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의 모습을 보고 싶거든 낙양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을 보라
성신황제 호불왕 측천무후 이야기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였던 그는 파벌에 매이지 않고 능력에 따른 인재등용으로 중국의 문화를 한층 발전시킨분이다.
유교적인 사관을 기진 사관들에 의해 무측천의 삶은 악의적으로 폄하되고 왜곡됐을 가능성이 많다.
수나라가 망하고 이연에 의해 당나라가 건국되자 이연은 자신의 조상을 높이기 위해 노자를 내세워 도선후불정책을 편다.
도교를 앞세우고 불교를 뒤로 하는 정책이다.당나라의 정책은 고구려에도 영향을 끼쳐 불교사원을 도교의 도관으로 바꾸는 바람에 고구려의 많은 고승들이 백제와 일본으로 망명하고 민심이 동요하여 고구려 멸망을 자초했던 것이다.
측천무후는 즉위하면서 도선후불의 당나라 정책을 180도 바꾸어 선불후도로 바꾸었다. 불교가 발전하고 모든 종파가 성장할수 있게 한것이다.
측천무후가 존경하고 가까이 했던 고승은 신수대사.혜안대사.남양혜충국사.그리고 신라의 원측스님등이다.
그는 고승들의 법력을 나름대로 시험하였다.도인이 되면 애욕경계에 흔들림이 없다는데 그것을 직접 시험한 것이다.
하루는 신수대사를 궁전으로 초대하였다.그리고 목욕하고 설법준비를 하게 하였다.목욕탕에 대사가 들어가자 가장 잘생긴 궁녀 둘을 알몸으로 목욕수발을 들게하였다.그리고 여황제는 목욕탕 구멍으로 그 상황을 지켜본 것이다.
신수대사가 미인들의 목욕수발에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중얼 거린다.‥산에 올라가 보아야 다리의 힘을 알고 물속에 들어가 보아야 크고 작음을 안다.
이때의 일은 선가에서 크게 화제가 되어 그런 일을 당하면 철불이라도 진땀을 흘리지 않을수 없을 거라는 선어가 생겨났다.
무측천은 내불당의 북을 울리고 신수대사를 위한 법석을 마련하였다.문무백관이 모두 모여 신수의 법문을 듣기위해 모였다.신수가 법상에 오르려 하자 무측천이 나서서 법상아래 엎드렸다.황제의 등을 밟고 법상에 오르게 한것이다.가장 높은 황제가 스승을 이렇듯 귀하게 받든것이다.
신수대사의 동산법문이 법석을 울렸다.불심이 깊은 무측천은 법문을 들으며 깊은 감응이 일어났다.마음속에 일어나는 감동을 노래로 불렀다.
무상심심 미묘법 백천만겁 난조우
아금문견 득수지 원해여래 진실의
우리들이 천수경 외울때 맨앞에 나오는 개경게는 바로 측천무후가 신수대사의 법문을 들으면서 감동해서 읊은 게송이다.게송은 이어진다.
위없이 깊고 미묘한 법이여.
백천 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데
내가 이제 보고 듣고 받아 지니오니
원컨데 여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
어떻게 하면 장수하여 금강불괴의 몸이 될까요?
다시 어떤 인연으로 인해 크고 견고한 힘을 얻을까요? 어떻게 이 경전을 이해하여 마침내 피안에 도달할까요?
원컨데 부처님은 미묘하고 비밀한 곳간을 열어 널리 중생을 위해 말씀해 주소서.‥
중국스님들이 금강경 독송할때 서두에 외우는 측천무후의 게송이다.
측천무후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에는 한글자도 없어 무자비로 불린다.그는 한평생 많은 일을 했지만 무자비로써 금강경도리를 설파한 것이 아닐까?
측천무후 생신때 61개 번국에서 선물을 가지고 사절단이 왔다.
무후는 외쳤다.나에게 이런 세속적인 물건은 하나도 필요없다.
그러면 어떤 물건이 필요합니까? 나를 위한다면 대불을 세워라.
이때 측천무후를 모델로 하여 조각된 것이 용문석굴의 17미터 대불.노사나불이다.
중국의 수많은 불상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 평가받는다.
1300년전 측천무후의 생전 모습을 보고 싶으면 낙양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을 보라.‥
용문석굴 노사나불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다.
문화대혁명때 홍위병들이 쇠망치를 들고 석불들을 파괴하였다.
노사나불의 무릅까지 깨부수었을때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일어났다.홍위병들은 천벌이 내렸다고 놀라 달아났다.
무릎아래는 파괴된 흔적이다.
사진은 용문석굴 노사나불을 참배하는 현장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