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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느헤미야 제4강-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작성자문갈렙|작성시간12.02.12|조회수68 목록 댓글 0

2012년 느헤미야 제 4 강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말씀: 느헤미야 8:1-10:39

요절: 느헤미야 10:39b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지난 강의에서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완성한 것을 공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한 후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따라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회복했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고 서원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적인 성벽의 완성과 함께 내면의 영적인 성벽을 쌓아 온전한 '하나님의 집'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적인 회복을 이루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에 기초하여 맡기신 역사를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I. 율법 책을 공부한 이스라엘 (8: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의 위협과 훼방 속에서, 한 손에는 병기를 한 손에는 삽을 잡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기적적으로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백성들은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갔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칠월이 되자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모든 백성이 자진해서 예루살렘 성의 수문(Water Gate)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 책을 가지고 오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밤낮으로 창을 들고 돌을 나르며 성벽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죄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온 민족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제는 소수만이 돌아온 이때, 말씀을 통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 능한 에스라를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아무리 외적인 역사를 이루어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내적인 기쁨, 영적인 생명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광장에 남자나 여자나 무릇 알아들을 만한 회중이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다 모여든 것은 외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말씀을 통한 내적인 역사가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팔절인 7월 1일에 에스라는 모여든 백성들 앞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을 읽었습니다.(준비된 성경선생 에스라, 스7:10) 이때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자세는 어떠했습니까? 5절을 보면 백성들은 에스라가 나와 단 위에 서서 율법책을 펼 때 일제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을 때 모든 백성이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3b). 새벽부터 모인 사람들은 배고픔도 잊고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져 가는 중동의 태양아래서 무려 6시간 동안이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할 때 모든 백성들은 손을 들어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선포된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반응했습니다. 성경선생인 레위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7, 8절을 보십시오. 예수아와 바니를 비롯한 레위인들은 성경공부의 리더가 되어 에스라가 읽은 율법을 다시 낭독해주고 그 뜻을 명확하게 해석하여 다 깨닫게 했습니다.


 이때 백성들 가운데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9a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우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70년간의 치욕적인 바벨론 포로기를 경험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큰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과거 나라가 망하고 이방인들에게 능욕과 수치를 당한 것도 다 자기들의 죄 때문인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남은 자대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돌아온 자는 돌아온 자대로 이방인들을 두려워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던 모든 죄를 깨닫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으로 무디어지고 무지한 그들의 내면을 깨우치고 그들의 심령을 쪼개어 감추어진 모든 죄를 드러냈습니다(히4:12).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길 없는 죄인이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육신의 욕심과 감정을 따라 살던 것을 눈물로 회개한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회개, 진정한 변화는 이처럼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대해 온 마음으로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일어납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선택하여 듣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듣든지 ‘아멘’을 외친 것은 믿음과 순종의 역사를 이루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말씀을 통한 근본적인 변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말씀이던지 '아멘!'으로 분명히 응답해야 합니다. 말씀이 부담스럽다고,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외면한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한 변화의 역사를 원한다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치 하나님 앞에서 듣는 것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도 성경읽기선교회 멤버로서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를 돌아보고 절대적인 자세를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래디컬에 나오는 중국 지하성도들의 영적 갈망)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가운데 진정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9b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울 때 총독 느헤미야와 에스라, 레위 사람들이 우는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백성들이 모여 율법의 말씀을 들은 이 날, 곧 나팔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안식일로 지켜야 하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울어서는 안되고 거룩함과 기쁨으로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각자가 준비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고,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The joy of God is your strength!)(10)"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모든 백성들은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습니다(12).

 

 그러면 ‘여호와로 인하는 기뻐하는 것(The joy of God)’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쁨의 근원이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 진정한 기쁨(The joy) 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a' joy 가 아니라 'The' joy(유일한, 바로 그 기쁨)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가 드러나기에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자이시기도 하지만 놀라운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죄가 아무리 커도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다시 자녀 삼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과거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고 징계를 받아 타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신 사랑과 능력으로 이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불러 모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놀라운 사랑과 긍휼과 회복의 능력,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의 근원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회복이 능력을 맛본 사람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이 바로 우리의 ‘힘’이 됩니다. 여기서 ‘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오즈’는 힘의 의미뿐만 아니라 ‘위로’, ‘보호’, ‘피난처’의 뜻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맛보고 하나님을 유일한 기쁨의 근원으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친히 함께하셔서 힘을 주실 뿐만 아니라 위로하고 보호하는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이 사랑과 긍휼을 체험한 다윗은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기쁨과 위로를 날마다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기쁨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지위나 명예가 자신을 빛내줄 것 같고, 권력과 쾌락과 돈이 우리에게 기쁨과 힘을 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많이 누려보지 못해서 그렇지 권력과 쾌락과 명예와 돈의 맛을 본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끝까지 즐기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이런 것들이 주는 결말을 거의 날마다 접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탐하다가 쇠고랑을 찬 사람들, 게임이나 쾌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된 사람들, 돈 때문에 가족까지 살해한 사람들 등. 세상은 달콤한 말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 The joy를 줄 수 없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서 인정과 칭찬을 구할 때, 진정한 기쁨과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이것을 깨달은 자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사 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즐거워할 때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박국 선지자나 이사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날마다 세워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정말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우리 삶을 채우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밝히 아는 가운데 기쁨이 충만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통해 회개와 진정한 기쁨을 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좀 더 깊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지도자들은 에스라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성경을 공부하던 중 하나님께서 나팔절 이후 초막절(매년 7월 15일부터 일주일동안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행사 - 레 23:39-44)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14). 이는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초막을 지으며 살았던 날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출애굽 때 그들에게 두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잃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초막절에 대해 알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즉시 감람나무와 여러 나무 가지들을 잘라서 수문 앞 광장과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였습니다. 그런데 17절 하반부에는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면서 크게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멀쩡한 집 놔두고 초막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했을 텐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뻐했을까요? 이는 초막생활을 통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이 첫 번째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현재의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2의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또한 초막절을 치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회복하게 되자 그들은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항상 처음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인생소감의 중요성)

 

II. 언약을 세운 이스라엘 (9:1-10:39)


 9:1절을 보십시오. 7일간의 초막절과 여덟째 날 성회까지 마친 이스라엘은 그 달 24일을 속죄일로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었고 모든 이방사람과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낮 사분지 일인 3시간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이어진 3시간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 때,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회개할 때 예수아와 바니 등 레위 사람들이 단 위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날의 풀과 같고 그 영광도 들의 꽃과 같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계시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지금도 우주의 질서를 보존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기에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7절부터 38절은 레위인들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종이 된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불순종과 완악함 때문임을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축복의 땅에서 이방의 식민지가 되어 그 곤란을 지금까지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죄악에도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당하지 않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통해 볼 때, 우리도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도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를 지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된 것은 신앙생활을 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라 내시고자 하면 벌써 수십, 수백 번 잘라 내실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을 참으신 것같이 우리를 참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랑과 긍휼을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를 감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은혜를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는 말씀에 순종해서 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나와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겠다는 결단을 하고 백성들 앞에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10장 1-27절에는 이때 도장을 찍은 제사장과 레위인, 백성의 지도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구체적인 언약의 증거를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구체적으로 한 결단의 언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습니다(10:28-30, 신7:1-4).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방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욕에 기초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에 기초한 결혼을 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 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초 단위입니다. 이 기초 단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세워져야 세속주의가 더 이상 가정을 파고들어 오지 못하고 더 나아가 그 사회와 국가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둘째, 안식일과 안식년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서원했습니다(31). 안식일에는 상거래를 중단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우선 할 것을 결단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제정하신 날입니다. 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킬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민족공동체를 이루고 이방인들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8장13,14절은 말합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셋째, 성전의 일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드릴 것을 약속했습니다(32-34).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의 일이 부족함 없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약속입니다. 이와 함께 첫 소산과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했습니다(35-37). 첫 열매와 십일조는 물질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판가름 해주는 신앙의 기준점입니다. 이 물질은 하나님 역사에 쓰이고, 세상에 분깃이 없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이들이 생활에 대한 걱정이 없이 하나님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39b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보존하여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지켜나가기를 원했습니다. 성전에 대한 분명한 헌신이 있을 때 믿음도 중심이 바로 서게 됩니다. 그들이 성전을 보존하기로 결단한 것은 이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는 사랑의 결단이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중심의 온전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결론 :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에 ‘아멘, 아멘’으로 응답했고 어찌하던지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회개로 인도하셨고, 이를 통해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고, 하나님의 전을 지키는 진정한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자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고, 독수리가 날아오르듯 힘을 얻게 됩니다. 2012년에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말씀을 통해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공동체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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