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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의 설교

[스크랩]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시75:3-6)

작성자호산나|작성시간26.06.05|조회수23 목록 댓글 0

75편 3절-6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셀라)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찌어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3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셀라).’ 땅의 기둥을 누가 세웠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세웠다.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셀라).’ 첫째는 세상만물이 창조되어 섭리 보존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설정된 대로 되는 거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물질이나 사건 환경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 땅의 제일 큰 기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그리스도가 없으면 세상은 없는 거다.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인간 자기가 있는 것이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앙의 원리원칙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사람들은 늘 자기 기준으로 해석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있은 후에 인간이 있는 것이지 인간 자기가 하나님을 만든 게 아니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원리가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이, 진리가 없이 사는 인간은 개나 돼지가 그저 밥을 먹으며 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용물밖에 안 되는 거다.

 

내가 말씀을 가까이 하면 모든 세상이 이 사람을 위주로 움직인다. 하나님의 이 역사가 워낙 광범위해서 자기는 잘 못 느끼겠지만 성경을 통해서 보면 자기의 위치, 신분, 신앙의 본질을 바로 잡아 나갈 때 자기가 귀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을 받게 된다. 안 그러면 인간은 가치가 없다. 그래서 심판이 있는 거다.

 

두 번째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신앙의 성도들이 없으면 세상만물이 있을 목적이 없어진다. 세상만물은 진리성도들에게 쓰임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이 땅에서 성도가 없어지면 세상을 불태워버린다. 이것을 바꿔서 말을 하면 세상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누구 덕이냐? 성도들 덕이다.

 

요셉의 말을 듣는 바로 왕도, 바로의 백성들도 요셉의 혜택을 봤다. 그러니 애굽인들은 요셉을 위해 줄 줄 알아야 한다. 만일 요셉을 굶겨놓는다면 애굽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 곳에는 요셉이 있을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건 요셉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에 애굽을 쓸어버린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세상은 성도의 이룰구원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의 물질을 자타가 유익되도록 쓰임이 돼야 한다.

 

우리 궁극교회 교인의 집에 진리가 없다면 그 가정의 가치는 없어진다. 이치가 이렇게 돌아간다. 진리가 없는 사람들은 심통만 부리고, 세상욕심만 가득 들어 있으니 무슨 가치가 있느냐? 아무 가치가 없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성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존재성과 귀중성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멸망당할 짐승 같다’ 라고 했다. 짐승이 뭐냐? 진리 없이, 하나님 없이 본능으로 사는 인간을 말한다. 안 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을 다 같은 인간으로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본능을 따라 사는 자를 사람으로 보지를 않는다.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하고, 영원한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이게 없으니 그렇게 보시는 거다.

 

자기의 생활모습, 사고방식이 짐승처럼 사느냐, 은연중에 누구에게 유익을 주고 사느냐? 자기 집에서 늘 칭찬을 듣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꾸중만 듣고 사는 사람이 있다. 어째 그러냐? 왜 꾸중만 듣고 사느냐? 이건 짐승처럼 사는 거다. 희망이 없다. 이 땅에 진리성도가 없어지면 세상은 필요가 없다. 그래서 불태워 버린다. 이 땅에 사람이 많이 있을지라도 성도가 없어지면 남은 사람들은 다 불구덩이로 들어간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말은 맞는데 ‘그 영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랐느냐? 영능의 실력이 자랐느냐?’ 이게 중요한 거다. 수십 년을 살았어도 늘 술 먹고 고함지르고 한다면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 사람은 영혼이 귀한데 영혼을 위해 산 것이 없으면 사람이 가치가 없다.

 

세 번째는 이 땅은 진리의 성도들이 사람을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장소이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거다. 네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환난 핍박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기둥을 세우셨다. 이것이 교회다.

 

기둥이 되는 것은 단순히 집단이 크다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리 인격화로 실상화 자체화로 바로 설 때 되는 거다. 교회는 이런 사람으로 인해서 유지가 되고 성장이 되는 거고, 가정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인격이 있는 사람이 사는 세계는 원리가 그렇다. 길가의 전봇대가 드러누워 있지 않고 꼿꼿이 서 있으니 이것에 전깃줄을 매서 세상을 밝힌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사상과 정신이 바로 서 있지 못하면 이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생산이 나오고, 즐거움이 나오고, 기쁨이 나오겠느냐?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인격자 도덕성자로 세운 것에 대한 자기의 존재 가치를 알아야 한다. 만일 자기를 파리로 만들어놨다면 누군가가 고무신짝으로 내려치면 떡이 된다. 그렇게 죽었다고 해서 이 파리를 위해 아무도 눈물을 흘려주지 않는다. 일반세상에서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은 기념을 하지만 늘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신문에는 크게 나지만 해마다 그 사람을 기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삶에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둥을 세웠다. 이게 진리의 성도요 교회다. 교훈적으로 진리이치를 가진 자가 다른 사람을 기둥감으로 만들어 놓는다. 학교에서도 훌륭한 인격을 가진 선생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으면 훌륭한 전문적인 기둥이 나온다. 사람을 하나님 앞에 기둥감으로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둥을 위해 섭리를 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거짓된 교회는 기둥이 없다. 자기 장기자랑은 잘 해도 기둥감이 없다. 그러니 마귀가 이런 교회를 잡고 얼마나 잘 이용을 해 먹겠느냐? 믿는 우리는 세상 밑에 들어가서 세상을 위한 기둥감 역할을 할 자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아야지 세상 밑에 들어가서 세상의 이용물이 되면 안 된다.

 

‘그 땅과 모든 거민은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소멸’이란 불에 타지고 없어지는 것, 멸망을 받는 것. 왜 소멸이 되느냐? 소멸이 될 것만 장만을 했고, 소멸이 될 짓만 하고 살았으니 소멸이 되는 거다. 이런 사람은 가는 곳곳마다에서 무슨 짓을 하느냐? 소멸 될 짓을 한다.

 

세상에서 보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을 배워서 이것을 전파하는 자가 있다. 이것은 기둥감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소멸될 사람으로 만들어졌다는 거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예수를 믿는다면 어떤 목적의 신앙이 소멸될 신앙이며, 어떤 신앙이 기둥감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다 기둥감이냐? 아니다. 예수를 믿어도 장차 쓰레기로 나갈 사람이 있고, 기둥감으로 자랄 교인이 있다.

 

4절-5절: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찌어다.’ ‘오만’이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고 정신없이 지껄이는 거다. 시건방진 태도다. ‘행악’이란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서 하면서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거다. ‘교만’이란 자기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하며 뽐내고 고집이 완강하고 뻔뻔스런 거다.

 

오만한 자에게 왜 정신없이 설치면서 지껄이지 말라는 거냐? 입이 찢어진다는 거다. 행악자에게 뿔을 들지 말라는 것은 뿔을 치켜 들다가는 벼락을 맞는다는 거다. 교만자에게 목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은 목이 잘린다는 거다. 신앙의 정신 사상의 이치를 말하는 거다. 인간에게는 이런 성질이 조금씩이라도 다 들어있다. 다만 어떤 환경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나오는 태도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다 들어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과 세상 속화된 교인들은 자기의 뿔을 높이 들기를 좋아하는데, 전부는 세상에 속한 것이고 세상에 속한 자랑이다. 교회 안에서 이런 것을 자랑하면 행악자요, 목사가 이런 사람을 높이 올린다면 악한 목사다.

 

세상사람들도 일반적으로 겸손이나 교만에 대해 말을 한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부드러운 사람을 겸손하다고 하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잘난 척을 하면 교만하다고 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개념인데,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겸손이나 교만을 말을 하게 되면 교인들이 세상 밑에 들어가서 남의 이용물만 된다. 거짓 종들에게 속게 된다. 교회에서의 성경해석은 일반적인 해석이 아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을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교만의 개념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거짓적인 사람이 돼버린다. 목사님이 성경을 들고 이런 사고방식으로 성경을 해석을 하면 교인들이 그대로 알아듣게 되어서 하나님 앞에 거짓적인 사람이 된다. 이건 기준이 틀린 거다. 하나님의 정답에 안 맞는 거짓적인 기준을 가진 거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세상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나님 앞에 잘 보이려면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야지 왜 세상기준을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이 하나님 뜻에 맞는 것처럼 말을 하느냐 그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란 진리 인격화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고집스러운 자로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진리로 인격화된 사람은 종잡을 수가 없다. 물질에 손해가 났을 때는 ‘그까짓 것’ 하는데 진리이치 하나에는 목숨을 내거니 세상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종잡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바른 사람인데도 일반기준으로 보니 종잡을 수가 없는 거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이란 말씀에 순종을 안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교만한 사람이 세상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면 그럴 수 없이 좋은 사람으로 본다. 하나님 앞에는 불순종인데 세상 앞에 가서는 ‘예 예’ 하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주일날 말씀을 들으러 하나님 앞에 가야 하는데 이웃집 생일잔치에 가면 그 쪽 사람들이 ‘와, 예배도 안 드리고 왔구나’ 라고 하면서 좋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가만 내버려 두겠느냐?

 

6절: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동쪽에서 아침햇살이 솟아오르듯이 젊은이가 박력이 있게 올라오면 하나님께서 높이 올려 주신다고 하느냐, 안 올려 주신다고 하느냐? 안 올려준다고 한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니 세상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고 하느냐? 이 역시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남쪽에서 훈훈한 바람이 올라오듯이 사람이 세상에서 겸손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높이 올려 주신다고 하느냐? 이 역시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왜 북쪽은 없느냐? 북은 차고 매섭고 지독하고 악한 사람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북쪽은 말을 안 한 거다. 일반적으로도 세상에서 악한 사람은 사람으로 안 쳐준다.

 

세상은 모두가 높아지려고 경쟁적으로 산다. 남을 이용해서라도, 남을 밟고서라도 높아지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뭉개면서 높이 오르려고 한다. 서로가 ‘내가 잘났네’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다 높여주시느냐? 하나님께서 보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자는 높이고, 낮출 자는 낮추신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다니엘이나 룻 등등의 많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았는데, 이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기에 높임을 받았느냐? 또한 낮춤을 당한 자들도 많은데 이들은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대해주신 거냐?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자들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그 죄를 돌리소서’ 라고 했는데, 그들이 말한 대로 그 후손들이 당하고 말았다. 그들이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서 말한 대로 후손들이 당한 게 아니라 그들이 한 짓으로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짓을 하게 하는 교훈이 들어갔기 때문에 당한 거다. 그러면 그 후손들은 조상들이 말한 대로 자신들이 심판을 당할 때 ’감사합니다‘ 라고 했겠느냐? 조상들의 정신 사상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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