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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 이야기

역대 고구려왕 계보

작성자김민창|작성시간11.12.07|조회수809 목록 댓글 0

고구려는 BC 37년 동명성왕 때부터 AD 667년 제28대 보장왕을 끝으로 멸망할 때까지 약 700여 년간 한반도의 북부와 중국의 동북지방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비옥한 농토보다는 산악지형이 많았던 탓으로 영토확장에 힘을 쏟았고,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무예를 숭상하는 전통으로 인해 정복국가 체제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고구려는 한 군현을 차지하고, 요동지방으로 진출하는 등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침과 동시에 수나라, 당나라의 침략에 맞서 동북아시아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무용총 오른쪽 벽에 그려진 수렵도.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주몽에 의해 건국된 나라답게 무예를 숭상했던 고구려는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이 그림이 그려진 무용총을 비롯한 12기의 고구려 고분들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대 유리왕은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고,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통합하여 5부족을 중심으로 한 연맹왕국을 이루었다. 대무신왕 시절에는 호동왕자가 낙랑의 일부 지역을 정복했으며, 미천왕 때에 이르러 낙랑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였다. 제 6대 태조왕 때에는 옥저를 정복하고 만주지역으로 세를 확장하였으며 고국천왕에 이르러 부자상속제로 왕위 계승이 굳어졌다.

 

17대 소수림왕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대내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는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을 통합하였고 태학과 경당을 두어 교육에 힘썼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의 기본 법 체제를 정비하는 등 통치 질서 확립에도 앞장섰다. 19대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한 왕이다. 남으로는 백제와 겨루어 한강 이북까지 진출하였고, 요동지방을 완전히 차지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한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백제와 신라를 압박해 고구려 최전성기를 만들었다.

 

이후 고구려는 중국을 지배한 수나라와 당나라의 연속된 침입과 귀족들 사이의 내분으로 인해 나라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668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 중국의 침입에 맞서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나라, 대부분의 유적지가 북한과 중국에 있어 더욱 안타까운 한반도의 고대국가 고구려. 고구려의 역대 왕조 계보를 통해 그 역사를 가늠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국사], 교육과학기술부, 2011; 김아네스ㆍ최선혜 지음,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 1, 신원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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