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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고원길

무주 구간 탐사, 열 번째 - 마지막.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0.03.11|조회수288 목록 댓글 1



무주 탐사 열 번째.

2020년 3월 9일.


<코로나19 비상>으로 자발적 유폐상태를 선택한 지 보름.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하고 있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도 혼자 요가와 근육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른바 홈짐(Home Gym). 

덕분에 체력이 더욱 향상되었고 혹시라도 걸릴지 모를 바이러스 공격에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바깥에 나가는 시간은 매우 한정되어 있어 답답함을 다 풀어내기에는 역부족.

전라북도에 발생한 감염확진자 수가 일곱 명에서 한참동안 더 늘어나지 않고 있는 훌륭한 방역태세를 믿고, 그동안 미뤄왔던 탐사활동을 짤막하게 하루만이라도 하기로 하였다.

사람 사는 동네에 들어가는 것은 최소한으로 억제하면서 고갯길 등 야외로만, 그것도 주로 차를 탄 채 움직이기로 하면서 말이다.



오늘의 답사는 ‘초벌구이’ 노선설계의 마지막 날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올 여름부터 <무진장고원길 걷기 행사>를 선제적으로 시작하기로 한만큼 미세한 구간까지 확정하지 못하였더라도 더 이상 시간을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또 확인했다.


①‘무진장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로 구성한다는 목표는 그대로 가지고 가되 너무나 험난한 구간이나 사유지 구간은 초기 단계에서는 우선 제외한다. 그러자면 환형(環形)이 아니라 시작점과 끝점이 만나지 않는 C자형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수용해야 한다.


②환형을 완성하기 위하여 몇 년이 더 걸릴 수 있다. 또 미세한 노선조정과 관리도 계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무진장의 시민과 행정이 계속하여 노력하고 항시 모니터하는 시스템을 지금부터 갖추어야 한다.


③걷기 행사(가칭 ‘바람 이는 고원길에 서다’)는 행정의 예산 지원 여부에 관계없이 실시한다. 도시락과 교통비를 참가자가 각자 부담하는 등, 원래의 걷는 여행의 취지를 그대로 이어간다.



오늘의 ‘마지막’ 탐사는 무풍면 일대를 어떤 노선으로 걷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오두재(덕지삼기 터널)도 아직 발로 답사하지는 못하였으나 그 가파른 고개를 넘어간다 한들 덕유산 리조트가 막고 있어 구천동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므로, 

차라리 무풍면을 끝지점으로 하는 안을 생각한 것. 

이는 위 원칙 ①에 기초한 것이다.


원드레~신기뜸 임도


지난 번 탐사 때 벌한마을~철목리 사이의 무풍재를 넘었었는데 고개 정상에서 철목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다시 확인하려 한다. 

고갯마루에 두 군데의 내리막길 들머리가 있는데 하나는 사선암 바위에 가깝고 또 하나는 사선암을 들르지 않고 바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난 번 탐사 때 택한 길은 전자의 길이었다. 

어느 쪽 길이나 5부 능선쯤의 높이에 가로 걸려 있는 임도와 만나게 되는데, 오늘은 이 임도를 타고 거꾸로 올라가 벌한마을 쪽을 향해 가면서 길을 확인할 생각이다.


그런데 임도 입구에서부터 걸렸다. 산불방지를 위한 입산금지 기간인 것.


임도는 1995년에 만들어졌다는 안내표지석이 서 있다. 

25년 전만 해도 고유어 지명을 그대로 썼으며, 표지석을 만든 솜씨가 ‘촌티’ 나면서도 오히려 친근하게 와 닿는 느낌이다.

임도는 ‘원드레’에서 ‘신기리미’에 이르는 6.78킬로미터에 걸쳐 개설되었으며 사업을 시행한 관서는 ‘남원영림서(營林署) 무주관리소’라는 것.

‘원드레(원들애골)’는 온월(溫月)마을의 고유어 이름인데 몇 가구 되지 않는 작은 골짜기 마을로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신기리미’는 철목마을 남서쪽 기슭의 ‘신기뜸[새터, 新基]’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7킬로미터 쯤 되겠기 때문이다.

‘영림서’는 요즘의 산림청을 말하고, ‘임업협동조합’은 산림조합으로 각기 이름이 바뀌었다.




아무튼, 이 임도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 상태여서 자동차로 들어갈 수 없다. 

걸어서는 들어갈 수 있으되(불법입니다), 무풍재 길을 만나려고 너무 긴 구간을 걸으면서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는 것.

포기했다. 고갯길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 우선 그것으로 참기로 하고.


이 벌한계곡~벌한~철목을 잇는 무풍재 고갯길 구간도 무진장고원길의 주노선(둘레길)이 될 수는 없으나, 경치 좋은 계곡과 지질학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사선암 바위능선 등이 아까우므로 서브 루트(sub-route)로 제시해두고 걷는이의 선택에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성리 서동


지성리는 지산(池山, 못산)과 성재[城峙]마을의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법정리 이름이다.

정작 모산(‘못산’을 왜 ‘모산’이라고 쓰고 있는지?)에도 성재에도 못 가보고 서동(鋤洞)마을로 들어간다.


꽤 가파른 산비탈에 생긴 마을이다. 

마을회관은 동네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동쪽 높은 비탈 위에 정자와 함께 있다. 

늙은 나무 몇 그루가 있는 것으로 이곳이 이 마을의 당산임을 알겠다. 

이 정자에서 바라보니 이곳도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에 들판이 이루어져 있다. 


멀리 남쪽으로는 얼마 전에 차로 넘어갔던 도마령이 보인다.



(서동마을회관에서 내려다본 지성리와 증산리의 분지평야. 
분홍 : 지산마을, 연두: 애플스토리 테마파크, 빨강: 대덕산, 주황: 도마령, 파랑: 망덕산.)


(사진 위/아래 : 망덕산 공제선 뒤쪽으로 살짝 보이는 삼봉산.)

마을 뒤 북쪽으로 가파른 비탈을 계속 올라 한 고개를 넘으면 무풍면 소재지가 보여야 하는데 작은 산에 가려있어 보이지 않고, 사과밭과 태양광 발전시설 등이 가로막는다. 


(서동마을 뒤 고개 정상의 자작나무 숲은 그럴듯한데, 태양광 집광시설은?)



굳이 이 길을 넘어야 할 필요도 없어서 되돌아 내려온다.

당산 비탈 아래의 우물은 물이 아주 맑았다.



서동은 호미 서(鋤)를 쓰고 있는데 원래 이름은 ‘서수ㅅ골’이었다. ‘서숙(조)골’일 수도 있고 ‘서(나무)숲골’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명총람>에는 동네 뒷산이 쥐 모양으로 생겨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수긍하기 어려운 해설을 하고 있다. 조사자가 호미 서를 쥐 서(鼠)와 혼동한 듯.

이래서 지명의 한자화는 하지 않음만 못했다는 것이다.



증산리 돌메기(석항)를 잠시 통과.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면 석항의 뒤가 된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들판을 가운데에 두고 지성리, 증산리, 은산리 등이 무풍면의 남쪽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운데 있는 법정리가 증산리.


지성리와의 접경에 있는 마을 석항(돌메기)은 지난번에도 들렀던 마을이지만(황인성 전 총리의 출신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고 했었다), 마을 뒤를 감싸는 대숲길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차에서 내렸다.


(위/아래 : 수로관을 걸쳐놓고 다리로 쓰고 있다. 대숲을 질러 석항마을로 내려가는 길.)


조릿대숲 옆으로 길과 함께 수로가 배설되어 있었다. 

이 수로는 아마도 애플 스토리 테마파크 옆으로 통과하는 고가수로의 물을 이 마을까지 끌어오려는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물은 끊겨있어 이제 그 역할을 다 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좁은 길은 이 수로를 관리하기 위한 길. 

대숲은 별로 잘 가꾸어져 있지 않다. 꺾이고 쓰러진 대가 길 쪽으로 불쑥불쑥 나와 있어 걷기에 다소 불편하다. 

일단 이런 뒷길이 있음을 확인했으니 오늘은 더 깊이 걷지는 말자.



석항마을 앞을 흐르는 돌투성이 내에는 토사가 많이 흘러내려 있다. 최근에 내린 이른 봄장마 탓인 듯. 석항의 내를 건너질러 증산마을을 향하는데…



증산리 원증산 - 실미(시루미)


원증산마을에 들어가 보려 했으나 좁은 농로 길을 전주시설 공사 차량이 막고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증산은 ‘실미(시루미)’가 고유이름. 시루봉 아래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면 ‘甑山’으로 써야 옳은데 曾山으로 쓴 것은 근거가 없다고 볼 수밖에. 

길이름 주소는 다시 ‘실미길’이라 되돌아가 있다.


민간의 호칭을 무시한 마을이름의 한자화, 그로부터 수십 년 후에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는 도로명주소, 인구과소화로 마을과 마을을 통합하여 한 글자씩 따다 붙인 얼토당토않은 마을이름과 길이름...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이 상황을 정말 이대로 두어야 할까?


실미마을은 넓은 들을 터전 삼고 산 아래에 붙은 큰 마을이다. 증산리의 이름의 원조라 할 만하다. 어쨌든 들어가 보지 못하고 통과.



은산리 오산마을(오무실) 뒤 고갯길


남대천을 건너 서쪽으로 은산리에 진입하다.

증산마을을 하천 건너로 바라보면서 속동 앞을 지나간다.


속동도 이름이 매우 잘못 전해진 경우. 원래 ‘솥[鼎]골’이었다는데 ‘솟(속)골’로 들려 속될 俗으로 마을이름이 전혀 엉뚱하게 바뀌었다. <지명총람>은 더욱 엉뚱하게도 “들 안쪽에 있어 속[內]동이라 했다”는 웃지못할 해설을 붙이고 있다.


은고마을 옆을 지나 오두재(덕지삼기터널) 가는 길을 버리고 왼쪽(동쪽)으로.


헷갈리게도 이 은산리에도 오산마을이 있는데 하필 고유어 이름도 무주읍 오산리의 '오무'와 꼭 같이 오무실이라 부른다. 


마을은 매우 가파른 비탈에 ‘붙어 있다’.

버스정류소 겸 정자나무 그늘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깊은 산중, 이렇게 가파른 비탈에 마을을 이루고 살아야 했던 옛 사람들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승지(勝地)'라 자위하면서, 소량의 골짜기 물에 의존하여 역시 작은 골짜기에 논밭을 일구고 호구(糊口)의 방책을 삼아야 했던 빈한한 오지마을.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의 오산(吾山)마을’이라는 비석은 앞서 말한 무주읍 오산리의 해석과도 꼭 같은 내용이다. 

대체 이런 엉터리 비석은 언제 누가 이렇게 양산했을까. 

헛돈만 잔뜩 들인 비석에 눈을 흘겨주고, 마을 뒤쪽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오르막 경사가 워낙 심하여 나이든 주민들은 회관출입 한 번 하는 것조차 힘들겠다. 

이렇게 움직이기 힘든 산골 동네니까 출입을 하지 않고 들어앉아 책만 읽었을 수도 있겠다며 웃어넘기는 것도 재미있다.


('글 읽는 오' 자를 어떻게 쓰는지 아시는 분?)



마을을 벗어나 도마령 오르는 길을 타고 잠시 달린다.

차를 한 옆에 세워두고 마침 밭일을 하고 있는 부부를 만나 길을 물었다.


도마령에 오르는 길은 두 갈래 있다는 대답이다. 그런데 어느 지점까지는 확실히 길이 있지만 더 이상은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개간을 심하게 해서 길이 없어져버린 경우도 있고, 나는 그 길로 다닐 일이 별로 없고…”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럴테지. 

하지만 그런 길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두 갈래 길 중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먼저 택하여 올라섰다. 이 길이 정상 가까이에서 도마령 길과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이 갈림길목에서 뒤돌아보면 오두재 오르는 길이 멀리 바라보인다. 먼눈에도 매우 가팔라 보이는 오두재길.



도중에 인삼밭으로 개간한 곳과 사과밭 등이 길을 다소 막고 있는 것 외에는 비교적 옛 산길이 잘 남아있는 편이었다. 부부가 알려준 길은 사실이었던 것.



고개정상까지는 약 5백여 미터,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숲길이었다. 

해발고도는 720미터. 갈림목의 고도가 6백미터였으니 약 120미터를 올라온 셈이다. 


내리막은 더욱 깊이 쌓인 부엽토의 푹신푹신한 숲길이다. 

이런 흙을 농사짓는 논밭에 갖다 넣으면 그야말로 무경운(無耕耘)농법을 할 수 있는 토양이 될터인데. 산골에도 농약병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 이제 옛 방식으로 하는 농사는 기대하기 어려울까.


7백 미터를 걸어 내려가면 증산리 사동~도마령 사이 길과 만나게 된다. 지난번에 차로 달려 넘었던 길고도 가파른 고갯길이다. 계곡 물 옆으로 대단위 개간지가 기다리는데 이 높은 곳까지 농사를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또 태양광 집광시설일까?



(연두색  : 사동에서 올라오는 고갯길. 도마령으로 향한다.)


(농경지를 둘러친 그물에 뿔이 걸려 죽은 고라니. 배부분은 이미 맹금류?가 파먹었다...)



도마령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길고 다소 재미없다. 정상 가까이까지 오르면 경사가 비교적 느슨해지면서 사과밭이 꽤 넓게 이어진다. 아마도 무주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나는 사과가 아닐까?


(사과밭으로 개간을 했지만 옛길 자리는 남겨둔 매너가 돋보이는...)



도마령 정상은 8백 미터에 가깝다. 아까 넘어온 고개(이름이 딱히 없어서 ‘오무실재’라 부르기로 정국장과 둘이서 합의했다)보다 80미터 쯤 더 높은 셈이다. 

도마령, 여북했으면 ‘말을 쓰러뜨린다’는 倒馬嶺일까.



동쪽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경남 거창 땅이다.

지난번에는 도마·부흥 등 마을을 통과하여 임도로 덕동마을까지 달렸었다. 

오늘은 여기서 도마마을로 향하지 않고 우회전, 다시 오무실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제부터는 흙길 약간과 포장된 길 약간을 합한 2킬로미터의 내리막. 

걸어서 차를 세워둔 갈림목까지 되돌아왔다.

이 길을 다시 걷게 될 일이 있을까?





점심 먹을 시간을 살짝 넘긴 시각이다. 오랜만에 발품을 좀 팔았더니 배도 고프고 무릎도 아프다. 무풍 소재지로 내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철목마을 ‘샹그릴라 레스토랑’에 전화를 한 즉 여기도 ‘코로나 비상’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면서 돼지국밥집을 소개해 준 것이다.



문명의 접경지대, 백두대간.


놀라운 것은, 무풍 소재지 식당에서는 경상도 억양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 주인도 그렇고 손님들도 그랬다. 장수와 남원에 함양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지리적으로 그만큼 가까워서일테지만 문명과 사람의 교류는 백두대간의 험준함도 장애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치적 입장 따위가 얼마나 더 크게, 더 오래도록, 장애로 남아있어야 하는 걸까.


처음 무진장고원길의 개척에 나서면서 “무풍면에 가면 경상도와 얼마나 가까움을 느끼게 될지가 궁금하여 가슴이 뛴다”고 소회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제통문만 지나면 벌써 주민들의 억양이 많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하나씩 확인해오기도 했다.

드디어 무진장고원길의 가장 동북쪽 끝 지점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점심 후에는 삼도봉터널과 부항령으로 이어지는 탄방로(1089 지방도)를 달려 금평리 금평마을을 구경.

넓은 들판을 가진 큰 마을이었다. 경주의 양동마을을 방불케 하는 느낌의.




금평마을을 잠깐 둘러본 후, 이번에는 대덕산 덕산재를 향해 달렸다.


덕산재도 백두대간 종주로가 통과하는 지점이다.

이로써 경상남·북도와의 경계지점 모두를 답파한 셈이 되었다.


동고서저(東高西低)·북고남저(北高南低)의 특징을 가진 한반도. 

진안고원의 서쪽 비교적 낮은 지대만 경험한 나로서는 백두대간의 등뼈에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선 느낌은 매우 특별했다.




미흡하지만 이로써 서두에 밝힌 원칙 세 가지를 다시 상기하면서, 초벌구이 답사를 일단 마감하려 한다.


귀로는 앞으로 우리가 걷게 될 노선에 최대한 가깝게 남대천변을 달리면서 얼굴을 익히려 애썼다. 물론 더 자주 더 깊이 친숙해지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참여'는 어떤 모양일까.


여의리와 장백마을을 통과할 무렵에 허동일 대표에게 연락했다. 혹시 ‘지구별여행 펜션’ 주인과 협의해 줄 수 있겠는지 물어보려고. 

하장백~여의리 사이의 벼룻길이 그 펜션 뒤까지 연결되고 있어 사유지를 통과하는 일에 대해 허락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대표, 금방 난색을 표한다. 몇 번 부딪쳐본 경험으로 보아 그분에게 협조 받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시민들의 동참과 협력은 바로 이런 경우에 작동한다. 

<제주올레>를 설계하던 초기 무렵, 코스가 지나는 곳에 있는 관광업소들 모두가 올레꾼의 통과를 환영하며 허락했다고 들었다.

우리도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기로 하자.

“끝내 허락받지 못한다면, 아쉽지만, 벼룻길을 포기하고 포장된 둑길을 걸으면 된다”고 다소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서.


무주읍 반딧불이시장 거리의 <노닥노닥 사랑방>에 들렀다.

무진장고원길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이 자주 있을 것이어서 모임의 장소로 사랑방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느닷없이 찾아갔는데 마침 김은아 대표가 근무하고 있었다.


(노닥노닥사랑방 1층 세미나실.)


(사랑방 2층 좌담실.)



시원시원하게 응대해주는 김은아 대표, 역시 시원시원한 시민단체의 일꾼답다는 느낌이다. 

사랑방 사용료도 무척 싸서 마음 편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큰 돈 없이도 일할 수 있다”는 원칙이 여기에서 또 확인되는 셈이다.



마침 오늘도 탐사 활동 도중에 장수군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지리산권 관광개발조합’이 장수군을 통해 “무진장고원길 노선의 어느 구간에 정비가 필요한가” 묻더라는 내용이었다.

장안산 터널 위쪽을 통과하는 고갯길(옛 장수군마실길 구간)을 정비해 주면 고맙겠다고 대답했다. 


굳이 많은 예산을 통째 받아서 운영할 필요도 없다.

“행정이 조금씩이라도 도와주면 고맙고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지켜온 원칙과 우리가 보여 온 진정성의 작은 결실이 일찌감치 나타나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하기도 했다.



이상으로 무진장고원길 노선 탐사를 일단 마감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전체 노선설계도를 놓고 협의하는 기회를 갖겠습니다.

또, 무진장고원길 풀코스 이어걷기(가칭 ‘바람 이는 고원길에 서다 - 2020’) 활동계획도 공유하고 협의하고자 합니다.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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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나브로(윤순길) | 작성시간 20.03.11 쉽지않은 일, 그래서 아무나할 수 없는 일 노선탐사!!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무진장고원길 풀코스 이어걷기' 기대가 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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