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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부활(復活)

작성자강학사(강석광)|작성시간26.06.23|조회수76 목록 댓글 0

[단편소설]부활(復活)

 

                                                                                                         강학사

 

 

  2001년 3월의 시골 공기는 이 빠진 도끼날처럼 투박하고 무뎠다. 전라도 해변의 끄트머리, 행정구역상으로는 읍이라 불리지만 해만 지면 늑대 울음 같은 바람 소리만 가득한 이곳에 내 첫 발령지가 있었다. 전교생을 다 합쳐봐야 백여 명이 고작인, 운동장 잡초가 아이들 머리칼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는 대광중학교. 스물다섯의 나이, 군대를 막 제대하고 번듯한 브랜드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부임한 나는 이 고립된 왕국의 가장 하찮은 막내이자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강 선생, 오늘 체육관 매트 다 털어놓았나? 교육청에서 시설 점검 공문 독촉 오는데 그것 좀 미리 처리하고."

"강 선생, 이따 퇴근길에 읍내 농협 들러서 내 비료 보조금 신청서 좀 대신 내고 와 주게."

 

체육 교사라는 직함은 허울에 불과했다. 나는 학교라는 거대한 기계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도록 온갖 잡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가장 작은 톱니바퀴였다. 전체 교직원 스물 한 명 중 남교사가 스무 명. 군대 내무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압도적인 남초(男超) 사회에서, 서열의 끝자리에 선 신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 전략은 그저 입을 닫고 다리를 빨리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어떻게든 눈밖에 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내게, 교무실은 매일이 거대한 시험대 같았다.

 

 

하지만 오월이 가고 텁텁한 6월의 지열이 운동장을 달구기 시작할 무렵부터 교무실의 공기가 묘하게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4교시 종료를 알리는 아날로그 종소리가 찌르르 울리면, 평소 같으면 식판을 들고 급식실로 향해야 할 부장 교사들이 교무실 안쪽에서 비밀 결사대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임 선생의 책상 주위로 모여들어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교감 선생을 필두로 한 스무 명의 남교사 전체가 마치 거대한 음모를 꾸미듯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텅 빈 급식실에 홀로 앉아 식판 위에서 식어가는 허연 무국과 눅눅한 제육볶음을 마주할 때마다, 소외감이라는 날카로운 바늘이 목구멍을 깊숙이 찔렀다. '내가 무얼 잘못했는가.' 스물다섯의 설익은 자존심은 밤마다 관사의 낡은 싱크대 앞에서 소주를 들이켜며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체육과라서 무시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알아채지 못한 어떤 결격 사유가 교무실 주류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를 밀어낸 것인가.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만족스러운 뱃구레를 두드리며 돌아오는 선배 교사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배신감과 서러움이 뒤섞인 모래알 같은 감정이 차올랐다. 그 울타리에 끼지 못하면 평생 이 학교에서 유령처럼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진실은 언제나 사소한 틈새로 찾아온다. 어느 목요일 오후, 행정실 숙직실 너머 낡은 소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우던 길이었다. 열린 창문 틈으로 주임 선생들의 걸걸하고 기름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늘 그 집 수육은 진짜 진국이데. 껍데기가 야들야들하니 씹을 것도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삼복더위 전에는 영양탕을 먹어줘야 버틴다니까요. 땀 한 바가지 쏟고 나니 속이 다 뜨끈합니다."

 

보신탕. 개고기. 그 순간 내 머릿속의 퍼즐이 잔인할 정도로 완벽하게 맞춰졌다. 그 은밀한 오찬의 메뉴는 다름 아닌 개였다. 요즘 도시에서 자란 젊은 애들은 그런 음식을 못 먹을 테니, 괜히 데려가서 분위기 깨느니 자기들끼리 편하게 먹고 오자는 지극히 '시골 교무실다운' 배려이자 소외였던 것이다. 오해가 풀렸음에도 가슴속의 응어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못 먹을 것이라 지레짐작당해 거대한 공동체의 울타리 밖으로 튕겨 나간 기분은 여전히 씁쓸했다. 나는 개고기를 구경한 적도 없었고 딱히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나만 빼놓고'라는 그 명징한 다섯 글자였다.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라면 내 식성이나 취향 따위는 얼마든지 고쳐 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회는 소리 없이 찾아왔다. 매미 소리가 기승을 부리던 유독 후덥지근한 금요일 오전이었다. 내 맞은편 자리이자 교직 경력으로 바로 한 기수 위인 강원도 출신의 박 선생이 슬그머니 내 책상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왔다.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강 선생, 자네…… 혹시 보신탕 먹을 줄 아나?"

교무실의 모든 소음이 순간적으로 소거된 것 같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붉은 국물 속에 담긴 짐승의 살점에 대한 거부감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여기서 "저 그런 거 못 먹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 학교를 떠나는 날까지 영원한 '이방인'이자 '요즘 젊은 애'로 분류되어 혼자 식판을 비워야 할 터였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최대한 덤덤하고 호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박 선배님. 저는 가리는 음식 없습니다. 아직 제대로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막상 먹어보면 아주 맛있을 것 같습니다. 저 고기라면 다 좋아합니다."

내 대답에 박 선생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라? 그래? 거 봐, 내가 강 선생은 덩치도 좋고 서글서글해서 잘 먹을 거라 그랬잖아! 잘됐네, 오늘 교감 선생님이 쏘시는 날이니까 4교시 끝나고 내 차로 같이 가자고."

박 선생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돌아섰다.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을 때, 내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소외의 울타리를 부수었다는 해방감도 잠시, 1시간 뒤면 내 생애 첫 붉은 살점과 대면해야 한다는 현실이 엄습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그 견고한 남성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기꺼이 숟가락을 들 준비를 해야만 했다.

예상과 달리 첫 경험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묘한 안도감에 가까웠다. 들깨가루와 깻잎 향이 코를 찌르는 뚝배기 속에서 고기 한 점을 건져 양념장에 찍어 넣었을 때, 혀끝에 닿는 식감은 오래 고은 소고기 사태처럼 부드럽고 쫄깃했다.

"어라, 강 선생 진짜 복스럽게 먹네? 거 봐, 안 데려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교감 선생님, 이 녀석 고기 건져 먹는 속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체육과는 역시 다르네요."

선배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뚝배기 바닥까지 박박 긁어 비웠다. 소외당하지 않기 위한 거짓 연기가 진짜 식욕이자 생존의 문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교사들의 비밀스러운 회동에 당당히 끼어들게 되었고, 교무실에서의 내 입지 역시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이 2500원 하던 2001년 시절, 한 그릇에 만 원을 호가하는 영양탕은 시골 학교 교사들의 얇은 봉급으로 매번 감당하기엔 사치스러운 메뉴였다. 네 번째 식당을 찾았을 때, 선배들의 대화 속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 고기는 참 좋은데, 솔직히 지갑이 후들거려서 자주 못 오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친목회비도 바닥이 나 가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요?"

다들 입맛만 다시며 숟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무리를 주도하던 주임 선생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어이, 강 선생. 자네 지금 펜싱부 합숙소 옆 관사에서 살지?" "예? 예, 그렇습니다만."

나는 이 학교의 유일한 운동부인 펜싱부의 감독 교사였다.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대회 성적을 내기 위해 나는 밤낮없이 학교에 묶여 있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내 출퇴근도 없이 합숙소 옆에 붙은 한 칸짜리 총각 관사에서 홀로 생활하는 처지였다.

주임 선생의 눈에 음흉한 생기가 돌았다.

"교감 선생님, 아주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우리 친목회비에서 딱 오천 원만 빼서 내일 읍내 장날에 강아지 한 마리 사 오는 거 어떻습니까? 어차피 강 선생은 밤낮으로 학교에 상주하니까 밥 주고 물 주면서 키우기 딱 좋잖아요. 사료값 들 걱정도 없습니다. 급식실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잔반, 그거 짬통 하나 얻어다가 먹이면 돈 한 푼 안 들고 금방 큽니다. 그렇게 가을쯤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우리가 직접 해결하는 거죠."

교무실의 공기가 일순간에 번뜩였다. 비용을 아끼면서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지극히 시골 학교다운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게다가 텅 빈 학교에서 밤마다 적적해할 총각 막내에게 말동무를 만들어주는 것이니 서로 좋은 일이라는 명분까지 더해졌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저녁 8시만 되면 인적 하나 없이 암흑으로 변하는 시골 관사에서 라디오 소리에 의지해 밤을 보내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나는 선배들에게 확실한 식구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선배님들. 제가 정성껏 한번 키워보겠습니다. 잔반 나르는 거야 체육 선생 전공 아닙니까."

내 호탕한 승낙에 교무실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주임 선생은 즉시 지갑을 열어 빳빳한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좋아! 내일 퇴근길에 장터 들러서 제일 뼈대 굵고 짱짱한 놈으로 골라와 봐, 강 선생!"

내 손에 쥐어진 오천 원짜리 지폐. 그것은 앞으로 내 관사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기묘한 계약서였다. 나는 그 지폐를 주머니 깊숙이 넣으며, 내일 만날 녀석의 모습을 상상했다. 무조건 많이 먹고 빨리 자랄 만한, 살집 좋은 녀석으로 골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음 날 읍내 장터의 허름한 철장 안에서 나는 유독 다리가 굵고 눈망울이 영악해 보이는 황구 한 마리를 골랐다. 오천 원을 치르고 품에 안았을 때, 녀석은 제 운명도 모른 채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내 턱을 핥아댔다. 이름은 단순하게 '쫑이'라고 지었다. 키우다가 언젠가 쫑날 녀석이란 뜻이다.

쫑이는 시골 똥개 특유의 무시무시한 생명력으로 자라났다. 급식실 조리사 아주머니들이 고기 찌꺼기와 흰쌀밥을 듬뿍 담아준 잔반통을 가져다주면, 녀석은 코를 박고 순식간에 해치웠다. 인간이 먹다 버린 찌꺼기를 먹고 다시 인간의 영양분이 되기 위해 살을 찌우는 존재. 몇 달 만에 녀석의 털에는 기름진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다리에는 말 근육 같은 탄탄한 살집이 붙었다.

 

그런 쫑이를 나보다 더 반긴 것은 펜싱부 아이들이었다. 전국 대회 성적을 내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을 흘리며 칼을 찌르던 열 명의 시골 아이들. 사춘기의 한가운데에서 부모와 떨어져 삭막한 합숙소 생활을 버텨내던 아이들에게 쫑이는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주전 에이스인 민우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늘 기가 죽어 있고 훈련 중에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였는데, 쫑이가 오고 나서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먹는 급식의 잔반이 이 개를 살찌우고, 그 살집이 결국 선생들의 식탁에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쫑아! 일로 와!"

훈련이 끝나고 아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으면, 쫑이는 귀신같이 알고 달려가 아이들의 땀 범벅이 된 얼굴을 핥았다. 민우는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쫑이를 보듬고 얼굴을 비벼댔다. 고된 훈련의 피로도, 어린 나이에 느끼는 고독감도 쫑이의 부드러운 털 속에서 녹아내렸다.

나중에는 체력 훈련 삼아 학교 뒤편 산길을 뛸 때도 쫑이를 데리고 다녔다.

"쫑이보다 늦게 올라오는 놈은 오늘 야간 훈련 두 배다!"

내 호령에 아이들은 악을 쓰며 달렸고, 쫑이는 그 탄탄한 다리로 아이들 앞을 알짱거리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녀석과 함께라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산악 훈련도 아이들에겐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녀석의 성장은 곧 우리 모두의 기쁨이자, 언젠가 찾아올 이별의 기한을 앞당기는 시계추였다.

 

하지만 너무 자유롭게, 그리고 너무 튼튼하게 키운 것이 화근이었다. 녀석이 청년 개의 체구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과 함께 산과 들을 제집 안마당처럼 뛰어다니며 자란 탓인지, 쫑이는 유독 울타리 밖을 갈망했다. 관사 앞마당에 묶어두는 게 안쓰러워 줄을 풀어놓고 키웠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외출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점심때쯤 슬그머니 돌아오더니, 어느 날은 밤새 소식이 없다가 다음 날 아침에 꼬질꼬질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선배 교사들은 "강 선생 개가 바람이 났나 보다"라며 허허 웃어넘겼다. 하지만 녀석의 배짱은 갈수록 두둑해졌다. 이틀, 사흘…… 급기야 어느 날 아침 나간 쫑이는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이 채워지던 날,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감독님, 우리 쫑이 어디 간 거예요? 혹시 나쁜 사람들이 잡아간 거 아니요?"

민우를 비롯한 합숙소 아이들은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눈물을 흘렸다. 쫑이가 사라진 합숙소는 다시 예전의 삭막한 감옥으로 돌아갔다. 동네 구석구석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지만 털 한 터럭도 보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교무실의 시선이었다. 친목회비 오천 원을 투자해 확실한 보시를 기대하고 있던 남선생님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강 선생, 개를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 지경을 만들어? 덩치만 키워서 남 좋은 일 시킨 거 아냐?" "그러게 말이야. 동네 건강원에서 채 간 거 아니야? 강 선생이 너무 안일했어."

주임 선생과 선배들의 핀잔이 빗발쳤다. 나를 식구로 묶어주던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나는 순식간에 '일 처리 못 하는 어리숙한 막내'로 전락해 버렸다. 잃어버린 쫑이에 대한 걱정과 선배들의 눈총, 그리고 아이들의 눈물까지. 스물다섯 신규 교사가 감당하기엔 학교 생활 전체가 거대한 가시방석처럼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교무실의 구박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학교 바로 옆에 붙은 대궐 같은 기와집에서 구원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집은 우리 학교 교직원들의 ‘공식 사랑방’이자, 이 동네의 절대 권력인 학교 운영위원장님의 댁이었다.

위원장님은 지역 토박이 유지이자 무려 농협 조합장이셨고, 사모님은 읍내 우체국장님이셨다. 시골 동네에서 조합장과 우체국장 부부라니, 그야말로 지역의 부와 권력을 꽉 잡고 있는 엄청난 집안이었다. 게다가 그 집에는 우리 학교에 다니는 연년생 남매가 있었는데, 전교 1, 2등을 도맡아 하며 무려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수재들이었다.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이니만큼 위원장님 부부의 학교 사랑과 교사들에 대한 대접은 지극정성이었다.

"어이, 강 선생도 이리로 와! 오늘 조합장님 댁 마당에서 숯불 피운다니까 다들 넘어오래!"

특히 남선생님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그집 마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위원장님은 두툼한 삼겹살에 소주를 아낌없이 내왔고, 평상에 둘러앉은 선배 교사들은 고기 냄새를 맡으며 학교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스물다섯 막내인 나에게도 그 자리는 긴장을 풀고 시골 정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대피소 같았다.

그런데 그 대단한 집안에는 아주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명물이 하나 있었다. 그 집에서 자식만큼이나 애지중지 키우는 반려동물이었는데, 개도 고양이도 아닌 무려 ‘토끼’였다.

그냥 토끼가 아니었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이 매력적인 ‘앙고라 토끼’라고 했다. 거의 웬만한 소형견이나 뚱뚱한 고양이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대 토끼였다. 더 기가 막힌 건 사모님의 지극한 사랑 덕에 이 토끼가 입고 있는 '옷'이었다.

"아이구, 우리 김 비서! 오늘 손님들 오시니까 멋진 옷 입었네?"

사모님이 부르는 토끼의 이름은 무려 '김 비서'였다. 이름에 걸맞게 녀석은 정장 슈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그냥 대충 걸친 옷이 아니었다. 안에는 빳빳하게 깃이 선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겉에는 정교하게 재단된 검은색 슈트 재킷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 사람 손바닥만 한 정장을 입은 거대 토끼라니, 처음 봤을 때는 내 눈을 의심하며 헛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기이한 노릇이었다. 똑같은 동물의 목숨이건만, 내 관사 마당의 개는 짬통의 쓰레기를 먹으며 언제 탕국에 들어갈지 모르는 운명이었고, 이 집의 토끼는 명품 슈트를 입고 '김 비서'라는 직함으로 대우받았다. 누구의 울타리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대접이 이토록 달랐다.

하지만 진짜 신기한 점은 녀석의 행동이었다. 남선생님들이 평상에 앉아 한창 목청을 높여 지역 정치나 학교 행정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이 '김 비서'가 슬그머니 다가와 평상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마치 부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막내 교사처럼, 아주 경건하고 얌전하게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번 교육청 공문이 말이야……."

주임 선생님이 침을 튀기며 말하면, 김 비서는 그 큰 귀를 쫑긋거리며 이야기하는 사람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동자를 굴리며 이 사람 한 번, 저 사람 한 번 번갈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꼭 대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중간에서 회의록이라도 작성하는 비서 같았다.

"거 봐, 우리 김 비서도 내 말이 맞다고 고개 끄덕이잖아!"

선배 교사들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녀석의 몰입도는 대단했다. 워낙 위원장님 부부가 녀석을 귀한 자식처럼 대접하기도 했고, 사람 뺨치는 녀석의 묵직한 태도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우리 선생님들도 녀석을 감히 '일개 가축'으로 보지 못했다. 고기를 먹다가도 김 비서가 슈트 옷자락을 펄럭이며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상전 대하듯 조심스럽게 상추 한 장을 바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토끼라는 생명체 앞에 자발적으로 굴종하고 있는듯 했다.

 

 

쫑이가 사라진 지 삼 주째 되던 날, 교무실에 다시금 친목회 결의가 모였다. 지나간 개는 잊고 새로운 녀석을 사 오자는 의견이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내 손에 다시 오천 원짜리 지폐가 쥐어졌다.

"강 선생, 이번엔 진짜 제대로 키워야 하네. 지난번처럼 훌쩍 나가버리게 두면 안 돼." "걱정 마십시오, 선배님들! 이번에는 절대 풀어놓지 않겠습니다. 산책할 때도 무조건 목줄을 채우고, 튼튼하게 말뚝 박아서 묶어 키우겠습니다!"

그렇게 데려온 녀석이 바로 '투종이'였다. 쫑이보다 선이 굵고 눈망울이 순한 황구였다. 투종이 역시 시골 똥개의 축복받은 유전자를 증명하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녀석은 이전의 쫑이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펜싱부 아이들과 나에게 커다란 기쁨이자 위안이었다.

하지만 평화가 깊어질 무렵,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교무실이나 교육청 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이 자꾸만 투종이의 목줄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묶여 있는 투종이의 눈빛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는 게 아이들의 핑계였다. 특히 민우는 투종이가 쇠사슬에 묶여 낑낑거릴 때마다 제 처지라도 투영하는 양 눈시울을 붉혔다. 따끔하게 혼을 내고 으름장을 놓아도, 아이들은 내가 안 보는 틈을 타 슬그머니 줄을 풀어주곤 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안일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투종이는 전임자였던 쫑이와 달랐기 때문이다. 줄을 풀어놓아도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훈련할 때는 체육관 문앞에 얌전하게 엎드려 기다렸고, 기껏 돌아다녀 봐야 학교 옆 조합장님 댁 마당에서 '김 비서'가 상추 씹는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하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멀리 나가지 않고 늘 내 시야에 머무는 투종이를 보며 나는 안심했다. 묶인 개가 울타리 너머의 상전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아슬아슬한 대치 상태를 나는 평화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6개월, 7개월이 흘렀다. 투종이는 이제 멀리서 보면 늑대처럼 늠름하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선배 교사들이 교무실 창문 너머로 녀석을 바라보며 침을 다실 만큼 완벽한 상태가 되었다. 드디어 내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나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방심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법이었다. 유독 안개가 자욱하게 꼈던 어느 날 아침. 관사 문을 열고 투종이의 밥그릇을 챙기는데, 녀석의 집 주변이 묘하게 고요했다. 늘 나를 보며 쇠사슬 소리를 요란하게 내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제 저녁에 또 줄을 풀어줬던 모양인데, 있어야 할 자리에 투종이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도, 야간 훈련이 끝날 때까지도 투종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더니 결국 보름이 넘어가도록 투종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 속은 그야말로 새까맣게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어 흩어질 지경이었다. 두 번이나 개를 잃어버린 무능한 막내 교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교무실 선배들에게 어떤 눈총을 받을지, 그 무시무시한 후폭풍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온 동네 건강원과 개소주 집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으나 허사였다.

 

 

투종이가 사라진 지 삼 주째 되던 날이었다. 여전히 녀석의 소식은 없었고, 학교 분위기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처진 어깨를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분위기도 바꿀 겸 아이들을 이끌고 오랜만에 학교 뒤편 산악 훈련 코스로 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 산 중턱 즈음이었을까.

"스슥…… 바스락, 끄응……."

수풀 너머 저 멀리 숲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짐승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너희들 먼저 대열 맞춰서 빠르게 하산해. 감독님이 확인하고 갈 테니까,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아이들을 먼저 학교 쪽으로 내려보낸 뒤, 나는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난 수풀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나뭇가지를 헤치며 "누구야?" 하고 외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WAL! WALWAL!"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털 뭉치 하나가 숲 저편에서 나를 향해 맹렬하게 뛰어왔다. 투종이였다!

"어이구, 투종이 너 이 자식!"

삼 주 동안 생사조차 몰라 속을 태우던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자 반가움과 감격에 겨워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나는 달려오는 투종이를 향해 팔을 벌려 녀석을 와락 껴안았다.

그런데 품에 안긴 투종이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온몸에 진흙과 먼지가 떡이 되어 있었고, 털 사이사이에는 가시덤불과 낙엽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마치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거칠게 땅이라도 파헤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집 놔두고 왜 이 고생을…… 어? 근데 입에 문 게 뭐냐?"

내 품에서 꼬리를 세차게 흔들던 투종이의 주둥이를 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녀석의 입에는 큼지막하고 하얀 덩어리 하나가 물려 있었다. 투종이는 마치 주인에게 사냥 전과를 자랑하려는 진돗개처럼, 내 발 앞에 그 뭉치를 '툭' 하고 내려놓았다.

토끼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토끼. '아, 이 자식이 산속을 떠돌다가 사냥 본능이 깨어나서 산토끼를 잡아 왔구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체육과 개답게 수렵 실력도 보통이 아니라며 기특해하려던 찰나, 토끼의 형상을 자세히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눈앞의 풍경이 비현실적인 정물화처럼 굳어버렸다.

"어……? 어어? 이, 이게 왜……?!"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인가. 투종이가 물어온 거대한 토끼의 몸뚱이에는 흙먼지와 진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빛바랜 검은색 천 조각이 걸쳐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정교하게 재단된 작은 정장 재킷이었고, 흙더미 속에서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하얀 와이셔츠 깃이 삐져나와 있었다.

조합장님 댁의 금지옥엽, 경청의 대가, 슈트 입은 토끼 '김 비서'가 틀림없었다.

김 비서는 투종이의 거친 사냥에 당한 것인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미동도 없이 굳어 있었다. 빳빳하던 정장은 여기저기 찢어져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그 고결하던 하얀 털은 진흙 범벅이 되어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다 못해 우주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이 녀석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건 얌전해서가 아니었다. 학교 옆 조합장님 댁의 김 비서를 호시탐탐 노리며 사냥꾼의 본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입혀놓은 위선적인 정장을 찢어 발기기 위해, 마당의 개가 산으로 먹잇감을 물고 도망쳐 삼 주 동안 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이제야 전리품을 나에게 들고 온 것이었다.

농협 조합장과 우체국장 부부의 자식 같은 반려동물이자, 과학고 지망생 남매의 소중한 친구, 그리고 학교 남선생님들의 사랑방 상전이었던 김 비서를…… 내 개가 물어 죽였다.

"투종이 이 미친 자식아…… 너 지금 누구를 잡아 온 거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반가움은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공포로 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내 교직 생활은 끝이었다. 선배 교사들의 구박 정도가 아니라, 지역 유지인 조합장님 댁과의 전면전이자 학교 전체가 뒤집어질 초대형 대참사였다.

산속의 적막 속에서 내 머릿속은 맹렬하게 회전했다. 하늘이 노랗다 못해 캄캄했다. 분명 그 집에서는 토끼가 사라졌다고 동네방네 난리가 났을 터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식은땀을 흘리던 나는, 공포와 당혹감에 눈이 멀어 그만 이성이 마비된 최악의 계획을 떠올리고 말았다.

‘일단…… 일단 깨끗하게 씻겨서 제자리에 돌려놓자.’

무슨 귀신에 홀린 생각이었을까. 죽은 토끼를 깊은 산에 묻는 대신, 마치 집 안에서 조용히 자다가 급사한 것처럼 꾸며서 돌려보내면 내 죄는 묻힐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나는 더 황당한 연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관사로 달려가 주방 세제와 칫솔, 수건을 챙겼다. 그리고 투종이를 관사 마당에 단단히 묶어 둔 채, 김 비서의 사체를 안고 학교 뒤 외진 시냇가로 향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마치 내 심장 박동처럼 가쁘게 울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죽은 김 비서의 몸을 차가운 시냇물에 적셨다. 2001년 당시 새로 나온 레몬 향 주방 세제를 칫솔에 묻혀 녀석의 하얗던 털과 찢어진 정장 슈트를 팍팍 문지르기 시작했다. 거품이 일 때마다 굳어 있던 진흙 덩어리와 정체 모를 자국들이 씻겨 내려갔다.

"제발…… 제발 티만 나지 마라……."

내 입술은 바르르 떨렸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을 찔렀다. 칫솔로 털 사이에 낀 미세한 흙모래를 긁어내고, 맑은 물에 서너 번을 헹구어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요즘 세제의 세척력은 과연 대단했다. 차갑게 굳어버린 것을 제외하면, 김 비서는 다시 예전의 품격 넘치던 하얗고 빳빳한 정장 차림으로 돌아와 있었다. 상큼한 레몬 향까지 풍기면서. 죽음의 흔적마저 화학 거품으로 지워버리는 이 기만적인 행위야말로 내가 배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나는 사방을 살피며 숨을 죽이고 조합장님 댁으로 향했다. 다행히 위원장님 부부의 퇴근 전이라 집안은 적막했다. 담벼락을 넘어 김 비서가 평소 거처하던 녀석 전용 방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녀석이 평소 자던 침구 위에 얌전하게 눕힌 뒤, 포근한 이불을 목까지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투종이 너, 절대 입 뻥긋하면 안 된다."

관사 로 돌아온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초조함으로 조합장님 댁의 동태를 살폈다.

시간이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학원에 간 아이들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각, 먼저 농협 조합장인 운영위원장님의 차가 마당으로 들어섰고, 얼마 뒤 우체국장 사모님의 차가 도착했다.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고요하던 시골 마을의 상공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악ㅡ!!!"

사모님의 목소리였다. 비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고래고래 지르는 악에 받친 소리로 이어졌다.

"이건 복수야! 이건 우리 가문에 대한 원한이라고! 어떤 천벌 받을 놈이 우리 김 비서한테 이런 짓을 한 거야?!"

교무실에 남아 있던 선배 교사들과 관사에 있던 나까지, 학교에 있던 모든 사람이 혼비백산하여 조합장님 댁으로 뛰어갔다. 나 역시 속으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들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위원장님이 사모님의 어깨를 붙잡으며 내뱉은 서글픈 통곡은 내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여보, 진정해…… 성공한 삶 뒤엔 늘 이런 시기하는 무리가 꼬이는 법이야.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요?! 어떤 천벌 받을 놈이 우리 김 비서를 무덤에서 꺼내다가 여기다 눕혀놓냔 말이에요?!"

무덤? 꺼내다니?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위원장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나는 숨겨져 있던 거대한 반전의 조각들을 맞춰나갔다.

사실 김 비서는 며칠 전부터 이름 모를 호흡기 바이러스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위원장님 부부는 서울의 큰 대학병원까지 원정을 갔지만 결국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사흘 전 김 비서는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부부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게 하려고 이틀 전 밤, 아무도 모르게 학교 뒤편 깊은 산속에 녀석을 묻어주고 정성껏 장례까지 치러주었던 것이었다.

그랬다. 내 개 투종이가 산에서 사냥해 온 것은 살아있는 김 비서가 아니었다. 삼 주 만에 돌아온 투종이는 사냥 본능이 아니라 무덤을 파헤치는 기묘한 집착이 깨어났던 것인지, 이미 땅에 묻혀 있던 김 비서의 무덤을 파헤쳐 사체를 꺼내 온 것이었다. 투종이는 인간들이 입혀놓은 그 위선적인 옷을 입은 토끼를 땅속에서 다시 꺼내어, 사람들의 세상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무덤에서 파헤쳐져 흙투성이가 된 시체를 가져다가 주방 세제로 깨끗하게 세탁한 뒤, 다시 그 집 안방 침대에 정성스럽게 이불까지 덮어놓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사모님의 절규는 이내 기묘한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독실하게 성당에 나가 성모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우체국장 사모님은, 향기로운 레몬 세제 냄새를 풍기며 하얀 털에 진흙 한 톨 묻지 않은 채 누워 있는 김 비서의 사체를 하늘의 계시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기적이에요. 부활한 거라고요! 우리 김 비서가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집으로 걸어 들어온 거예요!"

사모님은 무릎을 꿇고 김 비서의 싸늘한 앞발을 잡은 채 찬송가를 흐느끼며 부르기 시작했다. 분명 제 손으로 땅에 묻었던 피조물이, 빳빳하게 세탁된 정장을 입고 천상의 향기를 풍기며 제 침대에 돌아와 이불까지 덮고 누워 있으니, 그것은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 오직 신만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이자 부활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다. 위원장님 역시 이 해괴하고 초자연적인 광경 앞에 압도되어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통곡하며 찬미하는 부부와 공포에 떠는 선배 교사들 사이에서, 나는 서늘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 기이한 세계는 진실이 밝혀질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사실 제 개가 무덤을 팠고 제가 세제로 빨아왔습니다"라는 진실을 말한다면, 그것은 이 가련한 신자들의 위안을 짓밟는 가장 잔인한 짓이 될 터였다.

진실을 영원히 매장하고, '김 비서의 성스러운 부활'이라는 허무맹랑한 기적을 믿기로 타협할 때, 조합장 부부는 종교적인 구원으로 슬픔을 치유받고, 학교는 평화를 되찾으며, 나 역시 구원을 받는다. 진실은 파멸을 부르고, 새빨간 거짓말과 위장된 신앙이 공동체를 구원한다는 이 지독한 역설이야말로 이 세상이 돌아가는 진짜 법령이었다.

나는 방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사모님을 도와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거룩한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참으로 하늘의 뜻입니다."

내 정체를 완벽하게 위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미스터리한 '김 비서 부활 사건'은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스러운 괴담으로 남게 되었고, 김 비서는 이번엔 다시는 걸어 나오지 못하도록 더 깊은 곳에 콘크리트까지 쳐서 단단히 안치되었다. 인간들은 끝내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콘크리트로 기적을 굳히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내 관사 마당에서, 삼 주 만에 돌아와 다시 든든한 쇠사슬 목줄에 묶인 투종이는 나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녀석의 눈빛은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감독님, 인간들이 만든 신과 기적이라는 건 참으로 편리한 세탁법이네요.'

나는 녀석에게 잔반 가득한 밥그릇을 밀어주며, 이 기묘한 비밀을 평생 내 영혼의 무덤까지 가져가겠노라 다짐했다. 2001년 뜨거웠던 여름날, 스물다섯 신규 체육 교사의 좌충우돌 시골 학교 적응기는 그렇게 누구도 믿지 못할 기묘하고도 서늘한 괴담 한 편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었다. 밤바람을 타고 조합장님 댁에서 흘러나오는 사모님의 나직한 기도 소리가, 내 관사 마당에 묶인 투종이의 나른한 하품 소리와 기묘한 화음을 이루며, 거짓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시골 학교의 평화롭고도 거룩한 밤을 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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