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이 되면 알아서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 있는 집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박찬근 선생님과 함께 기숙사를 나선 시각은 오전 8시 30분. 지하철 역까지 걸어서 가지 않고, Маршрутка(마르쉬루뜨까)라고 하는 노선택시(마을버스)를 탔다. 1인당 12루블이다. 지하철로 우리 기숙사 근처의 Дмитровская(드미뜨롭스까야)역에서 북쪽으로 두 정거장을 더 가니 Петровско-Разумовская(뻬뜨롭스까-라주몹스까야)역이 나온다. 그런데 지하철 좌석에 어떤 사람이 떡하니 누워있다. 잠이라도 자는 모양이다. 혹시 술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Петровско-Разумовская(뻬뜨롭스까-라주몹스까야)역에서 내린다.
지하철 역 밖으로 나오니 시장이 한참 열리고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점포도 있고, 장사를 시작한 상인들도 보인다. 물건들을 보니 전부 의류이다. 의류 전용 시장인 듯 하다. Ярмарка(야르마르까)라고 불리는 도깨비 시장이다.
우리는 싸고 좋은 신발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시장을 누빈다.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뭐라고 떠들어댄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가끔 어디서 왔냐는 질문도 들린다. "Из Кореи.(한국에서 왔어요.)"라고 답하니, 상대방은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다시 신발을 찾는다.
신발 가게가 몇몇 보인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가본다. 주인은 미소를 띄우며 우리를 반긴다. 어제의 Дом Книги(돔 끄니기)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고객이 최고이고, 고객이 왕이다.
일단 가장 맘에 드는 운동화를 고른다. 아디다스 상표가 있다. 주인 말로는 아디다스와 러시아의 합작이라고 한다. 즉, 아디다스 신발을 러시아 공장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운동화를 택한다. 가격은 1200루블. 우리 돈으로 약 48000원. 다른 신발들도 거의다 비슷한 가격인 것 같다. 아이쿠, 이런! 난 지금까지도 모스끄바의 물가를 무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런 서민 시장의 신발이라면, 우리 돈으로 몇 천원 정도 할 줄 알았는데.
박 선생님이 흥정을 해본다. 그랬더니 주인 아저씨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900루블로 깎아준다. 우리가 오늘 첫 손님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900루블이면 약 36000원. 더 이상 깎는 것은 곤란하다는 눈치다. 신발을 신어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한다. 내가 고른 신발은 디자인도 괜찮고, 신기에도 아주 편하다. 지금도 우리 집 현관엔 러시아에서 산 신발이 놓여 있다.
생각보단 가격이 비싸지만 어쨌든 새 신발을 마련하고 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놓인다. 그 때문인지 주위 광경도 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저 멀리에 국영방송국 탑이 보인다. 멀리 있다고 하는데 워낙 높아서 여기서도 뚜렷하게 잘 보인다. 우리 기숙사 근처에서도 항상 보이는데, 오스탄키노 타워라고 한다. 무려 537m 높이의 텔레비전 망루란다. 높이 328m 지점에는 금, 은, 동의 세 칸으로 나누어진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2002년 화재로 인해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도깨비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역에서 Пирог(삐로그)라고 하는 파이를 여러 개 샀다. 삐로그는 오늘날 노점에서 판매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식이면서도, 블린과 같이 축제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삐로그는 만두보다는 좀 크게 만든 고로케나 파이 같은 음식이지만 파이보다 훨씬 두껍고 고로케보다는 훨씬 크고 다양한 속을 집어넣는다. 밀가루를 튀긴 표피에 고기나 생선, 양파, 버섯, 곡물, 딸기, 건포도 등의 다양한 속을 층층이 쌓아 넣고 뼤치(печь: 난로)에서 굽는다고 한다. 러시아에는 이런 말도 있다고 한다. "농가는 성소로 인해 아름답고, 식사는 삐로그로 인해 빛이 난다."
지하철 역에서 기숙사까지는 Троллейбус(트롤리버스)를 탄다. 1인당 15루블. Талон(딸론)이라고 하는 표를 사서 트롤리버스 내 창문 위쪽에 설치되어 있는 펀치(구멍을 찍는 기계)에 집어넣고 눌러서 구멍을 내면 된다. 물론 구멍이 난 표는 더 이상 쓰지 못한다. 이 표는 트롤리버스 뿐 아니라 뜨람바이나 버스에서도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표를 거리의 끼오스끄에서 사면 더 싸다고 한다. 우리는 차내에서 표를 샀다.
버스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잘하면 무임승차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무임승차를 하다가 불시 검문에 걸리면 창피를 당하고 5배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가끔 버스에 감시하는 사람이 타고 있다고 하는데, 검문 때 표를 보여 달라고 할 때 구멍을 뚫은 표를 보여줘야 한다. 만약에 무임승차를 하다가 걸렸을 때 "지금 뚫으러 가려고 했던 참인데요." 하면 되지 않을까. 러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철과 트롤리버스, 버스를 연계하는 정기권을 이용한다고 한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마가진에 들른다. 박 선생님께서 колбаса(깔바싸)라고 하는 햄 베이컨을 사신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러시아 아줌마가 옆에 와서 박 선생님께 뭐라고 얘기한다. 무엇이 더 싸고 맛있는지 가르쳐준다. 누가 러시아 사람들은 다가서기 어렵고 외국인을 경계한다고 했는가―물론 일부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그런 것 같지만.
마가진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샀던 삐로그를 먹어본다. 맛이 정말 좋다. 평범한 빵보다 훨씬 맛있다.
오전 11시. 모든 일행이 모여 모스끄바 강으로 향한다. 시내 유람선 투어이다.
그런데 유람선 투어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와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말을 걸어온다. 내 옆에 젊은 청년이 앉아 있고, 그 청년 옆에 아저씨가 앉아 있다. 지하철 소음이 너무 심해서 아저씨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젊은 청년이 중간에서 말을 건네준다.
그 사람들은 단번에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아본다.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가방에 태극기를 달아놓은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 어느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학생인지도 물어본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가다가 벌써 내릴 시간이다. 지하철에서의 인연이 그렇게 끝난다. 서로 작별의 손을 흔든다. 그 아저씨는 계속해서 미소만 짓고 있다. 너무나 유쾌해 보인다. 나까지 덩달아 유쾌해진다.
우리가 내린 역은 Киевская(끼옙스까야)역이다. 지하철 역 근처에 끼예프 기차역이 있다. 끼예프로 가려면 이 기차역을 이용하면 된다. 끼예프, 현재 우끄라이나의 수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우끄라이나는 축구 팬들에게 아주 낯익은 나라가 아닐까. 그 대단한 셰브첸코의 조국, 우끄라이나.
끼예프 기차역 근처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모스끄바 강 유람이 시작된다.
모스끄바는 모스끄바 강의 수운에 힘입어 상업도시로 번영해 왔다. 20세기 초엽에 얕은 여울이 눈에 띠고 작은 배들도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로 수위가 낮아졌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이 강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볼가 강 상류와 연결하여 물을 끌어올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 계획은 30년 가까이 실행되지 않다가 1931년 6월 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 실현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4년 8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수에즈 운하의 세 배나 되는 토사를 실어 내고 1938년 5월 1일 128km에 이르는 모스끄바-볼가 운하가 완성되었다.
모스끄바는 수로로 백해, 발뜨해, 카스피해까지, 그리고 볼가-돈 운하가 완성된 후로는 흑해와 아조프해까지 5군데의 바다로 연결되고 있다고 한다.
모스끄바 강 유람은 여름철에만 가능하다. 5~6월부터 시작하여 9~10월경이면 끝난다고 한다. 가격은 주말이 평일의 2배가 된다고 한다. 평일엔 10루블이지만 주말엔 20루블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우리는 1인당 20루블을 지불해야 한다.
유람선 안에서는 음식도 팔고 있다. 나는 콜라만 사들고 유람선 위로 올라간다. 답답한 유람선 내부보다는 바람부는 유람선 위가 좋을 것 같다. 유람선 위에 러시아 여자 셋도 나란히 앉아 있다. 과자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있다.
맨 처음 왼편으로 노보제비치 수도원이 보인다. 배가 천천히 왼편으로 굽이치는 부근에서는 왼쪽으로 루쥐니끼 경기장, 오른쪽으로 모스끄바 국립대학과 스키 점프대가 보인다. 엠게우(모스끄바 국립대학) 건물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참새 언덕 기슭에 걸려있는 2층 다리는 길이 1200m로 모스끄바에서는 최대이며 아래로는 지하철, 위로는 자동차들이 왕래하고 있다. 2층 다리를 지나면 고리끼 공원이 보인다. 놀이동산 시설이 있다.
안드레예프 다리, 크림 다리를 지나면 강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의 왼쪽으로 흐르는 본류로 들어간다. 이곳을 지날 때에 범선 위에 올라 있는 뾰뜨르 대제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척 거대한 동상이다. 뾰뜨르 대제를 기념하는 동상은 이렇게 모스끄바에도 우뚝 서있구나. 뾰뜨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끄바에서 뻬쩨르부르그로 옮겼는데도.
국방부 건물이 보이고 끄렘린이 나타난다. 뭔가 좀 색다른 느낌이다. 바실리 사원도 보이고, 러시아 최대의 호텔이라는 Россия(라씨야)가 우리를 반긴다. 1967년에 세워진 이 호텔은 6000여 개의 객실과 대형 콘서트 홀을 갖춘 대형 건물로 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릴 때는 공산당 간부들만이 사용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이 거대한 호텔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대형주상복합건물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어쨌든 나는 철거되기 전의 라씨야 호텔을 보게 되는 영광을 누린 셈이다. 조금 더 가니 예술가 아파트가 보인다. 건물이 정말 멋있다.
오후 3시 30분. 시내 유람선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참새언덕으로 향한다.
모스끄바 국립대학 앞의 참새언덕은 모스끄바 강과 끄렘린을 비롯한 모스끄바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15m 정도 되며, 주변에 스키 점프대가 있고, 강으로 내려가는 리프트도 운행되고 있다.
참새언덕에 오르기 전,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그런데 한결같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거기엔 SAMSUNG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가끔 SAMSUNG 축구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SAMSUNG 깃발까지도 눈에 띈다. SAMSUNG 풍선도 많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내 눈이 믿기질 않는다.
참새언덕까지 오르는 길은 좀 힘들다. 과장이긴 하지만, 등산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원래 내 체력이 약한 탓도 있지만.
참새언덕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모스끄바가 내려다 보인다. 특히 루쥐니끼 경기장이 가장 눈에 띈다. 그리고 참새언덕의 신혼 부부들도 눈에 띈다. 신혼 부부의 친지들은 "고르까! 고르까!"를 외치며 키스를 부추긴다. 그리고 신혼 부부는 입을 맞춘다. 그 일행 중에 어린 여자 꼬마 아이도 보인다. 그 아이는 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하늘로 날려보내더니 신기한 양 계속 쳐다본다. 나도 어렸을 때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 했는데. 저 풍선은 우주까지 날라갈까?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가서 떨어질까?
그런데 내 시선은 루쥐니끼 경기장도, 신혼 부부도 아닌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중들은 모두 SAMSUNG 깃발을 흔들어대고 있다. 쌈쑹, 쌈쑹, 쌈쑹. 참새언덕이 아니라 쌈쑹언덕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살펴보니 삼성에서 주최하는 5km Running Festival이다. 삼성 티셔츠, 삼성 축구공, 삼성 풍선, 삼성 깃발, 삼성 봉까지……. 저기에 KOREA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관심없던 기업 삼성이 갑자기 뿌듯해진다. 내가 한국인임이 뿌듯하고, 아니, 나는 한국인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콘서트의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가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젊은 여대생들은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고 몸을 흔들며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다가 뒤에 있는 모스끄바 국립대학이 눈에 띈다.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모스끄바 국립대학. 흔히 엠게우라고 하는데 МГУ(엠게우)는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모스끄바 국립 대학)의 약자이다. 정식명칭은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Ломоносова. 1755년에 철학, 법학, 의학의 3개 학부로 설립되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농노' 이외에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교육의 문호를 넓혔다. 1804년 대학법에 의해 4개 학부(윤리 및 정치학부, 물리수학부, 의학부, 언어문학부)로 그 체제가 바뀌게 되었다. 19세기에는 러시아 학문의 중심부를 이루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학자가 활동하였다. 20세기 초두의 사회적인 변혁기에는 학생운동의 고조로 1911년에 대학을 폐쇄하기도 하였으나, 10월 혁명후인 1918년에 국립대학으로 되어 노동자 계급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혁명 후 학과와 강의실 및 연구실 등을 대폭 증설하였고, 전후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현재의 본관이 있는 참새 언덕 쪽에 대규모 대학 캠퍼스를 지어 1953년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새언덕에 위치해 있는 엠게우 본관 건물은 높이가 240m인 32층 건물로서 정면의 길이는 450m이고 45000개의 강의실이 있으며 이 건물을 다 둘러보려면 145km를 걸어야 한다고 한다. 건물은 스딸린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아주 웅장한 느낌을 준다.
현재 엠게우에는 19개 학부, 7개 단과대와 300여개의 전공분야가 있으며, 2만 6천 여명의 학부 학생, 7천 여명의 박사과정, 그리고 1천 여명의 정교수, 3천 여명의 강사, 그리고 약 5천 여명의 연구원이 있다. 대학 도서관의 총 장서 수는 800만권을 상회한다. 연구소는 450여 개, 대학 내 3개의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엠게우 구경을 끝내고 다시 콘서트 구경을 하는데, 경찰들이 여기저기서 감시를 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들이 일할 생각은 않고, 다들 콘서트 구경을 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보던 경찰들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우리를 붙잡고 트집을 잡지도 않고, 우리를 보고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러시아 경찰들이 전부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일행은 축구공에 욕심이 생겼다. 다들 삼성 축구공을 들고 있는걸 보니 공짜로 나눠주는 듯 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나눠주는 거지? 결국 용기를 내서 여자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축구공 나눠주는 행사는 이미 다 끝났단다. Running Festival도 이미 아까 전부터 끝난 듯 했다.
결국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축구공을 달라고 부탁해 보기로 했다. 러시아어 회화 연습도 할 겸.
그러나 전부 실패한다. 한 시간 넘게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맨 처음 여대생 둘은 웃으며 영어로 대답한다. 또 10대로 보이는 애들은 공짜로 주는 건 싫단다. 몇 루블이라도 달라는 것이 아닌가. 어떤 남녀 커플은 축구공이 없으니 우리한테 풍선을 나눠준다. 그리고 "아리가또!"라고 외친다. 이런, 우리가 일본인으로 보이나.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하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모르는 모양이다.
배가 고픈 탓에 핫도그 프란쭈스끼를 사먹는데 정말 맛있다. 안에 마요네즈를 넣은 것이다. 가격은 50루블.
그리고 이상한 소년 둘을 봤다. 한 소년은 풍선을 셔츠 안 가슴에 넣었고, 다른 소년은 풍선을 바지의 그 부분(?)에 넣었다. 그리고 둘이 돌아다니면서 장난을 친다. 보기만 해도 웃기다. 걔네들은 우리를 보고도 웃어 보인다. 그러더니 '쌀람!'이라고 외친다. 언젠가 뚜르끄메니스딴 친구가 자기네 나라에서 인사할 때는 '쌀람!'이라고 한다고 가르쳐줬는데, 이 장난꾸러기 녀석들은 내가 중앙아시아에서 온 줄 아는 모양이다.
참새언덕 구경은 5시 30분까지, 약 2시간동안 계속된다. 나중엔 지쳐서 가만히 서 있는다. 신혼 부부 커플이 다시 보이고, 예쁜 아가씨들, 잘생긴 청년들이 많이 보인다. 이제 콘서트가 끝나는지 사람들도 하나둘 빠져나가고, 어느 새 참새 언덕 위에는 수많은 청소차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물을 뿌려대고 청소차들이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그렇게 공연장이 청소되는 모양이다.
기숙사에 돌아온 시각은 저녁 7시쯤. 너무 많이 걸어다닌 탓인지, 다리가 무척 아프다. 하지만 나름대로 뜻깊고 즐거운 하루였던 듯 싶다.
그러다가 우리 기숙사에 한국 대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벽 1시 30분까지 그 형들 방에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어 나는 먼저 빠져나온다. 안 그래도 오늘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바로 잠자리에 든다. 살아 움직이는 도깨비 시장, 시원한 모스끄바 강, 그리고 쌈쑹 언덕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