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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22강-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작성자김스데반|작성시간12.08.12|조회수45 목록 댓글 0

2012년 마가복음 제22강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말씀/막14:32-72

요절/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원하심과 인간이 원하는 것 사이의 끊임없는 줄 달리기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 한사코 진리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할 수만 있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원하심보다는 자기의 원하는 것이 더 좋고 자기가 선택한 곳에 행복이 있을 거라고 고집을 피웁니다. 인간은 참 고집불통입니다. 그 결과 죄를 짓고 인류역사에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의 원하심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기도에는 예수님이 아들로서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32-42)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 후,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과 특히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겟세마네라는 동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할 장소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들 앞에서 심히 슬퍼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34).” 예수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처럼 힘든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항상 당당하고 스피릿이 충만하셨습니다. 살기등등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는지 알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오늘따라 너무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다. 왜 그러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잠시 후면 체포당합니다. 채찍에 맞으며 발길질을 당하며 심한 고초를 겪게 됩니다. 옷은 다 벗겨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과 수치를 당해야 합니다. 두 손과 두 발에 굵은 대못이 박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몸은 찢기고 뼈는 으스러지게 됩니다. 온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조금씩 조금씩 말라 비틀어져 죽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시지만 오직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이런 고난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마음을 다해 도왔던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진심을 다해 병 고쳐주고, 귀신도 쫓아내주고, 먹여주었던 사람들도 배신하고 다 등을 돌리게 됩니다. 누구 한 사람 예수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일시적으로는 사랑하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아야 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외톨이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것은 육신을 가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의 몸을 가지셨기 때문에 십자가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심히 슬퍼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나약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정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고통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질 수 있을까 해서 제자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쿨쿨 잠만 자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솔하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심히 고민하여 죽을 것 같은 마음의 고통까지도 그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완벽하면 거리감이 느껴질 텐데 예수님도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여러모로 죄인들의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매우 잘 이해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심지어 1:1목자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이해해줄 누군가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자신을 이해해줄 남편을 원합니다. 남편도 자신을 이해해줄 아내를 원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매우 서운해 하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을 직접 경험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실패와 좌절을 이해해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참된 위로를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5,36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조금 더 동산으로 들어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조금 나아가사’ 이 말은 예수님이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지만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 말은 예수님이 앞으로 당하실 십자가의 고통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후에 있을 부활의 영광까지 생각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인간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가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생각만 하고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 속에 말려들어갑니다. 인간적인 감정과 혈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상처만 받고 쓴 뿌리만 깊어집니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든 그 문제의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이해받고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조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감정이나 자기연민은 이해받고 위로받을 대상이기도 하지만 조금 나아가 영적인 기도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땅에 엎드리셨습니다. 이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명과 장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고민과 생각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나의 뜻이 관철되도록 하기위해 청구서 내밀듯 하나님께 기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피조물인 인간이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의 이 기도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주여” 이렇게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Abba Father. 아빠 아버지여”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십니다. “아빠”는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깊이 신뢰하고 그 품에 안길 때 “아빠” 그럽니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 때는 가부장적이어서 그런지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왠지 어렵고 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는 “아빠”라고 부르며 재롱도 부리고 애교도 떨었습니다. 말없이 저를 감당해 주시는 “아빠”의 손길은 참으로 따뜻하고 듬직했습니다. 우리의 아빠들은 근본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잘 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십니다. 아빠들은 자식들을 위해 직장에서의 온갖 수모도 견디고 피곤도 이겨가며 등골 빠지게 일합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딴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 아빠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하나님 아빠는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아빠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깊이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 아빠께 나아가 모든 고민과 슬픔을 다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되 처음부터 “제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 하나님 아빠께 진솔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제발 이 십자가의 쓴잔을 치워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예수님의 기도는 참으로 진솔하고 꾸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된 상황에서도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듯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마음이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고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말이 돌고 돌아 자기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들려왔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구나.” 그 후로 그는 누구에게도 마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빠 하나님은 우리의 비밀을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십니다.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고 영접해 주십니다. 말없이 등 쓰다듬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아빠 하나님 앞에 나의 고민과 슬픔과 문제를 있는 그대로 토로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무조건 하나님을 찬양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답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고뇌를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시편 38편을 보면,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 왕” 하면 골리앗을 물리친 용장, 수많은 대적들을 물리친 역전의 용사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다윗도 연약한 한 인간이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한계를 깊이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아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솔직하게 쏟아놓아야 하겠습니다. 찬송가 539장을 보십시오. 1절을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우리가 나의 모든 고뇌와 아픔을 아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맡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36b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처음엔 제발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때는 자신이 당할 고통이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눈에 더 큰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크신 뜻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아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기에 십자가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의 쓴잔을 마시고자 결단하신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기의 소원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하셨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원하심에 대해서는 강하게 긍정하셨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No 하시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Yes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에 대해서는 항상 Yes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No 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아담의 불순종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No가 튀어나옵니다. 조금만 고난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No 하고 튕깁니다. 사탄은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께 대해 No 하고 반발하도록 부추깁니다. “너의 맘대로 살아. 너의 맘대로 즐겨.” 그러나 아담은 사탄의 말을 듣고 따랐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의 열매를 맺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예수님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유혹했을 것입니다. “십자가 지지 마라. 고통스럽잖아. 너 능력 많잖아, 왜 죽으려고 해?”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로 싸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부추기는 사탄의 음성과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사이에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진 것입니다. 동산의 이름인 ‘겟세마네’는 원래 ‘기름 짜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원하심과 자신의 소원 사이에 영적인 투쟁을 하느라 마치 기름을 짜는 것처럼 피 말리는 씨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으로 다 기도를 마칠 수 없어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영적 싸움은 인류역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참으로 중요한 싸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만약에 사탄의 음성을 듣고 여기서 자기 소원대로 해버리면 인류구원역사는 물 건너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순간에 참으로 위대한 결단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예수님의 이 기도는 위대한 자기부인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참으로 고귀한 순종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에 사탄은 철퇴를 맞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자기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는 위대한 승리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나의 원’은 나의 생각, 나의 욕심, 나의 정욕을 위한 것이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원’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소원보다 자기 소원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욕심과 정욕을 쫓아 자기 원대로 해 버립니다. 우리의 소원이 나에게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소원은 좁고 편협하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넓고 원대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하고 가장 좋고 확실합니다. 사람이 자기 원대로 할 때는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 수 없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을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놀라운 영적 세계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쓰실 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원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원대로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구원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 돌아오셨을 때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 중 베드로를 깨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37b,38).”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자신도 사탄이 주는 유혹과 연약한 육신 때문에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마음으로 깊이 영접하고 십자가 고난을 감당할 영적인 힘을 덧입기까지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모든 슬픔과 연약한 생각을 물리치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질 힘을 얻으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는 마지못해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정말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감격에 찬 기도요, 기쁨으로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셨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이상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으로 인해 고뇌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이미 승리하신 것입니다.

 

Ⅱ. 내가 그니라 (43-72)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넘겨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낸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유다의 배반의 키스를 신호로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자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잡았습니다. 4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체포당하는 것이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기초로 생각하고 행동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의 모진 고통 가운데서도 성경말씀이 응하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최후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예언된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면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모든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증거를 찾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짜 맞추기 수사를 하고자 했지만 거짓 증인들의 증언들조차도 서로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짓 증인들의 증언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거짓 증인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자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직접 심문했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님은 이 질문에 부인하거나 최소한 묵비권이라도 행사하면 ‘무혐의’로 풀려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대답하셨습니다. 62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니라.” 예수님은 바로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되심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 되심을 확신 있게 증거하실 뿐만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로써 이루실 역사에 대해서도 증거하셨습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님은 지금 그들의 불법 재판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십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타고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심문하고 사형판결을 내린 그들 모두는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심문당하고 계실 때 베드로는 무엇을 했습니까? 66-7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아래 뜰에 있을 때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을 기억해내고 말했습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베드로는 부인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슬그머니 앞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까지 따라온 여종에게 베드로는 또 한 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예수님과 같은 당이라고 말할 땐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극구 부인하였습니다. 72절을 보십시오.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닭이 참다못해 ‘꼭기요’ 두 번째 울었습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여러분, 겟세마네의 두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름을 짜듯 피땀 흘려 밤새워 기도함으로 자기를 이기고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 육신의 소욕을 못 이기고 깨어 있지 못한 제자들. 예수님은 처음엔 그토록 힘들어 하시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싸움에서 이기셨기 때문에 인류구원을 위한 그리스도로서의 정체성을 자키고 하나님의 원대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그토록 자신감에 넘쳤지만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혹시 제자들과 같이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기도해야겠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깨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힘든 문제들을 초월하고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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