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조병현(진도송현)작성시간10.11.07
한때는 유배온 사램덜이 하도 만해가꼬 진도 백성덜이 당최 못 살겄다고 군수가 임금님께 상소까장 올린 기록이 있을 정도로 무쟈게 만한 분덜이 진도로 귀양오셰가꼬 모든 생활 문화에 겁나게 만한 영향을 끼쳤겄지라? 그랑께 진도말도 육지짝 목포 무안 광주 말보담도 표준말하고 같응것이 더 만하고 말투(억양)도 그래람짜.
작성자봉암 박영일작성시간10.05.19
소재 노수신(蘇齋 虜守愼)의 유배지가 혹 봉암마을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봉암 서원’을 열어 후학을 가르쳤다니, 그 봉암마을에 유배지의 흔적이 있으며, 유배객이 계시는 동안 군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인사차 왔다는 전래까지 있으며, 유배객이 머물던 바로 그 터가 봉암마을 우리 집 근처에 있어 그 곳이 바로 그 곳 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지금으로 부터 460여년전 명종 2년에 나룻배에 실려 제일 먼저 도착지가 접도였다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