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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풍악도첩-백천교>이야기

작성자까치|작성시간08.11.10|조회수861 목록 댓글 1

 
 


겸재 정선은 34세에 처음 금강산에 다녀왔다. 이듬해 그린「풍악도첩」은 금강산의 감흥을 담아낸 대표적인 기록화이다. 모두 13첩의 편화와 1첩의 발문으로 구성됐으며, 겸재의 그림 중 최초로 연도를 정확히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내금강?외금강?해금강의 주요 명승의 인상적인 장면을 담아 금강산의 형세와 특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치 관광명소 가이드 역할의 홍보용 엽서모음집 같다. 특히 작품 <백천교>는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 중앙에 흰 모자를 쓴 인물이 재밌다. 교통경찰처럼 수신호로 이동방향을 안내하느라 분주하다. 자세히 보니 왼쪽 소나무 숲에도 챙이 넓은 흰색 모자를 쓴 몇 무리가 더 보인다. 군데군데 검은 갓을 쓴 이들은 양반네들이겠지만,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뭘까? 이들은 바로 승려들이다.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유점사(楡岾寺) 아래의 백천교(百川橋)는 가마를 타고 금강산을 유람한 양반들이 나귀로 갈아타고 돌아가는 환승구역이었다.
조선시대의 금강산 유람은 말 그대로 히트 관광상품이었다. 그러다보니 양반들을 가이드해 줄 인원 또한 많이 필요했다. 이 역할은 대개 승려들이 맡았다.
당시로선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가 홀대받았고, 마침 금강산에 인접해 사찰들이 많아 복잡한 지리를 안내하는데도 용이했을 것이다. 지금이야‘스님’들이 유람용 가마를 메는 가마꾼 겸 관광가이드에 나섰다는것이 상상이 안 가지만, 고깔 쓴‘가마꾼 스님’들은 그림에서처럼 당시의 시대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도 웬 종일 모셨던 양반네가 우측 하단에서 대기하던 하인들이 몰고 온 나귀 등에 올라타는 순간 끝나게 된다. 그래서일까?
백천교는 시름을 내려놓는 휴식의 공간이며, 새로운 귀로 여정의 시작점이다. 백천교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로 설렘의 장소였을것 같다.
전통 수묵화는 물에 채색하지 않는다. 다만 그 흐름의 방향을 연상시키는 선묘로 표현한다. 작품 <백천교>의 남다른 묘미 역시 그 유려한 물결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저 너머 계곡을 가르고 굽이굽이 흘러나오는 물살의 표현은 마치 쉬엄쉬엄 유랑에 나선 선비의 걸음걸이를닮았다

 

신묘년의「풍악도첩」이후 1734년 그린 <금강전도>는 아직도 금강산 그림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 보니 겸재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필법으로 그려낸
금강산 그림들은‘그림으로 구현한 금강산 지도’라 불릴 만큼 현장감이 넘친다. 겸재의 프로다운 기질은‘기행산수화(紀行山水畵)’의묘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줬다.
거의 실사에 가까운 사실감과 실황중계를 보는 듯한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는 그를 잘 뒷받침해 준다. 금강산의 형세와 특징에 따라 대각선 혹은 원형구도 등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배려한다. 미점(米點)과 피마(皮麻)준, 수직준 등의 다양한 준법을 혼용하여 지루함을 덜어내고 있다.
특히 각각의 대상은 지리적 특성이나 경물 고유의 특징을 크게 부각시켰으며, 주요 산봉우리에 명칭을 표시한다거나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한 대목에선
세심함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겸재가‘회화식 지도의 전통에 근거하여 마침내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정선화풍은 중국 화풍에 의존했던 기존 화단의 분위기에 견주어 볼 때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후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과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게 하는 기반이 된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화풍을 정립하기 전엔 중국풍 남종화를 많이 그렸다. 아마도 남종화법으로 조선의 나무와 바위, 산 등을 그리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담을 만한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갈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강한 농담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였다. 그렇지만 독창적인 겸재의 화풍은 아쉽게 후계자가 없어 결국 단절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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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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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현 | 작성시간 08.11.12 저도 금강산 유람을 해봤는데,, 설렘의 장소인 백천교를 못가봐서 안타깝습니다. 진즉에 올려주셨더라면 일행에서 탈출하여 직접 보고 올껄... 그랬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금강산에 머물고 있을지도.. ㅋㅋ,, 간 큰 소리...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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