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일 [녹]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또는 [백] 놀라의 성 바울리노 주교 또는 [홍] 성 요한 피셔 주교와 성 토마스 모어 순교자
작성자대천사 미카엘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복음<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남을 심판하지 마라”. 이 명령은 산상 설교에서 “걱정하지 마라.”에 이어 나오는 말씀입니다.
걱정이 미래를 향한 불안이라면, 심판은 다른 이를 향한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심판을 가리키는 그리스 말 ‘크리노’는 법정의 판결보다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하여
성급히 결론 내리는 가벼운 태도를 가리킵니다.
야고보서는 이런 심판을 하느님의 자리를 침범하는 행위로 보고 꾸짖습니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을 것이다]”.
고대 유다 전승에도 “사람이 헤아린 그 잣대로 그 또한 헤아림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판의 저울이 인간의 손에 있는 듯 보이지만, 마지막으로 그 저울을 가늠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이를 심판하는 그 잣대는 사실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을 들추어냅니다.
심판의 시작은 나의 밖을 겨누지만, 그 끝은 결국 제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티와 들보의 비유는 남을 판단하는 우리의 옹졸함을 정확히 겨냥합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교정하는 자의 어설픈 폭력성을 향합니다.
훈계는 사랑의 행위일 수 있지만,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훈계는 다른 이에게 폭력이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라고 이르십니다.
다른 이의 흠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자기 안의 갈라진 틈은 어둠 속에 숨기는 것이 우리의 민낯이지요.
다른 이를 판단하고 심판할수록 우리의 어둠은 더욱 짙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안의 어둠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일깨우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형제에게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