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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료

[스크랩] 전도되는 이미지 메이킹

작성자섬김과 나눔|작성시간20.01.11|조회수120 목록 댓글 0

전도되는 이미지 메이킹





 


 

Ⅰ. 전도되는 이미지를 위한 성경적 근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사회에서 상대방의 인격이나 감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접근 방법은 복음전달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접근방식을 배움으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이 방식이 예수님의 접근방식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

곧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접근법으로서의 이해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전도자가 전도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전도되는 이미지 전도법’이다.

이 방법을 이해 할때 비로소 전도팀의 이미지 사역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1.전도되는 이미지를 위한 성경적 근거
‘전도되는 이미지 접근방법’은 대상지역을 향한 전도의 기본사역을 실천하는 원리적 방법이다.

이러한 이미지 접근의 최고 모델은 물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인류를 향하신 그분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의 표현이었다.

성육신 사건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전도의 기본적인 모델이다.

따라서 전도를 단순히 “선포” 또는 “증거”라고하는 하나의 행위에만 집중한다고 하면 이는 아주 소극적인 접근이 될 것이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처럼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성도의 총 적인 표현이 되어야 하며 이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종합적이고도 적극적인 접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건이 세상에 대해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기 위해 성육신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나타나사자기를 낮추시고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⑴ 비우심(self-denial)의 과정
예수님이 세상에 오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 먼저 선행되어야 했다.

자신을 비우기 위해서는 그분이 포기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동등됨’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한 지역이나 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의도적으로 자신의 가지고 있는 정당한 뭔가를 비울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고 자신을 비우는 과정을 겪으셔야만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6:24)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비워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운다는 것은 단순히 잊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도자는 먼저 세상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을 비움이 선행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움의 과정으로 인해 전도자는 세 가지의 버림의 과정을 경험한다.


①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버린다.
구약의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 가운데 증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가기보다는 다시스로 도망을 간다.

왜 그런가 한 마디로 유대민족을 핍박하는 니느웨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입으로 선포하고 자기로 말미암
아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그의 민족적 감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차리리 자기의 선택에 따라 다시스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요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고전9:22)
바울은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키 위하여 스스로 높아지는 것은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거지처럼, 때로는 약한 사람처럼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자신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있었으니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것”이었다.(눅9:26)



②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마음을 버린다.  

 

ⓐ 주관적인 일방성
이는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그날의 기분에 좌우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과거의 주입된 기억에 따라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든지 혹은 어떤 사물에 대한 특정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 객관적인 일방성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또는 공동체적인 일방성이라 할 수 있다.

사회나 공동체에서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형성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그러한 사회의 공동체의 통념에 따라 기피대상이 되는 어떤 것에 대하여 일방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하심으로 이러한 모든 일방성으로 부터 자유하신 분 이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여기서 원수는 경험으로 형성되는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실체이다.

우리는 이러한 실체들에 대하여 감정적인 일방성을 가지게 되고 나아가서 그들로부터 자신을 기피하고 분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개인적인 미움이나 원한에 근거한 일방성으로 부터 자유하는 자가 진정한 사랑을 보일수 있음을 가르치신다.

또한 예수님은 객관적인 일방성의 벽을 허무신 분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회적인 일방성에 의하여 무시당하고 죄인으로 평가받던 세리나 창녀 그리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기를 자처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이 임하는 온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방을 위한 사도였다.

그가 이방에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벗어 던져야 했던 것은 과거 유대인으로서의 삶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모르게 가지게 된 었던 이 일방성의 굴레를 벗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이렇게 고백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롬10:12)
전도자 빌립도 일방성으로 부터 자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사마리아와 이디오피아 내시에게로 복음을 전하였다.

이처럼 전도자는 대상지역을 향한 전도사역 과 기본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 안에 형성되어 있는 일방성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③ 특권의식을 버린다.
특권의식은 일방성과는 달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분이나 학벌 그리고 사회적인 위치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교회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축복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구원의 통로로서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특권과 특권의식은 다른 것이다.

특권의식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 대하여 나의 정당한 권리나 위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사실 교회의 집사나 권사 그리고 장로와 같은 직분의 교회의 복음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기능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특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직분은 서열을 나타내는 계급 직으로 보여지기 시작했고 그 직분에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것 을 볼 수 있다.

성도에게 부여된 가장 큰 특권은 무엇이겠는가? 세상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축복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실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유대 최고학부에서 공부한 사람이었고 바리새인중 의 바리새인이었다.

게다가 그는 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세상적으로 모든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가지 복음증거와 영혼 구원을 위하여 그 모든 자기가 가진 특권을 자제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고린도전서 9:18
절에서 볼 수 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②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나 (to show the model)
요한복음13:13-15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사실 새로운 영적인 이스라엘을 선택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통하여 그에게 그들이 어떻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생각에 미혹되고 말았다.

이제 예수님은 이 땅에 친히 성육신 하셨다.

그리고 그의 열두제자들에게 그리고 믿음으로 형성된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사람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줄 것인가를 그 분의 오심을 통하여 삶을 통하여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13:34-35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섬김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인 것을 세상 사람들로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초대교회는 서로 섬기는 교회였다.

서로 구제하는 교회였다.

공동체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교회였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온 백성의 칭송을 받는 교회엿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인 줄을 어떻게 세상으로 알게 할 것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섬기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들을 섬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또한 전도자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도자가 지역공동체를 향하여 실시해야 하는 이미지 사역인 것이다.

 2.팀전도 이미지 사역의 원리와 실제
스티브 쇼그린(Steve Sjogren)은 “섬김전도(Servant Evangelism)”의 전문가이다.

그는 그의 책「이리지스터블 에반젤리즘 Irresistible Evangelism」에서 모든 전도는 “적극적인 친절(Active Kindness)”로 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본사역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본사역을 통한 “이미지확보”는 바로 적극적인 친절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쇼그린(Sjogren)은 적극적인 친절을 위한 5가지 행동을 제시하고 있다.

  ⑴ 단순하게 행동하라(simple process)
사실 요즘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빼 놓고는 간편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먼저 단순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단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① 먼저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행동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말은 지식이 필요하고 생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행동은 그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자의 머리보다는 마음에 작용하게 된다.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②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거부감을 주는 접근방식이다.

친절은 좋으나 노골적인 의도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의도란 티를 내거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이 강하게 나타날수록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가지게 한다. 기본 사역은 의도와는 상관 없이 행하는 것이다.

의도보다는 먼저 그들로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험성은 낮고 은혜는 더 크게 만드는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이 두가지 접근은 단순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왜 아이들의 웃음이 우리들을 감동시키는가? 답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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