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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이 대구로 간 사연] 방언의 힘

작성자홍수영HongPD|작성시간26.06.19|조회수27 목록 댓글 0

[미더덕이 대구로 간 사연] 방언의 힘
대구에는 미더덕이 없다. 미더덕을 찾으려면 경남 마산의 바닷가를 찾아야지 미더덕을 녹여버릴 만한 더위로 유명한 경북 내륙의 대구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구의 옛 지명인 ‘달구벌’을 떠올리면 미더덕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 여기에 미더덕의 정체를 밝히면 미더덕과 대구의 관계는 한층 더 가까워진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이 떠오르겠지만 활시위를 힘껏 당겨 쏘아 올린 미더덕이 대구의 어느 집 굴뚝에 닿으면 그 모든 비밀이 풀린다.

미더덕의 이름부터 수상하다. 상식적으로 보면 ‘미’와 ‘더덕’의 합성어이고 ‘더덕’은 아마도 도라지보다 더 향이 강한 뿌리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나는 곳이나 크기가 다르지만 둘 다 표면의 주름과 진한 향을 가지고 있으니 연상할 만하다. 문제는 앞에 붙은 ‘미’인데 아무래도 한자 ‘味(맛 미)’나 ‘美(아름다울 미)’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한자가 고유어 ‘더덕’에 바로 붙는 것은 이상하다. 다른 답을 찾아야 한다.

더덕의 흙 속에 사는데 미더덕은 어디 사는가? 물에 산다. 더덕 비슷하게 사는 것이 물에 사니 ‘물더덕’이란 이름이 붙을 만하다. 그런데 ‘물’과 ‘미’는 첫소리만 같을 뿐 나머지 소리는 너무 멀다. 받침이 있고 없고의 차이도 있고 핵심인 모음도 다르다. 그래서 대구, 아니 달구벌로 가야 한다. ‘물더덕’에도 있고 ‘달구벌’에도 있는 받침의 ‘ㄹ’이 비밀을 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은 과거에는 ‘믈’이었고 대구의 옛 지명은 여러 한자로 표기되었지만 모두 ‘달구’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둘에 모두 있는 받침의 ‘ㄹ’이 무슨 조화인지 ‘이’로 바뀐다. 물론 완전한 ‘이’가 아닌 ‘야’를 발음할 때 ‘아’ 앞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그 소리, 혹은 ‘의’를 발음할 때 ‘으’ 뒤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그 소리다. 세종대왕 당시에 ‘애, 에, 외, 위’는 오늘날과 달리 ‘아이, 어이, 오이, 우이’와 같이 발음하되 뒤의 ‘이’ 소리가 있는 듯 없는 듯했는데 이때의 ‘이’ 소리이다.

‘ㄹ’이 이리 바뀌면 ‘믈’은 ‘믜’가 되고 ‘달구’는 ‘대구’가 된다. ‘므이’처럼 발음되던 ‘믜’가 ‘미’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리고 ‘다이구’처럼 발음되던 것이 ‘애, 에, 외, 위’의 변화에 발맞춰 ‘대구’가 된다. 그러니 ‘미더덕’과 ‘대구’는 같은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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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邱, 한자만으로 보면 ‘큰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고 언덕은 어디에나 있으니 지명 풀이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大丘’여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丘’는 ‘邱’와 통한다. 그런데 기록에는 다른 표기도 남아 있는데 만약 그 중의 하나인 ‘大句’라면? ‘句’는 ‘글’을 뜻하니 이 지역에 뛰어난 문장가를 찾아서 어떻게든 유래를 설명해야 한다. ‘句’가 구부러졌다는 뜻도 있으니 이 지역의 지형 중에서 이런 곳을 찾아야 한다. 오로지 한자에 기대어 지명을 풀이하면 이런 문제들이 생겨나기 쉽다.

전남 함평에 ‘학다리고등학교’가 있는데 한자로는 ‘鶴橋高等學校’라고 쓴다. ‘학다리’라고 불리는 다리가 있으니 그것을 한자로 ‘학교(鶴橋)’라 쓰다 보니 이 학교는 ‘학교학교’가 된 셈이다. 그런데 학을 닮은 다리는 어떻게 생긴 다리일까? 울산의 옛 지명으로 ‘학성(鶴城)’이 남아 있고 함경북도에도 ‘학성군(鶴城郡)’이 있다. 지명 속 한자를 보면 학과 관련이 있는 성이 있을 듯한데 그 성은 어떤 모양, 혹은 어떤 속성이 있는 것일까?

이때의 ‘학’은 날아다니는 학이 아니라 ‘흙’일 가능성이 높다. ‘흙’의 옛말이 ‘ᄒᆞᆰ’이었으니 이 다리는 ‘ᄒᆞᆰ다리’였고 이 성은 ‘ᄒᆞᆰ성’이었다. 받침에 자음이 둘이 있지만 하나만 발음되니 각각 ‘ᄒᆞᆨ다리’와 ‘ᄒᆞᆨ성’이다. ‘ᄒᆞᆰ’은 ‘흙’으로 바뀌었지만 ‘ㆍ’는 ‘ㅏ’로 바뀐 사례가 많으니 이 둘은 ‘학다리’와 ‘학성’으로 남았다. 이제 한자를 좋아해서 아무 데다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이의 차례다. ‘학’으로 읽히는 한자 중에 쓸 수 있는 것은 ‘學(배울 학)’과 ‘鶴(두루미 학)’인데 사연을 덧붙여 지명으로 쓰기에는 역시 새가 좋다. 이렇게 엉터리 한자붙이 지명이 만들어진다.

어디를 가든 ‘행길’을 지날 때가 많은데 이를 ‘行길’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렇게 한자와 고유어가 만나는 일은 드무니 의심해 봐야 한다. 이는 ‘한길’, 즉 ‘큰 길’이다. 이게 ‘아기’가 ‘애기’가 되듯, ‘반가워’가 ‘방가’가 되듯 소리의 변화가 일어나 ‘행길’이 된 것이다. 그래서 말할 때는 ‘한다리’라고 하면서 한자로는 ‘백교(白橋)’라고 써 놓았으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 본래 ‘큰 다리’였는데 어느새 ‘흰 다리’로 둔갑한 것이다.

‘보련’에서 태어나 ‘원펄’에서 기른 채소와 ‘개나리논’에서 수확한 쌀을 먹으며 자랐다. 집 앞으로는 ‘거머니’와 ‘달뵈기’라는 이름의 마을이 보였다. 집 뒤의 갯고랑을 가로지르는 ‘시다리’를 건너 ‘흔들’이란 동네에 있는 ‘백석포국민학교’를 다녔다. 이 학교에는 근처의 ‘새버리’와 ‘와우리’ 아이들도 다녔다. 가끔씩 ‘수리네미, 구름물, 느새’에 사는 고모들이 오셔서 용돈은 안 주고 엿이나 알사탕만 주고 가셨다.

‘보련’은 ‘보리원’ 정도로 보이는데 ‘원펄’과 ‘개나리’는 여전히 모른다. ‘거머니’는 오리무중이지만 ‘달뵈기’는 달에 한번씩 이 마을의 샘물에 핏빛이 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를 반쯤 믿었다. ‘시다리’는 ‘쇠다리’인 듯하고 ‘흔들’은 나중에 보니 ‘흰돌마을’이란 표지석을 세워 놓아서 초등학교 이름 ‘백석포(白石浦)’와 관련을 지을 수 있었다. ‘흔들’을 ‘헌 들’로 보고 ‘새 벌’로 ‘새버리’를 풀이하려 했는데 민간어원설이 돼 버렸다. 수리조합 너머에 마을이 있으니 ‘수리네미’이고 ‘新雲里’에서 ‘구름(雲)’을 보고 고구려어 지명에서 ‘물’을 보면서 ‘구름물’의 연원을 알았다. ‘느새’에는 억새가 많았으니 그와 관련지어 보기는 하지만 쉽지 않다.

미더덕을 먹으면서 한자 ‘味’나 ‘美’만을 떠올리면 미더덕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한밭’이라고도 불리는 ‘大田’의 사례를 보고 ‘大邱’의 한자만 붙들고 있으면 영원히 길을 찾지 못한다. 한자의 공격을 잘 견딘 것들, 혹은 한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옛말의 흔적을 남긴 것들이 주변에 있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때론 팽팽히 켕겨 놓은 시위로 미더덕을 쏘아 올리면 대구의 어느 집 굴뚝에 다다르기도 한다.

/글 그림 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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