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린다더니 진짜였어요"...
가방 하나로 하루 완주하는 13km 순례 트레킹
입력 2026.06.19 06:00
당진 버그내순례길
솔뫼성지에서 신리성지까지
버그내순례길 평야 전경 / 사진=당진문화관광
초여름 논길에 연둣빛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당진평야를 가로지르는 이 길에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난다. 급경사 하나 없는 평탄한 제방길과 농로를 따라 걸으면서도, 발밑에는 박해를 피해 숨죽였던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당티아고'라는 별칭처럼 버그내순례길은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로 통한다. 스페인이 아닌 충청남도 당진에서, 가방 하나 메고 하루 안에 완주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도시경관 관련 상과 '걷고 싶은 길' 선정 등으로 걷기 좋은 순례길로 소개되어 왔으며, 산티아고 순례길 협약을 계기로 국내 대표 순례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에서 출발해 조선 후기 천주교 교우촌의 흔적이 남은 종착지까지,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역사·힐링 트레킹 코스다.
솔뫼성지에서 시작하는 역사의 길
솔뫼성지 / 사진=당진문화관광
버그내순례길의 출발점인 솔뫼성지(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땅이다.
삽교천 수계와 당진평야를 따라 솔밭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길은 시작되며, 합덕제와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합덕성당, 무명 순교자의 묘를 차례로 경유해 신리성지에 닿는 편도 코스로 이어진다.
전체 거리는 약 13.3km 안팎으로, 코스 대부분이 평탄한 논길·제방길로 구성되어 있어 급경사가 거의 없다. 삽교천 포구를 통해 전래된 서양 선교와 조선 후기 박해의 역사가 걸음마다 겹쳐지는 길이다.
10개소를 잇는 스탬프투어와 순례 스토리
합덕성당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걷는 즐거움 외에 스탬프투어도 이 길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총 10개소 주요 순례지를 경유하며 각 지점에서 도장을 찍고, 완주 시 인증 스탬프와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스탬프 책자는 솔뫼성지 문화관광해설사 사무실, 합덕성당 성물방,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등 3곳에서 무료로 수령할 수 있어 출발 전 미리 챙기면 된다.
코스 중간에 위치한 무명 순교자의 묘에는 46기의 무덤이 있으며, 목 없는 유해와 묵주가 함께 발견되어 당시 박해의 흔적을 생생히 전한다. 합덕성당과 합덕제 인근에서는 카페와 식당을 이용하며 잠시 쉬어가기 좋아, 4시간 안팎의 긴 여정을 자연스럽게 분절할 수 있다.
종착지 신리성지, '조선의 카타콤바'
신리성지 전경 / 사진=당진문화관광
길의 끝에서 만나는 신리성지는 '조선의 카타콤바'라는 별칭을 가진다. 비밀리에 신앙이 이어졌던 교우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순교 성인을 기리는 경당과 오래된 고택을 복원한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신리성지 내 전망대에 오르면 내포평야와 거덜 마을 일대의 너른 들녘이 한눈에 펼쳐지며, 걸어온 순례길의 전체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솔뫼성지와 마찬가지로 신리성지도 독립적인 성지 순례 코스로 운영되므로, 전 구간 완주가 어려운 경우 일부 구간 걷기와 성지 관람을 조합해 일정을 꾸릴 수 있다.
방문 전 알아두면 유용한 이용 정보
버그내순례길 트레킹 / 사진=당진문화관광
버그내순례길 자체는 연중 상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솔뫼성지에는 대형 버스도 주차할 수 있는 넓은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합덕제·합덕성당 인근에도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성인 기준 편도 소요 시간은 보통 걸음으로 약 3시간에서 4시간 30분 사이이고, 솔뫼성지 내 전시·체험 시설은 10:00~17:00 전후 운영되므로 방문 전 개별 확인이 필요하다.
편도 코스 특성상 자가용 이용 시 차량 회수 방법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고, 평야 구간에 그늘이 적으므로 편한 운동화와 함께 모자·선글라스·자외선 차단제를 챙기는 것이 좋다.
신리성지 / 사진=당진문화관광
평탄한 들판 위에서 역사와 자연이 함께 흐르는 길, 버그내순례길은 체력 부담 없이 깊은 울림을 남기는 드문 코스다. 하루의 발걸음이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안겨준다.
연둣빛 논이 짙어지기 전, 6월은 걷기 가장 좋은 시기다. 무더위가 본격화되기 전에 이른 아침 솔뫼성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에 오르면, 13km의 들녘이 조용히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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