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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에세이 20―「의도의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와 「감정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

작성자소장|작성시간25.04.27|조회수41 목록 댓글 0

W. K. 윔셋(W. K. Wimsatt)과 먼로 C.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의도의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감정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

 

 

 

나종혁

 

 

 

W. K. 윔셋(W. K. Wimsatt)과 먼로 C.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의 공저 논문 의도의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

 

신비평가 W. K. 윔셋(W. K. Wimsatt)과 먼로 C.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는 그들의 공저 논문 의도의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작가의 의도(intention)는 문학 작품의 평가에서 유용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문학적 특성의 하나인 인유(allusiveness)에도 적용이 된다. 문학적 인유나 문학 작품 속의 인유를 분석하고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도는 유용하거나 바람직한 근거가 아니다. 윔셋과 비어즐리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시(poem)는 시가 처음 창작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작가의 의도나 통제를 떠나서 더 이상 시는 작가의 시도 아니고 비평가 자신의 시도 아니라고 한다. 시는 발표된 이후에는 작가나 비평가 개인의 몫도 아니고 소유도 아니며 대중”(the public)으로 귀속된다. 시는 물질적이고 그러므로 과학적인 언어로 형상화되었으며, 대중의 특수한 소유물이다. 시는 인간론이며, “공적 지식의 대상이다. 시는 인간학이거나 인간론이며, 대중적 지식 대상으로 시 자체가 예술 대상이며 미학적 대상이 된다. 시는 표준적인 경험과 다르지 않은 경험의 범주”(class)에 속하며, 이러한 시의 표준적 경험을 시인의 관련적 경험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윔셋과 비어즐리는 작가의 의도에 대한 논의는 문학의 사실주의적 모방론과 낭만주의적 창조론이 갈라지는 오래된 논쟁에서 유래하며, “의도의 오류는 낭만주의의 오류라고 지적한다. 시 비평이나 평가는 작가의 심리나 심리적 의도와는 다르며, 비평은 과학적 행위이고, 작가적 의도나 심리는 인상주의적이거나 전기 비평을 기초로 한 역사주의 비평에서나 다루는 것이다. 인상주의나 역사주의적 비평은 과학적 비평과는 다르다. 인상주의나 역사주의는 시적 대상이나 시 자체를 작가적 배경과 혼동할 수 있다. 시는 공유적 경험의 공유적 예술 작품으로서 미학적 대상화되는 것이며, 역사주의적 비평은 이러한 시적 경험과 시적 대상의 공유적 가치를 오히려 개인화하거나 내재화하는 비역사적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학 논쟁이 모방론과 창조론, 리얼리즘과 낭만주의로 갈래화 되는 오랜 역사 과정 속에서 인상주의와 전기적 역사주의로 한정되었던 문학 비평이 체계화되고 과학성을 담보하게 된 것은 신비평의 공과이고 문학적 사실이다(W. K. Wimsatt, JR. and M. C. Beardsley, “The Intentional Fallacy,” 1~21 참조).

 

 

 

W. K. 윔셋(W. K. Wimsatt)과 먼로 C.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의 공저 논문 감정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

 

신비평가 W. K. 윔셋(W. K. Wimsatt)과 먼로 C. 비어즐리(Monroe C. Beardsley)는 그들의 공저 논문 감정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의도의 오류는 시와 시의 기원사이에서 혼돈을 빚는 오류이며, 그것은 발생학적 오류라고 할 만하다. 윔셋과 비어즐리에 따르면 비평의 기준을 시의 심리학적 원인에서 시작하더니, 전기 비평과 상대주의로 끝이나 결론을 맺으려는 매우 상투적인 접근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감정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시와 시의 결과”(시적 상태 및 효과) 사이에서 혼돈을 빚는 오류이며, “인식론적 회의주의의 특수한 사례로 범주화되어 있다. 시의 심리학적 효과에서 비평의 기준을 도출하면서 시작하고, 인상주의와 상대주의로 끝을 맺는다. 감정의 오류의 근본적 오류는 창작과 비평에서 공히 배태되는 상징과 감정 사이의 혼돈이다. 시와 시가 이루어 내는 시적 효과 사이를 혼동한다거나 언어와 언어적 효과 사이를 혼동하는 것은 상징과 감정, 언어와 감정 사이를 혼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주의로 귀결될 뿐이다. 한편에는 언어가 있고, 다른 편에 생각(thought)이 있다면, 문학의 과학적 연구 방법론은 오로지 물질적이고 대상적인 언어만이 존재할 뿐이며, 생각이나 사상은 감정이나 효과와 마찬가지로 부수적일 뿐이다. 의도의 오류가 빚어내는 또 다른 결과가 내재주의적의도의 오류라면, 감정의 오류가 빚어내는 또 다른 결과는 반과학적이고 주정주의적인 동시에 중층적이고 그러므로 범주적인 감정의 오류이다. 낭만주의 시의 정의처럼 시가 강렬한 감정의 자연발생적인 분출이라면, 낭만주의와 차별화되는 신비평의 시의 정의는 미학이자 미학적 대상이며, 예술 작품이자 예술적 대상이다. 이것은 신비평의 시적 주기가 낭만주의적 시적 주기의 창조적 발생론에서 체계적 예술론으로 발전하는 시적 발전 단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가능성은 존 키이츠(John Keats)잘 빚어진 항아리에서 익히 예견할 수 있다. 특히 감정의 오류의 경우에는 감정과 감정적 효과가 미학적 경험과 혼동될 우려가 있는 동시에, 이성과 대조되는 감정의 필연적이고 당연적인 야만주의(primitivism)는 그 강한 충동과 효과에도 불구하고 야만적 공격성과 파괴적 본능에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신비평가 윔셋과 비어즐리에게는 그들은 오류인 것이다. 감정이란 것은 감정만으로는 이성이 없을 것이므로 감정의 효과나 결과를 논하거나 기대한다는 것은 더욱더 그러한 비이성적 충동에 노출되어 있다. 물론 의도의 오류에서도 그렇지만, 이성이란 것도 이성만으로는 감정이 없을 것이므로 이성이나 이성적 의도를 논하거나 기대한다는 것도 인간론이자 인간성으로서의 시를 규정하거나 예술론이자 예술 대상으로 시를 규정하는 데에는 한계와 오류가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인상주의와 상대주의를 멀리하고, 신비평이 인간론과 예술론을 비평의 과학적 근거와 기조로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휴머니즘적 인간론으로서의 예술론을 지향한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W. K. Wimsatt, JR. and M. C. Beardsley, “The Affective Fallacy,” The Sewanee Review, Vol. 57, No. 1, 1949. 31~55 참조). <> <202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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