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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바이고서 둘쨋 날, 제12구간 걷기-오랜만에 쓰는 글.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1.10.03|조회수160 목록 댓글 4

첫쨋 날에 이어 둘쨋 날에도 80명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 

너무들 이러시면 우리가 괜히 up 되잖아요. 

거기다가 오늘은 군수까지 나와서 고유문을 읽고 인삿말까지 하고 가신다. 

길 건너편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또 무슨 시설을 하려는지 아스팔트를 깨는 착암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다음의 글은 제가 40년째 쓰고 있는 일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간혹 읽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 있을 내용도 있지만 그냥 그대로 올립니다. 

혜량하시기를.

 

2021년 10월 2일, 토요일. 맑음.

진안고원길 이어걷기 2일차.

안천 소운동장 앞 버스정류소가 출발장소다.

진안읍 만남쉼터에는 이미 몇 사람이 와 있는데 신영창 형님 부부가 오랜만에 나와 있고, 정국장의 차 뒷좌석에는 내가 처음 보는 여성이 하나 앉아 있다. 벌써 몇 사람은 김명순 대표의 차로 출발했다 한다.

전성인님도 지난 주에 이어 나왔다. 우리 진안고원길의 응원군이 되어 주고 있는 분이고, 지난 주부터 쓰레기수거에도 동참하고 있으니 소중한 분이다.

그런데 마침 카풀을 제공하겠다며 도착한 다른 차를 타게 되어 정국장의 차에는 그 여성과 나 그렇게 셋만 타고 간다.

이 여성은 봉동에 내려와 사는 사람인데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인텔리다.

숲과 자연과 환경을 중시하고, 외국인학교에서 오래 일했던 경력을 가진 등...

우리 도보길 운영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런 분들의 경험과 제언이 우리의 길을 살찌운다. 

처음에는 지난 주 금요일에 사무실로 전화했던 그 서울(경상도 억양의) 여성인가 했으나 다른 사람이었다.

 

출발지, 오늘도 대성황이다.

지난 주에 80명이 넘은 것은 노인복지관 직원들의 참여가 奏效한 것이라 오늘은 그렇지 않을 줄 알았으나 또 다른 사람들이 참가하여 75명이 되었다.

낯선 사람들이 많고 너무 인원이 많으니 친밀한 대화도 불가능하고 누가 누군지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기 힘들다.

그냥 묵묵히 걷기로 했다.

 

출발 직전에 군수가 고유문을 읽고 짧게 인사했다.

소운동장 뒤로 돌아 수몰길로 잠깐 접어들면 국도 아래를 지나는 통로암거가 있다. 대운동장 가를 걸어 노채마을로 향하는 농로를 걷는다.

작은 시내가 길게 이어지는데 이 골짜기는 암반 위를 흐르는 깨끗한 물 덕분에 반딧불이가 꽤 날아다니던 곳이다. 지금도 그러려나?

내가 이 마을 사정을 왜 이렇게 잘 알게요?
2007년 봄에 진안군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살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 노채마을이었음요.

 

홍골 가는 길을 버리고 마을입구를 지나 마을회관 광장에 도착.

여기서 잠깐 휴식.

아침부터 꽤 덥다.

2006년부터 이 마을에는 여러가지 행정지원사업이 많이 들어와 각종 체험시설이 들어섰는데, 내가 바로 그 시설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머슴일'을 하던 사무장으로 있었다. 별로 자랑할 실적은 없고요...

 

마을 가운데를 관통하다가 갈티골 방향을 버리고 오르막 긴 시멘트 포장 도로를 오른다.

이 구간이 이번에 처음 개통된, 지난 겨울에 정인호팀장 등이 개설하느라 애먹었다는 구간이다. 상로마을까지 연결된단다.

 

힘들었다. 오르막 비탈길은 너무나 길었고 아주 가파르지는 않았으나 끝없이 올라가는 시간이 길어 피로가 자심하다.

옥상재님의 절벽 위 성채에 도달할 때까지.

 

그의 집 어귀에 이르러서야 처음 쉰다. 그가 약속했다는 떡 한 말을 내놓아 나눠 먹다.

누가 내는 것이냐고 내가 물어서야 비로소 정국장이 “아참!” 그러면서 소개한다.

옥상재님은 10만평 임야를 경매로 사서 들어와 있다고 한다.

 

여기부터는 흙바닥 풀바닥 산길이다. 경사도가 꽤 있고 옛날에 실제로 다니던 고갯길이라 한다. 이름하여 ‘긴재’.

숲이 우거져 그늘도 시원했고 발아래가 푹신하여 다소 걸을 만했다.

가파른 곳에는 나무각목으로 간이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겨울에 이런 일을 하느라 정인호팀이 애를 먹었구나. 

 

오늘은 하지 않으려다가 그래도 가지고 온 쓰레기봉투를 꺼내 들고 걸었다.

노채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 주워담기 시작했는데, 

전성인님과 김진은님이 또 동참했다.

쓰레기봉지를 달라 하여 한 장씩 나눠주었다.

산길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으나 차가 다니는 임도를 만나자 다시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온다.

수거하기 가장 힘든 물건이 비닐봉투류다. 흙과 범벅이 되고 물까지 묻어있으면 최악.

또 하나 눈에 띄는 큰 문제가 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음료컵이다. 이 시골에서도 그렇게 팔아야 하는가? 그런 형태로 음료를 파는 가게가 그렇게 흔한가? 다 마시지도 않고 남아 있는 채로 버리는 행위도 참 싫다.

 

긴재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다.

여러 사람이 경쟁적으로 + 배타적으로 말뚝을 안고 찍으려 하기 때문에 대체로 접근하기 쉽지만은 않다. 지난 주부터 이미 그랬다.

그 경쟁을 나도 똑같이 하기는 싫어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찍는다. 

이번에는 뭐라고 설명을 붙일까? "잘 안 봐도 보입니다" 그렇게 쓸까?

 

 

정상에서 반대쪽 내리막을 내려갈 때 이경아님과 함께 온 젊은 여성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내 바로 앞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가 내가 무심히 혼잣말처럼 뱉은 말을 듣더니 뒤돌아보며 “목소리가 너무 듣기 좋으세요.”

지난 주에도 끝낼 무렵 안천 수몰길 바로 앞에서 수녀님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하면서 놀리더니 또 그런 말을 듣게 된다.

고맙다고 대꾸하자 그 말에 이어 바로 “별자리 해설 하신다면서요?”

어떻게 알았을까. 정국장이 말해 주더란다.

이경아님도 한 사람 건너 앞서 가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이 여성도 별을 보러 망원경 껴안고 서울서 내려왔다고.

동향 자기 집에 어제 하루 자면서 함께 별하늘 바라보고 놀다가, 오늘 걷기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같은 취미의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화제가 풍부해진다.

서로의 망원경 스펙을 비교하면서 배율이나 성능 따위를 물어보는 등 정보 교환.

여성의 망원경은 12인치 구경의 반사망원경이라 한다. 그래도 목성의 줄무늬 서너 개밖에 안 보이며 토성의 고리 정도는 분별할 수 있을 정도라 한다. 값은 2백만원 내외.

목성의 줄무늬와 위성들을 제대로 보려면 역시 5백만원은 있어야겠군.

 

이렇게 reference 하나를 얻은 셈이다. 내가 혼자 모든 스펙의 망원경을 다 직접 들여다보며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이런 정보교환은 매우 유용하다.

 

가파른 내리막을 지그재그로 내려가며 발아래를 조심하기는커녕 별이야기 망원경이야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상로마을에 이르자 장상원 신부가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내게 인사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과만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알은 체도 않더라는 것이다. 내가 그랬나?

 

 

노인복지관 직원들에게 '기체조'를 지도해 드리겠다고 제안한 지 며칠 된다.

결론이 어찌 되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회관 마당에 앉아 커피 마시고 도너츠 또 하나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출발.

 

이번에는 갈티재?인지 가래재인지 하는 임도를 겸한 폭이 널찍한 고갯길이다.

주워담을 쓰레기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홱 내버린 음료수 캔, 물병, 플라스틱 커피잔...

뭘 봤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땅바닥만 보며 걸었다.

 

가래재 정상에 이르자 이금련님이 다가오면서 “오라버니, 여기도 수거해야 할 것 있어요”란다.

드디어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구나.

 

'쓰레기 주워담으며 걷기'는 말이 너무 길어 힘드니 '쓰담걷기'로 줄여 부르고 있음을 이 기회에 알립니다. 

또 하나, 내가 '이 짓'을 하는 이유는...

지난 주 걷기 전 일주일 동안 허리를 조금 삐끗해서 불편해 하고 있었는데  '쓰담걷기'를 하고 나서 씻은 듯 나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집게를 쓰지 않고 쪼그려 앉아 주워서 일어서기,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기 등등의 운동을 하루에 2백회 쯤 하고 났더니 그런 효과가 있더군요. 앞으로도 내 무릎 건강 허리 건강을 위하야 계속 할 생각입니다. 

강요하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함께 해주신 장상원 신부님 전성인님 김진은님 최은영님 이금련님, 감사합니다.

또 풀숲에 숨은 물병을 꺼낼 수 있도록 스틱을 빌려주신 님(이름 못 물어봤네요)께도 감사드립니다. 

 

 

오전에 재 두 개를 넘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고 배도 고프고 힘들다.

도중에 주저앉아 빵을 먹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떡도 두 개나 다 먹었다.

그렇게 활동에너지를 보급해두지 않으면 근육이 또 경련(쥐)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임도 정상(가래재)은 산림작업이 진행 중인지 일꾼들이 먹고 버린 캔 따위가 많이 쌓여 있다.

이곳이 인증지점인지 여부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미리 카페에서 보고 확인했어야 하는데 평소에 꽤 세심하다는 나마저도 확인할 일을 잊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찍어두자고 최은영님과 함께 찍었다.

 

 

이신숙님의 집이 가까워 오는 급한 내리막길 어디쯤에서 일행이 쉬고 있었다.

갈림목에 선 길안내말뚝. 여기도 예외없이 쓰레기를 잔뜩 버렸다. 아마도 나뉘는 길이 누군가의 산소로 들어가는 길일텐데 성묘객들이 버린 것으로 보였다. 말뚝이나 벤치나 그런 시설이 있기만 하면 거기다 버리는 이 습성은 또 뭘까?

 

이신숙님의 집은 여전히 잔디가 완벽히 가꾸어져 있었다.

마침 신발 속에 들어간 돌도 꺼내야 했고, 맨발로 잔디를 좀 밟아 보고도 싶어 신발을 벗었다.

폭신하고 안온한 이 느낌. 잔디를 얼마나 잘 깎았는지 골프장 퍼팅 그린 같다. 

 

오늘 처음 혼자 왔다는 정수산나님(이름은 나중에야 알았지만)을 점심식사에 초대한다고 했더니, 낯선 남자를 따라 함께 앉기가 민망했던지 여성들 앉은 곳을 찾아가 앉는다.

마침 그 여성 그룹이 이금련님과 함께 온 진안 '아줌마'들이어서 나도 스스럼없이 함께 앉았다. 그래도 시래기국은 내가 한 그릇 퍼다 주었다. 이만하면 처음 참가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잘 차린 셈이지요?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어 그가 우리 진안고원길을 소개해줘서 오늘 처음 와봤는데, 정작 그 친구는 오늘 안 나와서 그만 뻘쭘해져 버렸다고.

혼자만 서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자 그렇게 대답했었다.

나도 “그러면 내가 친구 해 드릴게요”라 했다. 

그 친구가 누군가 하면... 김수정님. 

깜짝 놀랐다. 

 

나중에 보니 김수정님 부인 전규리님('전부인')과도 서로 아는 사이였던 듯, 밝게 담소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한 사람이라도 혼자 와서 또는 처음 와서 서먹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나는 싫기 때문이다.

 

 

이경아님과 그 일행 젊은 여성은 식사 마당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망원경 이야기 좀 더 해보고 싶었는데.

길을 잃었나 싶어서 인호에게 '전화 좀 해보고 찾아오는 것이 어떠냐'고 오지랖걱정을 떨었더니, 옆에서 이금련님이 듣고 "아까 셋이서 점심 안 먹고 그냥 내려가 버렸다"고 알려준다.

동향 자기 집에 돌아가서 점심을 먹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고, 서울서 온 여성은 얼른 돌아가게 해줘야 할테니 그렇게 일정을 단축했을 수도 있겠다.

 

양정수님 장기윤님 강춘상님 등이 오랜만에 나와 반가워한다.

그만큼 점심 전에는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어 만날 틈이 없었다.

더구나 나는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남들보다 진행속도가 더 느렸으니.

 

점심 후에 '고원길 대형'으로 둘러서서 잠깐 자기소개들을 나누다.

 

이제 시멘트 포장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또 내려간다.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서 지겹기 그지없다.

능길 건너편 천변을 따라 계속되는 그늘 없는 길. 덥고 피곤하고... 오늘 이 구간이 워낙 길기도 했다.

터벅터벅... 무릎도 많이 아프다.

 

능길원.

막걸리에 섞는 블루베리청을 몇 년 동안이나 제공해주고 있는 분의 농장이라며 고갯마루에서도 소개하더니 집앞에 이르자 일부러 일행을 멈춰 쉬게 해놓고는 마이크를 정모화님에게 넘겨 인사말을 하게 하는 정국장. 

 

그늘진 옛 49번지방도 천변길에 들어서자 매우 시원하여 다소 안도한다.

또 한 번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외금마을 입구에서 잠시 쉬면서 몇 사람에게 스트레칭을 권하였으나, 한 여성만이 따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별 호응이 없다. 

동작을 예쁘게 완벽하게 잘 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피로 회복에 좋은 자세를 잠깐 취하면 되는 건데...

 

외금을 관통, 말고개 정상 ‘창녕 성씨 양세효자비’와 그 무덤 앞에 이르르다.

'양세(兩世)'가 무슨 말이냐고 주천 사는 이영일님이 물어 아는대로 답해 주었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라는 뜻이라고.

묘소와  비석과 소나무 숲 일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낯설게 보였다.

말고개 솔숲길은 사유지이지만 늘 다니던 길이었는데 길 넓히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한다.

이제 이 짧은 숲길도 ‘옛날의 금잔디 동산’이 되어 버리나.

 

너무 더운 날씨, 포장구간이 긴 오늘의 여정.

 

용담향교 앞을 지나 동향면 공설운동장에 이르자 일행이 모두 나가떨어져서 더 걷기를 싫어한다.

윗양지마을 뒤를 돌아내려오는 산길로 도정(道程)은 이어지지만 그냥 아스팔트 도로로 질러 짧게 걷고 끝내기로 했다.

 

운동장 무대에서 비로소 정수산나님과 제대로 통성명을 하고 다음 주에도 오시라고 해주었다. 

 

이렇게 먼 길을 걷고 나서 피곤하지도 않은지, 몇몇 사람은 또 어느 집으로 모여서 '한 잔 더' 한단다.

나더러도 함께 가자고 꾀는데

아이구, 저는 됐습니다. 

 

안천 CU에서 아이스크림 한 개씩 사먹고 일정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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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사니조아 | 작성시간 21.10.04 저는 오래전에 20만원 주고 산 반사망원경이 있는데 달은 잘 보이지만 별은 눈으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요...ㅋ
    언젠가는 수백만원 정도 되는 망원경을 사고 싶어요...ㅋ
  • 작성자강올레 | 작성시간 21.10.04 참석은 못하고있지만 활동사항은 잘읽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최태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05 안녕하시지요?
    올해는 안타깝게도 제주 여행 못 갑니다...
  • 작성자화원반도(장우창) | 작성시간 21.10.05 함께 걸었던 바이고서 길도 이젠 추억이 되는 구요. 추억을 담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함께했던 모든 분들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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