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함 빠진 놈1◇
월강 아릿동네에 화투장 뒷면까지 볼 수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옥천이 아배가 있었는데 집에
가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행방이 묘연하였다 이따금 먼 발치로 얼굴 찡그
리면서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꼬맹이 시절 왼쪽 다리가 아파 절룩거리며 다니는
옥천이 형과 친하게 지내서 그 집에 자주 가서 함께 놀았다. 옥천이 엄매도 우리 엄매하고 잘
지내 우리집에 수시로 와서 마음속 얘기하기도 하고 세상살이 어려운 일을 의논하곤 했다. 어
느 날 옥천이 엄매가 우리집에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제미있게 하고 있는데 나는 뜬금없이
옥천이 엄매한테 한마디 던졌다.
"옥천네는 좋은 아들 하나도 없지라!"
우리 엄매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
"옥천이 있잖아"
"다리 아픈 사람이 좋은 아들이야"
맹랑하게 말하니 옥천이 엄매 웃으면서,
"그래 좋은 아들 없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옥천이 엄매 옥천이 형 다리를 아물지 않아 절룩거리면서 다니는
모습을 보는 쓰라린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실없는 말만 지껄였으니 정말 나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인 분함 빠진 놈이었다. 분함 빠진 놈이란 전라도 보배섬 군내 소재 주변 마을에서 통용
되는 말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 남자를 일컫는
다. 지금은 옥천네 아배 엄매 옥천이 형 모두 도라지 꽃이 좋아 황혼의 어스름이 내릴 때 서산
으로 여행 떠났지만 고진하고 심덕좋은 그분들의 영상이 기억 저편에 살뜰하게 남아 맑은 샘
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분들을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