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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병마절도사 가선대부 소흡(蘇潝) 공에 대하여

작성자甕岑 소태섭|작성시간26.06.15|조회수17 목록 댓글 0

종친 여러분, 싱그러운 녹음이 짙어가는 유월 중순입니다.
푸르른 자연이 전하는 생기와 활력 속에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진주소씨 선조이신 조선시대 소흡 경상병마절도사에 대한 자료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종친 여러분께서 참고해 주시기 바라며, 특히 참판공파 후손 여러분께서는 훌륭하신 직계 선조를 둔 자긍심을 더욱 깊이 새기시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시대 병마절도사 가선대부 소흡(蘇潝) 공에 대하여**

조선시대 무신으로 활약한 소흡(蘇潝) 공의 자는 혼원(混元)이며, 1516년(중종 11) 5월 6일에 태어나 1588년(선조 21) 1월 20일에 별세하니 향년 73세이다. 신라 대장군이자 각간·상대등으로 문무를 겸비한 진주소씨 시조 소알천 공의 31대손이며, 고려 삼한벽상공신 소격달 공의 21대손이다. 또한 1247년 몽고의 아모간이 일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을 때, 겨우 일천 명의 군졸로 맞서 고군분투하다 중과부적으로 순절한 고려의 명장 소함 좌우위상장군의 10대손이며, 개성윤과 판도판서를 역임한 청백리 고려 명현 광정대부 소을경 공의 6대손이다.

4대조는 의부위와 충무위 부사직을 역임한 소이 공으로, 수성최씨 수성군 파조이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였던 최유림 장군의 장인이기도 하다. 증조는 무과에 급제하여 진용교위 훈련원 참군을 지낸 소경원 공이며, 조부는 어모장군 충무위 부사직을 지내고 증직으로 형조참의에 오른 소희식 공이다. 부친 소수연 공은 충무위 부사직을 역임하고 공조참판을 증직받았으며, 모친은 용인이씨로 별제 이효중 공의 따님이고 외조부는 현령 이봉손 공이다.

소흡 공은 1540년(중종 35)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인 1541년(신축)에 중시에도 급제하였다. 이후 1568년(선조 1) 전라좌수사를 시작으로 1569년(선조 2) 경상병마절도사, 1572년(선조 5) 평안병마절도사, 1579년(선조 12) 함경병마절도사를 역임하며 변방 각지에서 국토 방위에 헌신하였다. 특히 1588년(선조 21)에는 평안병마절도사로 재임명되며 종2품 가선대부 품계를 받았다.

그는 여러 차례 변방 수비라는 중책을 맡으면서도 권력이나 높은 지위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점차 위엄 있고 당당한 기상으로 명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배위 정부인 부안장씨는 동지중추부사 장세호 공의 따님이며, 조부는 호조판서 장말손 공, 증조는 장신중 공으로 고려 판도판서 장련의 후예이다. 정부인은 1523년(중종 18) 10월 2일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 4월 5일에 별세하였으며, 후사가 없었다. 묘는 평택시 지산동 우곡 선고묘 아래에 있으며, 부부가 함께 합폄되어 있다.

소흡 공은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정부인 부안장씨와 사이에 후사가 없어 아우 고성포만호 소준 공의 차남 소응사 공을 양자로 삼아 대를 이었다. 소응사 공은 여절교위 부사과를 지내고 음직으로 부장에 올라 청렴하고 어진 성품으로 명망이 높았다. 손자 소정진(초휘 대진)은 음사로 감찰을 거쳐 안동판관에 이르렀다.

소흡 공은 조선 중기의 문벌 중심 사회 속에서도 무과와 중시에 모두 급제한 엘리트 무신이었다. 당시 조선은 문관 중심의 정치 체제가 강하여 무신이 고위직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그는 북방·동북·남해 등 주요 군사 요충지에서 병마절도사를 역임하며 국경 방어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공명심보다 책임을 중시하는 위엄과 기개를 지닌 덕장(德將)으로 평가된다. 당시 조선은 전면전은 아니었으나 지속적인 긴장 상태 속에서 국경의 안정적 유지와 철저한 방어 체계 확립이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전라좌수사로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경상병마절도사로서 남부 군사력을 총괄하였으며, 평안도와 함경도 병마절도사로서 여진의 침입에 대응하며 북방 방어 체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최북단 국경에서도 빈틈없는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주요 군사 요충지를 두루 지휘하였다.

그는 중앙 요직보다 변방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확고한 통솔력과 엄정한 지휘력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경험을 쌓아 안정적인 국경 수비와 평화 유지에 기여하였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으로서 조선의 국방 체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명장이었다.

비록 역사 기록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으나,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군사 체제를 유지하고 국경 방어 경험을 축적하여 후대의 전쟁에 대비하는 데 기여한, 국방과 안보에 충실한 장수로 평가할 수 있다.

옹잠 소태섭(시조 상대등 공의 47세손)

진주소씨 대종회 종사위원장

진주소씨 족보편찬위원

 

 

◆ 첨부 된 근거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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