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따이공의 여행기

[스크랩] 러시아 기행문 (02) 모스끄바 맛보기

작성자따이공|작성시간07.06.02|조회수21 목록 댓글 0
아침 8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처음이라 아직 불편한지 새벽에 자꾸 잠에서 깨곤 하는데(그리고 이내 다시 잠든다), 그때마다 밖이 굉장히 환하다.


 아침 식사는 또 라면이다. 다른 나라에 와서 먹는 라면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맛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아직은 모스끄바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10시 30분, 우리 일행은 기숙사에서 나와 고리끼 문학 대학으로 향한다. 고리끼 문학 대학은 앞으로 우리가 모스끄바에서 약 2주간 공부하게 될 학교이다. 학교의 공식 명칭은 'Литературный Институт имени А. М. Горького'.


 그런데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제도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날씨가 좋지 못하다.


 걸어서 약 30분이 걸려서 Дмитровская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역 내부의 첫인상이랄까? 사실 많은 기대를 품고 역에 들어갔지만, 이내 실망하고 만다. 예술적인 조각들도 보이질 않고 온통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다. 게다가 사람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무감각하게 걷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보는 순간, 그게 모스끄바 지하철의 진짜 시작이란 걸 깨닫게 된다! 러시아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상당히 길고, 속도도 빠르다. 모스끄바 지하철은 전쟁을 대비해 일부러 깊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우리 서울 지하철도 이용한 경험이 별로 없어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지하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 중에 200m를 넘는 것도 있으니, 그 깊이를 상상해 보라. 처음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사고라도 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물론 나중에는 익숙해져 버렸지만.


 러시아의 지하철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광 명소라고 할 수 있다. 각 역사 내부는 예술적으로 꾸며져 있고, 또 역마다 그 장식도 아주 다양하다. 모스끄바 지하철은 이미 1935년에 개통되었다고 하니, 러시아의 기술 수준은 결코 무시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


 모스끄바 지하철은 11호선으로 구성되어 있고, 150여 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도심 교통 체증이 워낙 심해서 지하철은 시민들의 중요한 교통 수단이라 한다.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속도도 빠르니 많은 서민들이 이용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지하철 표는 들어갈 때만 내면 된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시간과 거리에 제한받지 않고 한 번 요금으로 계속 돌아다닐 수 있다.)


 잠깐 모스끄바의 교통수단을 소개하자면, 가장 대중적인 지하철 외에도 버스, 전차(뜨람바이), 트롤리버스, 택시, 노선택시 등이 있다. 이 중에 전차와 트롤리버스는 약간 낯선 교통수단인데, 전차는 레일 위를 달리며 공중의 전선에 매달려 가는 것이고, 트롤리버스는 레일 없이 도로 위에서 전선에 매달려 가는 버스이다. 택시는 전문으로 택시영업을 하는 차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그냥 길거리에서 손을 흔들면 한가한 차가 와서 정지하고, 목적지와 원하는 금액을 말하면 된다. 물론 금액은 운전자와 승객이 합의하는 형태이고, 처음 타는 외국인은 사기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노선택시는 우리의 봉고차라고 할 수 있는데, 버스와 택시의 장점이 혼합된 형태라 한다. 버스처럼 일정한 길을 지나가는데 그 도중에 원하는 곳 어디서든 세워달라고 하면 내릴 수 있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 일행은 Дмитровская역에서 Чеховская(체홉스까야)역으로 향한다. Чеховская역은 Тверская(뜨베르스까야)역과 Пушкинская(뿌쉬낀스까야)역과 모여있는데, 다른 노선으로 가려면 해당하는 역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갈아타면 된다. 우리의 목적지는 Пушкинская역 근처에 있으므로 Пушкинская역으로 이동해서 출구로 나온다.


 Пушкинская역 근처에는 뿌쉬낀 광장이 있다. 아마 그래서 역 이름이 'Пушкинская(뿌쉬낀스까야)'라고 지어진 듯하다.


 앗참, 지하철 이야기 중에 빼놓은 것이 있는데, 에스컬레이터 끝 부분에 투명박스가 있다. 그 안에는 직원이 앉아서 항상 감시를 하고 있는데, 이야기는 나눠보지 못해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안내나 에스컬레이터 안전 감시, 작동 조절 등의 작업을 하는 듯 하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의 왼쪽 줄은 걸어서 빨리 올라가려는 사람들을 위해 항상 비워놓는다. 그냥 가만히 서있을 사람들은 항상 오른쪽 줄에 서야 한다. 가끔 출퇴근 시간에 혼란스러워지면 왼쪽 줄마저 꽉 막히기도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규칙대로 행동한다.


 또 워낙 에스컬레이터가 길다보니, 별 풍경이 다 펼쳐진다.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고,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사람도 있고, 잡지나 책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젊은 연인이 키스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은 것 같다. 다른 장소에서도 키스하는 모습은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얼마나 지루했으면!


 그리고 지하철 소음이 상당히 심하다. 심할 때는 옆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정도다. 처음엔 귀를 막곤 하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진다. 아무래도 지하철 창문을 열어놓고 있어서 소음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사람들은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곤 하지만 역시 익숙해진다.


 노약자석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거의 형식적인 것 같다. 가끔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도 보이지만, 눈에 띄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대학교에 도착한다. 우리가 공부하게 된 대학교 건물은 게르쩬의 생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교 내에는 게르쩬 동상도 우뚝 서있다. 게르쩬은 19세기의 주요 소설가이자 사상가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들어간 교실은 외국 학생 연수를 담당으로 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한국 지도가 눈에 띄는데, 거기서 무엇 하나 발견을 한다. 동해가 글쎄 Японское Море(일본해)라고 씌여 있는데, 누군가가 그 글씨에 줄을 그어놓고 Восточное Море(동해)라고 고쳐놓았다. 아무래도 한국 학생이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리고 교실 안에는 역시 러시아의 지도와 뿌쉬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뿌쉬낀의 사진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필수품인 것 같다.

 


 우리가 학교에 온 이유는 계약을 위해서이다. 실질적인 공부는 다음주 월요일부터이다. 그런데 계약을 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 일 처리가 느리고 형식적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문서 보관이 잘 되는 나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귀찮긴 하지만 서명도 아주 철저하게 한다.


 그러다가 목이 말라 우리 일행은 물을 사먹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물을 마셨다가 큰 코 다쳤다. 탄산수인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에는 탄산수가 많다고 한다. 탄산수가 아닌 것도 있지만, 어쨌든 탄산수를 처음 마시고의 그 느낌이란! 처음엔 그저 호기심으로 자꾸 마셔보지만, 나중에는 탄산수 아닌 것만 골라 마시게 된다.


 아, 그리고 학교 건물에 게르쩬에 관한 사진이 몇 개 걸려 있다. 그 중에 Пермь(뻬름)이란 지방의 사진도 있는데, 게르쩬의 유배지였다고 한다. 뻬름은 현재 러시아의 대도시 중에 하나이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은 맥도널드와 그 주변을 견학한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 가보는 맥도널드! 듣던대로 사람이 상당히 많다. 매장도 상당히 넓다. 1층도 넓은데, 2층까지 있다. 그런데도 자리는 거의 꽉 찼다. 아마 여기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생겼다는 맥도널드인 것 같다.


 우리 일행은 2층에 자리를 잡고, 빅막과 콜라를 주문한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또다시 해가 보이고, 또 비가 오고, 또 햇빛이 보이고.


 어쨌든 우리는 맥도널드 안에 있으니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한 소녀가 구걸하며 다니는 것이다. 남동생 데리고 갓난아기를 업은 채 맥도널드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가슴아프던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뿌쉬낀 광장 맞은편 공원으로 나선다. 분수대가 있는데 상당히 멋지다. 어린 꼬마 아이들이 분수대에서 물을 튀기며 장난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새들이 가장 인상깊다. 새들이 도무지 겁이 없다. 참새들은 아주 낮게 날아다닌다. 마치 내 머리에 부딪힐 것 같아 겁이 날 정도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도 왠만하면 도망가지 않는다. 그만큼 러시아 사람들이 순수하다는 것일까?


 그런데 아까 맥도널드에서 구걸하고 다니던 여자아이가 보인다. 그리고 이번엔 그 여자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도 있다. 그리고 구걸한 돈을 그 아줌마에게 건넨다. 그러더니 '마마!'하고 재잘거리며 군것질을 한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깜짝 놀란다. 스킨헤드로 보이는 젊은이 둘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외모로 봐서는 영락없는 스킨헤드다. 왠지 시비를 걸 것 같아, 다른 곳으로 급히 도망친다. 그랬더니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 뿌쉬낀 광장, 그리고 이즈베스찌야를 비롯한 멋진 건물들……. 스킨헤드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환전소에 들린다. 환전소 근처에 극장이 있었는데 유명한 곳인 줄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계약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마가진엘 들렀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닌가! 직원으로 보이는 그 아저씨는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우리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것도 이들의 문화가 아닐까. 하지만 그 아저씨의 짜증스러운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마가진에서 기숙사로 오는 길에 놀이터가 보인다. 벤치에는 아줌마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고 꼬마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숙소에 5시 30분쯤 도착해서 하루 일정을 마친다. 다닌 곳은 거의 없었지만,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 지하철도 처음이고,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다닌 것도 처음이라 모든 게 신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모스끄바가 나의 고향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게 정겹고 모든 게 낯익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다음날 가게 될 끄렘린과 붉은광장 때문에 얼마나 설레는지!


 오늘 저녁에도 역시 TV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러시아엔 맥주 광고가 참 많다. 한국에서도 듣던 Балтика(발티카)도 많이 보인다. Бочка(보취까)도 상당한 인기였던 걸로 기억난다. 실제로 상당수의 러시아 젊은이들이 대낮에도 맥주병을 들고 다니며 음료수처럼 마시곤 한다. (러시아에선 맥주가 주류가 아닌 음료수로 취급된다.)


 그런데 잠자리에 누우면서도 가슴아픈 것은 지하철역 근처에서 구걸하던 할머니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닐까. 지하철역 출구에서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도 인상깊다. 그런데 무작정 전단지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 그냥 손에 들고 있으면 가져가고 싶은 사람이 한 장씩 가져가는 식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러시아 사람들 특유의 냄새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이게 뭔가 했는데, 그렇게 역겹거나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나에겐 오히려 정겨운 것 같다. 그게 도대체 무슨 냄새인지는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참 인상깊은 하루이다. 이제야 모스끄바 여행의 시작인데, 첫인상은 상당히 좋은 것 같다. 역시 내일의 끄렘린과 붉은광장을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