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무엇 하는 짓이요!
샘솟다
화전 밭뙈기 콩밭을 매던 종선은 호미를 땅에 꽂은 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쏴~ 촤르르, 쏴~ 촤르르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저녁나절 터덜터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종선은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제 어미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엄니, 파도소리가 들려요, 바다내음이 나요,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어대네요.”
어미는 앞치마로 눈물을 닦으며 말린다.
“안 된다, 안 돼!
하나 남은 자식이 또 바다에 수장되거나 목말라 죽는 것을 볼 수는 없어.”
종선의 고향은 남쪽바다 외딴섬 무진도다.
무진도 앞바다에는 민어가 우글거린다.
민어알을 빼내 어란을 만들어 놓으면 큰 배가 온갖 일용잡화를 싣고와 어란과 물물교환을 했다.
물 반, 고기 반의 황금어장에 떠 있는 작은 섬, 무진도는 물이 문제다.
용바위 아래 퐁퐁 솟는 샘이 있을 때만 해도 20가구 넘게 살며 포구에도 어선들이 즐비했지만,
어느 날 천둥·벼락에 용바위가 갈라지더니 그렇게 쉼없이 솟아오르던 샘이 거의 말라버린 것이다.
모두가 뭍으로 떠났지만 고집스럽게 남아 있던 세 집은 겨우 고이는 샘물로 연명하다가
어느해 지독한 가뭄으로 목이 말라 죽는 사람이 이 집 저 집에서 생겨났다.
종선 애비도 그때 죽었다.
종선 위로 두 형은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에 고기밥이 됐다.
종선 어미는 하나 남은 아들을 데리고 무진도를 탈출, 첩첩산중 골짜기로 들어왔다.
계곡에는 항상 물이 콸콸 흘러 목마를 일이 없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일도 없다.
그러나 삼 년이 지나고 나니 종선이 병이 났다.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병이 난 것이다.
종선이 실성한 사람처럼 헛소리까지 하자 어미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로 작정했다.
무진도로 돌아가는 데는 꼬박 여섯 달이 걸렸다.
화전 밭뙈기와 너와집을 심마니에게 파는 데 몇 달이 지나갔고 걸어서 삼천포까지 가는 데 한 달,
거기서 수중의 돈을 뭉툭 떼어주고 무진도까지 가는 배를 찾는 데도 또 한 달이 걸렸다.
황포돛배가 풍랑을 헤치고 나흘 만에 무진도에 다다랐다.
종선은 포구에 벌렁 누워 “용왕님, 종선이가 돌아왔심더~”라고 고함을 치고,
종선 어미는 남아 있던 두 집 이웃사촌들과 얼싸안고 눈물바다를 이뤘다.
살던 흙집은 비바람에 쓰러졌고 억새 지붕은 썩어서 내려앉았다.
무진도에는 물이 귀한 데다 나무 하나 없고 억새만 우거졌다.
석 달 전에 뭍에 큰 장마가 졌다더니 나무판자와 통나무가 무진도 앞바다로 밀려왔다.
종선은 쪽배를 타고 나가 떠내려온 나무들을 끌고와 오뉴월 햇살에 바짝 말려 나무집을 짓기 시작했다.
거의 반 년이 걸려 무진도에 생전 처음 집 같은 집이 들어섰다.
억새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씌우는 날,
함께 땀을 흘린 이웃 두 집 남정네와 종선은 술을 진탕 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무진도의 세 집은 이웃사촌을 넘어 한식구나 진배없다.
민어 떼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정네 셋은 바다로 나가고 안사람들은 민어배를 갈라 알을 꺼내 어란을 만들었다.
내 것 네 것이 없었다.
새로 지은 종선네 마루가 어란 만드는 곳이다.
종선 어미도 눈을 감고서 어란을 코끝에 대고 깊은 향을 맡으며 고향에 잘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남정네 세 사람은 새벽부터 그물을 손보더니 해도 뜨기 전에 바다로 나갔다.
안사람들도 종선네 마루에 둘러앉아 어란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세 집은 따로 밥을 하지 않고 종선네 집에 모여 삼시세끼를 때운다.
그날도 초여름 햇살은 싱그럽고, 바람 한 점 없는 바다는 고요했다.
만선으로 돌아올 남정네들을 위해 닭을 잡아 가마솥에 백숙을 끓이는 저녁나절,
마파람이 불더니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와 새빨갛던 노을을 까맣게 덮어버렸다.
바람은 집을 날려버릴 듯이 불어대고 후두두두 빗방울이 굵어졌다.
집채 같은 파도는 섬을 쓸어버릴 듯이 덮쳐왔다.
세상은 금세 칠흑이 됐다. 종선 어미가 가마솥에 불을 지피다 말고 바닷가로 뛰쳐나갔다.
다른 집 아낙네들도 모두 바닷가로 나와 발을 동동 굴렀다.
깜깜한 바다만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불꽃이 치솟았다.
종선네 아궁이에서 역풍으로 나온 불꽃이 억새 더미에 붙자 새로 지은 나무집은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여 불길이 하늘 높이 올랐다.
날뛰는 바다를 보고 발을 구르던 사람들이 불길을 보고 발을 굴렀다.
종선 어미가 실성해서 용바위로 올라 신발을 벗고 치마를 뒤집어썼다.
아들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그렇게 애써 지은 집은 잿더미가 됐으니 내가 살아 무엇하랴!
그때였다.
“엄니 무엇 하는 짓이요!”
치마끈을 잡은 사람은 아들 종선이었다.
“배는 부서지고 칠흑 같은 바다에서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하는데 불길을 보고 돌아왔어요.”
그때 꽈과광 벼락이 용바위를 때렸다.
메말랐던 샘물이 벼락을 맞고 예전처럼 다시 퐁퐁 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