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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스크랩] 데라: 지체하는 자의 교훈

작성자섬김이|작성시간19.01.10|조회수232 목록 댓글 0
데라: 지체하는 자의 교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 11:31-32)

 

 

<데라>: תרח "테라흐(Terah)"- (뜻) "체류하다, 지체하다"

1) 셈의 9대손, 나홀의 아들(29세에 낳음)    2) 아브람, 나홀, 하란의 아버지

3) 아브람을 70세에 낳고 205세에 죽음    4) 우상 숭배자   5) 노아와는 128년 동시대에 살았다.  

 

앞에서 노아의 아들 셈의 5대손인 벨렉 시대에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의 혼잡과 인류가 분산되었다는 것을 다루었다. 당연히 셈 계통의 신앙을 계승해야 했던 벨렉이 범죄의 길로 들어서면서 '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로 이어지는 셈 자손들은 세상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단절될 뻔한 위기를 맞게 된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신앙을 지키던 에벨과 셈 계열의 조상들은 유브라데 강을 건너 거룩한 신앙 공동체(에블라왕국)를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에벨을 따라 나서지 않고 강 이편에 살고 있던 벨렉과 그 후손들은 그렇게 떠나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적인 우상 공동체 속에서 그들은 신앙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되었고 시대의 조류를 따라 타락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내심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시게 되는데, 앞서 벨렉 이후 데라에 이르는 아브라함의 조상들에 대해 먼저 간단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르우>: רעו (Reu) - (뜻) "친구, 이웃"

1) 노아의 아들 셈의 6대손, 벨렉의 아들   2)32세에 스룩을 낳고 207년을 지내며 지녀를 낳고

3) 239세에 죽음  4) 노아와 219년 동시대에 살았다.

* 르우의 어원은 '(가축을) 돌보거나 방목하는 목초지'를 뜻하는 명사 '레이(רעו)', 그리고 '방목하다, 기르다, 사귀다, 특별한 친구가 되다'라는 뜻의 '라아(רעה)'에서 유래되었다.

 

<스룩>: שרוג (Serug) - (뜻) "덩굴손, 매우 단단한 힘, 활"

1) 셈의 7대손, 르우의 아들   2) 30세에 나홀을 낳고 2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 230세에 죽음   4) 노아와는 187년 동시대에 살았다.

* 스룩의 어원은 '사라그(שרג)'로서 그 뜻은 '섞어 짜다, 칭칭 감다, 뒤얽히게 하다'이다. 르우가 아들을 낳고 스룩이라 이름한 것은 바벨탑 사건을 기점으로 자기 공동체의 힘을 키우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힘은 신앙의 힘, 위로부터 주신 힘이 아니라 스스로 키운 인본주의적인 힘이었다. 스룩은 철저하게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자였다. 

 

<나홀>: נחור '나호르(Nahor)' - (뜻) "숨이 차다, 헐떡거리다, 콧김을 내뿜다"

1)  셈의 8대손, 스룩의 아들   2) 29세에 데라를 낳고 11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 148세에 죽음   4) 노아와는 148년 동시대 살았다. 

* 나홀은 조상들의 수명에 비해 단명하였다. 아마도 나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어떤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죽은 것 같다.  

 

* 이렇듯 경건한 셋 계열의 자손의 타락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르우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 관계를 우선했으며, 스룩은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나홀은 세속주의에 젖은 탐욕의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후에는 신앙을 버리고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비극적인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가문의 배경에서 데라는 출생하게 된다.

 

1. 데라의 가족사

 

노아의 10대손 '데라'의 사적을 보면, 그는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세 자녀를 낳았다(창 11:26). 그리고 '데라'의 아들 '하란'은 그 아비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게 된다. 그리고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아브람의 아내는 사래였고 나홀의 아내는 밀가로 하란의 딸이었다(당시 근친결혼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백성을 보존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사래는 잉태치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다고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의 구원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갈 것인가를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2. 데라는 우상 숭배자였다(수 24:2-5, 14-15).

 

데라의 이름의 뜻은 '체류하다, 지체하다'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란으로 이주하였으나 하란에서 지체하다가 거기서 죽게 된다(창 11:31-32). 

그는 노아의 후예, 셈의 후예, 에벨의 후예 곧 '믿음의 후예'로서 훌륭한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정통적인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데라의 신앙이란 조상의 산앙을 자랑할 뿐, 정작 자신은 조상이 물려준 신앙을 팔아먹고,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신앙의 뿌리까지 완전히 흔들리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여호수아 24:2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3.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났으나 하란에 머물고 만 '데라'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람에게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데라는 아브람을 통해 이 명령을 전해 듣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앞정서서 아브람과 손자 롯과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다(창 11:31).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끝까지 가나안으로 가지 못하고, 하란까지 와서는 가나안으로 가기를 포기한 채 거기 머물게 되었으며, 205세에 하란에서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창 11:32).

그러면 왜 데라는 하란까지 왔으면서 가나안으로 가지 않았을까? 지도를 보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상당히 먼 길인 반면, 가나안은 온 길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다. 학자들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발달한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올 수 있었지만, 가나안은 타문화권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하란에 정착했다고 보고 있다.

하란은 당시 최고의 교통 중심지로 경제적으로 번영한 도시였고(겔 27:23), ‘우르와 같이 월신(月神)’(Sin)을 예배한 우상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따라서 갈대아 우르를 떠난 데라가 하란에 머물고 만 것은 그의 신앙이 하란의 경제적 번영과 갈대아 우르처럼 달의 신을 섬기는 그 지역의 종교에 다시 빠져들고 말았음을 보여준다. 실로 '지체하다'라는 그의 이름대로 된 것이다. 결국 그는 가나안 여정의 목표를 상실하고 하란에서 머물다가 205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데라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창 12:1). 아브라함은 이 명령ㅇ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하게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역사는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데라의 죽음을 끝으로 셈 계열의 어둠의 역사는 깨끗하게 종결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구속사를 진행시키신 것이다.

 

<교훈> 

 

데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데라가 우상 장사를 하였는데 아브람이 신당에 들어가 많은 우상을 망치로 부숴버리고 큰 우상에게 그 망치를 들려주었다데라가 화가 나서 아브람을 불러 물으니 큰 우상이 부순 것같다고 대답했다. 그 때 데라는 더 화가나서 " 우상이 어떻게 우상을 부수느냐"고 묻자, "그런 우상을 아버지는 왜 섬기십니까?" 그 때에 데라는 할말을 잃었다는 이야기이다

데라는 범죄의 온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면서 비참하게 살던 사람이었다(수 24:2). 그러나 그는 자기 아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영광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순간 회개하고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 우르의 옛 삶을 청산하고 우상의 도시에서 분리하여 나오게 되었다. 그후 데라는 죄악의 습성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하란에 정착하여 살다가 '지체하는 자'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유는 가나안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의 길목인 하란까지 와서는 가나안으로 가기를 포기하고 하란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그가 가나안으로 가려했던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가도 되고 머물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나안으로 가야만 했었다. 그런데 미지의 땅 가나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주저앉았고 갈대아 우르와 다를바 없는 우상의 도시 하란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만일 데라가 아브라함과 가나안까지 갔더라면 아브라함과 함께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며, 나아가 후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데라를 '죽은 자'로 서둘러 마감하고 아들 아브람을 부르셔서 구속사의 전면에 나오게 하셨다. 우리는 결코 데라처럼 체류하고 미루고 지체해서는 안된다. 환경에 눌러 앉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만의 하란이 있다. 그렇다면 어땋게 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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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라 가문의 위기>

 

(1) 데라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부족의 족장이었다.

데라 가문의 족보는 101절에 나오는 노아의 족보에서부터 시작된다. 10장과 11장은 커다란 족보이야기로 노아에서부터 시작해서 데라에 이르는 족보이다. 그러므로 데라는 노아의 후손, 셈의 후예, 곧 믿음의 후예이다. 그는 믿음의 조상을 두었다. 따라서 데라의 족보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계이다.

그런데 그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다. “데라의 신앙이란 그저 우리 조상이 믿었다는 것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었다. 더 나아가 데라는 조상이 물려준 신앙을 팔아먹고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 여호수아서 24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신앙의 가문에 가장 큰 유산은 믿음이다. 셈의 후예는 신앙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데라 가정에 위기가 닥치고 있는데 그것은 먼저 신앙의 위기였다. 그런데 데라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2) 신앙의 위기가 데라 가정의 모든 위기의 시작이었고 원인이었다.

데라가 위기를 만난 곳이 갈대아인의 우르라는 도시였다. 이곳은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 사이의 비옥한 지역이다. 그래서 그곳은 풍요의 도시였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세련된 건축물들이 있었던 건축의 도시였다. 최신 수학적 도판과 각종 사전들, 그리고 교육용 서적들이 발견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달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큰 사원을 지닌 우상숭배의 도시이기도 했. ‘갈대아인이란 말이 히브리어 발음으로 카스다인이라는 말인데, ‘점성가’,‘마술사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실제로 다니엘서 47절에서 보면 이 말을 갈대아 수사라는 말로 번역했다. 또한 우르라는 말도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우르라는 말도 빛나다, 불사르다는 뜻을 지닌 오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우르는 밤에 빛나는 달의 신을 의미한다.

데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지만, 이교적인 문화, 환경에 물들어 믿음을 저버리고 함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데라가 신앙을 잊어버리자 그 가정에 위기가 닥쳤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날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창 11:27)

여기에 순서대로라면 아브람이 장자이다. 그러나 나홀이 하란의 딸과 결혼한 사실(29)124절에 아브람이 롯과 함께 떠난 것 등을 근거할 때 하란이 데라의 맏아들임에 분명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아브람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의 영적 장자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기록한 순서대로 실제 데라의 장남은 아브람이라는 견해이다. 그리고 둘째는 나홀이고 하란은 제일 막내가 된다. 그렇다면 제일 막내 하란이 먼저 장가가서 아들을 낳았다. 거꾸로 형들 둘을 제치고 막내가 먼저 아들을 낳아 가지고 들어왔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나중에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을 때, 그의 아내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하란의 아내는 누구인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정식 결혼을 하기도 전에 아들과 딸을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란이 막내라면 데라 가정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두 형을 제치고 아들과 딸을 낳아 순서가 뒤바뀌고 질서가 깨졌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3. 데라 가정의 위기는 아들 하란의 죽음이다.

28절에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라고 했다. 먼저 아들과 딸을 낳아 들어왔던 하란이 아버지 '데라'의 면전에서 죽은 것이다. ‘먼저라는 말은 면전에서라는 말이다. 아버지 보는 앞에서 먼저 운명을 달리했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다는 것은 어떠한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비극이다. '데라'는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29절에 보면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라고 했다막내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놀란 '데라'는 서둘러 그 형들을 장가들인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알 수 없지만, 원어로 보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히브리어는 주어가 복수형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결혼식을 한 번 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이다. 데라가 막내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나서 서둘러 두 아들을 장가들였는데 동시에 장가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는 모세 율법이 제정되기 전이므로 근친혼을 하였다. 2012절에 보면 사래는 아브람의 이복누이 동생으로 결혼을 하고, 나홀은 조카 딸 밀가와, 레아와 라헬은 야곱과 결혼한다. 이것은 고대 사회 문화의 불가피한 사정과 순수 혈통유지, 순수 야훼 신앙을 보존 전수하는 이상적인 결혼인 것이다.

 

4.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는 위기가 발생했다.

30절이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사래는 아이 못 낳는 여인이었다. '데라' 가정의 불행이 계속되고 있다. 풍요의 도시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데라'는 경제적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자식 농사는 실패하고 있었다. 풍요 속에서 가난을 경험하고 수치를 당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가족의 수는 그 가문의 힘과 비례했다. 그런데 데라는 있던 아들도 죽었다. 장남은 장가들었는데 며느리가 아이도 낳지 못한다. 경제적 손실이고, 가문의 힘의 상실이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가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데라 가정의 문제도 그 가정을 훈련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방법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5.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데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데라가 떠났다는 것이다. 데라가 왜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본문은 아무 정보도 제공하고 있지 않는다. 가정의 위기가 그를 떠나게 만들었을 것이다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떠나야 한다. 떠날 때 위기는 다시 기회가 된다.

데라는 떠났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떠났다는 말은 없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들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72-4절이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사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데라는 지금까지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신앙의 유산을 다 팔아먹고 산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가정의 위기가 잘못된 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31)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이었다. 그는 이제 믿음을 회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었다. 데라는 지금 가정에 위기가 닥치자 믿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6. 그러나 데라는 결국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체류하게 되었다.

고난은 하나님의 훈련이다. 그러므로 고난 후에는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가 시험을 이기면 더 큰 상급을 받게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받았지만 그것을 이김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게 되었다. 요셉은 종으로 팔리고, 억울하게 옥에 갇히는 고난과 시련을 겪음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는 복을 받앗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극렬히 타는 풀무 불 속에 들어가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고난과 시험을 받았지만, 그것을 이겼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 할 수 있게 되었다. 데라도 믿음으로 우상의 도시를 떠났다. 신앙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믿음의 길,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길로 떠났다. 그런데 그는 복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되지 못했다.

본문 32절이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 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왜 데라는 믿음의 여정을 향해 떠났는데, 하나님의 회복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죽고 말았을까? 31절 마지막 부분에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라고 했다.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는데,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믿음을 향해 출발했는데,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 바로 여기에 데라의 위기 극복의 한계가 있다.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다. 거류하였다는 말은 정착하였다는 말이다.데라가 중도에서 여행을 포기하고 하란에 머물러 살았다는 말이다. 데라는 믿음의 순례를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우상 숭배에 빠졌다. 갈대아 인의 우르나 하란은 모두 달의 신을 섬기는 곳이었다

데라는 왜 하란에 머물고 말았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가나안에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긴 했지만, 반드시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망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데라는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는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 살길이고 그 길이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데라는 확신이 없었다.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으면 좋고, 못 도착해도 그만이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이것을 내가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단과 결심이 없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 그 가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 < 데라의 죽음에 대한 모순된 기록 > : (창 11:31-32, 행 7:2-4)

 

성경은 창세기 11장을 데라가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다고 마감하면서 이어 12장에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니까,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람을 부르신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스데반 집사의 설교에서 '아브람이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람을 부르신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7:4).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75세였다고 말하고 있다(창 12:4).  이때 데라는 145세로 생존해 있었다.

데라가 70세에 낳은 아브람이 75세에 하란을 떠났으니 데라는 145세가 되었고, 205세에 죽었으니 60년을 더 산 것이 맞다. 그런데 사도행전 7:4에서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사도행전 7:4절에 사용된 '죽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αποθνησκω'아포드네스코'이다.

αποθνησκω(아포드네스코)는 명사 θανατος(다나토스)의 유래근원 동사인 θνησκω(드네스코)에서 유래된 합성어이다θανατος(다나토스)는 명사로 쓰여 사망이란 뜻을 가지며, αποθνησκω(아포드네스코)는 동사로 쓰여 "죽다(die), 썩어가고 있다. 포기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성서에서 말하는 사망 θανατος(다나토스)는 정신의 죽음으로 전용되고 있지만 더 본질적인 측면에선 영의 죽음, 즉 하나님과의 온전한 단절을 뜻한다. 또한 θανατος(다나토스)에서 유래한 αποθνησκω(아포드네스코)는 분리 전치사 απο(아포)죽다라는 동사 θνησκω(드네스코)의 합성어이다. 이를 풀어서 읽으면 죽음으로부터의 분리,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다.’라는 의미도 갖는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7:4의 죽음은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아버지 데라에 대한 정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완전히 분리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는 가부장적(家夫長的) 사회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75세(데라 145세)에 부친에 대한 정을 끊고 하란을 떠났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가고자 했던 신앙의 결단이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 준다. 

그로부터 60년 후에 데라는 205세로 하란에서 죽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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