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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자료

[스크랩] 새벽기도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작성자섬김과 나눔|작성시간20.06.01|조회수431 목록 댓글 0

새벽기도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자료1>


외국에서도 새벽에 기도를 하는 종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럼 집단적으로 새벽에 기도를 하는 모임을 갖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일찍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기도를 했다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길선주목사가 처음으로 시도를 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새벽기도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1. 한국 새벽기도의 유래1906년 가을, ‘길선주’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이 새벽기도회는 1907년 평양에서 촉발된 한국기독교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길선주장로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당시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여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였고, 이에 많은 교인들이 호응하여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300-500명에 이르는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길장로는 새벽기도회의 규모가 커지자 당회에 정식허가를 얻어 공식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짐으로 많은 사람들이 통회자복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는 영국의 저명한 신문인 [더 타임즈(The Times)]에 기사화가 될 정도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2. 길선주목사(1869. 3. 15.-1936.11.26)‘조선기독교의 아버지’ 또는 ‘가장 위대한 한국개신교 인물 중에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는 평안북도 안주에서 길봉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일찍 학문을 시작하였고, 열 한 살이 되었을 때에 결혼하였다. 길선주는 한 때 병을 얻게 되어, 병도 고치고 도(道)도 닦을 겸, 한국 무교종파 중 하나인 관성교(關聖敎)에 심취하였으나 어떤 영적 만족도 얻을 수 없게 되자 21세부터 선도(仙道)수련에 몰두하였다.

길선주의 종교편력은 다양했지만, 영적인 갈증은 점차 더해져 갔다. 1893년 미국선교사 마펫(Samuel A. Moffett)이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길선주의 친구 김종섭이 마펫과 교분을 가지면서 길선주에게 여러 가지 기독교 교리서을 가져다 주었다. 학문적 탐구심이 강한 길선주는 그 책들을 탐독하면서 차차 기독교 진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를 기독교로 이끈 결정적인 책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었다.그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를 하는 중에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1897년(29세) 장대현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면, 그래함 리(Graham Lee)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1902년에 장로로 임명되었으며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07년 졸업하여 평양장대현교회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그가 주도한 새벽기도회는 이후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사실 그가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것은 그의 종교편력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전통무교에서 새벽에 수련시간을 갖던 것에 익숙하였던 그는 기독교로 귀의한 이후에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전과 명확히 구별되는 점은 이제 드리는 그의 기도는 정확히 예배를 받으실 분을 향한 것이었다.3. 복음서에 나타난 새벽기도흔히 새벽기도는 한국교회의 특징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이 전통은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를 구별되는 특징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제적인 새벽기도의 기원은 예수님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마가복음 1:35).-세계기독교역사상 유래없는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인중 하나가 '새벽기도'로 분석되자, 다른 나라교회에서도 새벽기도회를 여는 곳이 있으며, 현재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새벽기도는 더 이상 한국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출처 : 김인수, [한국기도교회사], 한국장로교출판사

<자료2>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기원 이야기

길선주 목사가 박치록 장로와 시작

근대 선교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는 길선주 목사의 7년간의 하나님 탐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 담임목사입니다. 그 교회는 극동에서 몇 가지 면에서 가장 놀라운 교회인데 그것은 한국의 대부흥운동의 가장 전율적인 장면이 목도된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 있는 길선주 목사의 놀라운 사진이 근래 평양 지역 개척 선교사 가운데 한명이자 대단한 열정과 정결한 사역자인 소안론 선교사의 펜으로 “Korea Mission Field”에 나타났습니다.

평양의 큰 장대현교회 담임 목사, 길선주는 일종의 냉랭함이 그 도시 교인들 가운데 임했음을 한동안 느끼고는 그의 동료 장로 중 한명과 함께 매일 새벽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겸손하고 신뢰할만한 신앙을 가진 이들 두 사람은 그래서 2개월 동안 매일 새벽 4시가 약간 지난 시간에 만나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사실 나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사실이 점차 소수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몇 십 명 혹은 그 보다 많을까 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이 기도회에 합류했습니다. 그러자 길선주 목사는 교회에 그와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주일 오전 예배 때 누구든지 그들과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고, 이를 위해 4시 30분에 종을 울리겠다고 교회 앞에 광고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1시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 새벽 2시까지 몇 백 명이 모였습니다. 종이 울리자 사오 백 명이 참석했습니다. 며칠 지나자 매일 새벽 6,7백 명이 참석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리던 네 번째 날에 전 회중이 갑자기 자신들의 무관심, 냉랭함, 사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결여에 대한 죄를 통회하면서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사죄의 기쁨과 하나님에 대한 사역의 길과 방식을 나타내는 강한 열정이 회중들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4일 새벽은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갈구하면서 보냈다. 이제 길선주 목사는 무언가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 종일을 나가 불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는지 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 후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틀을 그렇게 할 수 있겠는지 물었습니다. 다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3일을 요청하자 그 보다 적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4일, 5일, 그리고 6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점차 손을 든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지만 심지어 7일을 이 일에 헌신할 사람 손을 들라고 했는데 꽤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 전교회는 열정적으로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습니다.

1910, George T. B. Davis, KOREA FOR CHRIST

번역: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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