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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고원길

무주 구간 탐사, 아홉 번째. (설천~무풍) (2)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0.02.14|조회수172 목록 댓글 0

무주 구간 탐사 아홉 번째 - 설천~무풍(2)

증산리~덕지리



오후.

여전히 비는 내리는 중에 오후 일정을 시작.

현내리에서 당곡교를 건너 학교 단지 쪽으로 남하.


면단위 공동체에 초중고 학교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이곳 무풍면이 그 중 하나다. 그만큼 예전에는 인구가 많았다는 것이고 교육열도 높았다는 뜻이겠다.

초등학교 뒤쪽으로 살짝 고갯길이 있는데 마치 오전에 만났던 내북~외북 사이의 땅고개 같은 느낌이다.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화살표는 학교 담장.)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로를 통과하는데 남대천 건너편 오른쪽(서쪽)으로 철목마을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것이 흠이라면 흠(?).


증산리에서 처음 만나는 마을이 ‘돌목’(돌뫽이, 石項)이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다. 마을 옆 골짜기를 흐르는 냇가(도마천)가 온통 돌투성이였던 것. 물 반(半), 돌 반. 이래서 돌목이라 하는구나…



마을은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하고 있다.

회관 앞에 고(故) 황인성 총리를 기리는 공덕비가 서 있어 그가 이곳 증산리 출신임을 알게 한다.

증산교회 앞 비탈 위에 잘 쌓은 축대가 있어 올라가 보니 축대보다 더 잘 지은 중후한 한옥 한 채가 없는 듯이 숨어있다.

서민의 집은 보통 일곱 치 굵기의 기둥을 쓰는데, 이 집은 먼발치에서 보아도 일곱 치 정도가 아니라 아홉 치 아니 거의 한 자 가까워 보이는 굵은 기둥을 쓴 것이 범상한 집이 아니다. 비워둔 것이 아깝지만 그래도 관리는 잘 되어 있는 것이 다행.


(이 집이 아니고...)



(이 집! )




마을은 내 건너 남쪽 산기슭으로 길게 더 이어지고 있는데, 다소 엉뚱한 곳에 마을입구임을 알리는 동구나무 두 그루가 오랜 연륜을 자랑하고 섰다.


(화살표 : 애플스토리 건물)




그 자리에 잘 가꾼 넓은 잔디밭과 그리 크지 않은 황토집 한 채.

마당 주위를 돌로 뺑 둘러 담을 쳤는데 그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이곳에서 골짜기 하나 건너 동쪽으로 ‘애플스토리 테마공원’이 보인다.

이 위치는 이미 꽤 높은 곳이어서 북쪽으로 넓은 들판이 발 아래로 보이고, 주위는 온통 사과밭이다. 사과밭 사이 농로를 타고 한바퀴 돌아 석항마을로 되내려가서 이번에는 애플스토리 테마공원으로 올라간다. 돌투성이 하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으로 있는 등성이를 왔다갔다 한 셈이다. 등성이끼리 연결되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후의 답사 과정이 계속 이러하였다. 등성이를 깎아 사과밭을 조성하는 사업이 매우 성했던 듯한데, 사과밭까지 오르내리는 농로는 있어도 인접 골짜기나 등성이끼리 횡적으로 연결하는 통로는 없어서 애를 먹었다.)



애플스토리 건물은 매우 거대했지만 유령의 집처럼 비어있었다.

사과농사에 대한 희망과 투자열정은 충분히 알겠으나 과연 체험홍보관이 이렇게나 거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근무하는 인원도 찾아오는 고객도 관람객도 한 사람 볼 수 없다. 드넓은 주차장도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만은 가동 중인 것이 신기하였다.

4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무풍면의 고원분지의 전망을 한동안 즐기고,




계속하여 테마공원 뒤쪽(남동쪽) 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보지만 역시 사과밭이 끝난 곳에서 더 이상 길이 없다.


또 석항으로 되돌아 내려와서 들판을 휘돌아 사동(沙洞)마을을 통과. 이 마을은 삭골(삿골?)로도 불리는데 가물 때면 마을 앞 들이 모래밭으로 변한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증산리는 曾山이라 쓰는데 이는 ‘甑(시루 증)山’을 잘못 쓴 것.

마을 옆 산을 시루봉이라 부르고 마을이름은 ‘시루미·실미’ 등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원래의 뜻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글자를 쓴 다음에는 이를 합리화하는 어거지 풍수설이나 설화를 만들어 붙이곤 하는 것이 지난날의 버릇이었다.

언제 바로잡아야 할까? 지금이 아니면 영영 굳어 버려 원래의 뜻은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삿골(삭골? 사동)을 벗어나면서부터는 남쪽으로 5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고갯길이다.

왼쪽으로 대덕산(동쪽), 오른쪽으로 망덕산(서쪽)을 둔 좁은 협곡. 포장도 끊기고 개울물도 누렇게 탁한 곳을 덜컥거리며 한 동안 오르면 또 넓은 밭을 개간하고 있는 곳이 나타난다. 이곳도 사과밭으로 쓰려 하는 걸까?




첩첩산중 아무도 오가지 않는 유일한 길인 이 고개의 정상은 720미터가 넘는 곳이다.

거의 경상도 경계에 가깝다.

인가가 보이기 시작하면 덕지리에 들어온 것이 된다.



처음 만나는 곳이 도마마을.

말[馬]이 넘어진[倒] 마을일까? 이렇게 높은 곳까지 타고 올라오면 아무리 힘센 말이라도 쓰러질 만도 했겠다.

마을은 비교적 평평한데, 기존 마을 옆으로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구획된 구역이 있어 열 집 정도가 새로이 집을 짓고 들어와 있는 듯.

느닷없는 곳에 ‘문화마을’이라니… 일부러 오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전원주택 개발업체가 벌인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을회관은 이 ‘문화마을’ 구역에 있다.

(이 마을 사진은 한 컷도 못 찍었다. 비가 강하게 내려서...)


쓰러진 말을 일으켜 다시 길을 재촉한다.



얼마 가지 않아 도계(道界)다. 도계는 마을 이름은 아니고 경남과 전북의 경계라는 뜻이다. 버스정류소 이름만 도계로 씌어 있을 뿐.

도(道) 사이의 경계라 하여 특별히 어떤 표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소 실망했다. 나무라도 한 그루 심으면 좋았을 것을.

왼쪽 골짜기로는 거창군 고제면 지경(地境)마을 또는 탑선마을, 오른쪽으로는 덕지리 부흥마을.

긴 고개를 넘어온 탐사팀, 차를 잠시 세우고 마을을 구경한다.



(부흥마을을 상덕이라 부르기도 하는 걸까? 가장 위쪽에 있는 덕지리라는 뜻으로...?)



워낙 가파른 비탈을 터전 삼고 있는 마을인지라 평평한 곳이 거의 없다시피 한 마을이다.

부흥마을 끝자락에서 최근에 개설한 ‘삼봉산 마음부자길’의 안내판을 만난다. 덕동에서 끝나는 임도와 차도 위주의 코스인 듯. 우리는 예기치 않게도 ‘마음부자길’의 임도 구간을 달리게 된 것이다.




임도는 오래된 길이었다.

부흥마을에서 약 5킬로미터 남짓, 덕동에 닿을 때까지 비안개와 산허리를 감도는 안개구름 속에서 덕지리의 남쪽 일대 산허리를 구불구불 달렸다.


(오타 발견 ! '복수'가 아니라 '북수'가 옳다.)


전망 좋은 목에서 차를 내려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참 멀리도 크게 한 바퀴 돌아온 느낌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이제부터 오두재 고개를 오르려 하는 찰나에 눈앞을 막는 것이 있었다.

겨울 동안은 눈이 쌓여 위험하므로 차량통행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오타는 아니지만... ㅋㅋㅋ)



마침 오두재 넘어 설천 삼거리에 사시는 김인옥 선생에게 “지나가는 길에 들를테니 커피나 한 잔 주시라”고 메시지를 보내려던 참이었는데.

새로 난 터널 길로 가자고 작전을 바꾸었다.


덕동 안을 통과하여, 그래도 찻길 아닌 길로 가보려 애를 쓰는데, 한 곳의 밭 옆길이 너무 좁아 자동차가 통과하지 못할 것 같다.

운전을 해야 하는 정국장과 내가 다시 헤어졌다. 나는 좁은 길로 걸어서 통과하기로 하고 무풍저수지 옆 찻길에서 만나기로.



걸어보니 잠깐의 구간만 좁았고 그 후부터는 넉넉한 숲길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다시 만났지만, 새로 난 길도 입구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이미 막아 놓은 것을 알게 된다. 3월 15일까지는 차로는 다니지 못한다.


이로써 오늘 탐사는 더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김인옥 선생에게 차 한 잔 얻어 마시려던 일도 무위(無爲).


오늘 답사한 구간은 ‘천봉만학 산옹천회’의 무주를 확실히 잘 알게 한 구간이었다. 석기봉 아래도 그렇고 대덕산 아래도 그렇고.

골짜기도 많고 봉우리도 많고 산은 둘러싸고 있고 물은 구불구불하다. 너무 자주 쓰는 말 같기는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골짜기와 등성이에 아주 혼이 났다. 흙길·옛길 찾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포장된 찻길을 걷거나 해야 하는데...

걷는이들에게는 해발 7백 미터 안팎의 깨끗한 공기와 물과 하늘빛을 보여줄 수 있는 구간이 되기는 할 것이다.

이로써 1번 루트의 답사를 끝낸다. 어느 루트를 택할지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겠고, 주요루트 외의 나머지 루트는 ‘옵션’으로 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무주군청 환경과에 인사차 들르고, 장수의 애호가 한 분을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관심사를 서로 이야기했다.


길고도 긴 하루였다.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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