니스(셈은 멧돼지로 비유됨)로 묘사되었고, 이집트 신화에서는 동생에게 살해당하는 오시리스(셈은 세트로 비유)로 묘사되었다. 동방으로 넘어와서는 중국 신화의 황제 헌원(셈은 치우 천왕으로 비유)으로 묘사되고 앗시리아의 신 니눈타와 가나안의 신 바알, 바빌론의 영웅 길가메시도 모두 니므롯을 본뜬 것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와 아들 담무스에 의해 배도는 계속되었는데 니므롯이 처형됨과 동시에 막 아들 담무스를 출산한 그녀는 그를 새로 태어난 니므롯이라 칭하며 자신을 ‘성모’로 숭배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 앗시리아의 이난나 여신, 중국 신화의 서왕모,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의 비너스와 시빌레, 가나안의 아스타르테 등 ‘어머니 신’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의 아들 담무스도 니므롯의 환생으로서 숭배되었는데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로 묘사되었다.
그는 세계 모든 신화에서 모자 신상의 형태로 숭배되었으며 특히 로마 제국 시대에는 태양신으로 섬겨졌는데 그의 탄생일이자 니므롯의 사망일인 12월 25일이 현재 성탄절로 지켜지고 있다.
이와 같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4천 5백년 전의 한 인간 니므롯의 배도는 모든 인류의 운명을 바꿔 버렸고 한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도 끊임없는 영적 전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 니므롯 >
<바벨탑(Tower of Babel)과 니므롯>
1. 바벨탑과 인간의 반역
니므롯은 나라를 세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더욱 망령되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으로 만족치 않았고 모든 사람들로 자기를 섬기게 했다. 바벨론의 신화와 또는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바벨탑의 맨 꼭대기 정상에는 월신, 소위 [NANA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발굴된 고대 앗수르의 많은 탑들은 소위 [지구라트]라고 하는 것으로 그 뜻은 '거룩한 성'이란 말이다. 그것들 위에는 4각형의 제단이 있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지구라트라는 탑들의 원형이 곧 바벨탑일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생각할 때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은 큰 목적 중의 하나는 '월신의 화신'이라고 지칭하는 자기와 자기 아들들을 섬기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노아 홍수 후에 생겨진 무서운 인간들의 반역행위가 아닐 수 없다.
2. 바벨탑과 인간의 교만
(창11:4)에 보면 "탑을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했는데 여기에서 니므롯의 교만한 얼굴을 넉넉히 상상할 수 있다. 인간들은 흔히 어떤 업적을 통하여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 했고, 사람들로 자기를 찬양케 했고 우상으로 숭배케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공든 탑을 무너뜨림으로써 그의 교만을 심판했던 것이다.
3. 바벨탑과 인간의 정책
(창11:4)을 다시 보면 "자 성과 대를 높이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했다. 여기에서 보는대로 니므롯과 그 일당은 바벨탑을 쌓음으로써 사람들을 흩어지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썼다. 생각컨대 그것은 멀리 탑이 바라 보일 수 있는 한계에서만 사람들이 살도록 제한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로 흩어지지 못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처럼 그들의 발을 묶어 놓으로써 백성 들의 분산을 막으려 했다. 따라서 사람들을 영원히 자기들의 통치밑에 두려는 정책을 썼다.
이러한 니므롯과 그 일당의 야심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크게 어기는 반역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창세기 9:1에 보면 홍수 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며 번성하며 편만하여 그 중에 번성하라" 하셨다. 그러나 니므롯과 그 일당은 하나님의 명령과 축복을 어겨 사람들로 온 지면에 흩어져 충만하며 번성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사람들을 한곳에 묶어두고 그들을 통치하려 했다. 억지로 자기의 통치 밑에 저들을 통일시키려 했다.
<결 론>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였느니라."(롬5:12)
인류의 시조 아담은 선악과라는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댐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지배받게 되었다. 홍수로 이전 인류가 멸절되고 신실한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으나 니므롯이라는 한 사람이 권력욕과 우상 숭배라는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댐으로써 또다시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영적 전쟁 속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는 니므롯을 통하여 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신화는 바빌론의 사탄 숭배에서 나온 것이라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실하고 경건한 앗수르의 백성들이 처음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니므롯의 음모 앞에 타협하고 굴복했을 때 영원히 그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 후 멸망할 때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의 나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타협하고 나태한 신앙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를 엿볼 수 있었다.
지금도 니므롯의 제국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천 5백년 전 노아의 후손들이 세운 모든 나라들이 그러했듯이 도처에 믿음을 찾아보기 힘들고 신실한 이들이 핍박받고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을 놓을 때가 아니다.
용감한 사냥꾼이자 철권의 독재자 니므롯이 셈에게 한 마디 반항도 못한 채 맥없이 처형당하고 그 시체마저 여러 조각으로 찢겨졌던 것을 기억하자. 니므롯의 아들이자 태양신으로 숭배된 담무스의 탄생 기념일 12월 25일이 오늘날 주 예수님의 축일로 경축되고 있으며 그 날에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이들 대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찬양하는 소리로 넘쳐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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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의 지구라트
서기전 2100년경 건설된 우르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것이다. 당시 우르 제 III 왕조의 왕 우르-남무는 이 도시의 수호신 난나(Nanna)를 모신 신전을 좀 더 높은 곳에 세워 도시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원형이기도 한 지구라트는 원래 꼭대기의 신전을 받치기 위한 받침대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록 지구라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부터 그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왔지만 이곳에서는 무덤이 아닌 신전 받침대로 활용됐다. 재질이 약한 흙벽돌을 주로 건축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역청을 사이사이에 깔았고 어떤 경우에는 갈대로 엮은 매트리스를 일정 간격으로 흙벽돌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
이라크에 있는 많은 지구라트 중 하나의 모습이다. 바빌로니아 전승에 의하면 이 탑은 원래 니므롯이 축조했다고 한다. 아랍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탑이 있는 지역을 Birs Nimrud, 즉 '니므롯의 땅'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옛날 하나님이 중단시킨 바벨탑과 동일한 유형의 것이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작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한다. 그 신전 중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기원전 586년인데 그 당시에도 이미 지구라트는 오래 된 탑이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하였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고 한 층을 약 3m로 잡으면 70층이 된다.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기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인 '마르둑(Marduk)'이라고 쓰여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겔의 "바벨탑">
6층에 바알신의 지성소가 있었다.
바빌로니아는 원래 「신의 문」(bab-ili)이라는 뜻이다. 또 고대 도시의 한 복판에 지어진 바벨탑은 하늘과 지상이 통하는 스타게이트였다. 일찍이 바빌로니아에 터를 잡았던 수메르 인들은 높은 산이나 언덕마다 탑을 빼곡하게 올리면서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발을 내딛을 받침대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바벨탑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도 이곳 바벨탑 그늘 아래로 자주 지나 다녔을 것이다.
바벨탑을 목격한 사람은 또 있었다. 기원전 458년 바빌로니아를 방문한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네모반듯한 밑그림에 탑이 서 있었는데, 탑 위에 탑이 올라붙고, 그 위에 또 다른 탑이 올라붙는 식으로 모두 여덟 개의 탑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맨 꼭대기 탑 위에는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한다(역사 I, 181~183).
모두 벽돌을 구워서 쌓은 탑이었고, 꼭대기의 신전은 지붕에다 파란 유약을 발라서 구운 기와와 황금을 씌워서 멀리서 도시로 들어서는 나그네의 눈을 눈부시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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