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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고원길

무주 구간 탐사, 다섯 번째 (2/2)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19.12.13|조회수76 목록 댓글 0


(1/2에서 계속)


검령과 덕유산 골프 코스


이윽고 나타난 커다란 나무와, 그 나무를 둘러싸고 쌓인 돌더미.

서낭이다!

바로 이곳이 검령(劍嶺), ‘껌녕재’.


(화살표 : 돌무더기.)


부근은 넓게 닦여 있어 잿길을 올라온 여행자들이 숨 돌리며 앉아 쉬던 곳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주 훌륭한 곳이다.


2백 미터쯤 북쪽(설천면 방향)으로 솔숲길을 더 가니 무주리조트 골프장이었다. 

철선(전기선?)으로 출입을 막아 놓았다. 

타넘고 들어간 곳은 골프 코스의 12번 홀 옆을 지나는 카트 통로였다.

이 훌륭한 공로(公路)를 이렇게 막아버리는 일도 있구나. 

사기업의 욕심이 이런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구나… 기가 막혔다. 

덕유산 국립공원 구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가. 

이 껌녕재 고개 북쪽 경로를 무주리조트가 점거하고 막은 탓에 탐사팀이 설천봉까지 올라가 죽음의 능선을 겨우 기어 내려 만선봉을 거쳐 검령에 이르렀다. 

다시 한 번 기가 막혔다. 몇 시간 동안의 고생이 정말 헛고생이었던 것.


몇 년 전 작은 신문을 발행하고 있던 시절, 진안의 한 골프장 사업자가 ‘오토캠핑’ 사이트를 만들려고 동네 진입로를 막은 사건을 취재하여 지상(紙上) 고발한 일이 생각났다.

농촌지역의 주민들은 이런 폭거에 저항할 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 동안 무념히 골프장을 바라보다가, 어느 홀에도 깃발이 꽂혀 있지 않고 단 한 사람의 골퍼도 보이지 않는 사실을 깨닫는다.

휴장 중이었던 것이다!


무주리조트가 최근에 전체적으로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다. 

고작 관광용 곤돌라가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 여파일까? 골퍼가 찾지 않는 골프 코스.


앞으로 무진장고원길 구간이 이곳을 경유하게 하려면 골프장 측과의 깊은 협의가 필요하겠다. 우리 시민단체의 역할이 바로 이런 국면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 철선을 벗기고 넘어 들어갔지요.)




검령~안성


껌녕재에서 남서쪽 안성을 향해 내려간다.


첫 몇 굽이는 꽤 가파른 경사를 지그재그로 내려가게 되어 있으나, 오래도록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이 묻혔다. 

급한 경사는 바로 뛰어 내려 버리기도 하면서 잠깐 더 내려가자 이제부터는 편안하고 넓은 산길이다. 

그뿐인가, 울창한 솔숲과 함께 왼쪽으로는 꽤 깊은 계곡물이 따라 흐르는 아주 쾌적하고 좋은 길이다.

고생 끝에 행복이라더니, 힘들어서 쩔쩔 매던 아까까지의 시간이 꿈만 같다.


("길이 아주 잘 남아 있어요.")


(이 큰 나무는 이정표로 심었던 듯. "곧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힘 내시라")




(돌틈에서 자라나와 거목이 된...)


이 길은 꼭 살려야겠다.

남서쪽 길은 몇 군데만 손질하면 훌륭하게 잘 남아 있는 길이고, 설천-안성 간 통로로는 가장 짧고 낮고 쉬운 좋은 고갯길이 될 수 있다. 설천 쪽에서 진입할 방법을 뚫어낼 일이 남았다.


얼마 전(11월 27일, 두 번째 탐사)에 넘었던 지맷재(치마자)는 너무 긴 데다 묻혀버린 구간이 많아 손 봐야 할 곳이 많다. 무진장고원길 경로로 쓰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첫 탐사(11월 20일) 때의 두문동~상조 간 '민재'도 사라진 구간이 많고, 지나치게 길고 가파르다.




술멕이곳.


껌녕재에서 1킬로미터 가량을 내려오니 한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데, 

계곡 물가로 이어지는 길도 있는 등, 한 눈에 보아도 고개 아랫동네 사람들이 모여 놀던 곳이다.

경치가 빼어났다. 

한 여름, 농사일이 한 고비 넘어갈 무렵에 마을사람들이 이 물가에서 닭 잡고 천렵하여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즐겼을 것이다. 이른바 유두 또는 백중(百中)의 술멕이.




(노랑색 : 노는 공간, 연두색 : 꽤 넓고 깊은 물웅덩이.)


이런 장소와 소프트웨어도 살려내자.

‘걷는길 활동’에는 바로 이런 것도 포함된다. 

옛 농촌의 정서를 복원하는 일, 이른바 문화기행.




산길이 끝나는 곳에 갑자기 넓은 길이 나타난다. 사방댐 공사를 위해 넓힌 길인 듯.

덕산 저수지가 바로 눈앞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걸어 내려가며 뒤돌아보니 흰 머리를 인 덕유의 긴 등성이가 높다랗게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만세령?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지명.


한 암벽에 ‘萬歲嶺(만세령)’이라 새긴 석실제명(石室題銘)이 나타난다. 그 아래에는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도 있다. 이 동네 유지들은 이 재를 만세령이라 부르고 싶었는지? 

제명을 쓴 글씨가 썩 달필로 보이지는 않았고 오래된 것 같지도 않았다. 고작 수십 년?  만세령이라는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좌에서 우로 쓴 글자의 배열로 보아도 오래된 각자는 아니다.)



지명을 적음(記)에 있어 식자층만이 이해하는 한자어 이름을 쓰는 것은 이래서 문제가 많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지명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 ‘검령’도 마찬가지다. 속인(俗人)이 껌녕재라 부르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칼 劍’을 쓴 듯한데, ‘칼날처럼 험한 재’는 아니었던 것.


‘미시시피, 마사추세츠, 와이오우밍, 알라스카, 아팔라챠’ 등,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예로부터 부르던 지명을 그대로 알파벳으로 옮겨 쓴 개척시대 미국인들의 자세는 그래서 본받을 만하다.




마무리


덕산제 아래에 도착. 

고도 6백 미터. 껌녕재 정상(거의 1천 미터)에서 4백 미터를 내려온 것이다.

리조트 입구의 고도가 이미 740미터를 넘어 있었으니 설천→안성 방향으로 걷는다면 조금 올라오고 많이 내려오는 것이 검령재 고갯길이다. 

또, 리조트(리프트 매표소 기준) 쪽에서 골프 코스를 질러 걸었다면 총거리는 약 8킬로미터, 시간으로는 2~3시간의 구간이었을 것이다.

오늘의 탐사팀은 12킬로미터를 움직였고 총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금까지 장수·무주 합하여 열 차례 가진 탐사활동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로써 무주의 무풍·설천 등 동북쪽에서 남서쪽 안성을 거쳐 장수 계북면으로 남하할 수 있는 무진장고원길의 중요한 한 구간을 확인하게 되었다.


저수지 둑 아래에 ‘수락마을 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화살표 표지판이 서 있다. 

엊그제 장수 대곡리 성곡마을에서 만났던 ‘배뱅이댁’이 “껌녕재를 넘으면 수랙이로 떨어진다”고 하던 그 말이 증명된 것이다.


아침에 장기윤 선생과 만났던 곳, ‘삼향삼색…센터’는 예상대로(?) 문이 닫혀 있고 어떤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 역력하다. 

농촌을 대상으로 하는 끝없는 ‘예산 투기(投棄)’의 현장이다.


장 선생의 차로 설천으로 되돌아갔다. 

진안팀의 차가 무주 리조트 안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늦은 점심을 함께 먹자는 제안을 점잖게 사양한다. 

오후 네 시가 넘은 어정쩡한 시간에 점심을 먹으면 저녁 먹을 시간이 또 어정쩡해진다는 것. 

장 선생은 항상 자신의 점심으로 주먹밥이나 호떡을 싸서 다니는 등, 산을 더럽히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는 산악애호가일 뿐 아니라 이런 장면에서도 절제와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그 반듯한 자세에 새삼 경의를 느낀다.


서로의 차로 나누어 타고 돌아가면서 오늘의 일정을 마감.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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