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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공의 여행기

[스크랩] 여름여행-11(실크로드)

작성자따이공|작성시간07.06.02|조회수17 목록 댓글 0
8월 7일(월)

7시 10분 눈을 뜨다. 늦잠을 잤다. 24층의 라운지 식당에서 뷔페식 아침을 먹다. 큰 호텔답게 식당은 깨끗했고 음식도 다양했다. 서역의 진한 요구르트를 먹으며 시내를 내려다보니 도로가 넓고 중앙의 분리대가 녹지다.

7시 30분 온다던 현지 가이드가 늦게 와서 8시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
이 도시를 떠난다. 이제 여기를 떠나 다시 우리 여행의 출발점이었던 시안으로 간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열흘간의 실크로드 여행이 이제 막을 내리는 것이다. 별로 산것도 없는데 짐이 더 빵빵해졌다.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인 조선족 동포 청년 k와 작별하다.

9시 30분 우루무치공항 이륙
중국 국내공항이지만 이곳은 국제 공항이다. 바로 구 소련지역과 이어지고 또 파키스탄과 이어지는 비행기들이 이곳에서 뜬단다. 그러나 공항은 별로 커 보이지는 않는다. 영어도 통하지 않고 좀 불친절한 승무원들...무엇보다도 기내가 너무나 열악해서 우리는 이게 무사히 시안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떠보니 비행기는 설산 위를 날고 있다. 기내식은 열차에서 먹었던 것 보다 조금 낳은 듯한 식사가 나왔다.
그래도 다 먹었다. 발 아래는 장엄한 봉우리가 하얗게 눈을 이고 서있고 우리는 그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차를 타고 몇 일을 달려 온 길을 단 3시간만에 날아가는 것이다.
차이담 분지를 넘었을 것이고 오른쪽엔 치렌 산맥이 뻗어 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창 밖을 보니 거대한 담수호가 보이는데 아마도 칭하이호가 아닐까...카메라를 들고 창 밖을 향해 몇 방을 찍고 시안 공항에 도착...

12시 10분 시안도착
열흘전 우리가 설레는 맘으로 발을 디딘 중국땅, 시안에 다시 왔다. 날씨가 잔뜩 흐리다.
점심은 기내식으로 때우고 곧장 함양박물관으로 향했다. 함양은 시안의 위성도시쯤 되는 곳으로 시안의 공항이 있고 또 한 무제의 릉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한나라 때의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버스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달려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런 시골 읍같은 마을에도 박물관은 있다. 한무제때의 유물들과 진나라를 멸한 한나라의 병마용도 있었다. 진시황의 과욕을 알아서일까...무제의 릉에서 나온 유물들은 진의 그것과 비교가 된다. 병마용
의 크기나 숫자 등이...박물관내 기념품점에서 탁본을 샀다. 그리고 박물관장의 관인까지 찍어서 판다. 빗줄기가 오
락가락 한다. 다시 버스에 올라 무제의 릉으로 출발... 가는 길에 기차 건널목에서 하염없이 지체를 하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차단기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란다. 기가 막힌다. 대낮의 시간에 차단기를 내려놓고 여유 있게 공사를 하고 있는 그들...그래도 그렇게 지체를 해서 길게 늘어선 차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대로 서있다. 아마도 우리 나라 같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텐데... 우리도 '만만디'에 익숙해져서인지 비포장의 밭두렁 길에서 웃고 떠들며 시간을 죽이다 결국 통과했다.

무릉박물관 도착
날씨가 더 흐려져 비가 퍼부을 것 같다. 이곳은 무제의 릉과 곽거병의 릉 그리고 위부인과 그의 동생 위청의 묘가 있는 곳이다. 중국이 기원전에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또 '한(漢)족'이라는 명칭을 쓰게된 것이 바로 한나라의 통일 이후였다고 한다. 바로 동아시아 역사를 한족 중심의 역사로 쓰게 되고 또 한족 주변 국가는 모두다 오랑캐로 불리게 된 것이 바로 이 때다. 우리 한반도에도 한사군이 설치되어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었지 않은가....싫든 좋든 이때 중국의 문화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박물관엔 비가 와서인지 변방이라 서인지 별로 볼 것이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없었다.
곽거병묘 앞에는 대형 석조 마답흉노상(馬踏匈奴象)과 월마상(越馬象)이 있는데, 특히 전자는 당시 한나라가 흉노족에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당했는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 준다. 묘의 왼쪽 회랑을 따라, 누운 말(臥馬), 엎드린 범(伏虎), 두꺼비(蟾),개구리(蛙), 물고기(石魚), 사람과 곰(人與熊)등 해학적인 표정의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뒤편에는 괴수걸양(怪獸*羊), 멧돼지(野猪), 코끼리 와상(臥象), 누운 소(臥牛) 등의 석상들이 있다. 회랑 주변에는 어
린 배롱나무 붉은 꽃이 빗방울에 젖어 하늘거리며 요염을 떨고 있다.
서역개척이 장건으로 시작이 되어 이 곽거병이 흉노를 몰아내고 한의 영역으로 만든 것이다. 기원전 120년경이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다녔다. 곽거병의 묘까지는 올라가야 한다고 그 비를 맞으며 정자까지 올라가 위청이며 장건이며 곽거병을 이야기했다.

☞ 곽거병, 위청, 그리고 한무제 장건의 서역 파견 이후, 서한은 흉노와 몇 차례 대규모 전쟁을 펼친다. 기원전 127년 한 무제는 위청(衛靑) 장군과 3만 기병대를 보내 내몽고 지역을 수복하고, 기원전 121년 곽거병( 去病) 장군이 1만 기병을 이끌고 하서지역을 수복하였다.
기원전 119년 한 무제는 재차 대군대를 파견하여 흉노를 격퇴하니, 흉노는 패하여 저 변방 북쪽으로 물러나고, 서역의 실크로드 교통로는 서한이 장악하게 되었다. 서한 말부터 동한 초까지 중원에서 큰 혼란이 빚어질 때, 이 하서 지역만큼은 비교적 안전하여, 내지의 많은 유민들이 이 하서 지역으로 와서 피난하였다. 는 이야기...

이상한 게 무제의 릉에다 박물관을 만들지 않고 그의 부하 장수인 곽의 릉에 박물관을 만든 이유가 무얼까를 생각했다. 바로 저 옆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무제의 릉을 보며 말이다. 돌아 오는길 빗줄기가 거세어 그 비를 쫄딱 맞고 나오다 '편종고악청'이라는 곳에서 중국고전음악 연주를 하는 곳인 그 곳에서 운 좋게도 연주를 들었다.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남의 나라의 고전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여간 행운이 아니다. 우리의 대금 같기도 하고 피리 같기도 한 악기, 우리의 편종. 편경 같은 악기, 우리의 가야금 같은 악기 등이 연주되고 있었다. 억수 같은 빗줄기를 뚫고 나오다 무제의 릉 앞에서는 잠시 차 창밖으로 보는 것으로 끝....

4시 30분 다시 시안 시내로
빗줄기가 점점 거세 지고 우리가 시내에 도착했을 즈음 시내는 온통 물바다 였다. 평소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이라 그런지 하수시설을 제대로 안 갖춰 이렇게 비가 오면 시내는 온통 물바다가 된다는 것이다. 도로가 물에 잠겨 어디가 도로고 어디가 인도인지 모르는데 작은 차들은 범퍼까지 물에 잠겨 마치 물살을 헤치고 가는 수륙 양용차들 같았다. 그런데 우리 버스가 물에 잠겨 시동이 꺼져 물 한가운데서 멈춰버렸다.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푸쉬맨(?)의 도움으로 물 밖으로 나왔는데 시안에는 그렇게 비가와 도로가 물에 잠기면 시동 꺼진 차들을 물 밖으로 밀어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일명 푸쉬맨들이다.
우리 차 주위에서 웃음을 날리며 맴돌던 그들은 운전사의 신호가 나자 마자 5명이 달려들어 우리 차를 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1인당 10원씩 받았다. 별의별 직업이 다 있었다. 시동 꺼진 차만 보면 마치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맴돌다 그렇게 달려들어 차를 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물에 갇혀 있으면서도 모든 상황들이 재미있고 신기해 하나도 초조해 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재미있어 하고 또 즐거워했다. 그렇게 물바다를 건너 저녁을 먹으러 한국 식당에 도착했다.
10일만에 먹는 한식...삼겹살에 소주였다. 그리고 된장찌개...소주가 몇 순배 돌고나니 붉어진 얼굴들...살아서 저 물바다를 건너온 불굴의 용사들...죽음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온 용사들...낄낄... 소주를 그렇게 마셨다. 이게 얼마 만이냐...소주 너...시안시내에 두 군데 있는 한국식 식당이란다. 주인은 1년 짜리 상용비자로 건너와 장사 한
지 5년 되었다는 남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같으면 그렇게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단지 이국에서 10일만에 먹어 본 우리 음식이라 모두들 허겁지겁 먹었다. 비가 좀 잦아 졌다. 호텔로 출발...

7시 40분 다시 황성빈관(시안 로얄호텔)
여행 첫날 짐을 풀고 여행의 첫 밤을 보냈던 호텔로 다시 왔다. 원점으로 온 것이다. 샤워를 하고 쇼핑을 나갔다. 백화점을 갔는데 우리일행은 모두 샌들차림이었는데 백화점 경비원이 제지를 한다. 맨발에 샌들은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서툰 중국어와 손짓 발짓으로 싸움(?)을 했지만 막무가내...결국 우리 일행중 샌들이 아닌 그야말로 발가락 슬리퍼를 신은 사람만 제외하고 나머지만 입장을 시켰는데 참 커다란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
한족들은 발을 내 놓는 것은 실례라고 한다. 비록 거리에서 윗통을 벗고 다니고 러닝 셔츠만 입고 다닐지언정 양말은 꼭 신고 다니는 그들... 우리는 분개를 하며 쇼핑을 했다. 물건값은 서울보다 엄청 쌌는데 중국돈 남긴 것은 모조리 쓰자고 싼 술들을 몇 병씩 샀다. 비를 맞고 거리를 나서 밤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또 맥주를 사들고 와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술이 떨어지고 피곤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각기 방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돌아와 자리
에 누웠는데 전화가 왔다. 술을 더 하자고...일행 중 몇몇은 술로 눈이 맞아(?) 밤마다 모여 술을 늦게 까지 마셨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다. 우리는 위구르 마을에서 산 포도주를 3병이나 마셨다. 여행의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로 밤을 새고 나니 어느새 동이 텄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열 하루째 아침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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