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찰거머리 떼어내기

작성자수돌이|작성시간26.06.09|조회수6 목록 댓글 0

 

찰거머리 떼어내기

 

장견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을 주색잡기로 다 날려버리고도 아직 술집과 노름판을 기웃거리는 파락호다.

여기저기 외상을 깔아놓고 수중에 땡전 한푼 없으면서 자신은 양반입네 챙 넓은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린다.

장가도 못 간 주제에 상투를 틀고 에헴에헴 헛기침을 날리며 염소수염을 쓰다듬고 다닌다.
장견은 파락호로 살아가는 그 나름의 재주가 있다.

첫째, 허우대가 그럴듯하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백옥 같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둘째, 장견은 ‘구라빨’이 뛰어나다.

어떤 곤경에 처해도 말문이 막히는 법이 없다.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발에 상대는 두손 들기 일쑤고 빚 독촉왔던 빚쟁이도 허허 웃으며 돌아간다.

셋째, 여러 장기 중에 가장 특출한 것은 여인 후리는 솜씨다.

훤칠한 외모에 빼어난 구라빨이 바탕이 돼 여인들 치마를 힘들이지 않고 벗길 뿐더러

여인이 치마 벗은 걸 후회하지 않게 뛰어난 방중술을 자랑한다.

만석꾼 부자 최 첨지의 무남독녀 아람의 혼기가 차오르자 매파들이 뻔질나게 들락날락했다.

호사가들은 과연 최 첨지의 사위는 누가 될 것인지 나름대로 점치고 있었는데,

아람의 혼인날이 갑자기 정해지고 주단포목 보따리에다 방물궤짝이 들어오며 집안이 부산해졌다.

신랑은 누군가?
오 대감댁 둘째인가? 장원급제한 조 참사의 맏이인가?

정 부자의 아들? 모두가 빗나갔다.

고을이 떠들썩하게 혼례식을 올리는 중에도 신부는 헛구역질을 해대고,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은 장견이다.
지난 단옷날, 몸종을 데리고 외출했던 꽃봉오리 새아씨 아람이 어떻게 파락호 장견에게 몸을 맡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람이 헛구역질을 시작하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최 첨지가 하인들을 시켜 장견을 포박해왔지만 장견의 화려한 구라빨에 어느덧 사랑방으로 술상이 들어가고

술잔이 오가더니 혼인 날짜까지 잡혀버린 것이다.

몇 달 뒤, 새신부 아람이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자 최 첨지는 입이 찢어졌다.

최 첨지는 외손자를 안고서 나들이해 외손자 인물 자랑하는 게 낙이 됐다.

만경창파 문전옥답은 말할 것도 없고 저잣거리의 해산물 도매상, 유기점, 주단포목점, 철물점, 양곡 창고 등

수많은 최 첨지의 사업장 관리는 장견의 몫이 됐다.

만사형통 장견에게 한 가지 장애물은 찰거머리처럼 붙어다니는 시동이다.

장견이 천하의 오입쟁이라는 걸 잘 아는 최 첨지와 아람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낸 것이

최 첨지 사촌형이 바람피워 낳은 서출, 열다섯 살 동배를 장견의 시동으로 붙여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감독하게 한 것이다.
장이 서는 곳마다 야바위꾼을 따라다니며 바람잡이를 하던 첩자 동배는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이모라고 부르는 기생집 주인이 새로운 동기를 장견에게 바쳐도 치마 벗길 기회를 막는다.

장견이 동배를 불러 돈표를 한아름 안겨주며 “동배야, 이걸로 사고 싶은 거 실컷 사라.”고 매수하려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장견에게 그 돈표를 들고 와 바꿔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허사였다.

어느 날 저녁, 장견이 개성서 온 거래처 손님을 데리고 기생집에 갔다.

물론 찰거머리도 따라와 문밖에서 귀를 세우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 방에서는 술판이 무르익는데, 문밖에서 망을 보는 동배 귀에 물이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려

몇 걸음 옮겨보니 부엌에서 기생집 이모가 촛불을 켜놓고 목간을 하고 있었다.
부엌문 틈으로 육덕이 풍성한 이모의 벌거벗은 몸을 정신없이 보고 있으려니, 이모가 문밖을 향해 말했다.

“동배야, 들어와 내 등 좀 밀어줄래.”

후다닥 놀랐던 동배가 결국 부엌으로 들어가 이모의 등을 밀어주고 안방까지 가게 됐다.

정신없이 일합을 치르고 나서 이합을 치르는데, 문이 덜컥 열리며 장견이 들어왔다.

“천천히 나오너라. 안마당에서 기다릴게.”
그날 이후, 동배가 매일 아침 아람에게 보고하는 장견의 동향은 완전 엉터리가 됐다.

장견이 동배에게 써줬던 돈표는 몽땅 이모가 장견에게 갖고 와 돈으로 바꿔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