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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석전 박한영 스님 이야기

작성자홍수영HongPD|작성시간26.06.19|조회수22 목록 댓글 0

일제때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를 조선의 삼대천재로 꼽는다.

세 사람은 그당시 불교계의 최고 석학이었던 석전(石顛) 박한영 스님(1870~1948)을 학문의 스승으로 모셨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식과 영감을 나눴던 돈독한 인연은 근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석전 ​박한영 스님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 노장사상, 서양 사상, 문학 및 지리까지 모든 학문에 통달했던 인물이다. 당대 최고를 자부하던 조선의 젊은 천재들이 오직 박한영 스님 앞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가르침을 청했다.

​"석전 선생을 만나면 불교 경전이고 그 밖의 책이고 간에 모르는 게 없었다. 나는 평생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었지만, 오직 석전 선생에게만큼은 물어볼 것이 있었다."
— 육당 최남선

​"박한영과 함께 길을 갈라치면 한국 땅 어디에 가나 모르는 게 없다. 산에 가면 산 이야기, 물에 가면 물 이야기... 이른바 사농공상 무엇에 관해서든 막힘이 없었다."
— 위당 정인보

​1926년 최남선이 조선의 정신과 혼을 담아 근대 최초의 개인 창작 시조집인 《백팔번뇌》를 펴낼 때, 이 인연들이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이 시집에는 최남선의 서문과 함께 박한영 스님, 홍명희, 이광수, 정인보가 각각 발문및 추천사를 달아 주었다.

박한영 스님은 한문으로 깊이 있는 발문을 써주며 제자의 문학적 성취를 격려했다.

​최남선과 박한영 스님은 함께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 등 전국의 명찰과 산천을 순례했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고 남긴 풍악기유(楓嶽記遊)라는 여행기에서 최남선은 국문 산문으로 여정을 기록했고, 박한영 스님은 아름다운 한시(漢詩)를 덧붙였다.

​훗날 조선 3대 천재들의 삶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게 엇갈렸다. 최남선과 이광수는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했고, 홍명희는 지조를 지키다 해방 후 월북의 길을 걸었다.

​제자들이 변절하거나 사상적으로 나뉘어 흩어지는 비극 속에서도, 스승이었던 박한영 스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켰다. 제자들 역시 자신들의 행로와 상관없이 스승인 박한영 스님의 깊은 학문과 인품만큼은 평생 존경하고 따랐다.

석전(石顚) 박한영 스님은 근대 한국 불교의 최고 대강백이자, 수천 수의 한시를 남긴 빼어난 시승(詩僧)이다.
친일 행적 없이 청정하고 곧은 지조를 지켰던 스님의 넓고 깊은 학문 세계는 당대 문단을 이끌던 수많은 시인과 문필가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박한영 스님의 가르침을 받거나 정신적 감화를 받았던 근대 문학사의 거목들은 다음과 같다.

​미당 서정주는 박한영 스님과 가장 각별하고 깊은 인연을 맺은 제자이다. 항일 학생운동으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방황하던 청년 서정주를 거두어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시키고 학비를 대주며 보살핀 이가 바로 박한영 스님이었다.

서정주는 스님을 나의 뼈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 부르며 평생 존경했다.스님이 남긴 한시집 《석전시초》의 시들을 직접 한글로 번역하여 편역서를 남기기도 했다.

​신석정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의 정지용과 함께 당대 최고의 전원시인으로 꼽히는 신석정 역시 개운사 대원암의 불교강원에서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스님의 따뜻한 성품과 깊은 시 세계는 신석정 시의 맑고 은은한 정서에 큰 바탕이 되었다.

​조지훈 (趙芝薰) 청록파 시인의 대표 주자인 조지훈 역시 중앙불전 시절 박한영 스님에게서 큰 학문적 영향을 받았다. 조지훈 특유의 고풍스럽고 불교적인 사색이 담긴 문학 세계는 박한영 스님이라는 거대한 학문적 자양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위당 정인보 조선의 '양명학'과 '조선학'의 대가이자 문필가인 정인보는 박한영 스님과 학문적 동지로 깊이 교유했다. 정인보는 스님의 전기 격인 〈석전산인 소전〉을 집필하며 스님의 박람강기(博覽強記)함을 "사농공상 무엇에 관한 문제를 꺼내든지 화제가 고갈될 줄 몰랐다"고 극찬했다.

​가람 이병기 (李秉岐) 시조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이병기 역시 박한영 스님과 긴밀한 문학적 교류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국어학자 권덕규와 함께 제주도를 유람하며 영주기행(瀛洲紀行)이라는 아름다운 기행문을 남기기도 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박한영 스님을 불교계의 '사형(師兄)'으로 모시며 평생을 함께 보냈다. 1908년 일제가 한국 불교를 일본 불교에 예속시키려 하자, 두 스님은 힘을 합쳐 이를 저지하는 불교유신운동을 이끌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한용운의 삶 전반에는 박한영 스님과의 단단한 사상적 연대가 흐르고 있었다.

​1930년대 박한영 스님이 중앙불전 교장으로 재직하고 개운사 강원을 이끌던 시절, 그의 문하를 거쳐 간 문필가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소설가 김동리
​시인이자 승려였던 김달진
​시조 시인 조종현 (소설가 조정래의 부친)
​여류 시인 모윤숙과
문학평론가 양건식

박한영스님은 구한말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격변기, 친일에 물들지 않고 유·불·선을 아우르는 거대한 지식의 바다였다.

석전 박한영 스님은 서정주, 신석정, 조지훈, 김동리 등 한국 현대 문학사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시인과 문필가들을 키워낸 한국 근대 문화의 보이지 않는 뿌리였다.

/글 사진 석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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