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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고원길

장수 구간 탐사 일곱 번째 (1/2)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0.02.25|조회수122 목록 댓글 0

장수구간 탐사 일곱 번째 (1/2)


2020년 2월 24일, 월요일, 맑음. 



덕유산 휴게소와 주변 마을


장수군 계북과 무주군 안성과의 경계지점.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오갔는데, 고속도로(대전-통영) 휴게소를 경유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게 들렸다. 

세상에 걷지 못할 길이 어디 있겠으며 잘못된 길이 어디 있겠는가. 휴게소는 화장실 등 여러 편의시설이 있는 매우 훌륭한 휴식처이기도 하다.


지난 번(2월 4일, 장수 여섯 번째) 탐사 때 계북면 양악·파곡·당저 등 마을을 걸으면서 머리 위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쳐다보고 경관과 생활환경을 망치는 시설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미 만들어진 국가기간도로를 기피할 수만은 없다. 잘 활용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면 된다.



오늘 낮 기온은 16도까지 올라갈 거라는 예보인데, 일교차가 커서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하다가 겉옷은 다소 따뜻하게, 안에는 가벼운 옷을 입었다.


오늘도 정병귀 국장과 둘이서만 탐사에 나섰다. 

평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일정을 미리 공표하는 것도 서로 거북하고, ‘무진장고원길’이 가야할 길은 바쁘고 멀기 때문이다.


하남방향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이른바 ‘개구멍’으로 빠져 나간다. 

개구멍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자동차로 톨게이트를 거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르는 ‘정식’ 절차가 아닌, 비공식 출입문. 휴게소에 근무하는 인근 주민들의 출입편의를 위해 작게 열어놓은 틈을 말하는데 어느 휴게소에나 다 있다. 휴게소에서는 다양한 메뉴선택권을 즐길 수 있으므로 나도 점심을 먹을 목적만으로 자주 개구멍을 이용하곤 했다.


(휴게소 안의 인도.)



개구멍을 나와 흙길로 내려서면 고속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동쪽이 된다. 곧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암거(굴다리)가 나타나고 굴다리를 빠져나가면 고속도로의 반대편(서쪽)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고속도로 부지 경사면에 전나무가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어 시원한 그늘길이 생겼다. 

이런 길은 일부러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운 길. 가뜩이나 마을 안길과 농로들이 거의 포장되어 있어 오래도록 딱딱한 길을 걸어온 여행자들에게는 보너스 같이 반가운 흙길이 될 것이다.



남쪽(통영방향) 휴게소로 이번에도 역시 개구멍을 통과하여 들어선다.

별자리 해설을 해놓은 그림판들이 여럿 늘어서 있는 휴게소 내 산책로를 따라 쭉 걷는 맛도 그럭저럭 괜찮고, 서비스 시설이 많으므로 간식을 즐기거나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도 매우 유리하다.



(당저마을 당산 숲.)



“이렇게 통과하면 되겠네”라고 잠정 결론을 내려놓고,



양악리에서 접근하는 루트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다른 개구멍으로 나와서 다시 양악리 땅을 밟고 들어선다. 

남북으로 한 발짝만 내디디면 무주군과 장수군이 왔다갔다 하는 경계선이다. 이곳에서는 댕밑(당저)의 그 유명한 당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댕밑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이 구역에는 고가수로가 잘 나있다는 얘기는 지난번에도 했다. 별난 체험을 즐기는 정국장은 그 수로 위를 걷고 싶어 한다. 나도 다소 그렇지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말렸다. 지상에서 7~8미터는 떨어져 있는 높고 좁은 수로를 곡예하듯 걸어야 하는데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는가. 0대에서 80대까지 온 국민이 걸을 수 있는 루트는 아니다. 그런 데를 올라섰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최소 골절인데.


수로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 동네 공동묘지를 통과하여 걷는 루트를 택하자고 했다. 그래도 정국장은 ‘한 번 올라서보기라도 하겠다’며 수로 위를 걷기 시작한다. 

수로는 시멘트로 만든 U자형 튜브. 가운데의 홈은 사람이 들어서서 걸을 만한 폭으로는 충분하지만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는 계절에는 들어설 수 없으므로 운두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걸어야 한다. 

젊은이의 취향을 저격하는 모험코스일지는 모르나 권장코스는 분명 아니다. 혹시 위법한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릴 기운도 없어서 잠깐만 들어서보라고 하고 나는 묘지쪽 길을 택하여 걷기 시작.



어차피 수로는 숲속을 통과하여 내가 걷고 있는 묘지길과 끝에서 만나게 되어 있어 굳이 위험한 수로 위를 걸을 필요는 없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걷고 있는데, 

결국 수로의 높은 구간 걷기를 포기하고 내 뒤를 따라온 정국장, “수로 위를 나무판 같은 것으로 덮으면 충분히 걸을 만한데…”라며 못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신다.


안 될 일은 안 할 일이다. 안전이 최우선되어야 하고, 나무판을 덮는다 해도 확실히 고정시켜야 하며 심리적 안정을 위해 난간도 있어야 한다. 즉, 다리를 하나 새로 놓는 것만큼의 투자가 필요한 것.

묘지 뒤쪽은 푹신한 풀밭길이며 묘지관리에 유난히 철저한 우리 민족의 인습도 있어 걷기에 편할 것이고 짧은 솔숲 사이를 통과하는 맛도 있어 더 좋다.


어쨌든 이로써 당저마을을 통과한 걷는이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로 들어가는 루트 두 가닥은 확보한 셈이 되었다.



지자체 간의 비협조. 우리는 달라야 한다.


북쪽 마암마을(무주군 안성면 공진리)로 향하는 길목에 ‘백두대간길’ 안내말뚝이 서있다. 

이 말뚝은 장수군이 세운 것인데 한 쪽에는 ‘당저마을’(장수군 관할), 다른 한 쪽에는 ‘무주마실길’이라는 간단한 화살표만 붙어있다. 이런 경계지점의 시설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보고 지자체끼리의 협조가 잘 되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데, ‘무주마실길’이라고만 소략하게 표기해버린 것은 많이 아쉽다. 공식적으로 ‘무주마실길’이라는 길은 없는데도 말이다. 


('장수군'이라 새겨져 있다.)



이왕 말뚝을 세웠고 화살표 하나를 더 붙일 공간이 있으니 무주군과 협조하여 제대로 된 길이름과 함께 구체적 목표지점(마암마을) 표기를 병행했으면 여행자의 눈에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사실 역사적으로 이 일대는 장수군과 무주군 사이를 여러 번 왔다갔다 했으며 특히 양악과 당저는 무주군 소속이던 시기도 있었다.

무진장고원길이 '하나의 브랜드' 아래 통합된 독립조직으로 활동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데에도 있는 것이다.


마암마을로 향하는 길은 들판길이다. 벌써 중천에 높이 뜬 해는 따가운 햇살을 내리쬐며 탐사팀을 힘들게 하기 시작한다. 안성평야가 시작되고 있었다.




말바우와 공진


마암은 말바우가 고유어 이름이었다. “마을 뒷산에 말발자국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마을 안의 안내판에는 씌어 있으나, 지명총람에는 ‘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말의 발자국’과 ‘말’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데 어느 쪽이 옳을까.




어차피 고속도로 같은 초대형 자연파괴가 아니더라도 개간, 주거지역 확장 등으로 옛 지형은 점차 사라져간다. 

이미 없어졌을 말(발자국)바위를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유래만은 제대로 찾아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사주체에 따라, 조사자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에 따라, 인터뷰이(마을주민)의 지식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인 마을이름 유래.



공진리의 이름만 해도 그렇다.

‘공진(貢進)’은 ‘나라에 진상한다’는 뜻. 

평야지역인 안성면에는 물산이 많아 소(所)도 많았고 국가에 내는 공물도 많았다. 그런 공물들을 수집관리하고 수송하는 관청이 공진리에 있었을 것이다. ‘안창(安倉, 안성에 있는 사창)’이 있다고 옛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래 : 1872년 지방지도.)

(노랑 : 안창, 연두 : 공진리.)



그런데 무주군(?)이 최근에 세운 한 안내판에는 “이곳 출신의 김신(고려 충렬왕 때의 인물)이 원(元)의 요양행성 참정을 지냈다 하여 공진리라 불렀다”는 엉뚱한 문구가 씌어 있다. 

원의 속국인으로 원에 불려가 관리노릇을 한 것이 자랑일 수도 없거니와, 출신지 이름을 ‘원에 조공을 바친 곳’으로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을 하는 것이 잘 한 일일까? 

과연 이래도 되는가?


그 외에도 여러 군데의 마을 안내표지석에 새겨진 마을유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 이런 헛돈을 왜 쓰는가 하는 참괴함을 벗기 힘들다.




사라져 가는 농촌마을


나지막한 돌담과 축대가 돋보이는 마을을 통과하여 높은 지대로 올라서면서 옛 ‘예향천리 백두대간길 무주구간’은 시작된다. 

‘옛’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부르는 것은, 이미 관리의 손이 미치지 않게 된 지 오래인 길, 어차피 ‘무진장고원길’이 흡수할 노선이어서다. 

거대한 안내판도 무진장고원길이 인수해서 리폼(reform)하여 쓰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렇게 불렀음을 양해하시기를.


마을 가운데 회관 앞에 정미소가 있는 큰 동네다. 마을은 그러나 많이 퇴락해 간다. 비어가는 농촌마을의 예외가 아니다. 넓은 들판을 먹거리 터전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주민이 떠날 수밖에 없이 된 사회환경의 변화가 그 원인일 것.




마을 주위를 한 바퀴 돌아 고속도로 아래로 향하는 길목에서 또 고가수로를 만나는데, 

정국장이 갑자기 환호한다. 이유를 알겠다. 

수로에 올라서서 걸을 수 있도록 철망으로 뚜껑을 해 덮은 장면을 본 것. 스테인리스 파이프로 난간까지 설치했다. 유독 이 마을에서만 발견되는 사례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시설을 했겠으나 뚜껑과 난간이 있는 구간은 아주 짧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수로는 연결부위가 어긋나서 물이 새는 일이 잦다. 이를 감시하고 수리하기 위한 장치일까. 그렇다면 더욱이나 우리 ‘무진장고원길’이 뚜껑을 해 덮고 그 위를 걷는 활동을 하다가는 수로 수리비용을 몽땅 덮어쓰게 될 수도 있다.

아무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물이 새서 교각이 온통 젖어 있는 수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차를 세워둔 하남방향 휴게소로 돌아오다. 아까와 다른 개구멍을 지나(개구멍이 여러 군데 있다는 것도 알았다. 덕유산 휴게소는 비교적 큰 휴게소여서일까?) 휴게소로 다시 들어서서 길게 이루어진 휴게소 부지를 종단, 차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왔다.



여기서 오전의 1차 여정을 마무리.

신선한 경험을 한 셈이다.

다음 여정으로는 ‘안성면 샅샅이 돌아다니기’가 기다린다.



온난화로 반감되는 무진장고원의 매력


이미 한 시간 가까이 걸었고 날도 더워져서 두꺼운 겉옷을 벗어던졌다. 이마에도 땀이 배기 시작했다. 

2월도 아직 일주일 이상 남겨둔 시점인데 벌써 덥다는 말이 나오는 기후변화의 엄청난 속도.

둘레의 산들도 눈의 흔적은 아예 없고, 덕유산의 깊은 골짜기에만 간간이 남아있는 눈. 4월 초순까지도 눈이 녹지 않던(2007년) 무진장고원의 혹독한 겨울 추위는 이제 옛일이 되어 가는가.




쇠붓재 옛길 찾기, 잠정 중단을 보고합니다.


소비재(소배재) 옛길을 찾아내려 했으나 

①‘등성이-골짜기-등성이-골짜기’로 반복되는 험한 지형과, 심한 개간으로 인한 지형변경으로 찾아내기가 매우 힘듦을 알았다. 

②또, ‘돼지골뜨란 펜션’이라는 사유지를 통과해야 하는 점도 장애의 하나다.


그래서 남덕유산 북서쪽 등산로 초입의 ‘고아산방’ 방향으로 향하지 못하고 아스팔트 포장도로(743지방도)를 계속 걸어(약 580미터) 농소리입구(연동마을삼거리)~문성마을~계북면소재지 느랏골(어전)까지, 농로와 마을 안길을 타고 내려가는 것(옛 장수마실길 휴게소 기점 3.4킬로미터)으로 우선 타협합니다.


나중에 더 세밀한 조사를 통해 최대한 옛길에 가까운 루트를 찾아내거나 조성하기로 약속하면서, 또, ‘대적골 가야 제철유적’을 위한 탐방길 조성사업도 장수군 행정이 추진 중이므로 앞으로 대체 노선이 생길 것을 기대하면서.


(2/2로 계속)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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