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안신문에 실리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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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고원길, 잘 한 일 두 가지
벚꽃길 걷기와 클린 워킹
한 순간에 피었다 한꺼번에 지는 꽃
벚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우리의 삶과 무척 닮아있다. 인간이 젊음의 한 순간을 정점으로 늙어가듯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던 화려한 꽃 역시 조용하고 쓸쓸하게 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이 과정을 거꾸로 해석해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가장 화려하게 즐기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먼저 죽은 아내를 추억하기 위해 그녀의 옷을 입고 벚꽃을 구경한다. 온 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 그리고 떨어지는 꽃잎 아래에서 아내가 좋아하던 춤을 추는 남자. 그의 인생도 흩날리는 꽃잎처럼 곧 지겠지. 그래서 춤사위가 더 눈물 나게 시리고 아름답다.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꽃. 화판이 유난히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져,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또 금세 활짝 피어 화려하게 물드는가 싶다가 봄비가 내리면 잎만 푸르게 남는다.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느끼는 덧없음이랄까. 이렇듯 짧고 화려하기에 더욱 더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 것이 벚꽃철의 기억이다.
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
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이 화려해 일본에서는 매년 꽃놀이(‘하나미’)를 국민행사처럼 즐길 정도다. 1933년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는 ‘일본 왕벚나무의 기원은 한국’이라고 발표한 후 일본 국민들에게 심하게 매도된 일이 있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 하여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제주도가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라는 사실로 위안도 받으시고, 또 벚꽃철에 한 번쯤 마이산의 벚꽃길을 걸어 보시라.
마지막 벚꽃 터널, 마이산 탑영제를 즐기다
진안고원길이 벚꽃길 걷기 행사를 벌였다. 4월 19일, 50여명의 걷기여행자들이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모여 탑사까지의 길을 걸으며 올해 벚꽃철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비바람에 꽃이 꽤 많이 떨어졌으나 그래도 탑영제 부근은 여전히 숨막힐 듯 화려했다. 모처럼의 저녁 나들이에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부부도, 지난달에 결혼한 귀농인 부부도, 물에 비친 마이산과 벚꽃터널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날 걷기 코스의 종점인 탑사에서는 아마도 올 들어 처음일 밤 야외음악회가 열렸다. 3인조 그룹 「예술관 104호」의 공연과 엄영란씨의 노래로 꾸며졌다.
무대를 따로 설치하지도 않았고 작은 앰프와 키보드뿐인 초미니 음악회였지만 암마이봉 산괴의 절벽이 배경이 되어 만만찮은 울림을 전달하면서 작은 감동을 선사했다.
며칠 계속된 강한 황사 바람과 비로 다소 쌀쌀한 저녁 시간이어서 벚꽃길 걷기에 참여한 인원이 많지는 않았으나,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는 그런대로 샘물 같은 위안을 주는 데 충분했다는 평이다. 행사를 주관한 「진안고원길」 측은 “부족한 홍보와 주중의 행사임에도 많이 참여해 준 시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다만 잠시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의 특성 때문에 행사 날짜를 잡기가 몹시 어려웠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클린 워킹」 진행중
「진안고원길」은 올해 다시 클린 워킹을 시작했다. 클린 워킹이란 도보여행길을 걸으면서 길 주변을 청소하는 시민운동으로서 「한국걷는길연합」이 몇 년 전부터 주도하고 있는 전국적인 환경정화운동이다. 매주 토요일 단골 걷기꾼들과 함께 진안고원길의 모든 구간에서 쓰레기를 제거하고 있다. 또, 진안군 교육지원청과 함께 하는 군내 초·중학교 아이들의 고원길 걷기 행사도 올해는 클린 워킹 운동을 겸한 행사로 진행하여 아이들의 환경인식과 시민의식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5개 학교(중앙초, 진안여중, 주천중, 용담중, 마령초) 128명이 참가했고 장승초등학교와 진안초등학교는 학교의 별도 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 5월과 9월~10월에도 계속할 예정으로 있다. “클린 워킹을 시켜보면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쓰레기를 잘 줍는다”고 말하는 진안고원길 정병귀 사무국장. 이 아이들이 농약병과 담배꽁초와 소줏병을 치우고 있는 줄을 안다면 어른들이 좀 생각이 바뀌지 않겠는가. (최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