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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고원길

무주 구간 세밀 탐사 (1)

작성자최태영|작성시간20.03.18|조회수220 목록 댓글 0

무주 - 세밀 답사

2020년 3월 17일, 화요일. 



오늘의 미션은 다섯 군데를 재답사하여 노선을 미세하게 수정하는 일이다. 

‘무진장고원길’의 이름이 있는 한 앞으로도 이러한 미조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반디랜드~태권도원.


설천면 반디랜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난 번 탐사 때의 구간과는 다소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참고로 지난 번 탐사 때 걸은 구간을 한 번 복기하면,

반디랜드 - 원청량마을 - 마을뒤 산길 - 비닐하우스 - 솔숲 능선길(ⓐ) - 절골 방향 갈림목 넓은 터 - 진평마을/편백숲 갈림목 - 온평마을 뒤 임도 - 태권도원.


이 구간을 평가하자면,

초반 원청량~비닐하우스 사이 : 청량산을 바라보며 걷는 원청량 진입로는 조금씩 높아지면서 그럭저럭 조망이 좋은 길이었으나 시멘트 포장길이 꽤 길어서 걷기에 편하지만은 않다. 논개생가 마을을 방불케 하는 오래된 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재미난 경험이지만, 마을 뒤 산길이 시작되면서 사유지가 가로막는 것이 가장 큰 흠결이다. 더구나 능선에 가까이 올라간 높이에 대단위 비닐하우스가 길을 거의 막고 있는 것은 결정적 흠이다.


반디랜드 부근은 행정의 계속된 투자로 산책로가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어 선택지는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오늘 탐사팀이 걸은 구간.


반디랜드의 외곽길을 따라 도는 생태온실~천문과학관 사이는 푹신한 흙길로 조성된 산책로여서 걷기 좋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파빌리온이 폐쇄되고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 호젓한 구내를 통째 전세 낸 것마냥 걸을 수 있었다.



청소년야영장 앞에서 남쪽으로 꺾어 산길을 오르면서 숙박동과 야영 데크들이 이어진다.



백운산 등산로를 겸한 이 길은 점점 호젓해지면서 5백미터 쯤의 위치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백운산 생태교육관’으로 향하는 높낮이 차이가 거의 없는 길. 탐사팀은 이 길을 버리고 계속하여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나뉨목에서 450미터 거리에 ‘백운산 전망대’가 있는데 이 짧은 거리가 열 굽이 지그재그의 좁고 숨가쁜 오르막이다. 하지만 전망대에 올라서기만 하면 시야가 툭 틔고 바람이 시원한 솔숲 능선길이 시작되니 고진감래라 할까. 



다소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으나 그 바람이 이미 차게 느껴지지 않는 초봄이다.

여기까지 합격.


문제는 이곳에서 지난 번 탐사 때 통과한 ⓐ지점으로 연결되느냐 하는 점이다.


이어지는 좁은 능선길은 다소의 오르내림과 함께 솔잎 쌓인 푹신한 650여 미터.


(세 갈래로 나뉜 소나무. 이 나무 아래에 누군가가 수목장을 치른 듯. 제사 지낸 흔적...)


(위 동그라미 안 : 길을 막고 있던 거대한 비닐 하우스 단지. 사진이어서 잘 안 보이지만...)



오, 나타났다.

역시 기대한 대로 ⓐ지점을 만난 것.

이로써 원청량마을을 통과하면서 사유지에 막힐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절골폭포 분기점은 숲그늘이 훌륭한 꽤 넓은 평평한 곳이어서 걷는이들이 모여 앉아 점심 먹기 좋은 곳이다. 이곳을 포기하기 싫었던 것.



산 아래 진평마을이 찌개를 끓여줄 수 있다면, 마침 포장된 농로가 70미터 떨어진 곳까지 와 닿으므로 트럭으로 싣고 와서 이곳에서 재미있게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이로써 이 구간 대체노선 탐색에는 성공. 이제 이어걷기 행사를 앞두고 진평마을 부녀회장님을 만나 협의할 일이 남았다.




농로로 나서면 편백숲 쪽으로 올라가는 길과 진평마을을 향해 내려가는 길로 나뉜다. 

이 편백숲도 전라북도 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가 지목한 새로운 사업대상지다. 

아직은 시작되지 않았으나 곧 이런저런 시설들이 들어설 것이다. 지난 번 탐사 때 들러본 바로는 골짜기가 깊기도 하고 무엇보다 계류수가 훌륭했었다.



진평은 '개금벌'이라 불리는데 개암나무 진(榛)과 들 평(坪)을 썼다. 개암나무가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긴 골짜기에 길게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일대의 길들을 거의 모두 살펴보았다.

백운산을 생태공원화 하는 사업이 이어지고 있어 ‘장승공원’, ‘습지공원’, 그 외에도 여러 이름을 붙인 산책로 등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몇 년 후에는 백운산 기슭이 ‘생태적’인 길들로 사통팔달하게 될까?






원형의 평면구조를 한 3층짜리 백운산 생태교육관. 이곳도 당분간 폐쇄중인 시설인데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그다지 잘 활용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반디랜드 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청량산~백운산 대체노선 찾기는 끝내다.




두 번째 미션, 오산리~하장백마을 사이 보(洑) 건너기.


이 보를 건널 생각을 한 것은 용고개를 넘는 찻길(30번 국도로서 차량 통행이 많다)을 걷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처음 탐사하던 날, 때 아닌 겨울장마로 보가 넘치고 있어 건너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거의 직각으로 꺾이어 흐르는 남대천의 공격사면은 절벽이어서 길이 없다. 그 절벽에 나무데크를 놓아 길을 만들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다.

바로 그 지점의 보를 오늘 다시 보러 온 것.


(꽃 피울 준비가 되어가는 벚꽃망울...)

(1차 탐사 때 서 있었던 건너편 둑.)


지난 번 보았던 둑길의 반대쪽 둑에서 보았다. 수위는 낮아져 있고 물때나 이끼가 끼어있지도 않아 보 위를 걷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열 개의 ‘물꼬’가 다소 폭이 넓고 물살이 빨라 건너뛰는 데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실제 걷는 날 물이 넘친다면 용고개 국도길을 걸으면 된다.

이곳도 문제없음. 클리어.




세 번째 미션, 금강변길(잠두~굴암~율소~대소~도소) 일대.


'잠두강변길'이 느닷없는 ‘출입금지’ 현수막으로 탐사팀을 놀라게 했다. 

잠두마을을 휘감아도는 금강 바깥쪽 둑이 되는 길. 

작년 여름 벚꽃길 걷기 행사를 하던 때 차량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말뚝을 세운 것은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는 설마 사유지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현수막 문구, 해석 좀 해보세요.)


단지 임산물 채취를 금하는 정도라면 괜찮은데 아예 출입을 못하게 한다면 문제가 크다.


잠두마을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인데 옛 잠두교를 건너 시멘트계단으로 올라오지 않고 다른 길이 있는지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워낙 가파른 공격사면의 절벽이어서 길이 있기는 쉽지 않았다. 낚시꾼들이 다니던 길은 희미하게 있으나 이 역시 강변의 수면 가까이로 어느 정도까지만 나 있을 뿐 버스가 다니던 벼룻길 높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연두 : 37번 국도가 통과하는 신 잠두1교. 주황 : 난간이 없는 옛 잠두교.)


(잠두1교에서 옛 잠두교로 내려서는 시멘트 계단.)


(비탈 위로 올라가는 길은 없었습니다. 헉헉...)



얻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잠두마을이 있는 누에머리 같이 생긴 잠두반도(?)에 들어가 본 일이다. 

가파른 비탈의 산동네. 평평한 곳이라곤 손바닥만큼도 없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 이유가 뭐였을까.


마을 뒤쪽, 더욱 가파른 비탈을 올라가면 '잠두반도'의 목을 가로질러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금강의 상류로 넘어가는 고개가 나타나는데…


(연두색 봄빛이 완연한 강변의 나무들...)


(아래, 위 : 마을 뒤로 지나는 대전-통영 고속도로 아래를 빠져서 ...)


세상에, 고개 반대쪽 내리막길이 그렇게 급경사일 줄은 몰랐다. 

고갯마루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내려가는데 경사가 40도는 되어 보이고 몸이 그냥 내리꽂히는 듯하다.


이 고갯길은 잠두반도의 뿌리에 해당하는 곳의 바위능선을 넘어 금강상류 굴암리로 향하는 길과 연결된다. 바위능선을 쪼개어 낸 길인 셈이다. 


쓸쓸한 모래강변에 희미한 길이 있으나 굴암리까지 연결되지는 않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외길이 이어지는데 사유지라고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와서 살았다니. 

그런데 전주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몇 집인지 들어가 사는 모양이다.


(이런 곳을 넘어온 거예요.)


(화살표 : 굴암리 벚꽃길.)



나중에 알았지만 이 바위고갯길은 굴암리 벚꽃길을 걸을 때 강 건너편 모래사장(물놀이 객이 많다) 위로 보이던 바로 그 길이었던 것. 


다른 곳보다 비교적 물이 얕고 모래톱이 강 좌우 기슭에서 뻗어나온 좁은 목이어서, 혹시 굴암리로 건너가는 방법이 있는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서 궁리해보았지만 

캐터필러가 달린 중장비가 아니고서는 아무래도 건너기 어려웠다. 포기.


되돌아 나오면서 다시 바위 고개에 올라서서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 보았다.

시퍼런 강물이 발 아래 까마득 낮은 곳에 흐르고 있다. 아찔하다.


(각시바위?)



지금 발 디디고 서 있는 이곳은 여기보다 좀 더 상류, 부남면소재지 대소마을에서 이어지는 옛 농업용수로 길목의 '각시바위'를 닮았다. 그 각시바위는 아래로 터널이 뚫려 있는데…


아무튼 특이한 오지 한 군데를 들어가 본 셈이 되었다.


차로 잠두마을을 빠져나와 무금로(37번 국도)를 타고 굴암리를 향한다.

굴암리로 가는 길목 잠두반도 북쪽 끝에 해당하는 지점에 한 공원이 있으나 진입하기가 애매한 교통동선이어서 멈칫거리다가 포기하고 통과. 

이곳은 몇 번이나 그냥 지나치고만 있다. 국도를 가로지르는 오버브리지를 넘어 강변으로 내려가면 정자도 있고 경치가 좋을 것 같은 곳이건만.


잠두반도를 벗어나는 잠두2교 다릿목에서 레저업체들이 모여 있는 ‘잠두강변길’의 반대쪽 입구를 바라보았으나 이쪽에서는 ‘출입금지’ 현수막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굴암과 상굴암을 통과, 강변 국도길을 벗어나 금강을 건너 남쪽 산속을 향한다.


율소마을로 넘어가는 산길인데 매우 가파르고 좁다. 골짜기를 들어서자마자 길가로 쭉 이어져 있는 크지 않은 돌탑들이 탐사팀을 맞는다. 

‘용등폭포(정식이름인지?)’를 찾아내어 그 옆 비탈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이 골짜기 전체를 이렇게 가꾼 것이리라. 

작은 개울 위를 지나가는 작은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천장 삼아 다리 아래에 작은 집(방이라 해야 할지)을 붙여지어 놓기도 한 모습이 가히 ‘자연인’스럽다. 

몇 년 사이에 돌탑의 숫자는 더 늘어난 것 같고, 인공의 시설물들은 흘러간 세월만큼 낡아 있었다. 

높이 3미터 쯤의 예쁜 폭포와 그 아래의 작은 소(沼)와 바위틈을 흐르는 깨끗한 계류수만은 그대로였다.



이 골짜기 위에 또 하나의 고원분지 마을이 있어 꽤 넓은 터에 꽤 많은 가구가 농사짓고 산다. “이곳도 율소(밤소)마을에 속하는 곳일까” 생각하는데, 도로명 주소는 상굴암길과 율소길이 어지럽게 겹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깊은 골짜기의, 실개천이라 할 수밖에 없는 작은 하천에조차 하천둑 공사가 필요이상 화려하고 심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율소를 빠져나와 비교적 가구수가 많은 길가로 나오면 다소 엉뚱한 곳에 체육공원이 있다. 

이런 한적한 곳에 체육공원이 있으면 누가 와서 체육활동을 할 것인가 고개가 갸웃해지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몇 년 사이에 더욱 퇴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점은 주차하기 좋은 넓은 곳이어서 구간의 시작점 겸 종점으로 설정하였으나,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궁극적으로는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강 건너편 전북지방우정청 무주수련원 부근도 도로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대티마을 안을 가로지르는 길을 피하는 우회로 개설공사도 화려하고 필요이상 심하게 (작은 터널을 뚫으면서까지) 진행 중이다.


아직도 건설공사를 통해서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찻길이 사통팔달 하면 그것이 바로 농촌의 발전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주민의 생활이 불편하거나 위험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수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과잉이 아닐까?



유동마을을 지나 부남로를 달려 부남면소재지 대소마을에 도착,




네 번째 미션, 부남우체국장 만나기.


무주부남우체국은 별정직 공무원이 경영하는 이른바 '사설 우체국'이다.

최진만 우체국장이 “시골우체국의 빈 관사를 게스트 하우스 등으로 활용하도록 제공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걷는길 위에 숙박·음식 업소가 있는 것은 걷는 여행자들에게 매우 긴요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길의 활성도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지 못하는 민간으로서는 섣불리 업소를 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고민이 늘 있던 차에 마침 시의적절한 제안을 한 것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정병귀 국장이 최 국장에게 통화를 한 적이 있단다. 그 통화 이래 처음 만나는 자리.


나도 물론 처음 만나는 인물인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역시 깨어있는 분이었다.

우체국장 관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면사무소에 으레 있기 마련인 면장의 관사, 보건지소 소장의 관사 등등, 예전에는 필요하여 지었겠으나 지금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필요없이 된 지방관서장의 관사들이 많이 있는 것. 

이런 시설들을 대승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수익성이 불확실한 투자를 민간이 굳이 하지 않더라도 여행자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비교적 젊은 이런 분들의 의식이 농촌을 일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진장고원길이 개통하면 나도 함께 걸을 것이며, 여행자들에게 우체국 화장실도 개방할 것이고, <제1호 후원회원>이 될 것이고, 우체국을 무진장고원길 안내소로 활용해도 좋다”는 약속을 앞질러 해 주는 최진만 국장을 하직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곳 대소마을은 점심식사 장소로 내정 중인 곳이기도 하니 ‘완전’ 안성맞춤.

이로써 이 미션도 클리어했을 뿐 아니라 덤까지 얻어낸 셈이 되었다.


이런 주변 상황의 정지작업 또는 부대서비스의 사전 협의 등이 ‘걷는 노선의 획정’만큼이나 중요하다.


덤덜교를 건너 ‘덤들’을 가로질러 유평마을 앞 세월교를 건너면 다시 금강의 남쪽 둑이 된다.


섬소(도소)마을에 도착.


이 마을이 금강변 마실길의 시작점이다. 

커다란 안내판이 마을 가운데 서 있다. 이제 무진장고원길로 확장되면 이 안내판도 고쳐 만들어 세워야 한다.

마을은 비교적 넓고 비탈도 크게 심하지 않다.

마을회관 뿐 아니라 체험관과 숙박동 등 농촌마을 대상 사업의 결과물인 시설이 흔해서 무진장고원길의 걷는 여행자들이 출발점이나 식사 장소 등으로 이용하기에 아주 십상이다.


기존의 강변길은 둑 윗길로만 지정되어 있으나, 물이 적은 계절에는 당연히 둔치의 흙길을 걷는 것이 훨씬 낫다.



강 건너에 뚝섬 한 자락이 보인다. 또 하나의 잠수교를 건너 그 뚝섬으로 넘어가 보았다.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는 강의 한 갈래 한 갈래를 샛강이라 하고, 샛강 사이에 생긴 모래톱 땅을 뚝섬이라 한다. 한강의 뚝섬이나 여의도의 경우와 같다. 

그런데 이 섬소마을 앞 뚝섬은 하필 공격사면 가까이에 생겨난 섬으로 강물이 불으면 센 물살에 잠기기 일쑤였을 듯. 그래서 농사를 금하고 철수시켜 지금은 빈 땅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샛강을 건넌 자리에 작은 주차장 시설이 있으니 이건 또 웬일일까. 

예전에 쓰던 주차장일까? 

산 쪽으로 쑥 들어간 골짜기는 목사(木沙) 또는 목소(木所)골이라 한단다.


고즈넉하다.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물 건너에 집 한 채가 보인다. 배산임수의 자리임에 틀림없다. 물난리가 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먹고 살 일만 해결된다면 이런 곳에 집 하나 지어놓고 어지러운 세상 일 모른 체하고 살 수 있으련마는.

…이라는 도가(道家)적 생각이 현대에는 무용(無用)하다 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참여해야 세상이 바뀐다. 

숨어 살며 한 발 물러서서 혼자 고고한 척 하는 것은, 글쎄, 루저(loser)의식 아니면 극단적 이기주의의 표출이 아닐까? (필자 개인의 생각입니다.)



도소마을을 뒤로 하고 진안 용담면으로 귀환했다.

걷는 노선에 대한 세밀답사는 대강 마무리된 셈이다.




다섯 번째 미션, 용담댐 물문화관 점검.


이곳은 무진장고원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될 제 1의 후보지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기에도 주차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일 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도 큰 곳이기 때문이다. 

진안고원 신무산에서 발원한 금강 물이 이 저수지에 담겼다가 전라북도의 모든 도시에 공급된다. 뿐 아니라 만경강의 부족한 물을 보충하여 만경평야 넓은 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기도 한, 전라북도의 젖줄인 것.


물문화관 2층의 강당(전시실?)을 집회장소로 쓸 수 있을지 보려는 것이었는데, 이곳 역시 ‘코로나19’ 비상으로 용담댐관리사무소에 업무차 찾아오는 공식 내방객을 맞는 접견실로만 당분간 쓰고 있다 하여 우리는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면사무소 강당은 당연히 시설도 좋고 여러 사람이 모이기에 적합한 곳이지만 상징적 의미로는 용담댐 공원에 훨씬 못 미친다.



이로써 오늘의 다섯 가지 미션 중 네 가지를 달성하고 4시 30분에 진안읍으로 귀환하였다.

의외로 꽤 먼 거리를 움직였고, 꽤 긴 거리를 걷기도 한 적당한 피로감을 뿌듯하게 안고.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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