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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희] 내시의 딸 - 내시의 딸 17

작성자aja_aja|작성시간26.06.08|조회수39 목록 댓글 0

[변선희] 내시의 딸 - 내시의 딸 17

 

희철이는 우리 집에서 살면서도 늘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누구에겐가 버림받았다는 것,

그것도 부모에게 버림받고 또 다시 그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은 희철이에게 더할 수 없는 상처가 된 것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올 때 수열이가 나를 붙잡고 나에게 희철이를 부탁하던 그때도 기억났다.

어린 희철이가 부모에게 버림받고 길거리를 헤매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구걸을 하던 그때.

희철이는 너무도 다른 아이가 되어있었다.
딸을 버렸고 그로 인하여 그 딸아이가 백혈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도 몰랐던 무지한 부모.

그 딸이 그렇게 치료 한 번 못 받고 죽어갔을 때 나타났던 그 부모가 왜 또 희철이를 버렸던 걸까?
나는 새삼 화가 나지는 않았다.

미옥이가 죽고 난 후 미옥이의 집을 찾아갔을 때 생선을 다듬으면서 이제 잘 살아보려고 했다면서

미옥이 생각이 나니 우리들더러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던 그때가 기억났다.
나는 많은 것이 기억나 무심하게 미옥엄마를 보고 있었다.
 “면목이 없어서, 도저히 면목이 없어서......”
미옥이 엄마가 확 주저앉았다.
 “수열아.”
수열이가 나를 보았다.
 “희철이는? 희철이는 아니?”
수열이가 말했다.
 “아직.”
 “도대체 미옥이 어머니를 어디서 만난 거니?”
나는 괜히 화가 난 것처럼 수열이에게 억양을 높이고 있었다.

그때 옥영이가 말했다.
 “우리 이모님 댁에서 연락이 왔어.”
 “이모님? 우리 어머니?”
 “그래.”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옥이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먹이면서 말했다.
 “내 다시는 안 나타나야 했는데, 그랬는데......”
 “도대체 왜 아이를 또 버리셨던 거예요?”
 “그 사람하고는 다시는 살 수가 없었어요.

해외로 일하러 간다고 벌리던 일이 사기를 당하면서 다시 나쁜 버릇이 나왔고 나는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미옥이 때문에 상성이 되었던 터라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옥영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아주머니께서 많이 아프셨대.

그리고 한동안 기억을 잃으셨고.”
 “그래?”
 “우리 이모님이 알던 분 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우린 다 몰랐지.

어느 날 이모님 댁에 갔다가 심부름을 갔었어.

그 심부름 간 댁에서 나는 아주 낯익은 분을 발견했지.

처음에는 나도, 미옥이도 다 기억하지 못하셨어.

우리가 차근차근 물으니까 조금씩 기억하셨지.

그래서 내가 이리로 모셔오자고 한거야.

여기서 계시면서 조금씩 기억을 찾아가고 계시지만 지금도 아프셔.

승화야 너무 자극하면 안돼.”
 “그럼 희철이는 기억하시는 거니?”
옥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지금은 만날 자신이 없으시대.

그이가 희철이를 집에 데려왔는데 희철이가 엄마를 못 알아보더라.”
 “그러니?”
희철이는 여섯 살 경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왜 희철이는 자기 엄마 얼굴을 기억해 내지 못하였던 것일까?
 “왜 기억 못하지?”
 “아마 희철이는 그 부분이 생각하기 싫었을 거야.

그래서일까?

정말 희철이는 엄마를 보고도 그냥 목례를 하더라.”
 “그래? 그럼 희철이를 보셨어요?”
내가 미옥이 엄마에게 물었다.
미옥이 엄마가 하소연 하듯이 말하였다.
 “보았어요. 우리, 우리 아가를 보았어요.”
미옥엄마가 눈물을 주르륵 흘러내었다.

나는 그런 미옥이 엄마의 모습이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아이를 버린 엄마.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죽도록 방치했던 그런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기억을 다 잃으셨어요?”
내 말투에는 못마땅한 구석이 배어있었다.
 “사고이셨어.

어느 집 장독대에서 일하시다가 밑으로 떨어지셨대.

그래서 한동안 일도 못하시고.”
 “그럼 사고 이전에는 왜 희철이를 버린 건데?”
아주머니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왜 그래? 지금 와서 그런 걸 물어서 뭘 어쩌겠다고.”
남편이 내 팔을 잡았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우리 희철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데.”
내 말에 수열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나는 희철이에게 엄마를 찾아주고 싶다.

말은 안 해도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겠니?”
 “그렇지.”
영윤이도 말하였다.
 “나 우리 엄마 가끔 기억나.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는 아마 우리엄마 였을거야.

나한테도 다른 모든 사람한테도 우리엄마는 가장 나쁜 사람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자주 우리엄마가 생각난다. 왜 인지는 몰라.

하지만 그런 엄마라도 살아서 내게 말을 시켜주었으면 좋겠을 때가 있어.

가장 나쁜 엄마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엄마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내가 어떤 슬픈 일 있을 때 내게로 걸어와 같이 울어 줄 사람 있을지 몰라도 정말 즐거운 일 있을 때

그 기쁜 일 있을 때 정말 같이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엄마뿐이야. 나는 이제 그런 엄마도 없다.

승화, 너는 그런 엄마가 있지. 그런 엄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 줄 아니?

그런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함 인 줄 알고 있니?”
나에게는 엄마가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친엄마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나는 우리엄마를 엄마 이상으로 좋아하였고 정말 나는 그 엄마의 딸이었던 것이다.

내가 왜 그런 엄마의 소중함을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미옥이의 엄마가 자꾸만 원망스럽기만 했다.

미옥이가 죽고 난 후 그때부터라도 어린 희철이를 제대로 키워야만 하였다.

하지만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버리고 그 아버지도 집을 나가고 난 후 아이는 살던 집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그 어린 아이를 놓아두고 집을 나갔던 엄마는 아무리 아버지의 책임이라 돌리고 있어도 그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던 것이다.
 “나는 희철이하고 같이 살게 해드리고 싶어.”
수열이의 말이었다.
 “희철이가 알아보지도 못한다면서?” 나의 말에 “그래도 말을 해야지.”
그때였다.
 “어, 나만 빼고 여기 다 모였어?”
희철이가 들어왔던 것이다.
 “희철아.”
 “누나. 왜 나만 뺐어?”
희철이가 들어오더니 우리 먹던 상으로 다가앉았다.
 “형수, 나도 밥 좀 줘요. 배고파서 혼났네.”
희철이는 먹성 좋게 전을 집어 먹고 잡채도 집어먹고 김치도 집어먹었다.
 “너, 일하는 줄 알고 그랬지.

어서 먹어, 배고팠지?”
나는 얼른 젓가락을 새로 갖다 주는데 어느새 옥영이가 밥 한 그릇과 국을 떠왔다.
 “희철아, 너 한 그릇 갖고 안 되지?” 영윤이의 말에
 “당연하지. 한 그릇 더 갖고 와, 누나.”
희철이는 덩치가 좋은 덕분에 먹성도 좋았다.

먹성이 좋아 덩치가 좋아진 것이겠지만 우리는 희철이가 상에 앉은 덕분에 다시 상 주위로 몰려 앉았다.
 “어서 먹어라.”
나도 희철이 곁으로 반찬을 몰아주었다.
상머리에 앉아 희철이가 식사를 시작한 덕분에 상에는 술이 나왔고 술이 한잔씩 돌아갔고

희철이는 음식을 먹는다고 술은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먹던 희철이가 “그런데 저 아주머니는 누구야?”
갑자기 엄마를 가리킨 것이었다.
수열이가 다가앉았다.
 “희철아, 기억이 안 나니?”
 “어, 뭐가?”
희철이는 음식이 입에 든 채로 우리들을 둘러보았고 미옥이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았다.
 “누나.”
갑자기 희철이가 나를 보았다.
 “희철아.”
나의 모습에 희철이의 얼굴이 굳어가고 있었다.
 “그래. 희철아 자세히 봐.”
희철이의 얼굴이 흑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나.”
희철이가 내 곁으로 옮아앉았다.

마치 어떤 두려운 대상을 보기라도 한 양 희철이가 외면을 하고 나만 바라보았다.
 “누나, 말해 줘. 무슨 일인데.”
 “희철아.”
 “누나, 빨리 말해 줘. 나 못 참는 거 알잖아.”
희철이가, 그렇게 덩치 큰 희철이가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 희철아. 엄마셔. 너희 엄마. 이제 기억하겠니?”
희철이가 그 말에 흘깃 자신의 엄마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누나, 내가 엄마가 어디 있어?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구?

누나가 날 길에서 데려다가 동생으로 여태 키운 거잖아?

그래, 누나. 난 엄마가 없어.

나를 버린 사람들 나한테 부모도 아무것도 아니야.

누나 제발 그런 말하지 말아.

난 그런 말 들으면 그대로 돌아버린 단 말이야.”
 “희철아.”
희철이가 울부짖고 있었다.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희철이가 울부짖고 있었다.
희철이는 성격이 낙천적이라 그렇게 떼를 쓰지도 잘 울지도 않는 아이였었다.

그런데 그 희철이가 울고 있던 것이다.
 “왜 그래, 희철아. 희철아.”
나는 희철이를 끌어안았다.
 “처남. 처남.”
남편도 희철이 옆으로 왔다.
수열이가 다가왔다.
 “희철아. 그러지 말아. 어서 그쳐.”
수열이가 희철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래도 엄마시다.

네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네 엄마셔.”
 “형, 내가 엄마가 어디 있다고 그래?

내가 이 세상에 엄마가 어디 있어?”
희철이가 울부짖었다.
 “계셔.

지금 네 옆에 이렇게 계시잖아.

너 알지?

네 탓이 아니야.

네 엄마 탓도 아닌 것 알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만든 거야.

가난해서 아이도 키울 수 없게 했고 너무나 힘들어서 자식도 키울 수 없었던 거야.

우리 배웠잖아. 지난번 세미나에서 그런 이야기 배웠잖아.”
마치 유치원생을 다루는 교사처럼 수열이가 차분하게 말하면서 희철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형.”
희철이가 수열의 품으로 다시 안겼지만 엄마 쪽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였다.
 “희철아, 어머니에게 가봐.

엄마가 그동안 많이 아프셨대. 그리고 기억을 잃으셨던 거래.

그래도 이젠 너를 기억하셔.”
우리들은 그런 희철이의 옆으로 희철엄마를 데려왔다.

희철의 엄마는 가까이 다가는 왔지만 선뜻 희철의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는데 보다 못한 수열이가 “희철아, 어머니셔”
그때 였다.

희철이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면서 수열이를 더 와락 끌어안았다. 수열이는 그런 희철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래도 어머니시다.

지금 네 마음속에 있는 그 어머니셔.

지금 네가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 것이 어머니 때문이잖아.

그 어머니가 바로 옆에 계신데 너는 무엇을 망설이는 거니?”
참담한 시간이었다.

기가 꺾인 미옥이 엄마와 그 곁에 희철이는 서로를 마주보지 못하였고 우리들은 하나 둘 씩 밖으로 나왔다.

옥영이가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설거지도 거들지 못하고 가야겠다.” 이렇게 말하였을 뿐이었다.

차가 엉그러진 수열이네 앞 길은 이제 쉴 새 없이 차들이 질주하는 제법 큰 도로가 되어있었다.

신호등이 없는 길을 간신히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깜깜해지고 있었다.
 “비가 오려나 보다.”
우리들이 서둘러 마당으로 올라서는데 어느덧 후드득 비가 떨어졌다.

마당가에 능소화는 거기 또 그렇게 서서 화려한 꽃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 비 맞겠다.”
남편이 내 팔을 잡아끄는데 나는 자꾸 거기 능소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능소화는 저렇게 아름답지만 혼자서 자라 굳건한 밑동을 지니고 튼튼한 가지를 만들어 자라는 꽃이 아니었다.

반드시 어떤 튼튼한 버팀목이 거기서 받쳐주어야만 비로소 줄기를 뻗고 또 그렇게 힘차게 가지를 뻗을 수 있던 것이었다.
희철이가 울며 보이던 그 선량한 눈빛도 생각났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면서도 언제나 맑고 빛나던 그 선량한 눈 빛.

우리 집에 오면서 집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집이 아니고 부모형제가 아닌 것을 알면서

살아가던 그 아이는 때때로 얼마나 서러웠을까?
그 희철이에게 가장 위안을 주었던 아이는 승태였다.

자신보다 더 어려서 부모의 기억조차 가지지 못한 아기를 보면서 희철이는 정말 친동기간처럼 마음을 다 주었고

그것은 희철이가 자라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이 있고 자신이 보살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에 마음 든든하였던 것이었다.

 “이제 희철이에게 정말 의지할 곳이 생긴 것일까?”
이제 희철이는 독립을 하였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가진 셈이었다.

하나도 보탬 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부양만 남은 힘없고 늙은 엄마의 출현이 과연 희철이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였다.
 “그래도 어머니인데,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남편과 나는 장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소나기였다.

뿌연 안개를 내 뿜으면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소나기는 세차기만 하였다.

금방 마당은 물로 가득 차고 둥둥 물방울이 떠다니고 있었다.

명절에 만드는 커다란 만두만큼 이나 큰 물방울들이 마당으로 둥둥 떠다니고 거 옆에 능소화는

잔뜩 늘어져 늙은 나무에 바짝 몸을 비비고 있었다.

저렇게 다 죽어가는 나무지만 그래도 능소화는 그 나무를 의지하고 피어나는 것이었다.
 “희철이는 그 엄마가 있어서 이제 외롭지 않을 거야. 그렇지?”
나는 다짐이라도 하는 듯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나의 손을 쥐고 우리는 안채로 뛰기 시작하였다.

바깥마당에서 대문가로 들어가 안채로 가기에도 제법 많은 비를 맞아야 할 만큼 그 거리가 멀었지만

우리는 고스란히 그 비를 맞으면서 안채로 뛰는데 어느새 엄마가 우산을 받쳐 들고 우리에게로 오고 있었다.
 “엄마, 어서 가세요. 천둥 치는데…”
우리가 우산을 쓰지 않고 엄마를 쓸어안듯이 하고 대청으로 들어왔고 옷에 이미 흥건하게 젖은 몸을 툭툭 털었다.
 “엄마는 누워 계시지.

뭐하러 우산을 들고.”
엄마는 기운이 나 보였다.
 “아니야.

이제 뭐 아무렇지도 않아.”
엄마가 하늘을 보면서 “참 장하게도 오신다.”
마당가에 핀 백일홍은 비를 맞아 고개를 잔뜩 숙였고 분꽃이며 나비화초며 봉숭아도 모두 비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마당에는 바깥마당에서 보았던 그런 물방울들이 둥둥 떠다니고 우리보다 더 비를 흠뻑 맞은 희수오빠가 뛰어 들어왔다.
 “오빠.”
 “아이고, 고거 가까워서 그냥 오다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어머니, 일어나셨어요?

더 누워계시지요.”
 “아니야. 내가 뭐 어디가 아픈가?”
엄마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참 장하게도 오신다.”
 “그렇지요?”
 “왜 이렇게 비를 맞고 왔어요?”
 “승화하고 영윤이가 갈까봐.

가기 전에 수박 참외 좀 따놓을 걸해서 뛰어왔지.”
 “그러게 진작 좀 따놓지.”
 “누가 비가 올 걸 알았나?”
 “지나가는 비일 거예요.

금방 그치겠죠 뭐.”
 “그렇겠지?”
우리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더욱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도 쳤다.

천둥소리가 무섭게 울려 퍼졌다.
 “비 들이치겠다. 방으로 들어들 가려무나.”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데 또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둥이 쳤다.
영윤이가 "큰엄마, 희철이 엄마가 나타났어요.”
 “뭐? 희철이 엄마가?”
희수오빠도 우리를 쳐다보았다.
 “수열이네 집에 갔는데 거기 계셨어.”
 “희철이는?”
 “희철이도 왔지.”
 “그래서?”
 “근데 희철이가 계속 울기만 했어. 우리 그거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수열이만 두고 왔지.”
희수오빠가 “잘됐구나.”하면서 나를 보았다.
 “오빠, 왜?”
 “희철이가 어머니를 받아들일까 생각했다.”
 “무슨 소리야 오빠?”
희수오빠가 “희철이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기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대.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자기 누나를 죽게 하고 또 자신을 버린 부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차라리 자신이 고아였으면 더 좋겠다고, 그냥 상상이나 하게.

부모가 기억이 안 났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그러면서 운 적이 있다.”
 "그래?"
 "희철이가 여기 왔을 때 한참동안 사람 눈치를 보고 먹을 것을 보면 기갈이 들린 것처럼 먹고 말도 안 하고 한참을 그랬다."
 "그랬지."
 "우리 승태를 꽤 좋아했지.

승화 네 친구들이 자꾸 그랬다.

승태가 죽은 미옥이 후신이 아닌가 말이야."
 "그랬어."
 "희철이가 정말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아.

지금도 보면 희철이는 승태를 가장 의지한다."
 "맞아, 오빠."
 "희철이는 누구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엄마나 나나 식구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신도 누구를 보살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지."
우리들은 희철이가 어렸을 때부터 승태를 얼마나 잘 보살폈는가를 알고 있었다.
 "희철이 엄마가 지금 그럼 수열이네 집에 있는 거니?"
엄마가 물었다.
 "그렇지."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화야, 나와 함께 수열이네로 좀 가자."
 "엄마가?"
 "그래."
희수오빠가 엄마 곁으로 왔다.
 "어머니께서 지금 움직이신다고요?"
 "그래. 내가 가보아야 할 것 같다."
 "안돼요. 어머니.

지금 그렇잖아도 안 좋으신데…."
 "아니다.

내 가보아야겠다."

엄마는 대체로 어디를 가거나 무슨 일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직접 수열이네 집으로 간다고 한 것이다.
 "가서 어쩌시려구요?"
우리들은 다 같이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몹시 긴장한 표정이었고 병원에서 나올 때처럼 창백하였다.
 "엄마도 지금 피곤하신데 거길 진짜 가려고?"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가서 어떤 매듭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다."
엄마가 말하는 매듭이란 것이 어떤 건지 우리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어떤 다른 이야기가 있는 지 궁금하였다.
 "그럼 어머니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희수오빠가 선뜻 나섰다.
나도 "나도 갈게요, 엄마."
 "그렇게 다 따라올 건 없고…

생전 안 가던 집에 불쑥 나타나기가 뭐해 승화더러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그래요. 엄마 내가 갈게."
는 엄마의 손을 잡고 마당을 걸어 나갔다.

어느덧 소나기는 그쳤고 맨 흙으로 된 마당에는 물이 흥건했지만 워낙 마당을 잘 다져놓은 탓에 질퍽거리지는 않았다.

골을 따라 물이 내려가고 그 흙이 깨끗하게 씻겨있었다.

그 위로 우리들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엄마의 흰 고무신 발자국이 조복조복 나있고 그 위로 내 구두 발자국이었다.
 "이렇게 우리 집 앞에는 발자국이 나지."
그것이 흙으로 된 마당이라 그런 걸 생각하면서 나는 앞장섰다.

그리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면서 앞서갔고 엄마도 내 뒤를 따라왔다.
 "엄마, 이쪽으로요."
마른 땅을 찾아 엄마의 손을 잡고 내려가는 나를 보면서 엄마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딸이 언제 이렇게 컸나?"
새삼스러운 말에 엄마를 바라보았다.
 "나한테는 우리 승화가 아직도 다섯 살인데 이젠 이렇게 어엿한 애엄마가 되다니."
 "엄마는…."
 "어릴 때는 여기서 잘도 넘어지더니…"
 "엄마는 가셔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나는 궁금해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글쎄다.

그냥 가서 희철이 엄마를 우선은 좀 보고 싶다."
그렇게 걸어서 수열이네 집으로 갔고 우리가 그 집 현관문을 두드렸을 때 그 안은 정적이었다.
한참 후 옥영이가 문을 열었다.

우리는 열어준 문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거실에 희철이와 엄마가 앉아있었다.

엄마가 안으로 들어가자 희철이 엄마가 일어섰다.
 "우리 엄마세요."
희철이도 엄마를 보고 "엄마." 일어섰다.
희철이에게는 이제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친근한 이름, 엄마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엄마, 오셨어요?"
희철이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우리 희철이가."
엄마가 희철이의 손을 꼭 잡더니 그 손을 가지고 희철의 엄마 곁으로 가서 그 손을 잡게 해 주었다.
 "비가 왔더구나.

우리 마당이 온통 물 천지야.

아버지는 일부러 우리 근처는 시멘트로 바르지 않으셨지.

그 마당은 온 식구가 흙을 퍼다가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그런 마당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마당에는 늘 어떤 흔적들이 있단다.

해가 밝은 날이면 새들이 날아와 뽀얀 흙먼지를 밟고 다니면서 벌레도 잡고 풀도 뜯고 거기에 사람들의 발자국도 선명하다.

그래서 아침 마당을 쓸면서 나는 이 앞으로 누가 지나다녔는지 누가 마당을 어지럽혔는지도 가늠하였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흰 고무신 자국이 있던 어느 발자국이 찍힌 날이면 꼭 마당이 그렇게 깨끗하게 되어있는 것을 보곤 했어.

누군가 와서 치우기라고 한 것처럼 말이야.

어느 해부터 그런 발자국을 보면서 나는 그게 누군가 생각했지.

희철아, 그것은 네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꼭 누가 집을 다녀갔지.

얼마나 그리우면 그렇게 다녀가고 얼마나 형편이 안 되면 그렇게 그리운 사람을 못 만나고 갈꼬…

나는 애처로웠다.

네 어머니는 너를 너무도 그리워하였던 거야.

우리도 그렇게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땟거리를 걱정하면서 살 무렵 밀가루 한 포대로 일주일을 살던 그 시절에 네가 우리 집에 있었다면,

이렇게 지금처럼 식구들이 많았다면, 우리들은 지금처럼 같이 살지 못하였을 줄도 몰라.

희철이 어머니. 우리 희철이가 하늘에서 복을 주는 아인가 봅디다.

얘가 우리 집에 오고부터는 어려운 일이 없었어요.

그렇게 힘들지 않게 식구들이 늘고 이렇게 평화롭게 되었답니다.

희철이 어머니, 이제 우리 집으로 가세요.

아이가 보고 싶어 그렇게 밤늦게 몰래 찾아오시지 말고 숨어서 아이를 보시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세요.

거기서 함께 사십시다."
엄마의 제안이 나도 희철이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엄마."
희철이가 우리 엄마를 보았다.
 “어차피 우리 집은 나그네들의 집인걸 뭐.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나그네라고 하지 않잖니.

다 서로가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잖니.

그래, 우리 집은 누구하고든지 다 같이 살며 같이 한동아리가 되어 땀 흘리면서 사는 그런 터인가 보다. 우리 같이 살자꾸나.

네 어머니가 그간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였는가.

꼭 이야기해야 알겠니?

나는 그러고 싶다.

네가 집을 마련하게 하여 같이 나가 어머니하고 살게 하고도 싶지만 나는 그냥 우리 집에서 다 같이 살고 싶다.”
우리들은 그런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그렇게 하자꾸나.”
엄마가 희철이를 쳐다보았다.
 “엄마”
희철이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우리 이렇게 같이 살자꾸나.”

그리고 엄마는 다소 완강하게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희철이 엄마 손을 잡고 감나무 집으로 들어섰다.

누가 집에 들어온다는 것과 달리 또 한 사람의 식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지으면서 워낙 방을 여러 개 만들었으므로 뜰아래채 희철의 방 옆에 새로 방을 마련하였고

엄마는 제일 먼저 새로 꾸민 이부자리를 들여다 놓는 것으로 마치 준비했던 일처럼 희철이의 엄마는 우리식구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묵묵하던 희철이가 식사 때 먼저 일어나 제 엄마에게 숭늉을 갖다 놓는 것을 보면서

식구들은 희철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엄마는 과일을 썰면 식구들을 다 같이 대청마루로 불렀고 그 옆에 희철이와 그 엄마가 먼저 앉도록 배려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덧 희철의 엄마는 스스로 걸어 희철의 카센터로 갔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거기 세차 일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희철이도 말리고 엄마도 말렸지만 희철의 엄마는 생각보다 부지런한 편이었다.
 “제발 저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우리 희철이 곁에 있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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