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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공의 여행기

[스크랩] 러시아 기행문 (01) 모스끄바를 향해

작성자따이공|작성시간07.06.02|조회수21 목록 댓글 0
러시아,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곳. 내가 어쩌다가 러시아에 빠져들게 됐을까.


 어렸을 때, 내 눈에 비친 러시아는 추운 나라, 땅덩어리 큰 나라, 자원이 풍부한 나라, 체조를 잘 하는 나라였다. 러시아에 관한 사진이라면 전부 흰 눈으로 덮인 거리라던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교과서였던 사회과부도에서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였고, 자원도 가장 풍부한 나라였다. 1992년도 올림픽에선 러시아를 비롯한 연합팀이 종합 1위를 했고―물론 내가 5살 때 일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초등학생 때야 알게 된 것이다―그 후에도 스포츠 뉴스 때마다 항상 러시아가 나왔다. 안타깝게도 러시아는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 중국에 밀려 종합 3위에 그쳤지만, 어쨌든 러시아는 스포츠 강국임에 틀림없다.


 기억을 되새겨 보면, 내가 처음으로 러시아 문학 작품을 접한 때는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그 때까지도 난 러시아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학교 도서실에서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란 책을 빌리게 됐다. 물론 그 전에 서점에서 똘스또이의 '안나 까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과 같은 작품을 구매한 적은 있지만, 전부다 한두페이지 읽고 포기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읽으니 매우 재미있는데, 그 때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으니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했을까.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코,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넵스끼 거리'를 통해 난 러시아에 더 흥미를 갖게 됐다. 그 때부터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앞으로 노어노문학과에 가야겠다는 꿈도 생겼다. 사실 러시아 사람들의 '특별한' 이름 구조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고골의 책을 통해서였다. 표지에는 도스또옙스끼가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한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골이 묘사한 바 있는, 그 넵스끼 대로를 거닐게 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

 

 

 러시아에 관심이 많다보니, 나는 평소 신문 여행사 광고의 러시아 코너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러시아 1주일 여행 코스도 있었고 러시아와 북유럽을 동시에 일주할 수 있는 코스도 있었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였다. 중국 여행에 비하면 몇 배나 더 비싼 가격이었다. 부모님께 감히 말씀드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가 다니던 중산외국어고등학교―지금은 그만둔 학교―의 러시아어 선생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청주외국어고등학교 러시아어과에서 단체 연수 및 관광을 간다는 것이다. 3주동안이나 모스끄바와 뻬쩨르부르그에 머물면서, 비용은 여행사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진지하게 의논했고, 결국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드디어 7월 14일. 러시아로 떠나는 날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30분 후에 부모님과 함께 청주를 향해 출발한다. (나는 충주에 살고 있다.) 피곤하긴 하지만, 긴장된 탓인지 차 안에서도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청주에 도착했다. 그 때가 새벽 5시.


 우리가 모이기로 한 곳은 청주외고 운동장이다. 약속 시간은 6시니, 1시간이나 기다리게 된 셈이다. 이리저리 걸어다니기도 하고, 자꾸 세수도 하고, 쪼그려 앉아있기도 하고. 머리는 어지럽고 피곤한데 몸은 긴장이 되었는지 자꾸만 떨린다.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이윽고 모든 일행이 모이고 간단한 인사말이 오고간다. 그러나 곧 인천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모두 대절버스에 오르고, 나는 부모님과 헤어진다. 버스가 바로 출발하는 바람에 부모님과 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괜히 겁이 난다. 이게 마지막이면 어쩌지?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함께 가게 된 일행은 청주외고 러시아어과 학생 13명과 선생님 두 분(박찬근 선생님과 조성연 선생님)이다.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나는 아직 서먹한 감이 있다. 지난 1학기 때 러시아어 대회에 나가면서 낯익게 된 얼굴도 있다.


 그동안 너무 긴장해서 피곤한지,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든 것 같다. 설레기보다는 점점 지루해진다. 4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10시나 되어서야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한다.


 나에게는 인천 공항이 처음은 아니다. 제작년,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일 때, 인천 국제 공항을 통해 일본 후꾸오까 공항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큐슈 지방에서 1주일을 머물렀었는데. 말로는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라고 하지만, 그냥 관광에 가까웠다. (물론 후꾸오까에 있는 타카토리 중학교에 방문하긴 했지만)


 하지만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공항이 낯설기만 하다. 모든 게 새로워 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2년 전의 기억이 살아나기도 한다. 면세점 사이에서 헤맸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이내 다시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2시간이 넘게 공항 한가운데 서서 비행기에 탈 시간만을 기다리며 자꾸 시계만 쳐다본다.

 

 

 비행기가 출발한 시간은 낮 12시 50분.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우리는 시계바늘을 5시간 뒤로 돌린다. 모스끄바 시간으로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지금 모스끄바는 아침 7시 50분인 셈이다. (원래 모스끄바는 우리보다 6시간 늦지만, 여름에는 섬머타임을 실시하므로 5시간 늦는 셈이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러시아의 Аэрофлот(Aeroflot)이다. 덕분에 스튜디어스도 모두 러시아인이고, 방송도 전부 러시아어로 진행된다. (하지만 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쨌든 기내에서의 아홉시간이 러시아 여행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내식은 두 번이나 있다. 처음엔 맛있게 먹었지만, 두 번째 식사는 조금만 먹고 거의 남겼다. 아무래도 아홉시간이 너무 지루해서일까.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렸다. 처음엔 러시아 신문을 읽어볼까 했지만 사진만 살펴보고 만다.


 그리고 기내에서의 에피소드 하나. 술에 취한 어느 러시아인 아저씨가 휘청휘청 걸어서 화장실 쪽으로 향하더니 철퍼덕 일자로 엎어진다. 그런데 내 좌석 바로 옆에서 뻗은 것이다! 일어나려고 날 잡고 얼마나 발버둥치던지 한동안 당황해 죽는 줄 알았다.


 아, 비행기를 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기내 화장실은 뭔가 좀 다르다. 나도 처음엔 신기했지만 차차 익숙해졌다. 그리고 거기서 생활 러시아어를 익힐 수 있었다. 'К Себе'와 'От Себя'라는 말이다. 직역을 하면 전자는 '자기 쪽으로', 후자는 '자기로부터'가 되겠지만 우리 말로 각각 '당기시오', '미시오'에 해당되는 표현이다. 낯선 표현 방식이지만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덧 비행기 창으로 땅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땅도 아니요, 붉은 땅도 아니다. 온통 푸른 색, 온통 나무 숲 뿐이다. 그러더니 비행기가 덜커덕거리고 얼마 안 있어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러시아에 도착한 것이다! 드디어 모스끄바에 온 것이다!


 오후 5시―물론 현지 시각으로―가 좀 넘어서 Шереметьево(쉐레메찌예보)-2 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 공항은 일 처리도 아주 늦고 외국인을 상대로 엄청 트집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일이 너무 빨리 처리되어서 깜짝 놀랐다. 짐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이다.


 우리 일행의 짐을 모두 찾고, 바로 공항에서 빠져나온다. 아무런 검문도 없이 빠져나와서 봉고차에 올라탄다. (그 때가 저녁 6시 30분쯤.) 공항에서 숙소로 갈 때, 그리고 나중에 숙소에서 공항으로 갈 때만 타는 봉고차라고 한다. 차내 시설이 조금 불편하다. 게다가 운전도 무척 험악하게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늘 이런 식의 운전을 경험한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차들도 엄청나게 질주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 듣던 대로다. 하지만 차들은 모두 좋아 보인다. 낡은 차는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창 밖으로 나무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예쁜 꽃들도 보인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LG와 삼성 광고판이 아닐까. 정말 가는 곳마다 LG와 삼성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못하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날씨를 봤을 때 모스끄바에 비가 온다더니 정말 비가 내린다. 잠깐 천둥번개도 친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 모스끄바에서 우리가 묵게 될 숙소에 도착한다. 우리 숙소는 지하철 Дмитровская(드미뜨롭스까야)역 근처에 있는 고리끼 문학 대학 기숙사 'Дом Писателя(돔 삐싸쩰랴;작가의 집)'. 건물 벽에는 'Lenin Street'라고 낙서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ЦСКА Москва(CSKA Moscow;러시아 프로축구팀)'라는 낙서들도 보인다. 축구팀 팬이 낙서한 모양이다. 광고지들도 붙어있다.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방 배정을 놓고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우리 일행 학생들 중에 남학생도 홀수, 여학생도 홀수가 되는데 방은 2인 1실이다. 그러다보니 남학생과 여학생 한 명씩 남는데, 그 두 학생을 멀리 떨어진 방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과 방 배정을 했나보다. 기숙사 측에서는 이게 당연한 거라고 하고 우리 측은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두 방에서 3명씩 자기로 결정을 내린다. 3명씩 지내도 그리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숙소도 생각보다는 깔끔하고 무엇보다 TV가 있다! 냉장고, 옷장, 책상도 있지만 그리 반갑지는 않다. 화장실은 공동이지만, 생각보다 불편하거나 눈치보이지는 않는다.


 TV를 켰더니 스포츠 채널이 있다. Шинник이란 팀이 경기를 하고 있다. 별로 재미가 없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더니, MTV도 있고 МузTV도 있다. Россия(러시아)채널도 있고 Культура(꿀뚜라;문화)채널도 있다. 물론 우리 MBC 문화방송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문화적인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다. 그 외 다른 채널들도 많다.

 

 

 저녁 식사는 라면으로 떼우고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낮처럼 환하다.) 밤 11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눕는다. 바로 잠이 든 것 같다. 씻고 짐 정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모스끄바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끝난다. 저녁에 도착하는 바람에 제대로 밖을 볼 여유도 없었지만, 그래도 모스끄바의 첫인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일단 피곤한 게 문제이다. 처음이라 좀 불편하긴 하지만(침대가 자꾸 덜커덩거려서 얼마나 신경쓰이던지), 이내 달콤한 꿈 속으로 빠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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