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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공의 여행기

[스크랩] 여름여행-12(실크로드)

작성자따이공|작성시간07.06.02|조회수11 목록 댓글 0
8월 8일(화) 마지막 날

밤을 꼬박 새고 나니 아침이 되었다. 창밖은 어둠이 걷혀가고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고 있다. 새벽 6시 30분...끝까지 밤을 지샌 불굴의 용사들은 끝까지 버팅 기기로 하고 아침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한 명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잠을 자고 우리 셋은 청진사로 향했다. 청진사는 시안의 회교도 사원으로 그 일대는 회교도들의 거리로 이국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아침 시내는 지난밤의 찌꺼기를 그대로 드러낸 조금은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여행 첫날, 이 호텔에서 첫 밤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파트너와 시장 통으로 해서 공원으로 산책을 간 기억이 났다. 오늘은 청진사로 간다. 회교도 구역에 이르니 빈민굴 같은 골목 풍경에 사람들의 모습도 남루한 게 우리 시골의 60년대 풍경 같았다. 이른 아침이라 상가들도 문을 다 열지 않았고 부지런한 식당 몇 군데만 문을 열고 아침 식사를 팔고 있었다. 중국의 회교도 거리...그 첫 느낌은 그랬다.
청진사는 회교도 사원이지만 중국식으로 사(寺)라는 글자를 쓰고 건물도 마치 절간 같았다. 그러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문틈으로 사원을 들여다보기만 하고 왔다. 못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회교도 거리를 걸어 다시 호텔로 왔다. 오는 길 회교도의 빵을 사서 거리를 걸으며 먹었다.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빵인데 느끼하지 않고 속에는 이름 모를 쨈인지 소스가 있는 것으로 맛이 좋았다. 벌써 아침 요기를 한 기분이다. 골목을 달리는 택시는 우리의 티코 보다 조금 큰 고물 차들이 빵빵거리며 좁은 길을 달렸다. 도로는 돌길로 포장이 된 운치 있는 곳이었지만 주변 건물들의 퇴락한 모습과 사람들의 남루함으로 인해 마치 홍콩영화에 나오는 슬럼가의 뒷골목 같은 분위기였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거짓말처럼 큰길이 뻗어 있고 고층건물들이 즐비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9시 아침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호텔 식당에서 우리는 맘껏 배를 채웠다. 그러나 모두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 떠난다는,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것이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느긋하게 밥을 먹고 짐을 챙겼다. 배낭이 빵빵해서 도저히 챙길 수 가없다. 도대체 뭘 많이 샀기에 이럴까...다시 짐을 푸르고 보아도 별로 산것이 없다. 차 몇 봉, 술 몇 병, 모사품 그림, 조악한 토산품 몇 개, 와당 탁본 10장, 중국 CD 몇 장 그게 전부였다. 옷가지를 다시 가지런히 접어 넣었더니 배낭에 겨우 들어갔다. 짐을 챙겨 로비로 나오자 이미 몇몇이 나와서 서성이고 있었고 나중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차에 오르려니 못내 아쉬운 듯 발걸음이 무거웠다. 정말 이제 끝일까?
버스가 공항으로 가는 내내 나는 잠이 들었다. 공항까지 함께 간 현지 가이드였던 조선족 청년 S는 이제 우리와 끝이다. 그는 통역으로 우리와 일정 내내 같이 다녔고 마치 우리 일행처럼 우리와 정이 들어서 모두들 그와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해맑은 소년 같은 앳된 인상의 24살의 청년인 그를 귀여워 해주고 수줍어하는 그를 못살게도 굴었던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고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히며 공항에서 작별을 했다.
그는 우리말을 잘했다 아니 그건 당연하지만 우리의 감각수준도 잘 알아 차려서 남한의 유행가나 가수들, 상황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 가수 이정현을 좋아하며, 조성모도 좋아한다고 했다. 이정현은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생각 치도 않게 영화 '꽃잎'에서 주연을 맡아서 안다고 한다. 광주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정작 그 영화는 보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나는 그에게 조성모의 TAPE을 보내주겠노라고 하고 헤어 졌다. 쉽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되면 한국에 한번 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들 진심이었다.

11시 공항 면세점
시간을 보내며 또 남은 인민폐를 쓰려고 모두들 면세점에서 물건을 기웃거렸으나 마땅히 살 것이 없었다. 좋은 물건은 남은 돈으로는 살 수 없고 남은 돈으로 사자니 너무나 조악하거나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남은 돈을 털어 담배 한 보루를 샀다. 이상했다. 중국은 술값은 싸고 또 지천으로 여러 종류의 술이 깔렸지만 담배만은 비싸서 한번도 중국담배를 사서 피워 본적이 없다. 한 보루가 술값의 몇 배는 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상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마지막 잔돈까지 털어 생수 한 병을 샀다. 그런데 공항 대기실엔 모두다 한국인들이었다. 이곳 시안은 '계림' '소주' '항주'로 출발하고 돌아오는 요지 여서 인지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마치 김포 공항처럼 느껴졌다.

12시 30분 이륙
드디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자리를 잡고 짐을 올리고 등받이 깊숙이 기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젯밤 한숨도 자지 않고 술을 마시고 새벽녘에 청진사까지 다녀왔는데도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쯤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연윤지 비행기는 40분이나 늦게 출발을 했다. 모두들 그렇게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도 피곤하기보다는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열 하루동안의 일상 탈출이 끝이 나고 무사히 가족들에게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또 아쉬움, 그리고 꽉 짜여진 조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우리라... 문득 지난 시간들이 휙휙 떠올랐다.
첫날 시안에서의 그 들뜬 마음... 대자은사 화장실에서 문이 없음에 기겁을 하고 돌아 나왔던 기억, 그러고 보니 중국의 화장실 문화는 정말 독특했다. 익히 이야기를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경험을 해보니 여간 난감하지 않았다. 공중 화장실은 모두다 돈을 내고 들어가야 했고 그나마 가보면 문이 없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게다가 양옆의 벽이 유리로 된 곳이 있었는가 하면 변기도 없이 그냥 도랑처럼 길게 파인 곳에 죽 일렬로 늘어선 채로 앉아 일을 보게된 곳....문과 벽이 있어도 그 높이가 겨우 허리춤 밖에는 되지 않는 곳 등 정말 화장실은 우리를 당황하게 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볼일을 못 본 것은 아니다. 나중에는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문화란 다양하고 또 경험하기 나름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음식에서 향채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중국음식이 기름지고 짜고 매웠지만(우리의 고춧가루 매운맛과는 다른 향신료의 일종으로 매운) 다 그런 대로 맛이 있었으나 그 향채는 견디기 힘들었다. 또한 이번 일정에서는 인간이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모두다 타보았다는 것이다. 비행기로 시작해서 거의 모든 단거리는 버스로 이동했고 장거리는 기차였고 또한 말과 낙타, 심지어 당나귀 마차까지 타보았고 바닷가 없는 내륙 사막(호수)에서 배까지 타보았다. 카자흐 마을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우리가 처음 자고 갔다는 이야기며 또 하나의 문화 차이로 노출에 신경 쓰지 않는 그들(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 있었음은 물론 내 앞에서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기도 하는)과 발을 내놓는 것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던 우리와의 차이 등이 그러했다. 서역의 소수민족들을 보고 또 그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한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디든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러하겠지만 모든 상권(商圈)과 요직(要職)은 다 한(漢)족들이 쥐고 있어 그들의 생활상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행히도 조선족들은 교육열이 높고 어느 정도는 생활기반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의 숨을 쉬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일행은 모두들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책을 뒤적이고 눈을 감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과의 시차는 한시간 그러나 그곳은 북경시간을 표준시간으로 하니 실제로는 2시간 이상 3시간정도 차이가 나기도 했다. 사막에서의 밤은 정말 황홀했었고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지는 신기한 땅, 척박한 땅에서 벌이는 인간과 자연과의 사투... 실제로 그 지역은 1년에 서울의 3배정도의 넓이가 사막화 되어간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물을 끌어 들여 개간을 하고 농작물을 심었다. 인간과 자연과의 사투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될지...
우리의 일정은 실크로드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도시만을 다녀왔고 또 비행기며 기차며 버스로 이동을 해서 실제 사막에 점처럼 이어진 오아시스마을 들을 말과 낙타 하나에 의지한 채 여행을 했던 그 옛날의 순례자들이나 대상(隊商)들의 여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래도 뿌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아쉬웠다. 창 밖을 보니 벌써 서해 바다로 왔나 보다. 점점이 섬들이 보인다. 드디어 서울이다. 열 하루의 외유였건만 마치 오랬 동안의 여정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뭘까...
발아래 펼쳐진 우리산하는 역시 그대로였다.

김포공항 도착
짐을 찾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밖으로 나오니 더운 열기가 훅 느껴진다. 여행 내내 한번도 이 같은 더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막지역은 햇볕만 뜨겁게 느껴지지 습기 있는 더위는 느낄 수 없었는데 우리 나라의 더위는 습기를 머금은 더위다. 등덜미에 벌써 땀이 흐른다. 아쉬운 헤어짐의 악수를 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왔다. 내 일생의 첫 실크로드는 이렇게 끝난 것이다.

집으로 오는 언덕에서 나는 큰 한숨을 한번 쉬었다. 열 하루만에 돌아온 나의 동네를 한번 굽어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찾아 현관문을 열었다. 내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후기의 후기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벌써 몇년이 더 흘렀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거나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러나 배낭여행도 아니고 답사여행도 아닌 주마간산 격인 일정에다 감상에 젖어 실제 느껴야할 것은 놓치고 또 메모 습관이 되지 않아 본 것을, 느낀 것을 그대로 다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저 후일담 같은 그런 기분으로 썼습니다. 혹시 그 지역에 다녀오신 분께서 보시면 웃기는 글이라 여길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이 글을 쓸 때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속옷자락을 남에게 내보이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남은 건 사진과 슬라이드 필름 그리고 비디오 테입이더군요. 어쨋든 다 쓰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고 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슨 낙(樂)으로 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중에 또 여건이 되면 정말로 천산남,북로를 다 돌아 보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참! 기회되면 여러분 분들과 함께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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