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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길 혼자 걸은 이야기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0.01.22|조회수191 목록 댓글 1


2020년 1월 21일. 



날씨가 매우 좋은 날이다. 하늘도 파랗고 햇살도 따스하고.

그냥 하루를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요즈음 <무진장고원길> 루트를 개척한다고 한 주일에 두 번씩 무주와 장수의 산야를 헤매고 다녔는데 이번 주는 그마저도 나갈 일이 없다. 정국장이 휴가를 내고 서울에 가 있기 때문.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오전을 보내다가 문득, 혼자 ‘13구간’을 걸을 생각을 했다.

험한 고개를 두 개나 넘는 난이도 ‘상’인 코스.

이 코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중에 혼자라도 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다! 그렇게 정하고 서둘러 나갔다.

평지길은 생략하고 ‘짧고 굵게’ 험한 고갯길 구간만 추려서 걸을 생각으로.


아랫열원이(동향면 하향) 마을회관 앞에 차를 두고 걷기 시작한 것이 정각 정오(正午).

혼자 걷는다 하여 마냥 느릿느릿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 6시에는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귀가 시간이 4시를 넘겨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표지점 후가막 마을회관까지 오후 3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이고서> 행사 때나 걷던 이 길, 혼자 걷는 느낌이 색다르다.

여럿이 걸으면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걷지만, 오늘은 이곳저곳 안 보이던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길을 잃지 않으려니 관찰력이 더 세밀해진다. 리본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니까.


아랫열원이 뒤를 돌아나가자마자 왼쪽으로 긴 들판을 내려다보며 산허리를 따라 걷게 된다. 

이 들판 이름이 ‘앞들’인 줄도 오늘 알았다. 윗열원이(상향)까지 이어지는 들.




상향·하향은 ‘윗열원·아랫열원’의 한자말이다.

‘향’은 행(杏, 살구나무 또는 은행나무)의 전라도 지방 발음을 관습으로 인정하여 취한 표기라고 한다(뱀→뱜, 샘→샴). 

'열'은 ‘열매·열음·열다’에서 '살구(은행)열매가 많이 열렸던 곳'이라는 뜻을 나타낸 것일까?


‘원’은 조선시대의 여관인 원(院)이 있었다는 것인데 정확한 위치를 옛 지도에서 확인하지 못하였다. 개인적으로 이 마을에 올 때마다 원이 있었을 법한 곳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해동지도에는 “구라원(仇羅院)이 현(용담현)의 동쪽에 있다”고 모호한 주기(註記)로만 실려 있고, 1872년 지방지도에는 원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고 마을이름 ‘행원(行院)’만 올라있을 뿐.


그런가 하면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에는 아랫열원리의 설명에,

아랫열원리(하행원) 【마을】성산리에서 으뜸가는 마을. 전에 원집(구라원)이 있었는데 그 아래쪽에 있음.


지명총람의 다른 표제어로 ‘원터거리’가 있는데,

원터거리【논】웃열원리와 아랫열원리 사이에 있는 논. 전에 이곳에 원집(구라원)이 있었음.


이라 실려 있기도 한 것을 보아 주민들의 전언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 동네에 원이 있을 이유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리적으로 꽉 막힌 벽지여서 아무리 보아도 다른 지역과의 소통왕래가 잦은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갈색의 가랑잎이 지천으로 쌓인 산길을 햇살을 안고 걸으려니 눈이 부시다. 

대한(大寒)을 막 지난 날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따뜻한 겨울.

며칠 전에 걸을 때 아직 조금 있던 눈도 모두 녹았다. 이대로 봄이 되고 마는 것일까.


마을 뒷산길에는 매트가 깔려 있으나 돼지가 죄다 뒤집어 놓아 울퉁불퉁하다. 

자칫하면 튀어나온 쇠못에 발이 걸리겠다.


천반산 허리를 감는 산길로 접어들면 고즈넉한 산책로다.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편안한 길. 




출발점에서 1.2킬로미터, 고갯마루 5거리를 만난다. 

천반산 등산로 두 줄기와 오른쪽 섬티(섬계)로 넘어가는 길과 열원리로 되 내려가는 길 그렇게 다섯 갈래 길이 한 점에서 만나는 곳. 진안고원길 안내도에는 ‘등산로5거리’로 실려 있고, 카카오맵에는 ‘섬티재’로 실려 있기도 한 지점.









점심도 먹지 않고 갑자기 나왔더니 배가 고팠다. 벤치에 앉아 가지고 온 떡과 커피로 잠깐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도 능선을 얼마 걷지 않아(1.3킬로미터) 또 하나의 갈림목을 만나는데 섬티로 내려가는 또 다른 산길과 나뉜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할 일이 남았다.





- 내가 걷는 법 -


‘잘 걷는 법’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마는 누가 가르쳐 준 것에 내가 터득한 것들을 뒤섞은 방법으로 나는 걷는다. 그렇게 걸으니 속도도 나고 근육단련에도 도움이 되었다.


우선 발바닥 전체로 땅을 밟고, 발을 떼기 직전까지는 발가락이 땅에 붙어 있도록 하는 것. 마치 발바닥이 바퀴처럼 ‘구르는’ 이미지를 가지고 말이다(젖은 잉크를 말리는 둥근 패드를 연상하면 비슷하려나?). 

상체나 다리가 먼저 앞으로 나가지 말고, 몸의 코어(core)인 허리부위가 먼저 나아가도록 걷는다. 

오르막에서는 올라선 다리의 대퇴4두근(앞쪽)만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므로 엉덩이 근육을 동원하여 한 번 더 밀어 올린다… 등등.


그러기 위해서는 허리부위의 근력을 평소에 단련해두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코어가 약하면 다리만 먼저 나가거나 상체를 앞으로 숙여 걷게 마련이다. 

또한 상체의 무게를 줄여 하체에 걸리는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내리막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릎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하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간 상체의 무게 때문이니 체중조절은 어느 경우에나 꼭 필요한 일이다.

발바닥보다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도록 콱 내리박아 앞발 위치를 정한 다음 뒷발을 땅에서 떼는 식으로 한 걸음씩 내려간다. 경사가 급할수록 이렇게 해야 안전하다. 간혹 가랑잎에 미끄러질 수는 있으나 체중이 발 앞쪽에 먼저 실리는 일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틱을 쓰는 것은 안심도를 높이는 데 유용하지만 지나치게 체중을 스틱에 걸면 상체가 몹시 긴장하고 다리를 거의 쓰지 않게 되는 부작용이 있어서 나는 스틱을 쓰지 않는다. 

앞으로 더 늙거나 하체가 약해지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길고 가파른 경사를 내려와 눈앞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만난다. 이 고개 먹재의 내리막길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선 첫 번째 고비를 넘긴 셈이다.


넓고 편한 임도는 빠른 속도로 걸어 통과한다. 가볍게 입고 나왔는데도 남쪽 사면으로 내려오니 더욱 따뜻해져서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지금 막 넘어온 먹재를 돌아보며 찍은.)


(천반산 성터?)


(노랑 : 당산. 역광이어서 잘 안 보이지만. 주황 : 이 무대는 무엇을 위한 것?)



장수군 경계를 넘어 들어왔다. 연평리.

대단히 큰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있는, 얼핏 보기에도 신령한 기운이 서린 이 당산 언덕은 오늘도 징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간절한 기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지금 차지하고 있는 무속인들이 아직까지는 비교적 관리를 잘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개인의 점유나 소유로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신앙의 장소다. 

주위를 개발하고 시멘트로 포장하고… 하는 일들도 도를 넘었다.

하긴, 이곳만이 아니라, 의암(衣巖) 부근의 금강변을 하얗게 시멘트로 둑 공사를 했고, 강바닥을 긁어 편평하게 해버린 것은 더욱 도를 넘었지만.




-큰고개 넘기-


이제 큰고개를 넘을 차례다. 두 번째 두려움의 대상.

의암 건너편의 정자에서 또 한 번 전투식량으로 허기를 면하면서, 시계를 보니 2시 반이다.

30분 만에 이 고개를 넘어 반대쪽 후가막에 닿아야 오늘의 목표에 맞추는 셈이다. 과연 그 시간에 가능할까?

도전하기로 했다. 해보자.

후다닥 일어섰다.



(틀린 글자 찾기. '뜸봉샘'은 '뜬봉샘'이 옳고, '진안 마실길'은 '진안고원길'이 옳습니다.)


(능선길을 흰 선으로 그어놓아 오히려 복잡하고 헷갈리는 안내도.)


(강바닥을 긁었지만 암반까지 다 긁어내지는 못했던 모양.)


(지금부터 넘어야 할 큰고개.)





큰고개 입구쪽 오르막은 울퉁불퉁 큰 돌이 널린 개울물을 따라 오르는 어둡고 불편한 길이다. 두어 번 물을 건너기도 하는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도 해야 한다.

하지만 개울이 가끔 폭포와 웅덩이를 이루어 작은 놀이터를 제공하기도 하는 시원한 계곡이기도 하다.



드디어 길고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눈앞에 두고, 한 번 큰 호흡을 한다.

지난 번 걸을 때 정국장이 그랬던가, “계단 개수를 세면서 걸으면 힘든 것을 다소 잊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럴 정신이 어디 있는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데 ‘백 삼십, 백 삼십일…’ 그런 숫자 셀 일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숨은 비기(秘技)를 쓰기로 했다.

허벅지 앞뒤 근육과 엉덩이 근육을 쓰는 것에 더하여 장딴지 근육까지 모두 동원한다.

뒤꿈치를 들면서 순간순간 장딴지의 탄력을 활용하는 것.

이로써 하체에 붙은 모든 근육을 다 쓰는 셈이 된다.

덕분에 걸음은 춤추듯 더욱 가벼워졌고 여전히 숨은 차지만 속도가 줄지는 않았다. 

심폐기능도 강해질 것으로 믿는다.


고갯마루가 빤히 보이는 지척의 마지막 구불 고비가 가장 힘들었다. 

통나무 계단은 분명 도움 되지만 보폭(步幅)을 걷는이의 자유에 맡겨주지 않는 단점이 있다.


정상에 올라서니 꿈만 같다. 혼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뿌듯함도 함께.



사실 도처에 돼지의 흔적이 역력한 산길을 혼자 걷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특히 천반산 옆구리의, 급한 내리막 비탈을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 좁은 길에서 두려움이 컸었다. ‘자칫 한 발 삐끗하여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가 늘 걱정이었던 것.


오늘 두 군데 모두 클리어 한 셈이다.

이 구간은 길 폭을 조금만 더 넓혀 주시지요, 진안고원길 노선관리팀 여러분.


오를 때만큼 급한 경사의 내리막을, 이번에는 거의 뛰다시피 내려 후가막마을 뒤편에 도착.

시계는 세시 삼분을 가리키고 있다. 계획보다 3분 지각.

의암~후가막 사이 큰고개를 33분에 넘은 것.

쉬는 시간 빼고 두 시간 반 걸려 총 11.3킬로미터를 걸은 셈이다. 이만하면 ‘미션 성공’으로 보고 칭찬해도 되겠다.



(후가막에서 뒤돌아보며 찍은 큰고개.)



내리막을 다 내려오기 전에 전부터 아는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마을회관으로 오라고 불러놓았는데, 택시보다 내가 먼저 회관에 도착했다.

김옥남씨는 한 해 겨울 나를 열심히 태워 날라 준 기사다. 손목 인대를 다쳐 수술 받고 운전을 하지 못하던 무렵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를 ‘교수님’이라 부르며 전화번호부에도 그렇게 저장해 두었단다. 교수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여전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이구, 교수님, 오랜만이십니다!”로 반가워하는 김옥남씨.

몇 해 못 보는 동안 큰 병으로 몸이 많이 축났다고 했다.

그의 ‘그랜저(진안에서 유일하단다)’ 택시로 아랫열원으로 되돌아갔다.



내 차로 옮겨 타고 귀가. 귀가 도착, 오후 4시.

땀에 젖은 옷을 다 벗어던지고 샤워를 뒤집어쓰는 이 기분, 무엇에 비할까. 

험로의 두려움도 함께 벗어던진 기분이 더욱 상쾌하다.


(오늘 걸은 코스. 연두색 굵은 화살표.)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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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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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강서 | 작성시간 20.05.24 잘 읽었습니다. 시간내서 걸어보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우 귀중한 시간 내어서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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