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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고원길

무주 구간 탐사, 여덟 번째 (설천면 나제통문 ~ 무풍면 철목리)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0.02.08|조회수285 목록 댓글 0

무주구간 탐사여덟 번째.

 

2020년 2월 5수요일맑고 추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진안 3명과 장수 1명이 탐사에 나선다

지난밤에 눈이 살짝 내렸으나 습기가 거의 없는 눈이 바람에 거의 쓸려나가서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하지만 꽤 쌀쌀하여 손이 시릴 정도다.


오늘 탐사의 목적은설천면 소재지에서 무풍면 철목리로 어떻게 넘어갈지를 선택하려는 것이다.


이 구간의 루트는 세 갈래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루트는 가장 북쪽에 해당하는 석기봉 아래 미대천을 따라 대불리를 통과동쪽으로 올라가다가 삿갓봉 고개를 넘어 남하하여 무풍소재지에 도착하는 방법.

두 번째는 나제통문 뒤(신라)쪽을 취하여 남대천을 따라 장덕리 일성콘도 앞을 지나는 방법.

세 번째는 아예 천변을 버리고 남쪽 두길리로 해서 방재~벌한계곡~벌한마을을 지나 사선암을 넘어 철목리로 가는 방법.

 

세 번째 루트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하천변을 너무 오래 따라왔으므로 이제는 적당한 자극과 도전도 필요한 지점(시점)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편첫 번째와 두 번째 루트는 포장된 도로(둑길을 택한다 해도)를 걸어야 하는 구간이어서 굳이 탐사를 할 필요가 없으므로 오늘은 세 번째 루트를 직접 걸어보기로 하였다.

 

 

나제통문에서 시작.


이 짧은 터널이 백제와 신라의 경계는 아니었으나 신라 땅으로 가려면 이곳을 지나야했다는 것만은 진실이었으므로 안내문에도 그렇게 씌어 있다.



설화와 필자의 억측에 의하면 '거창에서 떠내려 오다가 이곳 소천리에 멈추어 선' 외따로 선 산 외뫼가 이 석모산이다석모산(石帽山)의 이름도 돌모자산보다는 홀로 선 산이라는 외뫼가 더 합당하고 멋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고구마처럼 길쭉한 석모산의 북쪽 끝에서 남대천과 원당천이 합류하고남쪽 끝의 가장 낮고 잘록한 곳을 뚫어낸 통로가 바로 나제통문.

설천면 소재지 북쪽 천변을 지나 나제통문 뒤(신라)쪽으로 연결되는 둑길을 잠깐 걷고 밭 뒤를 잠깐 걸어 통문을 빠져나온다.


워낙 돌로 된 산과 암반 위를 흐르는 물이 어우러져 빚는 멋진 경치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곳이다이 지점은 화장실도 있는 만큼 반드시 들러 사진도 찍고 잠깐 쉬는 곳으로 무조건 채택.

 

이제 원당천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는 둑길을 걷는다둑길을 최근에 손보았는지 평평하게 다져져 있는데 옆에 세운 보호철책은 다소 쓸데없어 보인다.


(눈 위에 찍힌 새 발자국.)




두길리 하두마을 ~ 방재


하두마을 입구에 도착

쌀알을 디자인한 마을 상징물을 다리 끝에 세워둔 것이 다소 뜬금없다

이 두길리는 원래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동네라 그렇게 불리던 것을 한자화 과정에서 말 두()를 쓰면서 쌀과 관련 있는 척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이 산골 마을에서 웬 쌀?




다리를 건너 하두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구천동 옛길이라는 안내말뚝이 있다

그 화살표를 따라 마을 안으로 비탈길을 올라서면 또 다시 같은 말뚝

작은 마을회관에 들러 철목으로 넘어가는 옛길을 물어보는 정병귀 국장.

할머니들 말로는 그 화살표 따라 느슨한 고개(방재)를 넘으면 방재(마을)가 나오고그 앞이 벌한천을 따라 오르는 벌한계곡이며벌한마을까지 올라가서 다시 사선암을 넘어가면 된다고 하더란다.

 




과연 방재 고갯길은 편안히 걸을 만한 느슨한 고개였다

햇살을 안고 걷는 꽤 긴 오르막인데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어떤 이가 우리보다 앞서 올라갔다가 내려왔는지 반대방향으로 난 발자국이 눈 위에 찍혀 있다눈길에 덧신는 아이젠 자국도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었던 듯이 발자국이 고개를 넘을 때까지 계속 있다면 저절로 길 안내 역할을 하는 셈이 될 터인데.

1.5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시멘트 포장은 끊기고 흙길이다.

바로 그 지점에 묘가 있다발자국도 여기서 끊긴 것을 보면 그들은 바로 이 묘를 보러 왔다가 돌아내려간 것인지?



묘지에서 3백미터만 더 올라가면 고갯마루다이제는 역시 느슨한 정남향 내리막을 내려간다.





 햇살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흙길이 매우 반갑다.




 정상에서 6백 미터 내려간 곳에 어떤 이의 묘역이 또 나타나는데 그 묘를 지키는 소나무가 멋진 안내목이 되고 있다이미 방재마을의 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하두마을 뒤를 출발하여 오르막 내리막 합하여 2.5킬로미터를 걸어 벌한계곡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계곡길 옆으로 집이 7~8채 있는 곳이 방재마을.

방재 고갯마루까지 함께 걷다가 되내려가 차를 가지고 이곳에 와서 기다리던 정인호 팀장과 만났다.

방재는 향기로울 을 써서 芳峙라 쓴다지만 그것은 나중에 갖다 붙인 글자일 테고 원래는 무슨 뜻으로 그렇게 불렀을까.


(방재마을의 민가들.)


(주황색 : 방금 내려온 방재 고갯길. 연두색 : 벌한계곡길.)

 

벌한계곡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내려가면 두길리 구산마을하두보다 더 남쪽에 해당하고 원당천의 상류에 해당하여 상두로도 불리며 벌한천과 합류하는 곳백운산과 거칠봉 사이 계곡에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마을 구경은 좀 미루고 우선 점심을 먹어야 하여 구천동로를 따라 나가서 설천면 소재지로 향한다.

설천 삼도봉장터의 <설천맛집>은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는 찜닭의 맛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구산마을~벌한계곡~벌한마을


 

오후.

이번에는 구산마을 뒤를 통해 벌한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고난의 행군이 될 것이다

계곡 위 끝 간 데까지 가야 만난다는 벌한마을은 그 이름부터 벌써 오지마을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여행작가 최상석(눌산선생의 글로 이미 충분히 예비지식을 가지고 있는 터라 사선암에 대한 동경까지 불러일으킨다.


구산은 거북 구()자를 쓰는데 두 물이 합해지는 어귀에 거북 머리처럼 툭 튀어나온 곶[]을 터전으로 이룬 마을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듯아니면 원당천을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설천 33경의 하나라는 은구암(隱龜巖)이 있어 그렇게 불렀을까은구암 안내판도 있지만 공사 중인 곳을 통과하지 못하여 가보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구산마을 뒤에서 벌한마을까지 남동쪽으로 생긴 계곡을 따라 오르는 3킬로미터 남짓의 숲길은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거칠봉의 동쪽 사면 계곡을 따라 낸 길이 바로 그 환상의 길

도로를 개설하면서 산괴(山塊)를 폭파할 때 깨져 나온 바위들이겠지만그것마저 자연스럽게 골짜기 여기저기에 흩어지고 쌓여있는데 그 잘라진 자리가 도끼질로 쪼개어 낸 듯 각이 져있어 신비롭기만 하다


 


계곡 건너편으로 새로 낸 도로는 햇볕을 받아 환하다아까 오전에 방재를 넘어 도달했던 방재마을도 바라다 보인다.



탄성을 지르면서 오르는 길이 끝나고 계곡 건너편 길과 합쳐지는 어귀는 매우 경치가 좋고 시원한 그늘밭이다이곳도 걷는 여행자들이 신발 벗고 잠시 쉬는 데 안성맞춤이겠다. 까악꺄악 소리 지르면서 물속에서 텀벙거리며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즐겁다.

여기까지는 크게 가파르지도 않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만취대' 각자. 옆에는 '배정?'라는 사람 이름도...)




 

한 가지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벌한계곡 오른쪽(남동쪽산이 매우 높고(1천 미터가 넘는다가파른 거칠봉인데, ‘덕유산국립공원 경계 안에 있다는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어서 혹시 입산금지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옛길과 새길이 만나는 지점의 다리를 건너 이제 벌한마을을 향하는 외길로 올라섰다.




벌한마을~사선암~철목리


이 마을참 신기하다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정말 하늘과 산뿐인 마을이다언제 누가 이런 외로운 곳까지 찾아들어와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걸까.


여기에도 국가예산을 투입한 마을사업이 있었는지 만취대(晩翠臺)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도 보이고소나무 몇 그루가 아름다운 동구에 마을 이름과 유래를 새긴 비석도 매우 크다

거칠봉을 설명하는 문구에 일곱 명의 신선이 살았다고 하지만 이 역시 높고 거친(험한이라는 원래 이름을 그렇게 한자화·미화한 말일 것이다.

마을을 일으켰다는 배씨 문중의 사당 같은 건물도 있다.

 


회관 앞에서 잠시 앉아 쉬는데 마침 부녀회장이 또 한 사람의 주민과 함께 나타나더니

이렇게 좋은 마을에 신고도 없이 함부로 들어왔느냐고 농담을 건넨다

오지마을 사람치고는 확 열린 성격을 가진 캐릭터다역시 귀촌한 도시출신이란다.


열네 가구만 산다는 마을인데참 부럽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열네 가구만이 독점하며 살고 있다니.

철목으로 가는 고갯길을 물으니 길이 잘 나있고 잘 유지되고 있단다

사선암의 우람한 바위 덩이들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도 하는 마을 터

오후의 햇볕을 받아 밝은 갈색으로 환히 빛나고 있는 전설의 바위’ 사선암

저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지 물으니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는 대답이다

한 시간 정도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본인도 올라가 본 적 있다며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지만 누구든지 오를 수 있는 바위라고 도전의식을 부추기는 부녀회장.


마을 뒤쪽으로는 계속하여 벌한천 물이 흘러내려 오고 있고, 어느 집 앞을 흐르는 물은 커다란 바위에 잠깐 갇혔다가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드디어 산 넘어 철목리로 향하는 길에 접어든다.

정인호군이 즉석에서 이름 붙인 부처님 엄지 발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좁은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솔잎이 가득가득 쌓인 산길이 시작된다.

 

그런데… 가파르다!

짧은 지그재그로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언제 끝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터프함이다도중에 잠시 뒤를 돌아 내려다보니 출발한 곳에서 얼마 올라오지 않았음을 금방 알 수 있는데숨은 이미 찰대로 차올라 있다허허… 부녀회장님 말에 너무 쉽게 생각했나?

하지만 이제 되돌아 갈 수는 없고 그냥 직진.


서너 번 쉰 끝에 정상 능선에 도달한 것은 30분이 지나서였다거리로는 8백여 미터에 불과한데 고도차는 무려 2백 미터가 넘는다


(고개 정상이 보이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사진을 찍을 엄두도 못 내었다.)


(능선에서 책상처럼 튀어나온 바위에 앉아 아슬아슬 찍은 북쪽 전경. 민주지산과 무풍면 소재지.)





능선도 칼날을 세워놓은 듯한 좁은 길이었다자칫하면 어느 쪽으로든 굴러 떨어질 것 같은솔잎과 바위들로 거칠게 이루어진 능선이다

지구의 생명활동은 태고의 언제쯤에 이곳을 이렇게 융기시켜 바위들을 들추어내 놓았을까.


능선을 타고 5백 미터쯤 남쪽으로 가면 드디어 우람한 직육면체의 바위 덩어리들이 눈앞에 우뚝 서서 기다린다

사선암(四仙巖)이다

높이가 10미터는 거뜬히 될 것 같은도끼로 찍어낸 듯한 주상절리(柱狀絶離)의 지질현상.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 앞에서 인간은 그만 신선들의 세계에서 이룬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해왔다이곳도 당연히 네 명의 신선이 바둑 두며 놀았을 거라는 상상으로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기둥 같은 바위 위의 편편한 면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는데 밧줄을 잡고 올라가 보지는 못하였다엷은 눈이 쌓여 있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지질명소로 등재할 만하다며 지질공원해설사 정병귀 국장이 흥분한다.



(그럴 듯한 석실제명은 하나도 없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 이름만 빼곡이 새겨져 있는.)



한동안 놀라움 속에 이리저리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놀다가반대편 내리막길로 하산을 시작.


 

이 반대편 길은 더욱 놀랍게도 나뭇가지나 돌로 축대를 쌓는 등 보수한 흔적이 있다아마도 철목마을 사람들이 마을사업 활동으로 해 놓은 듯.

구산에서 벌한까지 올라오는 길과이 고개를 넘어 철목까지 내려가는 길 전체에 사실은 신선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하다.

이미 오후 3시가 넘은 시각해를 등진 동쪽 사면이어서 어둡고 추웠다여전히 오를 때만큼 급한 경사였지만 잘 관리된 사면은 그럭저럭 걸을 만했다대신갈잎이 깊이 쌓여 있는 아래로 주먹 크기 이상의 돌들이 많이 숨어 있어 발목을 다칠까 조심조심




능선에서 약 6백 미터 내려간 지점에서 임도와 만난다가파르고 좁은 꼬불꼬불 길에서 벗어나니 마치 고속도로를 만난 듯.



그러나 고속도로를 6백여 미터 걸으면 또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끄는 신선길의 안내말뚝말뚝이 있는 지점에는 휴식시설이 있다.



또 내려간다이제 점점 사람 사는 동네에 가까워져 가는지 잘 가꾸어진 전나무 숲도 보이고 넓게 닦인 숲길로 이어져 걷기에 편안하다고갯마루 능선에서 신기마을까지 2.2킬로미터그런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눈 덮인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라 매우 조심스럽게 걸었나보다.

 


철목리 신기마을도 신기하다골짜기의 맑은 물을 가둔 넓고 깊은 웅덩이가 몇 개나 있는데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닫아 쓰러져 가는 성당 건물이 안쓰러워 보인다.

몇 가구나 살고 있을까?

 


철목마을은 매우 넓다.

무풍면 소재지의 넓은 터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샹그릴라라는 농가 레스토랑 건물이 매우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커다랗게높게 서 있다.

장기윤 선생이 커피 한 잔 쏠테니 들러 보자고 하여 들어갔다.

따뜻하고 쾌적하다… 오후 내내 가파른 고갯길에서 빳빳이 긴장해 있던 발목이 편안하게 풀어진다커피도 맛있다.

능선에서 헤어진 인호군을 <샹그릴라 까페>로 오라고 불렀다.

민주지산의 눈 쌓인 능선을 바라보며 한동안 쉰다.

이 건물 아래층은 호박고지를 주재료로 하는 농촌 식단 몇 가지를 팔고 있단다. 90명쯤의 걷는 이를 인솔하고 와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그렇게 쉬다 가면 마을이 통째로 반가워할 듯.

 

지금 넘어온 고개는 무풍재라고 한단다워낙 가팔라 이용자가 많지 않았던 탓에 그냥 사선암이라는 명소로만 알려졌던 듯벌한마을 사람들이 무풍으로 장보러 다닐 때 이용했겠지만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까페 샹그릴라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철목마을과 무풍면.)


 

에필로그

 

구산에서 은구암수성대 등을 거쳐 원당천을 계속 따라 올라가면 결국 구천동 캠핑장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오늘 이 고생을 한 것은 철목리로 내려가 다시 오두재를 넘어 삼거리로 돌아갈 것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거칠봉을 가운데에 두고 동·서 두 갈래의 큰 루트가 있는데 왼쪽(서쪽길을 상정하지 못했던 것만약 덕유산 국립공원의 동쪽 루트를 포기해도 된다면 그 험한 오두재를 넘게 하지 않아도 되며 오늘 무풍재를 넘지 않아도 되었다나아가 무주 구간 전체 노선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대신국립공원 동쪽 일대는 별도의 지선으로 설계하는 절충안이 있을 수 있다단축하는 만큼 장수구간을 넓힐 수도 있지 않을까.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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